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 땀시 삼성과 싸운다요, 잉

[빛바랜 취재수첩](1) 2006년 3월 극동콘테이너

화물노동자 이광원 씨를 광주광역시 하남산단에 있는 체육공원에서 만납니다. 화물연대가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화물노동자 총파업을 결정한 2006년 3월 26일입니다. 1200여대의 화물차와 함께 화물노동자 2500명이 모여 있습니다.

이광원 씨는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가 총파업의 원인이 된 삼성 광주공장의 화물운송을 하는 극동콘테이너 해고자 51명에 끼여 있기 때문입니다. 회사는 지난 3월 7일 새벽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화물노동자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합니다.


"월 6일까지 일했지라. 회사하고는 운송료랑 재계약 문제로 6일에 협상도 했고. 근데 3월 7일 아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계약해지라고, 회사에 출입하지 말라고 항께 무슨 이런 일이 있다요." - 이광원 씨

말도 못하고 할 말도 없다는 이광원 씨의 입이 열리자,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해고자 신세지만 한순간도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2006년 4월 3일 부산에 집결하여 진행하려고 했던 화물노동자의 파업 일정이 앞당겨져 3월 28일 새벽 광주에서 급박하게 총파업에 들어갑니다. 새벽 5시께에는 화물노동자 2명(이 중 한 사람이 박종태 씨다. 그는 2009년 대한통운 택배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아카시아 나무에 목을 매어 항거하다 숨진다.)이 광주에서 고공농성에 들어갑니다. 그 날 광주 시내에 있는 조선대에서 이광원 씨를 다시 만납니다.

이광원 씨는 나를 만나자마자 밥을 먹었냐고 묻습니다. 먹었다고 한사코 사양해도 내 손을 잡으며 식당으로 갑니다. 이광원 씨의 얼굴은 ‘투쟁’보다는 마음씨 고운 옆집 아저씨에 가깝습니다.

"삼성에서 이렇게 나올 줄은 몰라지라.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다른 화물에서 파업을 해도 우리는 동참을 안했어라. 우리나라 대표기업 삼성전자 물류를 책임진다는 사명감에. 삼성에 쪼매라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했어라. 부두에 가면 화물노동자끼리 다 만나라. 거의 매일 만나지라. 남들 파업할 때 우리만 일한다고, 계란 맞아가며, 욕먹으며, 배신자 소리 들어가며. 정말 이렇게 살아야하나 생각이 들어도 삼성전자에 협조하기 위해 일했당께요. 작다면 작지만 7년 동안 삼성을 위해 일했는데……." - 이광원 씨

이야기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극동콘테이너는 삼성광주공장 화물운송 업무를 하려고 46억을 들여 인수권을 삽니다. 회사는 화물노동자들에게 영업권을 인수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 상반기에는 운송료 인상을 해 줄 수 없고, 하반기에 가면 운송료를 인상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근디 하반기에도 안올려주고, 그 다음해에도 고대로야. 1년 6개월이 지나도 우린 한마디 말도 않고, 회사를 위해 죽어라 일만 했지라. 그래서 지난 해 12월에 참을 만큼 참았응께, 이젠 쪼까 올려주라. 광양은 20만원은 받아야 쓰것고, 부산은 40만원은 받아야 쓰것다고. 지금껏 부산까지 36만원 받고 다녔응께, 조까 올려달라 했지라."- 이광원 씨

공문도 올리고, 협상도 요구했지만 뾰족한 답을 회사는 주지 않습니다. 그러다 2월 중순께 광양은 3천원, 부산은 5천원을 올려주겠다는 답변을 듣습니다. 이광원 씨가 요구한 액수와는 큰 차이가 벌어집니다. 2년 동안 회사가 어렵다고 참아오다 요구한 운송료 인상의 답변이 “애들 과자값 주”듯이 했다고 이광원 씨는 흥분합니다.


