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이 7일 동안 완전히 멈춰 버린 경기도 화성 기아자동차 1, 2공장.
‘아, 이것이 파업이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렇게 투쟁할 수 있구나.’
적막하고 어두운 공장 안을 걸어 들어간다. 현재,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서는 소렌토, 스펙트라, 세라토가 한 대도 생산되지 않는다. 공장 앞과 거리, 그리고 천막농성장에서 투쟁하는 장투 동지들의 모습이 익숙한 내게 비정규노동자들의 현장 파업 투쟁은 큰 감동이었다.
파업농성장은 평화로웠다. 저녁 식사를 마친 조합원들은 자신의 거점을 사수하며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공장과 조합원들의 안전을 위해 여성조합원들이 흡연을 하는 조합원들의 라이터를 압수하기도 했다 한다. 조합원들은 오히려 모 하청업체 사장이 파업농성 중에 현장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측은 이번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직지회’)의 파업을 “화성공장 사원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이에 참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폭도로 매도하고 있다. 또, 이번 파업과 관련하여 조합원 35명. 간부 26명, 정규직 1명. 총 62명의 노동자들을 고소고발 하여 파업 대오를 교란시키려 하고 있다.
세상에 파업을 좋아하는 노동자는 없다. 일상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파업은 벼랑 끝에서 잡는 실오라기 같은 희망과 같은 것이기에 그것을 결단하는 것도, 실행에 옮기는 것도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거 생전 처음 해보는 건데, 우리도 힘들고 다른 직원들도 힘들지. 그렇지만 이대로는 못나가. 회사가 언릉언릉 교섭을 제대로 해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 여기서 무너지면 안돼. 꼭 이겨야해”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는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가 많은 요구를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우리 기본급 78만 6천원이야. 최저임금 겨우 턱걸이할 만큼 받아. 우린 주차도 없는데, 시급을 계산해보면 3,611원이더라고. 오래 다닌 것도 아무 의미가 없어. 십년 다닌 사람하고 이제 막 들어온 사람하고 100원 차이나 날라나.”
“우리 일, 완전 노가다야. 식모살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 맨 날 뜨거운 불이랑 기름을 갖고 일하는데도 위험수당 한 푼이 없어. 이 사람에 치이고 저 사람에 치이고 완전 천덕꾸러기지. 나이 어린 조리사들한테 반말도 들었어. 그러다가 노조를 만들고 나니 ‘여사님’이라고 부르더라고.”
“여름에는 에어콘은 있으나마나야. 앞치마까지 하니까 땀띠, 습진이 장난이 아니냐. 똥꾸멍에 물집이 생겨서 까고 자야 돼.”
“우리는 남의 것 빼앗는 사람들이 아니야. 우리는 내 주장을 펼치고 있을 뿐이야. 정규직들은 우리들이 받는 임금이나 대우를 모르더라고. 일부 노조 간부들만 알지. 자기들과 거의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지.”
“돈도 못 벌고, 집에도 못가고, 힘들지만, 그래도 투쟁해야 해.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꼭 승리해야해.”
제일 처음 현대푸드 여성노동자들을 만났다. 처음에 인터뷰 좀 하자고 하자 “나는 말을 잘 못해서...”하며 서로 미루던 여성노동자들. 그러나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자 끝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보따리를 풀러 가슴 속에 맺혀 있던 한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는데, 좀처럼 바닥이 보이질 않는다. 그 이야기보따리에서는 뻥튀기와 집에서 정성스레 만들어 온 감자떡이며 찐 옥수수, 가래떡도 함께 나온다. 이번 파업투쟁 중에 삭발을 한 여성간부 한 명이 지나가자 여러 조합원들이 불러 간식거리를 챙겨주기도 한다. 언니들의 보따리는 요술보따리다.
“감자채를 뭘로 볶았길래 색깔이 그래?”
식당에는 대체인력들이 와서 일을 하고 있는데,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조합원들의 일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몹시 힘들어하고 있단다.
“서로 고생인 거야. 그 사람들도 힘들어서 나오기 싫은 거 억지로 나오고 있잖아.”
언니들은 대체인력 투입 이후 주방의 위생이며 밥과 반찬이 엉망이라고 입을 모은다.
“감자채를 뭘로 볶았길래 색깔이 그래? 우리는 하얗게 볶는데, 굴 소스를 넣었나봐. 우리가 하는 것보다 깔끔하지가 않아. 밥도 엉망이고. 이런 점을 정규직이 같이 해줘야 하는데...”
내가 이들 여성노동자들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 봄이다. 사내 식당 여성노동자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러 갔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필이면 아직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여성노동자들만 근무하는 날 가게 되었다. 사측의 노조가입 방해가 극심할 때였다.
