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책2] 진보와 그의 적들

‘세계적 석학’이란 수사 뒤에 숨은 궤변

<진보와 그의 적들>(기 소르망, 이진홍 성일권 역, 문학과의식, 2003.2.15, 338쪽)

  진보와 그의 적들
매년 한 두 번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신문의 주요 면에 얼굴을 내미는 ‘기 소르망’.

그에겐 ‘프랑스의 지성’ ‘세계적 석학’ ‘미래학자’라는 미사여구가 늘 붙어 다닌다. 나는 지난해 겨울 한국에 온 프랑스의 새 노동자 조직 쉬드(SUD)의 데마흐(64)와 임마누엘 비고(38)에게 기 소르망을 물었다. 잘 모른다고 했다.

기 소로망이 2001년에 썼고 2002년 이진홍과 성일권이 번역해 2003년 초에 출판한 책 <진보와 그의 적들>은 그가 온전히 미친 극우 파시스트라는 사실과 함께 단어의 교묘한 혼돈을 즐기는 연금술사라는 점을 새롭게 보여줬다. 물론 책 이름도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패러디다.

소르망은 과학기술 문명에 기반한 신자유주의를 ‘진보’라고 부른다. 그런 뜻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좌파들을 모조리 ‘반진보’주의자라고 부른다. 책 곳곳에 세계 역사에 대한 오해와 무지, 그 결과 기술에 대한 맹신의 극우주의를 드러낸다. 프랑스 민족주의에 젖은 국수적 태도도 보인다.

  동아일보 1월2일자 6면 전면에 걸친 소르망 인터뷰 기사

소르망은 1944년에 태어나 파리정치연구학교와 동양어학교(일본어 전공)를 졸업, 국립행정학교를 졸업했다. 반세기 동안 미국을 지배했고 지금도 여전한 밤의 사나이 존 에드가 후버(전 CIA국장)의 이름은 딴 후버연구소에서 근무했다. 베이징 대외무역대학, 모스코바 대학 교수 역임했다. 피가로, 렉스프레스, 월스트리트저널, 아사히 등 우파 신문에 기고했다. 그가 한국을 비롯한 동양권에 얼굴을 자주 내미는 건 이력에서도 잘 나타난다.

소르망은 1995년 5월부터 2년간 프랑스 총리실 전망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당시 총리였던 알랑 쥐페는 국민연금을 포함한 사회보장제도 개악안을 발표했다가 국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침몰했던 우익 인사다. 지난해엔 사르코지 총리의 환경장관직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소르망은 ‘프랑스의 조갑제’다. 그는 기존의 언어체계를 무너뜨리고 반세계화 운동에 나선 그룹을 미치광이로 묘사한다. 그러면서도 나름의 자료와 풍부한 통계치를 이용, 우리 주변에 늘려 있는 진보나 좌파연 하면서 우익의 생활방식을 가진 사람들, 특히 삶의 토대가 부르조아인 활동가들의 이중적 생활을 여지없이 폭로한다. 조갑제가 민주당 정권 10년 동안 벌어진 386세대의 부패에 가장 집요했던 것과 닮았다. 이 점은 상당부분 수용할 만하다.

책을 번역한 이진홍은 파리7대학에서 불문학 박사를 받고 현재 한국외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성일권은 파리 외교전략연구원에서 외교학을 공부하고 파리 8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이진홍은 2002년 12월 이 책 역자 후기에서 “(좌파들이) 과학의 진보에 대해서는 불신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진홍은 기 소르망을 “이론적 고찰과 명확한 시사 분석을 통해 분명하고 우아한 문체로, 시대의 항의자(좌파)들이 부추기는 이념의 위험성을 고발”하는 사람으로 평했다. 누가 더 위험한지.

누가 더 위험한가. 좌파들은 과학의 진보를 불신하는가. 소르망은 이 책 머리말 제목을 ‘파스퇴르여, 깨어나라!’로 붙였다. 프랑스 국수주의가 엿보이는 머리말을 시작으로 주요 내용을 책 순서대로 요약한다. 요약 뒤에 ‘=>’ 표시로 간단한 비평을 붙인다.

