[논평] 남북정상회담 환영만 할 일인가

회담 연기, 반제 반전 평화의 한반도 프로세스 필요

남북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10월 2-4일로 연기했다. 북이 "연일 폭우가 내려 많은 피해를 입었으며, 이로 인해 수해를 복구하고 주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것이 급선무"라는 입장을 알려왔고 정부가 이를 받아 조정했다. 정부는 일정이 연기됨에 따라 의제 마련 등 준비할 시간을 벌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이번 주에 예정된 자문위원단과 경제계 인사와의 간담회도 순연한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북이 남의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대선에 근접한 시기로 옮겼다는 추측도 제기되지만 뚜렷한 근거는 없다. 또한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은 "10월 초면 여권의 대선후보가 탄생하는 시점을 눈앞에 두는데 대선용 정상회담과의 시너지 효과를 노린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단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9월에 예정된 각종 6자프로세스에서 일정한 성과가 정리되고, 정상회담이 이를 수렴, 확장하게 된다면 성공적일 수 있지만, 거꾸로 북과 미국의 협상 태도에 따라 지지부진한 상황이 계속된다면 성공 여부는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13합의 이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논의와 행동의 맥락에서 볼 때 9-10월은 중요한 분기점이긴 하다. 2.13 합의는 이미 중간단계 조치와 이행에 돌입했다. 16-17일 중국 심양에서 열린 비핵화 실무그룹회의에서 북이 모든 핵 계획과 핵시설들을 투명성있게 신고하겠다고 밝혔고, 농축우라늄프로그램(UEP) 의혹 해소도 언급, 비핵화 2단계 조치 이행을 지체하지 않겠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에 따라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 교역법 적용 배제 조치를 할 지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9월에는 시드니 아펙 정상회의(한미정상회담), 북미관계정상화 실무회의, 6자회담, 6자 외무장관회담, 유엔총회 등 한반도 평화를 직간접적으로 다루는 회의가 줄을 잇고 있다. 따라서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다룰 예정인 의제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나, 9월에 추진되는 6자프로세스의 결과에 따라 '평화선언'에 담길 내용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남북정상회담은 핵 불능화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등 ‘행동 대 행동’이 이루어지는 2.13합의 중간단계 시점에, 그리고 6자간 이해득실에 따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논의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막중하다. 한반도 비핵화, 평화, 군비, 경협 등 예정된 의제들은 어떻게 다루어지느냐에 따라 남북 사회구성원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처럼 남북정상회담이 갖는 사안의 비중을 고려컨대 진보운동 진영이 보여주는 무관심과 비실천적 태도는 실로 우려스럽다.

지금까지 노동운동, 사회운동 등 진보운동 진영은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대해 관망하는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민주노동당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소식에 '열렬히 환영'한다는 논평을 내고 의제를 제안하는 등 발빠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파병정책에 따른 아프간 사태 발발과 반노동자정책에 따른 뉴코아-이랜드 노동자의 투쟁을 탄압하는 참여정부에 비판 언급 한마디 없이 열렬한 환영과 지지를 표명한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한반도 평화가 중요하고, 남북 정상간 만남이 이를 진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환영 입장 표명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의제를 제안하는 이상 진보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은 분명히 확인되어야 한다. 가령 한미동맹에 기반을 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논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미동맹 재고 요구를 담아야 하며, 일각에서 거론하는 남북FTA(CEPA)로서의 경협 문제도 심각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다. 사실상 한미FTA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지지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 실현에 얼마나 조응하는가를 냉정하게 돌아볼 일이다.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완화,철회시키는 것이 중요한 일이고, 2.13합의의 진전을 꾀하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유력한 길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가령 미국은 최근 이란의 정규군을 대테러 명단에 올린 데서 볼 수 있듯이 임의로 정한 대테러국 적대정책을 중단할 의사가 없는 국가이다. 미국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적성국교역법 적용 배제에 대한 명시적인 조치를 내리지 않는 한 북미 관계는 언제든지 경색될 수 있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지체될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한국 정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맥락에서 대북 투자전략을 추진하고 전략적 유연성 합의 따위를 유효하게 보는 한 한반도 평화는 심히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2.13 합의 조치와 이행이 중요하지만 한반도 평화를 구조적으로 제약하고 있는 문제를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달 연기된 남북정상회담의 추진과 회담 결과는 대선 국면 후보들에게 뿐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도 큰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은 반제 반전 평화운동의 맥락에서, 한미FTA 반대 저항의 연장에서 시급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전략적 밑그림을 짜고 실천에 나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