“생리수당도 못 받죠?”
내 취재를 돕기 위해 비정규직지회 한 간부가 밥을 먹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에게 말을 걸었었다. 여성노동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현대푸드 관리자들의 시선 때문에 이들 노동자들은 밥을 먹던 중에 밥 숟가락을 놓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인터뷰를 시도한다. 한 여성노동자가 제발 그만 돌아가 달라고, 내가 이러면 자신들이 힘들다고 애원을 하고서야 나는 정신이 들었다. 어줍짢은 글 한 편 쓰자고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밥 한술 뜨는 시간을 방해하는 내가 밉고 한심스러웠다. 그렇게 나오면서 다시 이분들을 취재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몇 개월 뒤, 현대푸드 여성노동자들이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2007년 여름 끝자락에서 ‘07 임단투 승리! 장기투쟁 승리!’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는 이 여성노동자들을 다시 만났다.
“화성공장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정규직 직원들입니다?”
“사내협력사 정규직 직원들이, 스스로를 비정규직이라 폄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혹시라도, 최근 언론지상에 보도되었던 이랜드, 홈에버, 킴스클럽의 매장 계산원들인 비정규직과 똑 같은 고용조건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사내협력사 종업원 평균 2,700만원의 ‘연봉’도 사회적으로, 산업평균적으로 남부끄러운 수준은 아닙니다. 왜 스스로를 월 90만원도 못 받는 근로자로 왜곡하여 자학하십니까?”
▲ 사내협력사대표 일동 명의의 유인물 |
한 연세 지긋한 조합원이 유인물 하나를 보라고 내민다. ‘사내협력사 대표 일동’ 명의로 되어있는 이 유인물의 제목은 “무엇이 화성공장을 가로막고 있습니까?”이다. 이 조합원은 밥을 먹으면서 이 유인물을 보다가 체할 뻔 했다고 한다. 이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5년 근무한 이 노동자가 매월 잔업과 특근을 하고, 매월 50%의 상여금까지 포함해서 받는 월급은 100만원 조금 넘는다. 최근, 비정규직에게 잔업을 시키지 않아 백 만 원 미만의 월급을 받는 노동자들도 있다. 상여금까지 포함하여 일년에 버는 돈이 1,500만원이 될까 말까한데, 2,700만원을 받는다고 했으니 화가 날만도 하다. 조합원들의 분노는 무엇보다도 이번 비정규직지회의 파업을 ‘돈 더 받으려고 하는 파업’으로 매도하는 것에 있다.
2007년 비정규직지회의 임단협 핵심요구안은 비정규직 고용보장, 정규직 최하 1급 1호봉 기준 기본급 동일 적용, 생계비·생존권 사수 등 비정규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차별철폐가 그 핵심이다. 2007년 임·단협과 관련하여 비정규직지회는 원·하청 회사측에 12차례의 교섭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단 한차례도 이에 응하지 않았다. 하청업체는 해마다 진행되어 온 집단교섭을 거부하고 개별교섭을 요구하며 공갈협박까지 했었다.
지난해 여름 투쟁에서 비정규직지회는 식당 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온전하게 쟁취했다. 그런데 사측은 이제 와서 식당 노동자들이 쟁의행위를 할 수 없는 ‘협정 근로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구사대’...
밤 10시. 노동가요가 울려 퍼지는 공장 안에 긴장감이 흐른다. 기아자동차 정규직 직원들이 농성장 밖에 모여 있다. (나는 이들을 ‘구사대’로 지칭할 것인지 고민한다.) 안에서는 출입문 앞에 바리케이트를 쌓고, 선봉대들이 대오를 정비하고 있다. 문 밖에는 또 다른 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데, 그 수가 많아보이지는 않는다. 흩어져서 자신들의 거점을 사수하던 조합원들이 최소 인원을 남기고 출입문 쪽으로 모인다. 오늘 낮, ‘구사대’들의 농성장 침탈과정 중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어쩔 수 없이 왔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정규직 노동자들도 있지만, 5~60대 노동자들에게 욕을 하고 폭력으로 위협하는 이들도 있다. 오늘 낮에는 비정규직지회 파업을 엄호하던 정규직 노동자가 끌려가서 폭력을 당하고, ‘구사대’측에서 농성장 유리창을 깨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와~!”
“함성, 와~!”
밖에서 함성이 들려오자 안에서도 바로 함성으로 대응하고, 거점 사수와 출입문 사수를 하고 있는 조합원들이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8박자 구호를 외친다.
“원하청이 하나되자!”
“죽기를 각오했다. 파업투쟁 사수하자!”
“기필코 사수해서 현장으로 돌아가자!”