머리말 : 파스퇴르여, 깨어나라!
오랫동안 프랑스는 반 계몽주의에 맞서는 지식과 과학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최근 프랑스는 철학자 에드가 모렝처럼 과학의 진보가 도덕적 사회적 진보로 이어지는 걸 더 이상 인정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에서 회의주의가, 특히 좌파의 심장부에서 횡행하고 있다. 수학을 선발기준으로 정했음에도 과학자의 숫자는 늘지 않는다. 프랑스의 대학은 선진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학생들은 원고를 컴퓨터로 제출하는 게 아니라 아직도 손으로 쓰는 실정이다.

파스퇴르의 국가였던 프랑스는 반계몽주의적 캠페인의 먹이가 돼 ‘생명체의 정복’(유전자 복제)이라는 경기에서 탈락하고 그 경기에서 얻을 경제적 전망을 박탈당했다. 원시적 반미주의, 미시적 보호주의, 잃어버린 토지에 대한 향수가 뒤섞여 나타난 유전자 조작 조직체(GMO)에 반대하는 이성을 잃은 캠페인이 프랑스 연구자들을 해외로 추방하고 기업과 자본을 프랑스 밖으로 내몰고 있다. 유럽에서 ‘반과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 파스퇴르는 ‘7장 나비학살 이론’에 다시 나온다.

제1부 복제양 돌리에서 복제인간까지

1. 복제양 돌리

돌리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이 1997년에 태어났다. 영국인 생물학자 이안 월머트가 그의 아버지다. 돌리의 탄생이 발표되자 미국 대통령은 의회에 인간의 복제를 금지하도록 요청했다.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은 인간 복제를 비판하는 국가윤리위원회를 소집했다. 유엔도 같은 요지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3. 위험한 신중성
DDT(유기염소화합물 살충제)가 금지된 지 4년 동안 말라리아 환자 수는 5천명에서 12만명으로 늘었다. 현재 ‘신중의 원칙’이 제동을 걸고 있는 유전자 조작식품의 전형을 들어보자. 유전자변형식품(GMO) 없이 지내야 하는 것은 매우 신중하지 못한 처사다. GMO에 반대하는 건 우리의 다음 세대를 굶주리게 함으로써 그들을 죽음의 위험에 놓이게 하는 것이다. GMO없이 어떻게 다가올 세대의 초과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가올 세대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바로 GMO다.

해수면이 상승하는 위험지역에 댐을 건설하고 너무 기온이 높아진 지역엔 냉방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기후 논쟁에선 일반적으로 ‘재난 상품판매자’(좌파)들이 제시한 것과는 반대되는 결론이 나타났다. DDT를 계속 사용한 지역은 말라리아가 분명하게 퇴보했다. DDT 사용을 금지한 지역은 말라리아의 원인인 모기가 기승을 부렸다. DDT를 사용하면 즉각 생명을 구한다. 반면 DDT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으면 동물의 몇몇 종들이 쇠퇴하거나 몇몇 환경 시스템을 오염시킬 위험성이 있다. GMO 있는 세상이 GMO 없는 세상보다, DDT 있는 세상이 DDT 없는 세상보다, 동력이 있는 세상이 동력이 부족한 세상보다 낫다.


=> 소르망은 이 책 다른 곳에서 과학기술만 있다면 지구촌 인구과잉은 문제될 것 없다고 하면서도 GMO 확대를 위해서만큼은 인구 과잉을 걱정한다. 그에게 과학과 기술문명은 만능이다. 과학과 기술이면 뭐든 다 되는데 왜 전 세계 절반 이상의 나라에서 지금도 하루에 수 천 명씩 기아로 죽어 갈까.

제2부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저항

4. 새로운 창세기의 출현

내가 네락에 온 것은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GMO 방식을 적용한 옥수수 재배의 실험농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의 GMO 옥수수는 이미 파괴되었다. 조세 보베와 그의 추종자들이 GMO 농산물에 대한 격렬한 반대시위를 벌이면서 이곳을 파괴했다. GMO는 생명공학의 새 시대를 열고 있다. 마침내 인간은 신의 정찬에 초대받은 거다. GMO는 생물 자연계에 새 창세기가 출현했음을 의미한다.

