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마이크 데이비스, 이후, 2008.10.20, 512쪽)

[새책] “미국은 이명박 정권의 미래다”

“미국은 이명박 정부의 미래다” 이런 소릴 듣는 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무지하게 좋아하리라. 우리가 알고 있는 선진국 미국. 아메리칸 드림과 자유의 나라. 그리고 세계평화를 지키는 주인공. 미 제국주의.

제국은 3세계 민중을 수탈하고 전쟁을 밥 먹듯이 벌이며 탐욕의 자본주의를 세계 곳곳에 들이대는 인류의 공적이리라. 그렇다면 제국의 은혜를 받고 살고 있는 자국민은 어떨까. 제국이 3세계를 침략해 얻은 이익과 그 떡고물들은 제국의 민중에게 살만한 세상의 부산물일까?

제국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정책은 자국민의 안정적인 삶과 행복한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3세계 사람들 보다는 낫지 않겠어?” 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헛꿈이다. 자유와 아메리칸 드림은 부유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일 뿐이었다.

우리가 영화 ‘식코’에서 봤듯이 제국의 의료 체계는 가난한 사람들에겐 죽음을 조장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세계 일류 선진국 미국은 질병뿐 아니라 수많은 참사와 자연재해, 재난과 같은 블록버스터 급 죽음의 그림자가 가난한 사람과 부자에게 동일하게 드리우는 사회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불길하고 음울한 제국의 시스템을 만든 정치 지형과 제국 부자와 권력자들의 뇌구조는 제국에 미래가 없음을 드러낸다.


다양한 사실에서 밝혀 낸 미국 정치경제사회의 세세한 이면들

오랫동안 슬럼과 조류 독감, 빈곤 등에 대해 이야기해 온 도시 사회학자이자 좌파 역사학자 마이크 데이비스가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발표했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책은 ‘제국에 반대하고 야만인을 예찬하다(In Praise of Barbarians - Essays Against Empire)’이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제국에 대한 통찰력은 일상의 미시적인데서 출발한다. 책을 옮긴이(유나영)는 “도시 개발의 사회학에서부터 미국 노동운동사, 남캘리포니아 지방사, 미국 정치의 미시 역학, 자연재해와 질병의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시공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저자의 식견과 통찰에는 그의 혀를 내두를 따름이다”라고 이 책을 평했다.

옮긴이의 말처럼 저자는 종횡무진 뛰어난 식견을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과 제국의 치부 속에 담긴 팩트를 가지고 자본과 권력을 때론 강하게 때론 유쾌하게 까발린다. 그의 신랄한 풍자적 글쓰기는 미 제국주의 국민의 세세하고 더러운 이면으로 읽는 이를 끌고 들어간다. 그리고 책장을 덮는 순간 “뭐가 선진국이야! 선진국 좋아했다가는 다 망하겠다”는 생각만 든다.

저자가 ‘울어라 캘리포니아여!’에서 언급한 ‘듀로빌’은 헐리우드 영화 속의 암울하고 활량한 슬럼가를 떠오르게 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곳 듀로빌은 캘리포니아 코첼라 밸리 내에 위치한 다 쓰러져 가는 황량한 동네다. 집 없는 농장 노동자들이 세운 빈민촌으로 4천 명이 거주하고 있다.

반면 코첼라 밸리는 캘리포니아 보수주의자들이 주 전역에 세우기를 꿈꾸는(비버리 힐스와 티후아나가 만나는)미래의 견본 같은 곳이다. 코챌라 밸리의 서쪽은 완벽한 냉방 시설이 갖춰진 낙원이다. 이곳에는 인공호수와 18홀 골프장이 들어서 있고 철문으로 경비되는 동네가 즐비하다. 이 동네들의 전형적인 주민은 골프카트를 탄 65세의 은퇴한 백인남성이다. 그는 자기를 시중드는 이민자들을 위한 세금, 소수계 우대정책, 사회복지 정책에 반대하는 열성적인 유권자다.

