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권리 :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 투쟁 ②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20) - 100일 : 내일이면 잊혀질 오늘, 고공농성 100일에 관한 이야기

오늘로서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고공농성이 106일 차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지회의 이용우 연사부장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시작한지 3일 째에 접어들었습니다. 매주 화요일 6시 30분에는 대우자동차 서문 선전전이, 금요일 늦은 6시 30분에는 부평구청역 3번 출구 GM대우비정규직지회 고공농성장에서 ‘GM대우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촛불문화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그리고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 필자 주

“이곳에서 가장 힘든 것은 사람으로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고공농성 100일차.
올 것 같지 않던, 아니 오지 말아야 할, 오지 않았으면 했던 그 날이 오고야 말았다.
여전히 수염이 덥수룩한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이대우 지회장은 철탑 위에서 몸을 반쯤 빼고, 문화제를 내려다보며 박수를 치고, 팔뚝질을 한다. 이대우 지회장의 발언이 시작되자 문화제에 참석한 이들이 몸을 CCTV 탑 쪽으로 돌리고, 일제히 고개를 들어 고공농성장을 바라본다. 오늘로 35일 차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이대우지회장은 길 건너에 개나리와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며 이제야 비로소 봄이 왔음을 느낀다는 말로 발언을 시작한다.


“100일 고공농성의 의미부여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100일은 어린아이가 빛을 보게 되는 시간이고, 생명을 지킨 것을 축하 받는 것이지만,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이곳 철탑에서 100일을 보낸 것은 축하할 일도 기억할 일도 아닌 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100일 고공농성을 하면서 제일 힘든 것은 비바람도 눈비도 아닙니다. 이곳에서 가장 힘든 것, 어려운 것은 노동자로서 사람으로서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자체입니다.”


"GM대우는 100일 동안 무엇을 했는가?"

어제 기자회견에서 이대우 지회장은 100일이면 사랑하는 연인에게는 소중한 시간이고, 곰이 사람으로 변하는 충분한 시간인데, GM대우는 100일간 외주화와 비정규직의 감시·통제 말고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었다. 100일이라는 숫자에 연연해하지도, 의미부여를 하지도 않겠다고 했지만,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서 ‘고공농성 100일’에 대한 깊은 성찰의 흔적들이 느껴진다. 그 좁은 공간 안에서 가장 많이 하게 되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고공농성 100일차. 이런 날, 나는 어떤 표정으로 어떤 자세로 취재를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 정리 되지 않은 나는 민망해서 앞에 나가 편하게 사진을 찍지 못했다.

며칠 전부터 나는 2008년 4월 4일 날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주문을 외워왔다. 주문이 너무 강렬했던 것일까. 어제 오후에 잠깐 졸다가 GM대우 비정규직지회와 사측의 교섭이 진행되는 꿈을 꾸었다. 교섭이 시작되려는 찰나 밖에서 들리는 앰블런스 소리에 잠이 깨었다. 저녁 무렵, 조합원에게 별일 없냐고 물어보니 서문 선전전 중이라며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냐고 한다. 그래도 나는 오늘 틀림없이 기적이 일어난다는 주문을 외우며 고공농성장으로 갔다. 그러나 <철탑 고공농성 100일차, 노동3권 쟁취, 해고자 전원 복직을 위한 투쟁승리 문화제>가 끝날 때까지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화제 중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앰블런스 한 대를 보았을 뿐이다. 또, 문화제가 시작되기 직전에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 앞에서 21명의 노동자와 학생, 단체 활동가들이 연행을 당하고, 경찰의 야만적인 폭력을 당하는 일이 있었을 뿐이다. 학습지 교사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사측의 일방적인 수수료 삭감에 맞서 회사 앞에 그저 한두 명이 밤이슬 정도 피할 수 있는 작은 천막 하나를 치려했던 것이 이들이 방패로 찍히고, 군화 발에 걷어차이고, 연행당한 이유였다. 그 어디에서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적을 바라는 내가 어리석었는지도 모른다.


