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평생을 보내는 닭

[새책] 죽음의 밥상 (피터 싱어, 짐 메이슨)

2년 전 여름, 서울시청 앞 분수대 옆 텐트에서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선전판을 지키며 동틀 무렵 읽었던 이 책은 당시 상황과 절묘하게 어울렸다.

저자 피터 싱어는 1946년 호주서 태어나 멜버른 대학,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했다. 현재 프린스턴 대학에서 생명윤리를 가르치고 있다. 인종 차별주의에서 벤치마킹한 ‘종차별주의’란 단어를 사용에 논란을 만들었다. 공동 저자 짐 메이슨은 농부이자 변호사다. 5대째 농사를 짓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공장식 농업’이 자신의 고향을 삼켜버리자 농사를 포기하고 법을 공부했다. 짐은 1975년 티어 싱어의 ‘동물 해방’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영국의 대표적 대형할인매장인 ASDA(아스다)는 자체 브랜드(PB) 계란에 닭장 계란을 쓰지 않는다. 반면 미국에서는 아직도 유통하는 계란의 98%가 ‘공장식 닭장’에서 생산한 것들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남은 2%조차도 대개 완전히 풀어놓고 기르는 닭에서 나온 것들은 아니다.

아칸소 주 메이블베일은 작은 마을이다. 36세의 제이크 힐러드와 26세의 리 니어스티머는 부부다. 고기와 감자 중심의 식단, 때때로 SAD(미국 표준 식단)로 불리는 식단을 애용한다. 섭취하는 칼로리 중에 무려 35%가 지방이다. 빠르게 배를 채우고 포만감을 줄 수 있다. 미국에서는 고기, 계란, 유제품 값이 싸기 때문에 이런 식단은 돈도 별로 들지 않는다.

제이크는 대형할인매장에서 ‘컨트리크릭’표 계란 한 판을 집었다. ‘동물보호 조치 보증’이란 문구가 인쇄돼 있다. 아무르 페페로니, 조미 베이컨, 지미딘 소시지, 이런저런 군소업체의 가죽 제거 닭가슴살, 어드밴스브랜드 육포도 샀다. 부부는 외식할땐 엘치코에서 멕시코 음식을 먹거나 스모키조 바비큐 아니면 래리스 피자로 간다.

싸게 먹는 닭, 사실은 비싸다.

미국에서 지금 50살이 넘은 사람이라면 닭고기가 쇠고기보다 비쌌던 시절, 그래서 아주 특별하게 취급되던 시절을 기억하리라. 오늘날 닭고기는 가장 싼 고기이며, 그 소비량은 1970년 이래 두 배로 늘어났다. 공장식 농업의 옹호자들은 자기들의 기술 덕분에 노동자들도 닭고기를 부담 없이 사 먹게 되었다고 뻐긴다.

제이크가 구입한 닭고기 가슴살은 ‘타이슨푸드’ 제품이다. ‘지구 최대의 단백질 공급자’이자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산과 유통면에서 세계적인 선구자라고 한다. ‘타이슨푸드’가 생산 과정의 일체를 통제한다. 평균 시장거래 체중을 가진 닭 한 마리당 96평방인치의 몸을 움직일 공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은 가로 8.5인치, 세로 11인치의 종이(미국에서 보통 쓰는 복사용지) 크기와 대략 비슷하다.

영국에서는 1997년 공장식으로 닭들을 밀집 사육하는 것은 잔인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영국 환경운동가인 헬렌 스틸과 데이비드 모리스가 어떤 팸플릿에서 자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맥도날드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그러나 영국 법원은 맥도날드가 닭들의 잔인한 처우에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판사는 “보통 맥도날드에 공급되는 브로일더 닭은 생의 마지막 며칠 동안을 거의 움직이지 못하며 보낸다”고 판시했다.

닭똥은 바닥에 떨어져 무더기가 된 채 치워지지 않는다. 만성 호흡기 질환, 발과 무릎에 통증을 앓고, 가슴에 물집이 생긴다. 눈에서는 진물이 나오며 심할 땐 아예 시력을 읽기까지 한다. 닭들은 1950년대 조사들보다 세 배나 빠르게 성장하면서 먹이는 1/3밖에 먹지 않는다. 브로일러 닭의 90%가 다리를 절고 있으며 26%가 고질적인 뼈 관련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 존 웹스터 브리스틀 대학 수의학과 교수는 “브로일러 닭들은 죽기 전까지 삶의 20%를 만성 고통 속에 보내는 유일한 가축”이라고 했다.