코첼라 밸리의 동쪽이 듀로빌이다. 듀로빌은 리조트 잡역부, 접시닦이, 풀장 청소부, 농장 노동자들이 사는 곳이다. 듀로빌에는 로스엔젤레스에서 실어 나른 하수 찌꺼기 50만 톤이 쌓여 이루어진 풀 한포기 없는 인공산이 있다. 듀로빌에서 가장 큰 호수는 하숫물이 고인 연못이고, 동네 놀이터는 다이옥신으로 오염된 쓰레기 매립장이다. 듀로빌의 또 다른 모습은 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명박도가 공공성을 상실한 미래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다른 도시에도 듀로빌들이 있다고 소개한다.
“샌디에이고 북쪽 해변의 번드르르한 80만 달러짜리 트랙홈 뒤편에는 약 1만 명에 달하는 이민자 출신 일용직, 용역 노동자들이 황량한 협곡 아무데서나 널브러져 잔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런 듀로빌을 캘리포니아의 제 3세계화라고 규정했다. 그는 듀로빌이 상징하는 것은 “경제적 대중주의로 코드화된 인종주의 정치”라며 “라틴계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자 우익 선동가들의 부추김에 넘어간 백인 유권자들이 공공 부문에 대한 지원을 철회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또 ‘5만 명이 사망한 여름휴가’에서는 급격한 기온상승 속에 도시의 환기상태가 나쁜 셋방과 싸구려 호텔들이 납골당으로 바뀌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그는 95년 시카고의 ‘혹서 재난’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시 당국의 빈곤, 인종주의, 사회적 고립, 범죄적 방치의 결과였고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때 시카고에서는 700 명의 노인들이 죽었다. 2003년 7,8월 유럽에 밀어닥친 살인적인 더위로 3만 5천명이 죽기도 했다. 저자는 유럽에서도 빈곤과 감당할 수 없는 주택가격, 공공 서비스의 예산 부족 등이 이 사태의 원임임을 폭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좌파 도시 사회학자의 날카로운 분석답다.

부자들에 대한 세금 감면이 불러온 비극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얘기는 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를 통해 본 미국의 정치경제학의 작동 원리다. 2005년 인구 130만의 대도시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우리 기억에도 생생하다. 당시 수 만의 시민들이 홍수로 인해 죽고 떠내려갔다. 그때 그 화면은 그저 한국에는 거대한 폭풍이 부른 자연재해로만 소개됐다. 부시 미국 대통령은 카트리나에 대해 “폭풍은 무차별적”이라고 했지만 저자는 “계급과 인종 불평등이 이 재난의 모든 측면에 도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뉴올리언즈의 허리케인 대재앙은 예견된 것이었다. 이미 2004년 허리케인 ‘이반’의 위협이 있었고 많은 보고서와 연구에서 도시는 사실상 파괴 될 것이라는 경고들이 있어왔다. 그러나 당시 레이 내긴 시장을 비롯한 부시 정부는 가난한 주민들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또한 홍수 완충 작용을 하는 습지 되살리기 프로젝트는 보류되었고 제방을 보강하고 호수주변 수방시설 완공에 드는 충당금도 계속 삭감되었다. 이렇게 예산이 삭감된 이유는 부자들에 대한 막대한 세금을 감면해 주고 이라크 전쟁과 ‘국토안보’에 돈을 쏟아 붓느라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또한 여기에는 정치적 동기 역시 도사리는데 뉴올리언스가 흑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골수 민주당 도시로 이곳 유권자들이 주 정부 선거에서 세력 균형추 역할을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방재난관리청장은 공화당원 변호사로 재해관리 경험이 전혀 없었고, 지진과 폭풍, 홍수방재를 지원하던 연방재해 대책 기금의 4분의 3은 갖가지 대테러 시나리오로 빠져나갔다.