옥수수가 조작되었다고 하더라도 옥수수는 여전히 옥수수다. 2000년 6월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애틀랜타의 병균검역센터에서는 GMO가 그 자체로는 어떠한 알레르기도 유발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GMO를 매일 복용했어도 작은 편두통조차 없었다.

GMO 농산물을 반대하면 다른 대안은 있는가? 그것을 정말 없는 것 같다. 최근 들어 환경주의자들이 환경보호의 한 방안으로 내놓는 이른바 ‘바이오 농법’을 생각해보자. 이 농법은 기대와 달리 평균 수확량의 감소와 원가상승을 가져왔다. GMO 농산물은 과거에 교배기술이 그러했던 것처럼 적절한 시기에 나타났다. GMO가 없다면 지구촌의 식량 안보를 크게 위협받을 것이다.

GMO에 반대하는 유토피아주의자(좌파)들은 오늘날 NGO라는 흰색 외투를 걸치고 나타났다. 그들은 기업도 아니고 단체도 아닌 성격이 불분명한 이상한 집단이다. 그들은 교회나 정당의 기능과 역할이 무력화한 지금 터무니없는 자신들의 주장을 말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 과학과 기술 만능을 주창하는 소르망은 자주 신학자나 예언자처럼 말한다. 미국 애틀랜타 시 당국이 GMO 옥수수의 무해성을 입증했다는 사실은 그에겐 금과옥조다. 미국 등 소위 선진국의 연구소나 검역센터가 누구 돈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바이오 농법’에 대해선 해결책이 아니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일어나는 GMO 반대주의자들을 “터무니없는 주장을 말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힐난한다.

5. 터미네이터의 등장과 사라진 마녀
GMO는 몬산토(Monsanto)사의 제초제 라운드업에 뛰어난 저항력을 갖고 있어 파종한 뒤 효과 만점의 라운드업을 기껏 2-3차례 부리면 충분했다. 몬산토 연구소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일관되게 제초제 생산에 이어 GMO를 연구해왔다는 점은 오히려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 상식을 가진 사람들에겐 경악할 만한 사실이 소르망에겐 칭찬할만한 사실로 바뀐다.
유전자 조직식품으로 악명 높은 미국회사 몬산토(Monsanto)사가 만든 유전자변형 콩 ‘라운드업 레디’는 역시 몬산토가 만든 강력제초제 ‘라운드업’에 강하다. 몬산토는 그림처럼 두 상품으로 마치 패키지 상품처럼 광고하고 있다.

  몬산트 제초제 <라운드업>과 GMO 콩 <라운드업 레디>
<라운드업 레디>는 “우리는 라운드업을 견뎌낼 준비가 되어 있어요”라는 뜻이다. 프레시안 2004년 2월 20일자에 관련 보도가 있다. 일부만 소개한다.

“식량문제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몬산토를 빼놓을 수 없다. 유전자 조작 식품으로 '악명 높은' 몬산토는 세계 50여 개국에 공장을 두고 유전자 조작 곡물의 90%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총수입의 대부분은 농약 판매를 통해 벌어들인다. 몬산토의 '라운드업 레디' 콩은 자사 제초제인 라운드업에 내성을 지니도록 유전공학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모든 잡초를 죽일 수 있는 라운드업 제초제를 개발하고, 이어서 그 제초제에 견딜 수 있는 콩 종자를 개발해 몬산토는 종자와 농약 둘 다 판매함으로써 엄청난 이윤을 남기고 있다.” (프레시안 2004년 2월 20일자)

7. 나비 학살 이론
우리는 적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GMO 농작물의 독성 때문에 나비가 죽어가는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을 듣는다. 이 주장은 증명할 수 없다. 우리는 GMO에 대한 논란과 관련해 과학이 전적으로 과학적이지 않으며, 경험은 좀처럼 설득적이지 못하고, 학자들은 종종 연구 활동과 자신들의 정치적 신념을 혼동하는 걸 본다.