“금속노조 주최로 투쟁에 힘 주는 집회 한 번 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가”

“금속노조 주최로 우리 비지회 동지들의 투쟁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힘 있는 집회를 하기가 너무너무 어려웠습니다. (금속)노조 중집, 중앙위원회를 거치면서도 집회 한 번 하기가 금속노조에서는 왜 그렇게 어려운 건지. 비정규직 철폐를 선언적으로 요구로만 외치는 것이 아니라 금속노조가 앞장서서 실천하고 투쟁해야하는 비정규 동지들의 투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추운 엄혹한 추위 속에서 30m 고공에서 제대로 눕지도 않지도 못하는 자세로 70여 일 농성을 했습니다. 그 기간 금속노조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지회장이 교대해서 한지 30일이 돼서 이제야 금속노조 주체로 집회를 하는 것 같습니다.”

금속노조 인천지부 박세준 사무국장이 아쉬움과 서운함이 섞인 발언을 한다. 지역의 동지들이 진행하는 화요일과 금요일 투쟁문화제가 언제부터인가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투쟁문화제가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이 되고, GM대우 비정규직 투쟁이 지역 동지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는 반성이 담긴 이야기도 한다. 그는 발언 중에 오늘 이 자리가 ‘집회’라고 했지만, 오늘 자리는 ‘집회’가 아니라 말 그대로 ‘투쟁문화제’였다. 해고 이후 금속노조에서 주최하는 집회는 한 번도 열리지 않은 것이 맞다.

“우리 투쟁이 부족하다면 그것을 인정하면 되고, 좀 더 투쟁하면 됩니다”

<철탑 고공농성 100일차, 노동3권 쟁취, 해고자 전원 복직을 위한 투쟁승리 문화제>
이것이 비정규직지회의 고공농성 100일 만에 처음으로 잡힌 금속노조 차원의 일정이다. 금속노조 차원의 문화제이나 정작 금속노조에서 조직되어 참여한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아보였다. 정갑득 위원장은 총선 때문에 울산에 가 있다고 한다. 100명 조금 더 되는 인원에서 시작된 문화제는 중반에 150명, 끝날 무렵에는 2백 명 정도 된다. 그래서 기아자동차지부 조합원들의 참여가 유난히 빛나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대우자동차지부에서 이 날 집회를 하는 것을 반대해서 집회가 잡히지 않았다는 것과 이런 대우자동차지부에 대해 금속노조에서 어떠한 강제력도 취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대우자동차지부 미조직부장이 참석했다하여 인터뷰를 하려 했지만, 문화제 중반쯤에 확인을 해보니 그는 이미 자리를 뜬 상태였다. 사실, 대우자동차지부 미조직부장이 대우자동차지부에서 공식적으로 참석을 하게 한 것인지 개인적으로 참석한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지회설립 100일 문화제를 하고, 고공농성 100일 문화제를 했다면, 다음번에는 공장으로 돌아가서 승리문화제를 할 수 있게 투쟁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투쟁이 부족하다면 그것을 인정하면 되고 좀 더 투쟁하면 됩니다. 위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힘내서 투쟁하겠습니다. 밑에 가서도 동지들의 기대에 부흥하는 투쟁을 전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대우 지회장의 발언 중에서)

“오늘은 특별한 날이 아닙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고공농성장 천막 앞에 숫자 ‘100’을 붙인 이준삼 조합원은 이야기한다.
“위에서는 날이 갈수록 자기와의 싸움이 힘들어지고, 밑에서는 너무 일상처럼 되어버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잠에서 덜 깬 채로 눈을 비비면서 ‘100’을 붙였어요. 외부에서는 100일을 기념하려 하기도 하죠. 특별한 날이요? 저는 오늘의 100일보다 내일의 101일, 102일이 더 힘들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은 특별한 날이 아닙니다. 내일 또 잊혀 질 고공농성... 정말 답답합니다...”

  4월 3일 고공농성 100일 기자회견이 끝난후 방송사의 요청을 받고 '100'을 붙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비정규직지회 황호인 부지회장

길놀이, 대회사, 투쟁사, 연대사, 문화공연, 영상.
이젠 내게도 익숙한 형식의 문화제가 끝나자 사람들은 악수를 하며 저마다 갈 길을 간다.
고공 농성장을 떠나려는 순간, 오늘따라 저 CCTV탑은 한없이 높아만 보이고, 그 위에서 수십 일을 보내고 있는 한 해고 노동자의 모습은 한없이 쓸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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