또한 루이지애나 주 방위군의 3분의 1과 그 중장비 중 다수가 이라크로 차출되었기 때문에 구조와 원조 작업은 처음부터 차질을 빚었다. 마치 한국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 진압에 경찰이 모두 동원되어 살인자를 막을 병력조차 없던 상황과 비슷하다. 잘못된 이념과 정책이 꼬리를 물고 재난과 대규모 죽음을 키웠던 것이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뉴올리언즈와 카트리나를 관통하는 정치경제적 배경을 가차 없이 드러낸다.

“연방재난관리청의 경이적인 무능은 정치적 배경으로 임명된 우둔한 인물들과 ‘큰 정부’에 이념적으로 적대적인 이들의 손에 삶과 죽음이 걸린 공공 책무를 맡기는 어리석은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정부가 건설 노동자들에게 시중 임금 기준을 보장해 주는 법을 일시 정지시키고 기업 약탈꾼들에게 뉴올리언즈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가공할 속도는, 연방재난관리청이 루이지애나 슈퍼 돔의 악취 나는 지옥에 갇힌 군중들에게 물과 식량과 버스를 보내는 데 지독히 늑장을 부린 것과 불쾌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사실은 카트리나가 지나간 이후의 뉴올리언즈의 모습이다. 이미 우리에게 잊혀져버린 도시 뉴올리언즈는 제국의 수뇌부들에 의해 철저히 새롭게 거듭나고 있었다.

“악취가 풍기는 물에서 퉁퉁 불어 오른 시신들을 다 건져 내기도 전에, 보수적 정치 분석가들은 벌써 루이지애나 흑인 민주당 권력의 죽음을 기쁘게 선언하는 글을 쓰고 있었다. 헤리티지 재단의 로널드 우트는 ‘민주당이 승리한 표 차는 지금 휴스턴의 애스트로 돔(카트리나 이재민들이 수용된 대형 경기장)안에 모여있다”

이렇게 진행된 표계산과 함께 도시에서 빈자들은 축출되어 갔다.

“12만 5천 가구가 파손되어 텅 빈 유령의 도시가 썩어가는 동안 대부분 부유하며 침수 피해를 입지 않은 강 주변 동네에는 ‘좋은 시절’이 돌아왔다. 지역 비즈니스 엘리트들은 정부의 거의 모든 기능을 강탈했다. 공립학교체계는 사실상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와 더불어 노조에 가입된 교사와 교직원 일자리 역시 사라져 버렸다. 또 루이지애나 공공 의료의 본부였던 자선 병원이 문을 닫아 수천 개 정규직이 추가로 사라졌다”

“이들 엘리트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카트리나는 뉴올리언스가 빈곤의 짐에서 벗어나 부흥할 수 있는 거의 이상적인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한 부동산 재벌은 유럽에서 온 기자에게, ‘허리케인이 범죄와 가난한 사람들을 도시 바깥으로 몰아내 주었다. 우리는 빈민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범죄자와 빈민을 위한 파티는 끝났다. 이제 그들은 다른 데서 살 곳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이렇게 뉴올리언즈는 빈민을 위한 공공 주택 지구를 규모가 작고 부유한 백인 위주의 도시로 부활해갔다. 마이크 데이비스가 알려준 미국의 가난한 수재민들은 비참했다. 그리고 공공성을 잃어버린 정부가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불러 올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고전 역사학자인 드 슈테 크루아의 말을 인용해 제목에서 말하고자 함을 드러낸다. 드 슈테 크루아는 로마제국이 소위 야만인들에게 포위되었을 때 제국의 하층 계급은 야만인들을 기쁘고 협조적인 태도로 맞이한 사례들을 기록하고 있다. 야만인들이 정복한 지역에서는 종교적 관용이 확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지주와 세금 징수관들의 착취율도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야만인들’(고트족, 반달족, 훈족, 아랍족)이 아니라 로마와 비잔틴의 상층 계급이라는 ‘흡혈귀’야말로 고전 문명의 진정한 약탈자이자 파괴자였다”고 밝힌다. 그리고 “포토맥 강변에 세워진 새로운 로마제국을 위해서는 과연 누가 울어줄지 두고 볼 일이다”라고 비꼰다. 미국이 한국의 미래가 되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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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운동공동체

