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권리 :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 투쟁 ③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21) - 뒷모습 (1)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지회의 해고자 전원복직을 요구하는 178일 차, 천막농성 고공농성 120일 차, 이대우 지회장의 고공농성 55일 차, 이용우 연사부장의 단식농성 17일 차가 되는 날입니다. 내일 오후 6시 30분에 부평구청역 3번 출구 고공농성장에서 투쟁문화제가 진행됩니다.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 필자 주

“믿지 않아. 난. 결국 내게 남겨진 것은 뒷모습 뿐이었어. 한번 만이라도 더 뒤돌아 봐줬더라면 난 믿을 수 있었을텐데... 날 사랑한다는 얼굴을 기억했을텐데...”

[출처: <강풀의 순정만화> 제23화 '한수영' 편 중에서]

강풀의 만화 <순정만화>에 나오는 대목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뒷모습을 보이며 떠나간 아버지에 대한 어릴 때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한수영은 그 뒤로 세상에서 말하는 믿음이나 사랑에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 어느 날 밤, 아버지에 관한 그 꿈을 꾼 한수영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김연우에게 달려가 그의 무릎에 엎드려 치유를 받는다.

“어쩔 수 없이 떠난 거니까.. 뒤돌아 보면 너무 괴로우니까... 마음이 약해질까봐... 차마... 뒤돌아 볼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아버님은 차마 마지막 모습을 슬퍼하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김연우는 한수영을 배웅해주면서 그녀에게 뒷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뒤로 걸어간다.

[출처: <강풀의 순정만화> 제28화 '치유' 편 중에서]

1월 17일 오후. 금속노조 비정규대표자회의가 주최하는 ‘GM자동차 비정규직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가 있던 날이었다. 박현상 조직부장의 부평구청역 고공농성 22일차가 되던 이 날 오전, 황호인 부지회장이 부평역 광장 CCTV탑에 올라갔다. 동시 고공농성 계획이 새나갔는지 그 전 날, 경찰이 부평 시내 전체 CCTV 탑에 경찰을 배치하고, 철탑으로 올라가는 철제 계단을 잘라버리기도 했다. 이 날, 참 추웠다. 저녁 때, 경인지방노동청 앞에서 ‘콜트악기 정리해고 분쇄를 위한 투쟁문화제’를 하는데, 덜덜 떨면서 메모를 하고 있자니 한 율동패 동지가 찜질팩을 건네주던 기억이 난다. 대전충북에서 콜텍지회와 ASA지회 조합원들이 올라와 함께 했던 날이기도 했다.

  1월 17일, GM대우자동차 비정규직투쟁 승리를 위한 총력투쟁 결의대회

  1월 18일, 부평역 광장 CCTV탑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황호인 부지회장이 연대 대오가 도착하자 유인물을 뿌리는 장면

이날 오후, 부평구청역 고공농성장에서 집회를 마치고 부평역 고공농성장으로 행진을 가던 중이었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가 박현상 조직부장과 눈이 딱 마주쳤다. 순간 멋쩍어진 나는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었다. 박현상 조직부장도 손을 흔들고, 주먹을 쥐어 보인다.
‘늘 저렇게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떠나는 동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구나.’

  고공농성 22일차 되던날 박현상 조직부장

그 뒤로 나는 <순정만화>에 나오는 김연우처럼 고공농성장을 떠날 때, 뒷걸음질을 쳐서 가곤 했다. 농성장에서 전철역 지하도까지 뒷걸음질로 가는 것은 어색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그냥 뒤로 가기가 멋쩍어서 고공농성자에게 손을 흔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멀어지는 이의 모습을 25m 고공에서 바라보는 이의 눈길은 더욱 애처롭게 다가오곤 했다.

  고공농성장을 떠나 행진을 시작하는 연대 동지들

“글쎄요. 뭐랄까요. 허전함이라고 할까요. 마음이 허한... 낮에는 덜한데, 밤에 헤어지면 외로움이나 고립감이 더 큰 것 같기도 하고... 문화제가 끝나고, 사람들이 바로 가지 않고, 위를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면 여운이 더 커지죠. 금요일 날 문화제를 하는데, 한 주를 총화하는 자리잖아요. 지난 1주일을 어떻게 버텼고, 앞으로 일주일을 어떻게 버틸 건지를 생각해 보게 되죠.”

박현상 조직부장은 매주 금요일에 진행되는 투쟁문화제를 하기 전에는 누가 올까, 어떤 단위에서 올까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문화제가 시작되면 왔는지 확인을 해보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서문 농성장과 현장에 흩어져있는 조합원들이 한 곳에 모이는 날이기도 하다 보니 안 보이는 조합원이 있으면 무슨 일이 있나싶어 전화나 문자 연락을 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멀어지는 연대 동지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박현상 조직부장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