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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연안 어민들의 '쓸쓸한 설날'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45) - 김제 거전마을 주민들

  조개잡이에 나선 주민들

설날을 즈음해 새만금 연안에 사는 어민들이 명절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 지난 2월 4일 오전 김제 거전갯벌을 찾았다. 먼저 전주에서 아침 7시40분에 출발해 8시30분경 만경읍에 위치한 능제를 찾았다. 전날 새를 관찰하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가창오리 떼를 보았다고 소식을 전해왔기 때문이다.

마을을 접어들어 새들이 무리지어 있는 물가로 가보니 검은 색깔로 저수지를 덮고 있었다. 얼음이 얼어붙은 자리는 피해서 앉아 있었다. 가장자리엔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 쇠오리떼도 보였다. 망원경을 보면서 개체 수를 새어 보니, 7만5천여 마리나 되었다. 이곳에서 가창오리 떼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대개 금강호와 올 겨울엔 만경강 화포 앞 물가에 최소 30만 마리 정도가 무리지어 있었기 때문이다.

김제 거전마을행 시내버스를 차기 위해 만경읍에 도착했다. 시내버스를 기다리는데 길 건너편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트럭에 탄 채 누군가 손짓을 한다. 다가가니, 김제 거전마을에 사는 아주머니다. 올해로 40세 되는 분이다. 이 분은 2006년 8월부터 2007년 8월까지 잡아온 백합 양과 1kg당 단가, 총 금액을 매일 매일 기록해 주셨던 분이다. 그런데 작년 9월부터는 백합 잡는 일을 그만두고 김제 심포항에서 조개구이를 파는 포장마차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다. 참고로 이 분이 작성해 준 ‘새만금 연안 어민 맨손어업 수익 조사표’는 아래 <표>와 같다.

  [표] 새만금 연안 어민 맨손어업 수익 조사표
◇ 조사 대상자 : 여성(2006년 당시 38세), 맨손어업(백합잡이). 김제시 진봉면 거전리 거주(시어머니, 시아버지, 자녀 2명와 동거)

트럭 옆 좌석에 앉아서 몇 마디 말을 여쭈었다. 그러자, 수입에 대해서는 정확히 말을 하지 않고 “하루에 8시간 넘게 일을 하고 있고 토요일, 일요일도 쉬지 않는다”고 말을 한다. 두 달 전엔 만났을 때 하루에 3만 원을 받는다고 한 적이 있다. 주인 아주머니가 친절해서 그런지, 다른 포장마차보다 손님이 많은 편이라고 귀띔해 준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단다. 명절이 대목이니, 쉴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마침 거전마을 행 시내버스가 도착했다. 명절 잘 지내시라고 말하고 시내버스에 옮겨 탔다. 시내버스엔 네 사람뿐이다. 명절이 다가왔는데도 북적거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도 설날에 ‘고향방문 환영’ 플래카드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찬바람과 함께 쓸쓸한 명절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다. 그 만큼 새만금갯벌에서 어민들의 수입이 거의 없고, 그래서 씀씀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리라.

  김제 거전갯벌

버스 종점인 거전마을에서 내려 갯벌로 향했다. 농수로 배수갑문 앞 갯벌쪽 수로에는 목선 하나가 2년 가까이 갯벌에 얹혀진 채 썩어가고 있었다. 며칠 전 내렸던 눈은 거의 다 녹아 일년생인 염생식물들이 앙상하게 죽은 채 갈색으로 갯벌을 뒤덮고 있었다.

바닷가에 위치한 식당에 가방을 잠시 맡겨 놓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에게 동화책(도요새 공주, 김회경 글)을 보라고 주고, 난 후 다시 갯벌로 이동을 했다. 만경강과 동진강 하구가 만나는 거전마을 끝지점에 도착했다. 제법 멀리까지 바닷물이 빠져 있었다. 바닷가 옆 수로엔 바닷물이 없어서인지 새들이 보이지 않았다. 망원경으로 갯벌을 둘러보는데 멀리 사람을 실고 나르는 트랙터가 갯벌에 서 있고, 그 옆에 사람들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조개를 잡는 모양이다.

다시 발길을 재촉해 사막처럼 변한 갯벌을 걸어 들어갔다. 차들이 들어간 자국이 선명했다. 앙상하게 죽은 채 갈색으로 변한 염생식물 군락지 사이를 지나자, 떠내려 온 어선이 갯벌에 놓여 있었다. 갯벌엔 마도요가 그랬는지 부리로 구멍을 뚫어 놓은 자국이 보였다.

트랙터 옆에 다다르자, 몇몇 주민들이 열심히 갈코리질을 했다. 한 아저씨가 열심히 갈코리질을 하지만 가끔씩 모시조개만이 잡혀 나올 뿐 백합은 거의 잡혀 나오지 않았다. 겨울철엔 백합이 깊이 들어가고 모시조개는 상대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지만, 그동안 백합을 많이 잡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말로는 “바닷물이 많이 들어올 때는 이곳 자리까지 스티로폼을 단 펌프배가 들어와 조개들을 잡아가 거의 없기도 하고, 방조제를 막아서 백합이 서식하기에 좋지 않아진 데다가 그동안 많이 잡아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갈코리로 계속 갯벌을 뒤집자, 가끔씩 개맛과 맛조개가 뒤집힌 채 나왔다. 맛조개가 다시 갯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갯벌에 발을 내딛기 위해서인지 허공을 휘젓기도 했다.

