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는 ‘제논의 역설’의 희생물인가?

[진보논평] 07년은 FTA체제 원년, 좌파의 전략 지도는 무엇인가

진보전략회의(준)는 한국사회 주요 전략아젠다에 대한 진보적 정책생산을 목표로 모인 연구자, 활동가들의 전략네트워크이다. 사회운동의 통합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운동과 운동을 이어주고 지역, 부문, 현장에서 운동기획을 자극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표방하고 있다. 진보전략회의(준) 회원들이 주요한 사안에 대해 발표하는 '진보논평'을 민중언론참세상에 게재한다.- [편집자 주]


87년체제가 지속된 지 20년 만인 2007년은 ‘FTA체제’ 원년이다. 97년 IMF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적인 재편은 2007년 비정규보호법안 통과를 동력으로 삼아 상승일로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 FTA체제는 신자유주의적인 재편의 결정판처럼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FTA체제는 기 드보르의 표현을 빌리면 ‘날조의 세계화’ 혹은 ‘세계의 날조화’이기도 하고 진실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일종의 매트릭스이기도 하다. FTA체제는 미국산소고기 문제로 상징되듯이 겉으로는 무역불평등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FTA체제의 진실은 국가-자본이 공모하여 1970년대 이후 장기침체에 빠져 상실했던 자본의 몫을 회수하려는 전략에 있다.

지식기반사회나 FTA를 통한 국가경쟁력 확대 같은 담론들은 대중들을 담론의 스펙타클에 가두어 세계를 날조하고 그 사이에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세계화, 지구화라고 하지만 이런 담론들도 날조를 세계화하고 자본에 의한 착취라는 진실을 감추는 매트릭스를 전 세계에 퍼뜨리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대중들은 매트릭스의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날조가 세계화 바람을 타도 대중들은 날조 위에 피어나는 스펙타클을 보고 즐길 뿐이다.

좌파는 날조의 스펙타클을 생산해내며 미래로 줄달음치는 국가-자본과, 매트릭스에 빠져 있는 대중들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시민운동의 생명이 다해 가고, 제도권 정치운동이 타락할 대로 타락해 있으며, 노동운동은 조합주의에 빠진 지 오래 되었고, 사회운동은 부문운동 안에 폐색되어 있다. 그러는 가운데 좌파는 운동을 재활성화하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진보전략회의(준)는 국가-자본을 통제하고 좌파운동을 대중화하기 위한 전략의 교두보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좌파 내지 좌파운동은 운동들을 횡단하지 못하면서 제논의 역설을 전혀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과연, 제논의 주장대로 아킬레스는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것일까? 좌파가 아킬레스가 되어 국가-자본과 대중이라는 거북이를 잡지 못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얼마 전 사회운동포럼이 끝났다. 포럼에서 운동의 활동양식이 운동의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좌파운동의 위기도 운동의 활동양식에서 온 것 아닐까? 아니, 좌파운동의 방식이란 것이 있었던 것일까? 87년 이후 최대 규모의 인원을 동원한 범국본의 활동이 있었지만 그것을 좌파운동 방식의 모델로 삼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좌파운동의 활동양식이고 무엇을 좌파운동의 정체성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시위와 파업인가? 시위현장에서 유인물 나눠주고 성명서 채택 낭독하는 것이 운동인가? 좌파에게는 원론만 있고 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실천의 방식도 구태의연하거나 부재에 가깝다. 자기가 존재하는 시공간 안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는 실천만 있을 뿐 행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필자부터 그렇다. 신자유주의가 판치는 대학이라는 공간 안에서 좌파는 외계인일 뿐이다. BK21을 비판해도 실천은 나오지 않는다. 비판이, 성명서가 실천 방식은 아니다. 지식을 국가화하는, 그리고 나서 돈 몇 푼 나눠주고 용도 폐기해 버리는 사업에 참여하지 말거나, 비정규직을 끌어당기는 발본적인 시위를 해야 한다. 좌파는 이제 원론과 입장을 머리에 담아 두고 손과 입으로 정책을 쓰고 말하며 온 몸으로 행동해야 한다. 사회운동포럼에 참가한 한 활동가가 ‘답답했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듯이 필자도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그러나 변혁의 꿈을 접을 수는 없다. 호우에 쓰러진 볏단을 일으켜 세우고 각 부문운동을 횡단 접속시키며 FTA체제의 미래를 5년, 10년 내다보면서 대중들 속으로 파고들어 감동을 줘야 한다. 지하자원이 없는 우리에게 베네수엘라는 모델이 될 수 없다. 미래의 정치세력은 지금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다. 3, 40대는 이미 좌파에게는 대중이 아니다. 교육운동, 아니 교육혁명이 필요한 이유다. 미래의 정치세력을 주체화하기 위해서는 강제수용소에서 공부가 아니라 노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부터 구출해내야 한다.

해서, 대학입시철폐운동본부를 구성해 대학, 교육부, 국가와 한바탕 집중적으로 싸워 보면 어떨까? 물론 그것도 내신 문제로 고려대를 방문해 항의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한미FTA만이 아니라 남북FTA까지 점쳐지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통찰이나, 위험스럽긴 하지만 실천에 대한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구체적이고 중장기적인 전투 지도를 만드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대구에는 5일 째 비가 오고 하늘의 검은 구름은 머리 위까지 낮게 포복해 있다. 바싹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 구름 뿐일까? 한미FTA, 청년실업, 중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동북아평화체제, 빈곤과 가난, 입시지옥, 비정규직 등 숱한 문제들이 주변에 포복해 있다. 박정희식의 개발독재에 대한 욕망에 대중들이 포획되어 있는 상황에서, 제논의 역설을 극복하는 것은 좌파에게는 너무나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좌파가 그 역설의 희생물로 귀결되어서도 안 된다.
덧붙이는 말

이득재 님은 대구가톨릭대 교수로, 진보전략회의 회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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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흐음

    좌파의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했던 김규항의 인터뷰가 생각납니다. 그 양반 요즘 뻘소리 해서 쬐끔 거시기하지만 그 주장만큼은 여러 형태로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 역시

    이것도 역시 그 잘난 담론(?), 지식인의 헛소리가 아닌가요

  • a

    이런 것도 글이라고 썼나?
    좌파라는 용어로 자신을 정의하는 것부터 불분명하다.
    그리고 실천은 없고 반대담론만 양산했다는데, 지난 20여년의 노동운동 내지 정치세력화의 역사에서 수없는 탄압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쓸려져간 선배, 동지들을 한 순간에 자신과 같은 무능력자로 전락시키는 고약한 규정이지 않는가?
    그리고 지하자원 없는 것과 베네수엘라 모델 불수용을 연관짓는 것은 무슨 똥같은 소리인가? 베네수엘라가 향후에도 민중권력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창조적 실천을 지속시켜나간다면 이를 배워나가면 된다.
    마지막으로 대학입시철폐운동본부는 코메디다. 자신이 비판하는 관념적 운동을 여전히 스스로가 뛰어넘지 못함을 증명하는 뻘소리 아닌가?

  • 지식인 좌파

    뭘 하더라도 결국엔 거대 담론만이 중요하다는 인식 때문에 결국 교수/지식인만 남은 공허한 좌파가 되게 아닐까? 지식인이 전면에 나선 좌파. 그 운동이 공허해졌다는 결과는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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