하남산단에 있는 금호타이어의 물류를 실어 나르는 화물노동자는 부산까지 가는데 42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금호타이어는 적자이고, 반면에 삼성전자는 수 조원의 영업이익을 남기는 기업입니다.

"우리가 고속버스 타고 서울 가는데, 중앙고속 탔다고 요금 다르고, 금호고속 탔다고 요금 다릅니까. 근데 똑같은 거리를 금호타이어 물건 나르는 거랑, 삼성전자 물건 나르는 거랑 달라야 합니까. 우리 요구는 옆에 금호타이어 화물과 같은 수준을 요구한 거지라. 아니 고것보다 작지라. 흑자 기업인 삼성전자 일한다고 더 달라고 한 것이 아니지라. 요게 극동보다는 삼성전자가 더 문제지라. 삼성전자가 건설교통부에 신고해서 승인 받은 운송료가 얼만 줄 아요? 62만 7천원. 고걸 삼성이 받아서 극동컨테이너에 42만원을 주고 나는 극동한테 36만원 받는 당께. 거의 절반이 중간에서 사라져 부럿응께, 요게 뭐다요! 정당하게 신고 된 금액이 화물노동자에게 제대로 내려오면 아무 문제 없지라. 근디 삼성이 신고를 허위로 했능가, 아니면 중간에서 물류담당이 챙겨먹었는가, 돈이 사라져 버렷당께." - 이광원 씨

노동부에서 중재를 해서 나온 금액은 광양까지 18만1천원, 부산은 38만5천원입니다. 처음 3천원, 5천원 했던 “애들 과자값”보다는 올랐지만, 이 금액으로는 먹고 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먹고 살려고 산 화물차 한 대 가격이 칠천만원입니다. 달마다 이 화물차를 유지하려고 쓰는 돈도 만만치 않습니다. 운송료에는 화물노동자의 임금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름 값에 통행료에 관리비 보험 세금 오일 갈고 타이어 갈면 적자라. 적자. 눈에 안보이게 들어가는 게 솔찬하지라. 차 한대에 타이어가 18개요. 한 달에 한 개는 갈아야 한당께. 타이어 한개 바꾸는데 들어가는 돈이 삼십 만원이요. 7천만 원짜리 화물차가 2년을 타면 4천만 원으로 팍 깍이니까, 1년에 천5백만 원이 사라진당께. 큰 차 모니까 큰 돈 버는가 하지만 안 그래라. 실제 우리 손에 떨어지는 것은 백이삼십만 원이지라. 요즘 마누라 있고, 애 있고 하면 이 돈으로 어찌 산당가. 3, 4천만 원 하는 차 팔아 더 싼 중고차로 바꿔서 생활비 쓰고 해라. 나도 츄레라 뒤꽁무니 천만 원에 팔고 5백만 원짜리로 갈았지라. 내 살 깎아먹고 사는 거지.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지라. 이제 이천만 원짜리 똥차 하나 남았는데, 고거 퍼지면 밑천도 없는 거지라." - 이광원 씨

처음 7천만 원 주고 산 이광원 씨의 화물차는 지금 2천만 원입니다. 운송료를 받아 화물차에 들어간 유지비를 빼면 손에 쥐는 돈은 고작 백만 원 남짓. 적금은 꿈도 못 꿉니다. 그나마 유류보조금 85만원이 없었더라면 굶어 죽었을 거라고 합니다. 이광원 씨는 그나마 남은 저 화물차마저 퍼지면, 이젠 알거지라고 한숨을 쉽니다.

