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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가짜! 양버즘나무가 진짜!

[강우근의 들꽃이야기](73) 양버즘나무

한낮에도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 사람들 발걸음은 부산한데 황단보도 앞 양버즘나무 가로수에 몸을 기댄 채 콩 몇 되, 나물 몇 줄기와 모과 몇 개를 늘어놓고 팔고 있는 할머니는 나무와 하나가 된 듯 그대로 멈추어 있다.


가끔 우듬지에 몇 장 남은 마른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신호가 바뀌어 사람들이 우르르 건너오면 할머니 고개도 사람을 쫓아 흔들렸다. 할머니는 옷을 잔뜩 껴입어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양버즘나무는 해마다 껍질이 떨어져나가기 때문에 껍질 한 겹으로 영하의 추위를 견디고 있다. 한쪽에서는 차들이 씽씽 내달리고 다른 쪽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지나다니는 길가 양버즘나무는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다. 그러나 그런 것쯤 아무렇지 않은 듯 상처투성이 껍질을 툭툭 벗어던지면서 싱싱하게 자란다. 그런 모습이 값싼 동정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입을 꼭 다물고 계신 할머니와 닮았다.

찻길을 따라 양버즘나무 가로수가 죽 이어져 있다. 가로수는 도시에서 가장 쉽게 만나는 녹지다. 가로수는 사막과 같은 팍팍한 도시 길에서 일 년 열두 달 밤낮없이 매연을 뒤집어쓰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아무 나무나 심을 수 없다. 가로수는 공해와 건조에 강해야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도시 먼지를 걸러 공기를 깨끗이 하고, 많은 수분을 뿜어서 뜨거운 도시를 식히고, 소음을 막기도 해야 한다. 또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도록 줄기가 곧아야 하고, 옮겨심기에 좋아야 하고, 가지치기에 견디는 힘이 좋아야 하고, 오래 살아야 한다.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고, 겨울에는 잎을 떨어뜨려 햇빛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 가을에는 단풍이 예뻐야 하고, 잎이 커서 청소하기에도 좋아야 한다. 병충해가 적고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사람에게 해로운 물질을 내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나무 모양새가 멋있어야 하고 꽃과 열매도 아름다워야 한다.

양버즘나무는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몇 안 되는 나무 가운데 하나다. 공기 정화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수분도 많이 내놓아 도시 열섬 현상을 누그러뜨리는 데도 가장 뛰어나다. 양버즘나무 한 그루가 하루 동안 내놓는 수분은 에어컨 여덟 대를 다섯 시간 켠 것 같은 효과가 있다고 한다. 넓은 잎은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을 물들이고 잎이 커서 청소하기도 좋다.

가지치기에 양버즘나무만큼 잘 견디는 나무도 없다. 가지를 다 잘라내도 양버즘나무는 다시 새 가지를 쭉쭉 뻗으며 잘 자란다. 옮겨심기 좋고 물기가 많은 땅을 좋아하지만 건조한 도시에서도 잘 자란다. 양버즘나무는 마치 도시에다 가로수로 심기 위해 만들어진 나무 같다.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는 세계적으로 보아 가로수의 왕이라 할 수 있으며 찬양받아야 할 아름다운 나무다."(「솟아라 나무야」, 임경빈) 양버즘나무는 은행나무와 함께 도시 가로수로 가장 많이 심은 나무가 되었다. 멀리 북아메리카에서 들여온 나무지만 이렇게 도시 시민으로 뿌리 내렸고, 뜨내기들이 설치는 도시 거리에서 터줏대감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양버즘나무가 몇 해 전부터 수난을 당하고 있다. 도시 장사치들과 정치몰이배들은 양버즘나무를 도시 가로수로 적합하지 않은 나무로 만들었다. 건물과 간판을 가려서 영업을 방해하고, 교통안내판과 신호등을 가려서 안전사고 위험성을 높이고, 꽃가루와 잎 뒤에 난 털을 날려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가지는 전깃줄과 뒤엉켜 피해를 주고 도시 경관을 훼손시킬 뿐 아니라, 흰불나방애벌레와 방패벌레 따위를 불러들이는 불결하고 지저분한 외래종나무라는 것이다. 지방의원 출마자들은 상인들 요구에 따라 양버즘나무 교체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실제로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양버즘나무를 소나무나 느티나무, 이팝나무 따위로 바꾸었다. 그리고 더 많은 곳에서 바꾸려고 준비하고 있다.

양버즘나무를 도시의 몹쓸 나무로 이미지를 바꾸어 낸 그 재주에 놀라고 또 양버즘나무를 뽑거나 자르고 소나무, 이팝나무로 바꾸는 작업이 마치 친환경적이고 생태 지향적인 것처럼 연출해 내는 그 재주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정치몰이배들은 하루아침에 새 옷을 갈아입히듯 도시 미관을 바꿀 수 있는 이런 이벤트 사업을 좋아한다. 효과도 크고 바로 나타날 뿐만 아니라 실패해도 정치적 손실이 없기 때문이다. 그 나무가 몇 년 뒤에 말라죽던, 바꾼 가로수가 적당한 것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몇 가지 경제 논리와 전문가들의 그럴싸한 거짓말을 섞어서 그렇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포장해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청계천을 이런 식으로 바꾼 이는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 정치몰이배들은 녹색 옷을 입은 박정희를 불러내고 있다. 우리가 생태적인 양 꾸며 낸 가짜와 진짜 생태적인 것을 가려 볼 줄 알게 될 때까지 이런 일은 계속 될 것이다. 새벽시장에서 야채 파는 할머니를 안고 흘리는 대통령 눈물은 가짜다. 나물 파는 할머니가 등을 기댈 수 있고 또 찬바람을 막아주는 양버즘나무는 진짜 가로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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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소걸음

    잘 고 읽었습니다. 동감합니다.

  • jsy

    폐부를 시원하게 열어주는 글 정말 좋아요 이렇게 항상 백성들의
    눈을 뜨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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