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망이

[이윤엽의 판화참세상]

정남 백리 살 때 일입니다.
이맘때였는데 풀이 엄청 자랐습니다.
낫질이 귀찮기도 하였지만 풀숲이 그렇게 싫지 않았습니다.
제멋대로 자라는 그 속에 있으면 맘이 편해지기까지도 했습니다.
그러나 동네 농사꾼 어르신들은 그렇지 안으셧습니다.
게을러서 그런거고 뱀 나오고 모기 생긴다고 아주 질색을 하시는 겁니다.
만날 때마다 풀좀 베라고 약좀 놓라고 하는 통에
인사도 드리기 싫어 빙빙 피해 다닐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어느 날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염소를 한 마리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어릴적 아버지와 흑염소들을 몰고 냇가 개울둑에 다니던 생각이 났던 겁니다.
저녁때 집으로 데려 올 때 쯤이면 그 많던 풀은 다 없어지고 콩자반 같은 똥들만 그 자리에 데구르 놓여 있었습니다.
당장 오산장에 가서 흑염소 한 마리를 사고 이름도 지어 주었 습니다.

까망이

까망이는 정말 풀을 잘 먹었습니다.
까망이가 하루를 보낸 자리는 둥그렇게 맨땅이 원으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까망이는 제일 먼저 키 닿는 나뭇잎을 먹고 그 다음 맛잇는 풀을 먹고 그다음 맛있는 풀을 차례로 먹으면서 더 이상 먹을 게 없으면 음메 하고 울다가 안옮겨 주면 우웨엑 우웨엑 하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몇일 지나지 않아 집 주위는 깨끗해 졌고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까망이 자랑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낮에 그림 나부랭이를 하고 잇는데 우웨엑 하는 까망이의 높고 짧은 목소리가 해를 갈랐습니다.
벌써 다 먹었을 리가 없는데 왜 그렇게 줄이 엉켰나 그 정도로 저렇게 울지는 않을 텐데 불안 한 맘으로 냅다 논둑을 달렸 습니다.
그리고 맙소사 너무 놀랐습니다.
채 반도 그리지 못한 풀섶에 까망이의 배는 애드벌룬처럼 빵빵해져 있었고 우웨엑 우웨엑 단 서너마디 만 뱉어놓고 쭉 내밀어진 혀는 이미 푸르게 굳어 버린 것 이였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건지 영문을 알수 없었습니다.
감지 못한 눈에 눈물이 빙둘러 거품져 있었고
검은털에 반지르 흐르던 윤기는 순식간에 공중으로 증발되고 없었습니다.

죽었습니다. 까망이가

까망이를 밭둑에 뭍을 때 멀리 약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 먼데서 치는 약이 이곳까지 날라 온 겁니다.
그걸 안건 그날 저녁 까망이가 그리지 못한 풀밭에 풀들이 모두 누렇게 타고 있는걸 보아서 입니다.

까망이가 날라온 제초제를 먹고 죽은 것에 대하여 한동한 아무에게도 애기 하지 못했습니다.
좀더 세심하지 못했던 나의 행동에 대한 후회와 슬픔이 말 할 수없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 껑충한 풀숲들을 보면 나와 눈 한번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너무 짧게 산 까망이 그 염소 생각이 납니다.

까망이에게 이 그림을 줍니다.


  까망이

  풀이 자랐다.

  염소를 샀다

  염소가 풀을 먹었다

  염소가 죽었다

  풀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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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뎡야핑

    ;ㅁ;

  • 휘몰이꾼

    스토리텔링 마케터 휘몰이꾼 입니다.
    좋은 스토리텔링 사례인거 같아서 감명깊게 읽고 가네요 ^^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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