이직률 100%의 더러운 공장농업

델라웨어와 메릴랜드, 버지니아 3개 주에 걸친 델마바 반도는 천혜의 비경이다. 체사피크만은 미국 동해안에서 얼마 남지 않은 청정지역이었다. 1608년 손 스미스 대령이 처음 영국에서 체사피크에 들어왔을 때 그곳은 청정 생태계의 보고였다. 손 스미스 대령은 인디언 부족장의 딸인 포카혼타스 공주와 사랑을 나누었다고 사기를 쳤던 디즈니영화에 나오는 그 남자다. 그 델마바 반도에서는 매년 6억 마리 이상의 닭을 생산한다.

델마바 반도의 공장 사육 닭들은 400만명이 사는 도시보다 많은 오물을 배출한다. 인분은 따로 처리하지만 닭똥은 그대로 땅에 버린다. 닭똥에 있는 영양소는 지하수로 스며 이 지역의 강과 바다는 과영양화 때문에 늘 썩어 있다.

2002년 시에라클럽이 선정한 최악의 동물공장 운영업체 10개소에 포함된 타이슨푸드는 오랫동안 환경오염의 주범이었다. 타이슨푸드가 싼 치킨을 내놓는 이유는 많은 비용을 남들에게 전가했기 때문이다. 그 비용 중 일부는 파리떼 때문에 뒤뜰에 나갈 수도 없고, 악취 때문에 창문도 닫고 살아야 하는 이웃의 가난한 주민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타이슨푸드사 노동자들의 임금은 아주 적고 근무환경도 열악하다. 그래서 이직률이 아주 높다. 일부 농장의 보고서를 보면 연간 이직률이 100%를 넘는다. 노동자들이 평균 1년도 일하지 못하는 거다.

<동물보호 조치 보증 계란>의 거짓말

대부분의 미국 사람이 자신들이 먹는 계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고 있다. 닭 한 마리가 차지하는 공간은 A4 복사용지보다 더 작다. 스트레스를 못 이긴 닭들은 서로를 쪼아댄다. 인공조명은 가장 해가 긴 여름철을 흉내 내는데 쓰이며 암탉들이 1년 내내 가장 많은 계란을 낳도록 한다. 이런 식으로 1년만 지나면 닭들은 지쳐버리며 낳는 계란 수가 적어지기 시작한다. <죽기 전에 동정을(COK)>이란 단체는 젊은 동물권리 운동가인 폴 사피로와 한국계 미국인 박미연이 만들었다.

샤피로와 박미연은 다른 전술을 썼다. 2001년 그들은 낮이면 메릴랜드의 시골에 있는 공장식 계란농장 주변을 차로 돌다가 밤이면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그곳에 잠입해 일을 시작했다. 닭장 속에서 썩어가는 죽은 닭들, 철망에 목과 다리가 찢긴 닭들, 우리 아래쪽의 오물 구덩이에 빠진 닭들을 담았다. 2003년 6월 <죽기 전에 동정을(COK)>은 동물보호조치 보증 마크를 사기 광고혐의로 고발했다.

이 책에 나오는 사례는 미국 가정의 식단이 중심이라서 우리 정서에 잘 맞지 않다. 아무르 페페로니, 지미딘 소시지, 어드밴스 육포 등은 미국인에겐 익숙한 단어지만 우리에겐 낯설다. 우리 환경운동가들은 왜 이런 책을 만들지 못하는 걸까? 롯데삼강의 떠먹는 아이스크림과 하림 키친, 파리바게트 식빵, 풀무원 두부와 콩나물, NHQ 농협인증쌀은 얼마나 안전한 밥상인지, 캐고 다니는 단체는 왜 없을까? 거대 담론과 정부 정책에 대한 선험적 논거를 중심으로 한 이론 대항투쟁만 하지 말고 구체적인 서민 밥상부터 뒤지는 게 훨씬 더 설득력도 있고, 여론의 지지도 많이 받을 것 같은데.

이 책의 저자처럼 우리나라 돼지 도축 과정을 추적한 사람은 <식객>을 쓴 만화가 허영만이었다. 허 화백이 현장을 취재한 사진은 아래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blog.naver.com/astrohwan/40025740194
http://blog.naver.com/astrohwan/40025740576
http://blog.naver.com/astrohwan/40025758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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