미국의 사회학자 토머스 쿤이 지난 1974년 저술한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논문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쿤은 연구자들이 왜 자신들이 발견하고 싶어 하는 것을 연구하지 않은 채 예단적인 신념에 사로잡히는지를 보여주었다. 쿤은 연구자들의 이런 습관을 ‘주류 패러다임’이라고 불렀다. 새 패러다임을 성취할 만큼 열정이 무르익지 않았는데도 옛 패러다임을 내던지면 불안하다는 뜻이다. 갈릴레오가 그랬고 지금의 과학자들도 여전히 같다. 과학 연구는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하는 그 순간부터 의미를 지닌다. 갈릴레오와는 정반대로 행운을 맛본 과학자도 있다. 파스퇴르가 그렇다.

존 로세이라는 미국의 생물학자는 역사상 최초로 “GMO가 나비를 죽인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세이는 지난 1999년 11월 영구의 <네이처>에 한 장짜리 짧은 의견에서 자신의 코넬대 실험실에서 나비의 유충과 유전자 이식 옥수수 간의 불행한 인연을 주장했다. “유충이 GMO 농작물의 영양 기반에서는 살아남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나 구체적으로 연구 경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보충하지 않았다. 이후 몇 건의 연구가 진행됐지만 GMO를 생산하는 기업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지는 못했다.

코넬대의 실험실에서 내가 만난 로세이는 이상주의자도 아니며 어떤 대의명분에 막무가내로 집착하는 투사도 아니었다. 그는 곤충 연구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연구실 벽을 곤충 사진으로 꾸밀 만큼 관심이 많았다. 곤충학자인 그의 주된 전공은 농작물에 해로운 곤충의 박멸법에 관한 것으로 농작물을 해치는 곤충을 박멸하는 약품과 환경간의 가장 바람직한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것이었다. 그가 택한 나비는 흔한 나비가 아니다. 학명이 다나우스 플렉시퍼스인 옥첩매속나비다. 그 수가 격감하는 실제의 이유는 이렇다. 멕시코 중부에서 겨울을 나는 옥첩매속나비는 농민들이 경작지를 늘리기 위해 숲의 나무를 자르면서 점전 자신의 동면 지역을 잃고 있다. 숲이 사라진다는 것이 옥첩매속나비에게 치명적이다. 옥첩매속나비의 운명을 재촉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동차의 증가다. 자동차 앞 유리창에 부딪혀 으스러지고 있다.

로세이는 GMO가 옥첩매속나비를 죽인다고 쓴 적이 없다. <네이처>에 기록된 그의 연구는 그렇게 않았다. 그는 예외적으로 옥수수 Bt의 꽃가루로 자란 페트 병 속의 애벌레를 인용할 뿐이다. 이 옥수수 Bt는 노바티스사가 특허를 받은 것으로 보급이 별로 되지도 않았으나 로세이가 촉발한 언론의 난리법석 때문에 여러 곳에서 반품됐다.

1880년대 지배적인 생물학 패러다임인 이른바 ‘우연 발생론’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파스퇴르였다. 우연 발생론의 찬성론자들은 생명체는 자동력이 없는 물질로부터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파스퇴르는 “생명체는 물질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으며 공기를 통해 옮겨 다니는 포자라는 외부 동인에 의해 생긴다”고 주장했다. 아카데미 회원들이 파스퇴르 쪽에 기운 건 정치적.종교적 이유였다. 당시 논쟁이 파스퇴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가톨릭 덕분이었다. 파스퇴르의 패러다임이 신이 없는 영국의 진화론보다 신의 창조론과 성서에 더욱 부합하는 것처럼 보였다.


=> 소르망은 바보가 아니다. 괴뢰군 때려잡는다면서 양민학살하던 낡은 우익이 아니다. 방대한 자료와 여러 통계치에다가 문제의 인물을 직접 만나는 등 충실한 현장조사까지 거치는 새로운 우익이다.

여기서 소르망은 미국의 사회학자 토머스 쿤이 지난 1974년 저술한 <과학혁명의 구조>를 인용한다. 토머스 쿤은 죽어서도 고생이 참 많다. 정반대의 시각으로 씌여진 미국 출생의 프랑스 시민권자인 그린피스 등 반세계화 운동의 주요 인물 수전 조지의 <또다른 세계>(수전 조지, 정성훈 역, 산지니, 2008.6.1, 356쪽)에도 토머스 쿤은 등장한다.