다시 주변에서 갈코리질을 하고 있던 한 아주머니에게 다가갔다. 열심히 갯벌을 뒤집지만 간간히 조개가 나올 뿐이다. 이곳 주민이냐고 묻자, “10년 전 IMF가 터지고 나서 김제 시내에서 이곳 거전갯벌로 들어와서 부부가 조개만 잡아 살아왔다. 트랙터까지 장만했다”면서 “이제 조개도 거의 나오지 않고 바닷물도 자주 빼주지 않아 이제는 노가대(노동판)에 나가서 일해야 할 것 같다”고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이번에도 3일째 갯벌에 나오는데 이틀간 10만 원 벌었다”고 말했다. 조개잡이가 별로 나오지도 않아서 더 힘드시는지 허리를 자주 펴면서 일어섰다.

멀리서 오토바이 한 대가 다가왔다. ‘그레’를 등에 지고서 말이다. 갯벌을 깊이 파헤치기 시작했다. 겨울철에 깊이 파고 들어간 백합을 잡기 위해서다. 갯벌에 들어온 것이 늦지 않았냐고 묻자, “도매상 주인이 새만금 방조제 밖 부안 합구마을 앞 갯벌에 뿌린 백합을 잡으러 아주머니들과 같이 갔었다. 그런데 바닷물이 다 들어와서 작업도 못하고 되돌아왔다”고 말했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술을 한 잔 한 모양이다.

  먹이를 찾다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도요물떼새 무리들

다시 멀리서 조개를 잡고 있는 곳으로 가려는데 도요새 무리가 바닷물이 빠진 갯벌에서 흩어져 먹이를 잡고 있었다. 망원경을 확인해 보니, 개꿩 66마리, 민물도요 450마리다. 민물도요 한 마리가 부리로 ‘갯지렁이’를 잡아 올리자 주변에 있던 민물도요 서너 마리가 달려든다. 먹이쟁탈전이 벌어진 것이다. 얼마나 먹이가 없길래 그럴까.

우리나라에선 일부 민물도요와 개꿩, 마도요가 추운 겨울철을 나기도 한다. 대개 수컷일 가능성이 크단다. 먹이 찾기에 여념이 없던 도요물때새들이 무리지어 날아오르더니 군무를 펼치다가 제법 멀리 날아갔다. 마을 주민들이 바닷물이 빠진 갯벌에서 조개를 잡듯이 이들 도요물때새들도 드러난 갯벌에서 먹이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거전갯벌에 떠내려 온 어선

바닷물이 빠진 갯벌을 걸어서 건너편 갯등으로 이동을 했다. 트랙터 두 대에 8명 정도의 주민이 연신 갈코리질을 하고 있었다. 한 아저씨가 코만 남긴 채 두건을 쓰고 반갑게 인사를 하셨다. 아침 7시에 들어왔단다. 왜 트랙터 뒷부분이 없냐고 묻자, “갯벌에 들어오는 아주머니가 많이 줄어들어 떼고 다닌다”고 말했다. 얼마나 잡았냐고 묻자, 말꼬리를 흐리신다. 두 명의 아주머니가 주변에 늘어놓은 자루들을 물가 쪽으로 옮겨 뻘을 싣고 크기와 종별로 고르기 시작했다. 그 중 한분은 5만 원 정도 벌었다고 하신다.

다리가 불편하신 한 아주머니는 아직도 갈코리질에 바쁘다. 거전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마을에서 사는 분인데 시내버스로 매일 매일 조개잡으러 다니신다고 말씀을 한 적이 있었다. 오늘 얼마나 잡으셨냐고 묻자, “4만 원 정도 벌었다”고 대답했다. 이번 설 명절나기에 충분할지 모르겠다.

다시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찬바람이 계속 불자 모두들 조개자루를 모아 싣고 갯벌을 하나 둘 빠져 나갔다. 트랙터를 타고 가거나 걸어 나갔다. 나도 도저히 추워서 더 돌아볼 수가 없어 따라 나왔다. 오후 2시쯤이다. 가방을 맡긴 식당에 들어가자, 거전마을에 사는 주민들이 10여 명 앉아있었다. 그중 구복 어촌계장도 보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칼국수 한 그릇을 시켰다. 마을 아주머니는 겨울철엔 동죽 보다 굴이 들어간 국수가 맛있다고 하면서 한 그릇(4천 원)을 가득 담아 내놓았다.

맛있게 먹고 있는데 아까 갯벌에서 ‘그레’로 백합을 잡던 주민이 들어오더니 소주병을 내놓고 먹기 시작했다. 힘들게 일했는데도 별로 잡히지 않았는지 술로 달래려는 모양이다. 이렇듯 기쁘고 먹을거리가 풍성한 설날이 다가오는데도 마을 주민들은 수입이 많이 줄어들어 쓸쓸하게 명절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그들에게 희망찬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하면서 오후 4시쯤 시내버스를 타고 만경과 대야를 거쳐 전주로 향했다. 피곤했지만 버스 속에서 잠시 오지 않아 이 생각 저 생각이 들 뿐이었다.

  바닷물이 빠진 김제 거전갯벌에서 갈코리로 모시조개 등 조개를 잡고 있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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