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비혼남이 말하는 가족구성권 이야기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6) - 성소수자 가족구성권

필자는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 방 두 칸의 빌라에 거주하는 게이입니다. 얼마 전까지는 미혼이었던 친형과 함께 살았지만 최근 친형이 결혼한 이후 저는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레 가족들의 화두는 제 결혼이야기로 옮겨갑니다. 혼자 살기가 외롭지 않겠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급기야 결혼이야기로 이어지는 한국이라면 지극히 정상적인 이야기입니다. 친형의 친구들과 함께 자리한 신접살림 집들이에서도 제 결혼이야기가 나옵니다. ‘외롭지 않냐’ 며.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고’, ‘혼자 사는 것은 쉽지 않다고.’ 동생이 게이이며 결혼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형은 자연스레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바꿉니다.

머지않아 저는 형수님에게 제 성정체성을 말하고, 결혼에 대한 제 생각도 나눌 생각입니다. 친형도 마찬가지겠지만 형수님은 우선 저에 대한 염려를 하실 테고, 혼자살기란 쉽지 않고, 한국사회의 보수성에 대해 말하며 결혼은 꼭 해야 한다고 조언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결혼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점점 높아져가는 상황과 '싱글'이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이라는 점은 잘 알려진 요즘의 변화양상입니다. 형수님은 주위 사람들의 삐딱한 시선, 결혼하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생활을 통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계기로 본다면 홀로살기는 쉽지 않다고 설교할지도 모릅니다.

게이들은 혼자서도 잘 삽니다. 게이는 사랑하는 사람과 살기도 합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스스럼없이 표현할 수 있는 이성애자와 살기도 합니다. 물론 게이는 게이 친구와도 살고 있습니다. 혼자서도 잘 사는 게이는 친한 게이 친구들과 게이 공동체를 꾸려 함께 살고 싶은 소망도 있습니다. 레즈비언 역시 같습니다. 트랜스젠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민법은 서로 동거하며 부양하고 협조하는 것을 의무로 하는 부부(夫婦) 관계에서 이루어진 가족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성애자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함께 살며 여러 가지 사회 제도 및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은 당연한 사회입니다. 서로 동거하며 부양하고 협조하는 의무를 충실히 지키고 있는 성소수자 가족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남녀 간의 혼인관계에서 비롯된 가족만을 인정하는 것은 국가가 개인의 삶의 형태를 획일화하는 것이고,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변화하고 있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는 가족을 구성할 수 없는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결혼을 원하지 않는 이성애자 역시 차별받는 것입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국가가 허용하는 범위 내의 가족 형태만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습니다. 그 대상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살 것입니다. 성관계는 물론이고, 입양을 통해 사랑을 나누고 싶고, 경제적 활동으로 좀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공동재산을 소유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 게이인 저는 사랑하는 사람과 살 수는 있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를 주위에 알릴 수도 없고, 세제 혜택이나 공·사보험 수급권자를 파트너로 지정할 수도 없습니다. 하물며 입양을 통한 양육의 문제는 먼 꿈입니다. 아마도 ‘동성연애자들에게서 자라는 아이가 무엇을 배우겠냐?’ 며 보수진영이 길이길이 난리 뛸 일입니다.

지난 5월 서울인권영화제에서 본 ‘사랑의 정치’라는 영화를 기억합니다. 2004년 캐나다의 성소수자들이 혼인할 권리와 입양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활동한 영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성소수자들의 꾸준한 문제제기와 시위 그리고 당사자들의 적극적인 외침이 큰 몫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운동은 거기가 끝이 아닐 것입니다. 성소수자들이 성소수자와 함께 또는 성소수자 홀로 살기 위해 그리고 결혼이 아닌 방법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상속권, 의료보험, 주거권, 연금, 보건권, 동거권 등 인간으로서 필수적인 권리들이 필요합니다. 서로 의지하며 서로 보호하고 부양하며 돌보고 생의 울타리가 되어 주는 동반자 관계와 가족 관계에 대한 경제 공동체의 법적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기에 우리는 꾸준히 요구해야합니다.

차기 대통령과 정부에 요구합니다. 성소수자들이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기존의 차별이 해소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네덜란드, 캐나다, 벨기에, 스페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인정하는 동성 간 혼인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의 일부 지역,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국가가 인정하는 동반자 관계 등 그리고 성소수자 생활 공동체와 1인 성소수자 가족까지 제도적인 테두리 안에서 보장받아야합니다. 사회구성원으로 함께 살고 있는 성소수자 역시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고, 성소수자는 성소수자와 함께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말

이종헌 님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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