비정규직지회가 그렇게도 미운가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다. 사회적 약자들이 인간답게 살아보겠다는데, 그게 그렇게도 싫은가.” ‘구사대’와 대치하던 한 조합원이 한숨을 쉰다.
조합원들은 일련의 상황들을 비정규직지회를, 민주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탄압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 파업 농성이 진행되는 도장2부 흑도공정은 원래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일하던 곳으로 바로 몇 달 전에도 동일한 사람들이 파업을 했던 장소다. 이곳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몰려와서 “비정규직 물러가라”를 외친다. 그 중에는 조반장 급의 정규직노조 조합원도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비정규직지회 파업에 대한 반감은 정규직노조의 파업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서 시작된 파업에 대한 부담감과 함께 ‘감히 내 일터를 침범한 비정규직들’에 대한 반발로 생각되기도 한다.
조합원들은 언론보도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도 이야기한다. 사측의 언론통제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보도가 되는 내용들도 파업의 이유와 과정에 대한 내용보다는 ‘노동자 이기주의’나 ‘파업으로 인한 손실’, ‘원청의 사용자성 부정’과 관련된 내용들이어서 불만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조합원들이 현 상황을 비정규직지회를 없애기 위한 조치로 인식하는 것은 기아자동차지부의 비정규직 직가입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비정규직, 사무직에 대한 조직편제는 1사1조직을 원칙으로 한다. 단, 해당단위의 판단에 따른다.” 지난해 금속 완성대의원대회에서 제44조 규약이 신설된 이후,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는 올해 5월부터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직가입을 추진해왔다. 금속노조 중앙에서는 직가입 중단을 권유하고, 금속노조 법률원에서도 직가입자들을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을 회시하였음에도 기아차지부의 직가입 추진은 계속되었다.
“오늘도 정규직 한 대의원이 왜 직가입 안하냐고 했다. 집행부가 9월에 있는 경기지부 선거에 나가려고 우릴 이용하는 거라고 하는데, 진실이 뭔지 우리는 안다.”
기아차지부의 직가입 추진으로 4백 명 정도의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기아차지부에 직가입하게 되면서 1,300명이 넘던 조합원은 불과 석 달 사이 8백 명 대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2005년 그 힘겨웠던 시기부터 함께했던 조합원들은 여전히 굳건하게 비정규직지회를 지키고 있다. 직가입을 한 노동자들 중에는 이번 파업 투쟁에 투쟁기금으로 함께하는 이들도 있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의 자부심에는 남다른 면이 있다. 어쩌면 그것은 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비정규직지회를 미워하고 와해시키려 한다 해도 조합원들의 자부심과 긍지, 지도부에 대한 신뢰와 민주노조 사수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
‘구사대’가 해산하고 다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박수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현대푸드 여성노동자들이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다.
“낙동강 강바람이 치마폭을 스치면~~”
“해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사회자가 조합원들을 한 명씩 불러내서 노래를 하게 한다. “구호를 하도 외쳤더니 목소리가 안나온다.”면서 앞으로 나온 조합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어깨춤도 덩실덩실 추며 흥겹게 노래하고 “앵콜”도 마다하지 않는다.
“투쟁은 아무나하나 비지회나 하는 것이지. 빠른 날짜에 너와 내가 힘모아 07투쟁 끝내자”
1시간 남짓한 오락프로그램이 끝나자마자 언니들이 한 명 두 명 자리에 눕기 시작한다. 벌써 파업 7일차인데, 이불이며 침낭 한 개가 없다. 언니들은 은박지 깔판을 깔아놓은 바닥에 그냥 누워 자거나 신문지 등을 덮기도 한다. 신문지 이불도 넉넉지가 않다. 나도 눕는다. 조합원 한 분이 무언가로 덮어주고 간다.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소리와 낮게 코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새벽이 되니 어디서 바람이 들어오는지 제법 쌀쌀하다. 이랜드 동지들을 보며 기륭동지들을 생각했었던 나는 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을 보며 자꾸만 이랜드 동지들을 생각한다.
새벽에 불침번을 서던 한 조합원이 이야기한다.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저 내 일터에서 불안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열심히 일하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거죠. 또, 가끔은 마음 편히 가족들과 놀이공원에 가거나 외식이라도 한 번 할 수 있는 것. 그게 인간답게 사는 것 아닐까요? 우리의 파업은 그렇게 살기 위한 파업입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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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정규직지회의 파업농성 9일 차가 되는 날입니다. 오늘 오후 3시, 기아자동차 화성공장 북문에서 ‘전국 비정규노동자대회’가 열립니다. 파업농성을 시작한지 열흘이 다 되어 가는데, 그동안 공장 앞에서 집회나 문화제 한번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특히, 기아자동차 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와 연대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