  수전 조지의 <또다른 세계>
수전 조지는 <또다른 세계>라는 책의 2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실천적 대안’의 8장 ‘교육자의 역할’에서 토머스 쿤을 이렇게 인용한다.

“지구촌 정의실천운동에 참여하는 많은 교육자와 학자는 전문적 지식노동자다. 교육자와 학자는 우리 운동을 위해 매우 소중한 자원이지만 지금까지 이 자원을 너무 낭비해왔다. 토머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라는 책에서 사실에 근거한다는 과학이 지배적 패러다임에 의해 얼마나 집요한 통제를 받고 있는지를 훌륭한 솜씨로 보여준 바 있다.

쿤은 기존 패러다임이 부적절하거나 잘못되었다고 입증됨에 따라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옹호하던 인물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새 패러다임이 기존 패러다임을 대체한다는 점을 위대한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를 이용해 보여주었다. 쿤의 작품은 너무 일찍 쓰여진 탓에 미국과 영국의 우익이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발전시키고 확산시키기 위해 돈으로 사회과학자를 고용해 이루어낸 성과에 대해서까지 다룰 수는 없었다. 교량이 무너지면 건축가의 실수가 드러난다. 하지만 국제경제학이나 금융기관, 그리고 이들이 고용한 정책결정자들은 이런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절대 자신의 실수에 책임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무리 큰 고통을 겪어도 이들은 스스로 정책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세계은행과 IMF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도. 이들은 정책이 충분한 기간 동안 실행되지 않았거나 강제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 변명한다. 경제학자들은 실패에 대한 비난을 이런 식으로 해당 국가 정부에 전가한다.”

8. 맬서스의 논리적 오류
방글라데시의 모하메드 유누스에 의해 설립된 그라민 은행과 ‘인도 생태도시’의 개발 경제학자들의 발제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농학자 스와미나탄에 의해 폰디세리주에서 시작된 ‘인도 생태마을’의 경험은 ‘녹색혁명’의 동인 중 하나가 됐다. 스와미나탄은 헐벗은 하층민들에게 땅이 아닌 나무토막에서 아주 적은 생산요소를 들여 버섯을 재배할 방법을 가르쳤다. 농민들은 컴퓨터 인터넷으로 버섯 시세를 알았고 출하시기를 조절했다.

자본주의와 시장은 곧바로 서민들에게 이익을 가져다줬다. 인터넷 같은 새 기술이 직접 시장에 대한 이해를 높여준다. 이 길은 ‘반자유주의적인 길’이 아니라 ‘효과적인 초소형 자유주의’의 길이다.


=> 세계화의 기수 소르망은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과 인도 스와미나탄 사례까지 동원한다. 그라민과 스와미나탄이 특수한 한 지역의 사례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 되려면 과학 기술문명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소르망부터 처리해야 한다.

그런 뜻에서 수전 조지는 “신자유주의가 우릴 보고 ‘반세계화주의자’라고 부르는 것부터 바로잡자”고 말한다. 반 신자유주의자들은 ‘반세계화’가 아니라 제대로 된 ‘세계화’를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9. 열매는 중요치 않다
중국 북서부 허베이성의 첸 마을에서는 GMO 덕분에 생물 다양성을 회복했다. 농민의 소득수준은 높아졌다. 이것이 바로 얀(첸 마을의 농부)이 GMO와 몬산토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이유다.
유럽의 환경주의자들이 악마라고 지적했던 GMO가 첸 마을에서는 천사로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 허베이 농민들은 미국의 자본주의와 다국적 기업들을 찬양하고 있다.

중국 농민들에게 몬산토는 결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중국 농민들은 분명히 돈을 벌고 있다. 그들은 GMO가 자신들을 가난에서 구제할 뿐 아니라 지구촌의 헐벗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길 바란다. GMO 종자가 4배 이상 비싸지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얀은 몬산토에서 종자를 다른 것보다 더 비싸게 구입했지만 그 대신 살충제 구입에 따른 지출이 거의 사라졌고 추수량도 성공적이었다.

