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유영환 장관은 북 게시물 삭제 명령 취소해야

정보통신망법 재개정 타고 버텨보려는 국가보안법

정보통신부는 18일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전국민중연대 등의 단체에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7에 따른 북한게시물 삭제 명령' 공문을 보내고 9월 28일까지 해당 게시글을 삭제 조치하라고 명령했다. 해당 게시물이 정보통신유리위원회의 심의결과 국가보안법 제7조를 위반하는 불법정보로 의결되었기 때문이라고 되어 있다.

정보통신부의 명령 공문을 받은 단체는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민주노동당, 전국민중연대, 통일뉴스,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주한미군철수운동본부, 전국연합, 민주노총, 전국노점상연합, 전국농민회총연맹, 범청학련, 한총련, 배움의길 등 13개 단체로 알려졌다. 명령 공문을 받은 이들 단체가 해당 기한까지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정보통신망법이 개정되고 시행령이 떨어지는 동안 네티즌의 표현의 자유가 심대하게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와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이번 삭제 명령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며, 이에 진보네트워크센터 등 정보인권단체와 해당 단체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정보통신망법 중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명예훼손,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 등을 자체적으로 판단해 삭제를 결정하고, 정보통신부 장관이 삭제 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한 제44조(정보통신망에서의 권리보호) 부분이다. 제1항 정보통신망 이용,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수행하는 내용의 정보 유통 금지, 제3항 위를 위반했을 경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삭제 요구, 취급제한 명령 가능 조항과, 64조 제4항 위 항의 명령을 어겼을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 조항 등이다. 지난 7월 27일 재개정 발효된 정보통신망법 내용이다.

44조 제1항은 죽은 귀신이 산 사람의 발목을 잡는 꼴이다. 북미간 종전 이야기가 나오고,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거론되는 이 시기에 냉전의 최악의 산물인 국가보안법이 인터넷상에서 활개친다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70세 이상 즉각 자유왕래와 70세 이하 북측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 후 단계별 자유왕래를 공약으로 하고 있고, 한나라당이 채택한 한반도평화비전에는 북의 방송과 신문 등 언론시장 개방, 개성공단과 금강산 일대 인터넷 개통을 시작으로 남북간 유무선 통신 개통 등도 담겨 있다. 보수냉전세력조차 한반도 평화의 대세를 받아들여 20세기 냉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이 21세기 인터넷 회선을 휘젖고 다닌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 냉전의 산물이 아직도 죽지 않고 지배시스템의 일각에 달라붙어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검토해서 시정을 요구하고 정보통신부 장관이 삭제 명령을 내린 것 자체도 황당한 일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가 판단하는 것은 명백한 위헌이거니와, 이 시나리오가 경찰청과 국가정보원 등 수사기관의 요청을 받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을 더한다. 참여정부의 수사,정보기관이 지금도 검은 선글라스를 낀 두더쥐마냥 최첨단 장비를 이용, 진보적 사회단체를 지속적으로 감시, 검열, 사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삭제 대상에 오른 게시물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북한 및 불순세력의 선전선동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통신윤리위의 판단은 우스꽝스럽다. 우리 사회구성원 중 일부가 북의 사상과 이념을 추종하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어떤 위협도 되지 않으며, 하나의 경향으로 기꺼이 인정해줄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시민사회 역시 북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보거나 비판적 안목으로 바라보는 여건을 갖춘지 오래 되었다.

죽어버린 냉전의 거대한 몸뚱아리에서 빠져나와 정보통신망법 재개정의 틈을 비집고 생명 연장을 노리는 국가보안법의 준동은 더이상 계속되지 않아야 한다. 유영환 정보통신부 장관은 시민사회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즉각 북 게시물 삭제 명령을 취소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