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건설하라, 21세기 사회주의

레보위츠의 책 'Build it Now'를 읽고

‘지금 건설하라,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책이 나왔다. 뭐랄까 한가하다고나 할까 황망하다고나 할까. 책 제목이 주는 느낌이 그렇다.

개발과 경제살리기, 경쟁과 효율이 지고의 논리가 된 현실에서 ‘사회주의’라는 단어의 뉘앙스는 고답적이거나 아카데미틱한 느낌 이상으로 다가오지 않는 게 사실. 유권자 97%가 보수 성향의 후보를 지지했던 지난 대선이나, 국회의원 300명 중 잘 해야 너댓 명 정도의 진보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점쳐지는 총선 분위기의 한국 사회에서, ‘지금 21세기 사회주의를 건설하라’라는 선동의 그 당돌 용감무쌍함이라니.

사유화를 근간으로 하는 이명박 정부의 행보를 고려할 때, 그리고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의 재편 과정에 사유화의 물질적,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이 압도하는 현실을 놓고 볼 때 더욱 그렇다.

책은 뜻밖이다. 사회주의 이론의 고루한 열거보다 현실 운동의 핵심과 맥락을 쉽게 보여줘 일단 읽는 재미가 있다.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자극도 있고. 이번 책은 ‘자본을 넘어’(Beyond Capital)의 후속으로, 21세기 사회주의 건설 문제를 베네수엘라의 현실 위에서 짚어내는데, 여기서 맑스주의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창조적 해석을 시도했다는 평과 함께 마이클 레보위츠의 미덕이 거론된다.

  마이클 레보위츠 지음, 원영수 옮김, 도서출판 메이데이 펴냄

저자는 차베스 정부의 사회경제장관 특별자문역으로 근무한 경험을 살려 볼리바르혁명 과정을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풀어쓰는데, 21세기 사회주의 건설 문제가 이론이나 추상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준다. 특히 볼리바르혁명 과정을 자세히 다룬 7장 ‘근본적 필요의 혁명 : 볼리바르혁명의 사회주의적 경로 선택의 뒤에서’에는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의 가능성과 현실성이 함축되어 있어 긴장을 더한다.

레보위츠는 자본의 성장드라이브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부가 노동자들 자신의 발전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한다는데 주목하고, 인간 발전, 인간 역량의 성장, 인간능력의 확장으로 오늘날 대안은 자본에 대한 대안이어야 하고, 자신을 더 나은 세계의 당위로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레보위츠는 볼리바르헌법과 차베스주의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도 인간 발전의 문제에 각별히 주목한다. 가령 볼리바르헌법 제299조(인간의 전면적 발전의 보장), 제20조(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에 대한 권리가 있다), 제102조(모든 인간의 창조적 잠재력의 발전과 민주적 사회에서 그들의 인격의 완전한 행사), 제62조((민중의참여가) 개인과 집단 모두의 완전한 발전을 보증하는 참여를 획득하는 데 필요한 방법), 제70조(상호 협동과 연대의 가치에 의해 인도되는 연합의 형태 - 자주관리, 공동경영, 모든 형태의 노동조합), 제135조(연대, 사회적 책임, 인도주의적 지원의 가치에 의해) 사적 개인들이 능력에 따라 일할 의무 등을 환기한다.

또한 2005년 세계사회포럼에서 “우리는 소련과 동일한 왜곡인 국가자본주의에 호소할 수 없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하나의 테제, 하나의 프로젝트이자 하나의 경로로서 복원해야 하지만, 새로운 유형의 사회주의, 모든 것보다 기계나 국가가 아니라 인간을 앞에 놓는 인간적 사회주의를 복원해야 한다”는 차베스의 연설을 들어 21세기 사회주의가 인간적 사회주의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고슬라비아 자주관리의 경험을 다룬 ‘6장. 자주관리 : 일곱 가지 어려운 난제’에서 노동자계급 간의 연대의 결여가 초래한 한계를 지적한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유고슬라비아의 자주관리 사례를 통해 민주적 지역계획을 통해 표현된 공동체의 필요와 자주관리 생산자들의 능력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기획을 제시한다.

오늘날 자본의 신자유주의 축적전략에 따른 신자유주의 정치의 재생산의 핵심이 사유화에 있다고 한다면, 사회주의적 방법론으로서의 대안으로 사회화(socialization) 외에는 다른 방안이 없다. 레보위츠가 볼리바르혁명의 진행 과정을 보며 사회화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석유자본과 기간산업의 소유 문제, 국가적인 미션 프로젝트, 민주적 통제와 주체의 비전 등에 있어 사회화의 요소를 발견하고 강조하는데, 사회화는 추상 이론이 아니라 실현가능한 현실 과제임이 확인된다.

레보위츠는 볼리바르헌법을 독해함에 있어 정치적 영역(공적 업무의 운영을 형성, 수행, 통제하는데 대한 민중의 참여가 개인과 집단, 그들의 완전한 발전을 보장하는데 필요한 방식)이 경제적 영역(자주관리, 공동경영, 금융적 성격의 것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협동조합, 저축기금, 공동체기업, 그리고 상호협력과 연대의 가치에 의해 인도되는 다른 형태의 협회)에서 ‘민주적, 참여적, 주체적’ 사회를 요구하는 사회, 주체로서 인간의 완전한 발전이 국가정체성의 일부인 가치에 체현된 사회변혁 과정으로 이해한다.