첸 마을에서의 모든 일이 좋았던 건 아니다. GMO의 효능이 드러났지만 반대와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반대론자들은 중국 농민들이 생산성을 높인 것과는 별개로 환경이 위험에 직면했다고 지적할 것이다. 실제 허베이에선 GMO 농산물을 재배하면서 비(非) GMO 농산물을 가꾸는 별도의 ‘안전지대’를 마련하고 있었다. 안전지대는 GMO 목화에 대해 면역성을 갖는 벌레의 출현을 늦추는 역할을 한다.

허베이의 중국은 전 농업의 GMO를 추구한다. 중국에서 GMO 보급은 놀라울 정도다. 목화 농장에서 GMO가 도입된 지 고작 2년 만에 전체 목화의 90%를 차지할 정도가 됐다. 만약 살충제와 GMO에 대해 동시에 내성을 갖는 해충이 나타난다면 농민들은 예전보다 훨씬 어려운 해충의 저항이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내몰릴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GMO를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결국엔 외국의 도움 없이 자체 힘으로 GMO 공장을 건설하는 게 목표다.


=> 소르망은 단순히 GMO 확대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배후에 ‘안전지대’를 만들 것도 권한다. 이 장에서 소르망이 중국 공산당의 농업 목표를 자체 GMO 체제 구축이라고 꿰뚫어 본 점은 평가할만하다. 그런 뜻에서 중국 공산당을 뭐로 불러야 할지 고민된다.

제3부 가이가

10.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는가

지구 온난화를 둘러싼 논쟁에도 비과학적 견해가 뒤섞여 있다. 아무도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걸 입증할 수 없고 입증을 위한 증거도 댈 수 없다. 왜 언론들은 기후가 불가피하게 뜨거워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가. 1980년대부터 시작된 ‘지구온난화의 패러다임’은 지구 냉각화에 대해 말했던 1970년대의 그것과 비슷하다. 1970년대 기후학자와 언론은 우리가 뭔가를 하지 않으면 새로운 빙하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의 유명 주간지 <렉스프레스>는 1976년 얼음 덩어리가 둥둥 떠내려가는 센 강의 합성사진을 표지에 실었다.

논란의 대상인 기후 온난화 문제의 모든 수치를 조사해보면 GMO에서 봤듯이 어떤 것들은 어설프고, 어떤 것들은 완벽하지 못해 모순으로 가득한 빈약한 가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구 온난화는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에 대한 또 다른 실망의 표현인 셈이다. 혁명주의자들은 여전히 세계는 파멸을 초래하고 있고, 자본주의는 불가피하게 인류를 불행으로 이끌고 있다고 보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온실효과에 대한 정치단체들의 많은 지도자들이 사실은 지구의 수호천사로 전향한 옛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고 주장한다. 혁명으로 자유경제 체제를 붕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그때를 준비하고 있다. 이데올로기가 변형됐지만 그 목적은 변하지 않았다.

온실효과의 우려 속에 숨겨진 또 하나의 분명한 사실은 2000년 11월 헤이그 국제기후포럼의 개최기간 동안 미국과 유럽 대표단이 서로 의견을 달리하면서 반미주의와 반자본주의라는 옛 망령이 전면에 급부상했다는 점이다. 양 대표단의 갈등은 2001년 봄 미국 대통령이 교토협정을 비준할 의사가 없다고 발표하면서 극에 달했다.
유독 선진국에만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를 강요하는 교토협정의 진짜 이유는 너무 부자이기 때문에 그들을 처벌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것은 과학적 접근이라기보다 환경주의자의 이데올로기 문제로 귀결된다.

기후가 정말로 불안정해진다면 인류는 식품 안전성을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환경에 맞는 GMO 품종을 서둘러 개발해야 할 것이다.


=> 소르망은 지구 온난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논지를 혁명에 실패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향수병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그렇지만 소르망의 논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제4부 거부를 위한 거부의 몸짓들

13. 모종의 음모

1789년 파리, 빵값은 비쌌고 포도주는 풍부했으며 여름은 무더웠다. 1917년 러시에서 폭력을 좋아하던 한 무리의 무뢰배들이 혁명으로 스스로 권력을 차지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유산계급과 무산계급 사이의 모순 대신 생산의 필연성과 고갈되어가는 천연자원 간의 모순을 예고했다.

