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파산 했는데도 위험한 줄타기 중인 한국

[논설] 산업은행 민영화하면 한국경제는 망한다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했다. 투자은행 서열 3위였던 메릴린치는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전격 매각되었다. 초국적 보험그룹인 AIG는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에 400억 달러를 대출받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뿐만이 아니다. 워싱턴 뮤추얼, 시티은행그룹 등 미국 금융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연일 급보로 타전되고 있다. 물론 그때마다 증시는 출렁거린다.

하지만 호들갑을 떨지 말자(정작 우리가 호들갑을 떨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이 위기는 이미 예견되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미 금융당국은 나름대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위기관리에 많은 신경을 썼다. 올 초에 터진 베어스턴스 파산위기 당시에는 JP모건이 인수하도록 음으로 양으로 지원을 해주었다. 그리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핵폭탄급 금융 쓰나미도 막았다. 최대 모기지 은행이었던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한 2,000억 달러 지원과 전격적인 공기업화를 통해 시장의 충격을 흡수했다. 허리케인은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막아 주고 대신 몇몇 열대성 저기압은 시장의 체력으로 버티라는 의도인가? 미 금융당국은 리먼의 예견된 파산에 아직까지 손 놓고 구경만 하고 있다. 언제 개입할지도 모르지만 베어스턴스나 패니메이, 프레디맥 사태와는 다른 태도다. 다른 각도로 보면 이 정도의 위기는 시장이 버틸 수 있다는 판단일 수도 있다.

위기관리에 성공하고 있는 미 연준에 박수를! 하지만 박수를 받을 곳은 연준만이 아니다. 진정 박수를 받아야 할 곳은 다른 이들이다. 총알을 피하기는커녕 총성이 나는 쪽으로 몸을 던지는 경호원과 같이 위기에 빠진 미 금융가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자들은 따로 있었다.

올 초 영국의 투자은행 노던록이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로 파산했다. 미국의 베어스턴스 보다 앞선 파산이었다. 금융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컸던지 신자유주의자로 이름난 고든 브라운 총리는 신자유주의자 답지 않게 노던록을 국유화시켰다. 영국정부가 미 금융가의 부실을 정리하는 청소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뿐만이 아니다. 서브프라임 위기가 확산하자 싱가포르 국부펀드를 필두로 아랍계, 중국, 호주, 일본, 러시아, 인도 할 것 없이 전세계 돈 좀 있다고 하는 국부펀드들이 미국 금융가의 서브프라임 위기를 짊어지고 나섰다.

그렇게 위기가 일단락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이번엔 미국의 달러화 가치가 내려앉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달러화의 약세가 지속할 것이라 예견된 상황에서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떨어지던 미국 달러화가 다시 치솟았다. 이번에는 전 세계 은행들이 나서서 달러화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유로은행 총재까지 나서서 달러화 방어에 앞장섰다. 도대체 왜 달러화 방어에 앞장섰을까?

석유의 지배권을 놓고 벌어진 미국-이라크 전쟁이 달러화와 유로화의 대리전이라고 표현되었다. 미국 달러화의 패권을 놓고 이른바 통화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 시기에 그들은 왜 달러를 지지하러 나섰을까? 또 각 나라 국부펀드들은 왜 미국 금융시장에 돈을 쏟아 부었을까? 시장가치가 낮아진 만큼 투자의 적기가 찾아 왔고, 이 기회에 미국계 금융회사를 소유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헛된 망상 때문에?

아니다. 미국 경제의 하락이 자국 경제에 미칠 충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기하락은 소비위축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고 자국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로 돌아오게 된다. 또 미국 국채와 채권에 투자한 투자금의 손실도 예상된다. 달러화가 떨어질수록 손실은 더욱 커진다. 어쩔 수 없이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달러화 가치 상승을 위해 투자해야 하고 미국 금융의 부실을 떠안고서라도 파국을 면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이른바 ‘부실의 사회화’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 한국은 어떤가. 마찬가지로 한국의 국부펀드들도 서브프라임 부실을 짊어지는데 한몫했다. 투자실패에 대한 질책에 온갖 변명으로 일관하던 한국은행도 미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소식에 그제서야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400억 달러나 투자했다고 실토했다. 각종 연기금도 미국채권시장에 투자했고 현재까지도 손실규모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의 산업은행이 리먼 브라더스 인수를 시도했다. 지난 6월 한국투자공사 등 올해 들어서 벌써 3번째 인수시도였다고 한다. 여기에 군인공제회까지 군인정신으로 무장하고 리먼 인수전에 뛰어 들었다. 만약 리먼 인수가 성공했다면 얼마일지도 모른 서브프라임 부실을 한국의 국책은행과 공적기금으로 틀어막은 꼴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산업은행과 군인기금의 모든 자산을 다 합쳐도 리먼의 부실채권을 갚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그렇다, 천만다행이다. 하마터면 산업은행과 군인기금의 파산은 물론 한국 금융시스템이 붕괴할 상황까지 가게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반복될 전망이다. 리먼 인수시도가 단순히 미국의 부실을 덜어주는 소극적인 의미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토종 초대형투자은행을 설립해서 글로벌 금융리더로 새출발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다. 그 때문에 리먼과 같은 투자은행의 인수를 끊임없이 저울질 하고 있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리먼’ 서울지사장 출신이기 보다는 ‘투자은행’ 서울지사장 출신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 해외 투자은행의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은행을 글로벌 투자은행으로 키워내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

지난 8월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 1차에서 산업은행 및 기업은행의 민영화를 공표했다. 우리은행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이 민영화되면 우리은행도 자동으로 민영화된다는 점에서 이 방안은 대부분의 국유, 국책은행 민영화를 담고 있다. 바로 은행 민영화와 통폐합을 통해 ‘미국식-초대형-토종-투자은행’을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이 구상은 노무현 정부시절 완성된 금융허브 구축의 3단계 핵심과제로 제시되기도 했다. 또한 노무현 정부시절 금융허브와 투자은행의 환경에 맞게 자본시장통합법이 통과되었고 2009년 2월 전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시절 산업은행 민영화 방안은 이미 기정사실화 되었고 토종투자은행 설립은 공약화 되었다. 하지만 이 구상은 어느 특정 정치세력의 계획이 아니라 자본의 구상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이미 2006년에 산업은행 민영화와 관련된 여러 계획을 검토한 연구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고, 노무현, 이명박 정부가 이를 받아 안았다.

문제는 대형투자은행과 금융허브 구상이 성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투자은행이 어느 나라에서 어떻게 돈을 벌게 될 것 인가하는 윤리적 판단을 뒤로 하고서라도, 경험과 자본이 일천한 상태에서 한국의 투자은행 계획은 성공할 수 없다. 미국을 비롯해서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들도 파산을 맞고 있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이 투자은행 설립계획을 포기하지 않는 한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위험한 줄타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만약 투자은행이 현실화 되면 한국이 세계경제위기의 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미국이야 한두 개 투자은행이 파산해도 전 세계 경호원과 달러를 동원해서 견딜 수 있겠지만 한국은 곧장 국가파산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산업은행을 민영화하면 투자은행이 설립된다. 그러면 한국은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