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감 주워 먹는 사람이 되지 마라”

[새책] 별이 된 택시운전사 ‘허세욱 평전’

스물두 살 청년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몸에 불을 붙였던 1970년, 그리고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온통 검은 장막이던 노동에 작은 틈을 냈고, 그의 뜻을 따르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또 다른 죽음으로 그 틈은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많이도 찢어냈다. 나이 든 전태일, 우리는 허세욱을 그렇게 부른다. 전태일의 인간사랑, 실천, 투쟁, 정신을 나이 먹고 머리 하얘진 허세욱은 온몸으로 따랐다. 한미 FTA 체결에 명운을 걸었던 ‘신자유주의 좌파’ 노무현 정부의 본질을 벗겨낸 허세욱의 죽음으로 나이 든 전태일, 허세욱의 삶이 세상에 알려졌다.

허세욱 열사의 삶은 그 자체가 ‘행동하는 양심’의 본보기였다. 그의 삶이 우리 사회에 울린 경적과 메시지는 강렬했다. 항상 깨어 있기 어려운 우리에게 경적을 울려줄 허세욱의 삶과 투쟁을 고스란히 닮은 평전이 출판되었다.

택시노동자로, 평생 가장 기뻤던 일을 꼽으라면,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민주노총 조합원이 된 것’이라고 말하던, 늘 민주택시 조끼를 입던 허세욱의 삶과 투쟁, 정신을 돌아본다.

봉천6동 재개발 광풍에 사람을 죽이기까지 서슴지 않는 용역깡패들의 폭력을 보며 처음 ‘운동’을 알게 된 허세욱. 그 뒤 많은 것을 깨달았고, 한번 세상을 제대로 보게 된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참여연대에 가입했고, 민주노동당 당원이 되었다. 미군장갑차에 치어 숨진 두 여중생 효순 미선 투쟁은 자신의 뼈를 미군 담장에 뿌려 그 한을 풀고자 했고, 미군을 내보내는 절실한 요구는 유언이 되었다. 효순 미선 투쟁, 그리고 매향리미군국제폭격장 폐쇄 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요구와 투쟁이 평화와 통일문제와 동떨어진 것이 아닌 것을 알게된 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에 가입했고,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 투쟁에 온몸을 던졌다.

하루 340Km씩 한 달 동안 택시를 몰아야 손에 쥐는 돈은 100만원 남짓이었지만 허세욱은 그 돈의 상당수를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썼다. 혼자 사는 동네 노인을, 소년소녀가장을 도왔다. 자신이 모는 택시에 수많은 사람을 태워 무료로 배달(?)했다. 좋은 강의를 들어 고마운 선생을, 집회 후 서울에서 길 잃은 시골의 농민들을, 집회가 끝난 뒤 돈 없는 학생들을…. 각 단체에 회비를 내면서도 정작 자신을 끼니를 거르는 경우도 많았다.

투쟁의 현장은 허세욱의 배움터였다. 「참여사회」와의 인터뷰 내용처럼 “집회장엔 상하도 없고, 너와 나도 없습니다. 오직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힘만이 있을 뿐이죠. 일한만큼 대접받는 사회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고 했다. 허세욱은 집회장에서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집회에서 뿌려진 유인물은 반드시 그의 택시에 실렸고, 그 유인물은 택시에 타는 손님들의 손에 건네졌다.

자본의 총공세에 맞서 세상을 흔드는 경적소리를 내며 도로를 달리고, 사람들을 그렇게 깨우던 허세욱은 별이 되었다.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설 것을 강권하는 사회,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우리는 길들여져 있다. 참으로 답답한 세상이지만 허세욱 열사가 하늘에서 그가 좋아했던 구호를 외친다.
“단결해서 싸우자! 하나가 돼서 싸우자!”
그 외침은 전태일이 벌려놓은 검은 장벽을 그의 뜻을 가슴에 새긴 모든 노동자의 힘과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이만큼 열어 놓았고, 이제 더 크게 찢어 환한 세상을 만드는 길로 나갈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허세욱 평전을 한 열사의 기록으로 읽어 줄 것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명망가 운동을 하지 마라. 책상머리에 앉아서 일하지 마라. 현장으로 내려와라. 떨어지는 감 주워 먹는 사람이 되지 마라.”는 그의 경적 소리가 담긴 울림이기 때문에….
덧붙이는 말

※ 문의 : 허세욱정신계승사업회 박석민 집행위원장(010-6369-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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