1999년 시애틀 운동은 아무것도 제안한 것이 없고 또 제안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시애틀에서 태어난 운동은 혁신없는 혁명으로, 초월을 위한 아무 계획 없는 혼란에만 낳는다. 시애틀 운동 자체가 안고 있는 모순, 이 운동의 자금은 미국 자동차제조사 연합에서 조달되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이 연합은 한국, 일본 자동차 수입에 반대한다.

정예 전투 선발대는 환경운동단체 사람들이다. 이들은 미국 서부에서 자주 벌어지는 격렬한 행동을 일삼는 건달들로 목재회사들로부터 위협받는 얼룩무늬반점올빼미들을 보호한답시고 경찰과 전투에 이골이 난 자들이다. 기술의 진보에 반대하는 그린피스나 지구의 친구들 같은 이들이다. 이들은 스펙터클 쇼를 전문으로 하는 단체다.

시애틀 운동은 없었어야 했다. 더욱이 NGO는 말할 것도 없고. 금세기에 태어난 이 괴물들, 의로운 명분과 도덕적 생각과 인간의 권리와 환경주의 등등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으로 이렇게 많은 국가가 번영한 적이 역사상 결코 없었다. 자유로운 교역이 부유한 국가에서든 자원이 빈약한 국가에서든 물질적 진보를 낳았다. 교역 덕분에 인도나 중국 같은 거대한 문화권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아프리카 국가처럼 침체에 빠진 국가들도 더러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불행하게도 아직까지 세계 무역에 편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화는 번영이 그렇듯 세계화에 편입돼 있다.

세계화가 도대체 어떤 점에서 퇴보적이거나 위험한가. 그들은 말하지 못한다.


=> 소르망은 우리가 신자유주의 반대운동의 대표 사례로 꼽는 ‘1999년 시애틀 전투’를 비판한다. 그것도 논리적으로. 시애틀 시위의 주요 자금원이 미국 자동차제조사 연합에서 나왔다고 한다. 소르망이 자동차노조연합(UAW)과 전미자동차 사용자연합을 착각했다고 치더라도. 우리 안에 부도덕한 돈으로 움직이는 단체와 노조는 얼마든지 있다.

소르망은 우리가 자주 하는 이슈 파이팅과 이에 따른 천편일률적인 상징의식을 비판한다. 소르망은 이를 두고 ‘스펙터클 쇼 전문단체’라고 부른다. 역시 사실이다. 대중을 대상화시키는 무수히 많은 집회를 쉽게 볼 수 있다. 소르망은 이들을 향해 ‘금세기에 태어난 괴물’이라고 했다. 소르망이 말하는 금세기는 20세기다. 21세기엔 우리도 21세기에 맞는 괴물이 돼야 하지 않을까.

소르망은 그린피스를 기술의 진보에 반대하는 사람들로 치부한다. 그린피스가 기술의 진보에 반대한 적 없다. 그린피스는 반세계화 운동을 하지 않는다. 그린피스는 반세계화가 아니라 온전한 세계화운동을 한다. 우리 안에 소르망의 지적대로 기술의 진보에 반대하는 러다이트에 대한 향수가 있는지 점검해 볼 시간이다.

아프리카의 불행을 두고 아직 세계무역에 편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소르망의 지적은 무섭다.

14. 원시적인 미래
반세계화운동의 기수 존 제르잔은 2001년 56살로 오레곤 주 으젠느라는 작은 도시에서 조용히 산다. 집은 허름하고 빈민가다. 제르잔은 어릴 적 베트남 반전시위를 하던 버클리대 학생이었다.

68세대들은 대부분 전향해 사회통합에 참여했는데 제르잔은 더욱 급진적으로 나갔다. 제르잔은 러다이트 주의자다. 길을 모래로 덮어 아이들 놀이터로 바꿔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모든 교통을 중지시킨다. 이를 ‘공공 공간 복구운동’이라고 부른다. 제르잔은 마르크스주의가 문명화된 부르주아 사회를 꿈꾸기 때문에 반대한다. 제르잔은 유나바머란 별명의 카진스키를 정기적으로 면회 간다. 제르잔은 폭력을 옹호한다.