"한푼이라도 더 벌라고 부산 갔다 오면 하룬데, 부산 다녀와서 광양에 한 탕 더 갔다 왔어라. 운송료가 적으니 몸을 굴려 먹고 살라고 바둥거렸어라. 하루에 18시간, 20시간 씩 일 했지라. 그런 우리를 개인사업자라고 한당께. 백만 원 버는 사업가, 입에 풀칠하려고 하루 스무 시간 운전대 잡는 사업가, 회사에서 부르면 달려 나가고, 시키면 죽어라 일하는 사업가. 누가 사업가하고 싶어 합니까. 부려먹기 좋으라고 지들 멋대로 만든 거 아니요." - 이광원 씨

화물노동자들은 이광원 씨의 정당한 권리가 무너지면 전체 화물노동자의 운명도 무너진다고 위기감을 느끼며 총파업에 들어간 것입니다.


“삼성 광주공장과 시작된 이번 파업 결의는, 단순히 해고된 극동분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화물노동자의 문제이기에 총파업을 결의했습니다. 투쟁도 광주로 한정할 필요가 없어, 각 지역으로 돌아가 조직을 확대하고, 물류의 본거지인 부산에 집결하여, 삼성자본과 한판 싸움을 할 것입니다.” 화물연대에서 정책부장으로 일하는 정원석 씨의 말입니다.

"화물노동자가 뭣 땀시 삼성과 싸운다요, 잉. 우린 극동에 소속이든 어디 소속이든 삼성전자 일만 했지라. 회사는 바뀌어도 일은 삼성이요, 그 물건을 움직인 것은 우리 노동자지라. 지금 극동과 합의해봤자 삼성이 함께 약속하지 않으면 말짱 헛거지라. 극동과 삼성이 일년에 한 번씩 재계약하는디, 극동을 해지하면 우리도 낙동강 오리알이어라. 안그라요, 잉. 긍께 우리는 삼성과 뗄라야 뗄 수 없는 거지라." - 이광원 씨

29일 새벽, 이광원 씨는 바쁘게 조선대학교를 빠져나갑니다. 화물노동자들이 서울에 집결해 싸우기로 했답니다.

"이제 이기는 일만 남았어라. 예전에 다른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몰라라 했지만 이제 안그랄라요. 지금 생각하니 얼매나 어리석었는지 부끄럽기도 하고요. 서울에서 또 봅시다요. 나는 싸게 서울로 올라가야 항께."- 이광원 씨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이광원 씨의 머리에 묶인 붉은 띠가 유난히 도드라집니다. 하루빨리 저 머리띠를 풀고 운전대를 잡았으면 합니다.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도 말끔히 깎을 그날, 행복을 운전하는 화물노동자 이광원 씨를 만나고 싶습니다.


[뒷이야기] 이광원 씨의 파업 사흘째인 3월 31일에 끝났습니다. 계약 해지된 화물노동자 51명은 다시 운전대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운송료도 인상되었습니다. 극동콘테이너의 싸움은 끝났지만 굴뚝에 오르는 노동자들은 이어졌습니다. 제천의 아세아시멘트 저장고, 군산의 두산테크펙 용광로 굴뚝, 성남 샤니 공장굴뚝에 화물노동자들이 올랐습니다. 그해 12월 1일 새벽 4시 일만이천명의 화물노동자들이 다시 총파업에 들어갔습니다.

[화물노동자]

화물노동자 가운데 근로계약을 맺은 사람은 7.9% 정도이고, 85%이상이 위임계약이나 도급계약을 맺고 일을 합니다. 어떻게 계약을 맺고 일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11%가 됩니다. 계약 형태도 구두계약이나 아무런 계약절차 없이 일하는 사람도 47.6%에 이릅니다. 보수는 사업주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경우가 76.8%이고, 협의해서 결정되는 경우는 7.9%에 불과합니다. 자신이 소유한 화물차로 일을 하는 경우가 82.4%이며, 화물차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노동자 스스로 부담하는 경우가 96.1%입니다. 53.8%의 화물기사는 한 달 수입이 100만원에서 200만원 사이이고, 100만원이 안 되는 경우도 26.3%에 달합니다. 열명 가운데 여덟명은 한 주에 50시간 이상 일하고, 7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는 61.3%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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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 총파업 , 화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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