한편 볼리바르헌법이 자본주의를 뒷받침하는 핵심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요소의 공존은 놀랄 일이 아니며,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의 과정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볼리바르헌법이 워싱턴 컨센서스의 요소를 상당히 뒷받침하는 동시에 민중이 권력의 대상이자 주체인 전복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지적이며, 결국 어느 요소가 승리할 것인가가 궁극적인 문제라고 짚는다. 볼리바르혁명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민중주의적 특징을 가진 새로운 변종의 자본주의로 전락할 것인가에 불가피한 것은 없으며, 오직 투쟁만이 이를 결정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대안수퍼마켓에서 판매하는 상품에 붙어있는 볼리바르헌법

소유, 조절, 통제 등 사회화 과정에 있어 자본주의적 요소와 전복적 요소의 양립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따라서 전복적 요소의 압도적인 우위를 위한 주체의 실천을 21세기 사회주의를 밝히는 경로라고 한다면, 사유화에 맞서는 사회화를 위한 사회구성원의 실천방안 마련은 시급하고 중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령 과거 자본에 대한 국가의 우위 속에서 국가주의 성장전략에 따라 구축된 공공성 영역을 사수하는데 집중하는 실천은 전복적 성격의 확장과는 커다란 괴리가 있다.

베네수엘라의 생산모델의 기초는 국영산업과 협동조합이 결합한 것으로, 기초산업, 통신, 항공(트렉터, 자동차, 철도, 인공위성, 가공식품생산 등은 다른 나라 국영기업과의 공동벤처) 등 새로운 국영기업이 현대적 테크놀로지를 통합하고 경제발전을 촉발할 세력으로 인식된다. 이런 국영기업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공급자이자 가공처리자로서 새로운 생산체인의 일부로 클러스터화 된 것이 사회적 생산기업으로 재구성된 협동조합이다. 이 모델이 곧 사회주의적인 것은 아니지만, 국영기업과 사회적 생산기업의 계획된 활동이 사회의 필요에 기여하는데 협력과 연대의 기초를 이루고, 공동체와 현장의 주체적 민주주의의 특수한 결합이 생산단위와 사회의 연대를 생산단위 자체로 통합된다는 데 큰 의미가 부여된다. 더불어 현장과 지역사회에서 인민이 권력의 주체로 자리잡게 되고 자신의 능력과 역량을 발휘한다는 것인데, 이를 두고 레보위츠는 “이런 인간 생산력의 성장은 새로운 유형의 사회주의, 모든 것에 앞서 기계나 국가 아닌 인간을 우선하는 인간적 사회주의의 핵심”이라고 서술한다.

한국에서 사회주의의 가능성과 현실성을 고민하는데 있어 레보위츠의 책이 주는 또 하나의 덤은 ‘급진적 내생적 발전’을 언급한 대목이다. 베네수엘라의 바람직한 발전경로에 관한 어떤 현실주의적 토론도 베네수엘라인들의 필요에서 시작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한국에서 사회화의 방안과 경로를 마련하고 실천하는 일은 한국인들의 필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구체적 필요와 조건은 모방하기보다는 발명하는 것이고, 내생적 발전에 대한 독자적 개념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보면, 베네수엘라에서 내생적 발전의 핵은 지역공동체에 뿌리박은 지속가능한 농업발전 프로그램이었고, 더 많은 야심찬 프로그램으로 2004년 3월에 시작된 미션 부엘반 카라스(Vuelvan Caras Mission)가 시작되었다. 부엘반 카라스는 단지 내생적 발전에 머무르지 않고 특수한 사회적, 경제적 결합과 연관되어 베네수엘라를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변혁으로 발전시키는데 기여한다.

근본적인 내생적 발전에 대해 차베스는 사회의 생산관계의 근본적 변혁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고, 협동, 연대, 주체적 민주주의, 집단적 소유의 원칙에 새로운 관계와 함께 빈곤은 패배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에게 권력을 주지 않고서 빈곤을 종식시킬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전략적 유연성과 한미FTA, 비정규직 확산과 사회적 빈곤, 공공부문과 기간산업의 사유화를 특징으로 하는 한국 사회에서 대안으로서의 급진적 내생적 발전 모델을 단박에 정리하는 일은 분명 곤혹스러운 일이다.

책을 번역한 원영수 씨는 ‘진보평론’에 발표한 서평에서 “지난 10년간 대안은 없다는 테제에 맞서 물리적 투쟁만이 아니라 실천적 투쟁을 전개했다. 이 투쟁은 물리적 역관계 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투쟁에서도 역관계 또는 지형변화를 위한 투쟁으로 신자유주의는 그 자체의 모순 때문에,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으로 인해 더 이상 불패의 이데올로기는 아니다”라며 21세기 사회주의 전망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개진한다. 동시에 “현실운동에 참여하는 정치-사회운동의 좌파들 역시 과거의 이론적 틀을 넘어서지 못한 채 실천적으로는 고립분산적 활동에 머물러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Build it Now! 레보위츠는 “둘, 셋, 아니 더 많은 볼리바르혁명을!”을 언급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그러니까 이 책이 한국의 좌파운동에 시사하는 바 요점을 들라 하면, 한국 사회 사회화의 내생적 발전 경로에 대한 ‘더 많은 영감’이 필요하다는 자극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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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 혁명 , 베네수엘라 , 볼리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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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엉망번역

    유영주 기자는 책을 읽으셨습니까? 오탈자는 기본이고 온통 비문 투성이에 문장인지 단어의 나열인지 모를 엉망인 번역에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책 내용만 소개할 게 아니라 번역에 대한 지적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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