또 다른 반세계화운동의 기수 잭 골드스미스는 기업가인 부자 아버지를 두었다. <환경주의자>라는 잡지를 내고 있다. 잭은 제르잔와 같이 “선사시대에는 인간이 더 오래 살았고 더 건강했다”는 고 주장한다. 그러나 잭은 폭력을 거부한다. 잭은 환경이라는 이름으로 영국 보수주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 존 제르잔이나 잭 골드스미스, 앞서 언급한 수전 조지 등은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으로 이름을 알린 인물이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보면 드러나지 않은 사고 체계의 보수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제르잔이 자주 찾아가는 교도소의 유나바머(una bomber)는 미국에서 1978년 5월~1995년 4월 16건의 우편물 폭발사건을 일으켜 3명을 사망하게 하고 23명에게 부상을 입힌 연쇄폭탄 테러범 테오도르 존 카진스키에게 FBI가 붙인 이름이다. 카진스키가 노린 대학교의 과학 연구자(university), 항공회사(airlines)와 폭발물(bomb)의 머리글자를 따서 붙였다. 1996년 4월 FBI는 몬태나 주의 링컨 산 속에서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수학 교수였으나 20년 전에 사직하고 혼자서 은둔생활을 해온 시어도어 존 카진스키를 체포했다. 카친스키가 1995년 6월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과학기술에 편중된 현대문명을 비난하는 장대한 논문을 게재한 것이 연결고리였다.

  카잔스키의 <산업사회와 그 미래>
카진스키가 체포된 후 미국 사회 일각에서는 인간성 상실을 낳는 첨단 현대 문명을 반성하는 분위기가 일었다. 나는 카진스키를 그냥 미친 놈이라고 여긴다. 그래도 그의 <반문명 선언문>이 지금 세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더 많은 정보는 <산업사회와 그 미래>(테오도르 존 카진스키, 조병준 역, 박영률출판사, 2006.8.10, 205쪽)에 있다.

15. 녹색의 낙원
아마존을 야생의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낫다는 과학적 주장들은 내가 보기엔 모두가 허깨비들이다.

아마존은 유럽보다 두 배나 넓은 지역에 전부 합해서 인구 30만 명에 불과하다. 숫자가 많은 적이 결코 없었다. 브라질만 예로 든다 해도 20만 명의 인디언이 있다. 이들이 평균 토착민 1인당 600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보호지역을 점유하고 있다. 아마존 숲의 거주자 중 가장 다수는 강가에 흩어져 수렵과 채집, 그리고 밀렵으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마존 중심의 아마조나스 주는 98%가 숲이다. 아마조나스 주의 대부분 주민들은 주 수도인 마누아스 도심에 산다. 아마존은 허가를 받지 않고는 나무를 자를 수도 없다. 마누아스는 그야말로 말라리아와 간장 질환의 전염병으로 부패한 하나의 거대한 쓰레기장이 됐다. G7이 아마존에 특혜로 준 차관은 모두 숲의 경작 금지와 토착민 보호지역의 보호와 관련된 숲 보존에 충당된다.


=> 소르망은 아마존에 사는 인구가 30만 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어 소르망은 이 지역 인구가 많은 적이 결코 없다고 했다. 이는 엉터리다. 백인들이 520년 동안 아메리카 대륙에서 학살한 사람의 숫자는 300만명이 넘는다. 그들이 살아서 500년 동안 번창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아마존 중심부의 나무를 맘대로 벌목하고 싶어 안달이 난 소르망을 두고 한국사회는 세계적 석학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에게서 거꾸로 배울 점은 많다.

우리 안에도 늘 숨어있는 반진보의 논리들. 밖에선 투사이면서 집에서 양말 한 쪽도 제 손으로 안 벗는 마초부터, 환경을 말하면서도 화장품에서 식습관까지 환경 오염물질을 대량으로 내뱉는 환경운동가, 평등교육을 말하지만 지 새끼는 돈 더 많이 들여 부자 대안학교 보내는 노동운동가까지 수없이 늘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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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 케이

    한 마디로 쓰레기같은 책이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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