    제국의 문명이여 영원하라
    진정한 톧대위에서만 문명은 영원하다
    토지지대의 공공성을 통해서만 멸망당하지 영구적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로마의멸망은 사상적 전제라는 다리가 튼튼하지않았다고
    로마는 로마의평화는 바울이 사랑이 법의 완성 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법의 완성이라는 대강령 인간본성의 본령에서 불충성한 그래서 탐욕이라는 죄때문에 모든 토지의 이익은 모든 자들의 것이라는 토대하는 사랑이 무너지면서 모래위에 선 집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미국도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구소련이 붕괴되었을때 헨리죠지의 지공주의를 채택하려했을 세계은행에서 반대하면서 무력화되었던 것이다
    세계은행에서는 60-2000년소위 근대화에서 토지지대의 공유가 성장과 분배의 최선의 성과물이 였다는 구체적 결과물을 발표했으나 이를 따르지 않고있다
    왜냐면 은행의 주인들은 지주들이기 때문이다
    영혼을 사고파는 사냥꾼들 영걸처럼 치부되며 탐욕으로 땅을 망하게 하는 세상의 왕족들과 연합해서 비밀스런 음모를 획책하고있으니 바로 혼합경제정보조작단일금융시스템 화페경제666이라는 자율성의 페쇄적 인괴율의 전제이다
    탐욕으로 연단된 바벨론이여 어린아들같은 순수성을 스겐달-실족케하는 연자맺돌처럼 깊는 바다에 빠지울 차라지 나지 않으면 좋았을 진리를 재물로사고파는 저주의 자식들에서 서민 여성 청년들을 해방하는것은 토지지대(천연,공공자원)의 사회적공유를 위한 종교운동 교육운동 문화운동의 사랑운동으로의 전향적 패러다임의 회개이다
    오래전에 김근태 합리적인 인격적인 마지막 민주인사 신사분이
    회개(생각의전향)을 이야기 하셨다
    이제는 국토보유세 토지공공임대제로 의 사상적 전향과 헨리죠지의(진보와 빈곤)으로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우리가 선점해야한다
    예수가 가져온 나라의 경제법은 지공주의였다
    로마가 무너진것은 역시 이 법의완성인 사랑의 토지 집의보편성을 사유화한것이며 이 가이사의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는 예수의 세금에 대한 진리를 반하였기때문이다
    지금 미국역사 토대는 일방적인 패권적인 전제는 로마의 부흥이엿다 지금 유럽연합의 영구적 평화도 역사 같다
    로마화된 기독교는 제국화의길은 지주화였으며
    이슬도 땅은 알라의것(하느님이것)
    맑스주의도 토지의 인민의것의 강령아래서 진행되었다
    이제 남은 국토보유세 북은 토지공공공임대제로 통일하여 동남아시아 시대 대안시스템이 도어야 한다
    영구적 평화는 사랑위에서며 이사랑은 네이웃을 내몸처럼 사랑하는 토지의 이익을 모든자들과 함께하는 지체의식 가족의식 형제자매의식 공동체의식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밭은 자유운동에서 평등운동으로 이젠 사랑운동의 때이다
    변화를 두려워말며 인간을 위한 우익을 위해서 모든것을 포기해야한다
    인간이야 하느님의 다른이름이여
    인간으로 온 하느님의 육체성 물질성 역사성 인격성 인간성 예수의 나라 경제법인 토지지대의공유라는 정의롭고 효율적이며 이성적이며 도덕적이며 역동적인 강령으로 세례를 받으라
    인위적인 모든 도모를 멀리하고 자연스러운 과학적인 길 을 확고하게하고 완전케하라 더욱 철저하게
    이자사유 임금사유 지대공유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본능,짐승의 형상 우상)에게 하느님의것은 하느님(양심.하느님의 형상 인간)세금을 바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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