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진행형 중인 제국적 국가

[새책] 제국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제임스 페트라스 외 , 408쪽, 갈무리)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공저한 <제국>(2000년)이 출간되면서 국제적으로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지난 2001년 번역되면서 진보진영의 학계와 활동가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어 10여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근대국가의 존재와 역할에 관한 것이었는데, <제국>은 20세기 후반 세계질서를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의 식민경영과 영토전쟁으로 집약되는 고전적 제국주의가 사라진 대신 탈중심·탈영토적 자본권력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율적 시스템으로 규정했다. 제국주의의 종언을 선언하고 지배자본이란 유령을 육화시킨 것이다. 즉 전 지구적 자본주의는 오늘날 시장과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자율적인 “제국”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통 맑스주의자들은 제국적 국가의 기능이 자본주의적 발전이 취하는 형태에 있어서 핵심적이라는 것이다.

그 동안 남한의 진보진영에서는 ‘제국’을 둘러싼 논쟁이 2000년대 초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생산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 그것은 논리적인 엄밀성과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논쟁의 구도가 동일한 현상에 대한 동일한 의문과 관련해 ‘제국’이라는 새로운 현상으로 단절화시켜, 이분법적으로 전개되어 이성이 결핍되고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도 한 몫을 담당했다. 또한 선명성 경쟁이라도 하듯이 논쟁을 통해서 승리와 패배의 결과로 환원시켜 자신들의 태도나 입장만이 정당하고 올바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소아병적인 자세가 일부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현재는 논쟁의 수준이 매우 낮거나 상호간 신뢰의 문제 때문에 회피하려는 경향성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그만큼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명료하게 분석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양측의 입장을 변증법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과제를 던져주었다.

제국주의 있는 국가는 여전히 진행중

그런 의미에서 제임스 페트라스를 중심으로 한 공저 <제국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존의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를 둘러싼 다분히 도식적인 논쟁에서 한 단계 진전시켜 오늘날의 세계를 ‘제국’이라고 지칭하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제국’을 움직이는 동력이 ‘제국주의’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제국주의 없는 제국인가 아니면 제국주의 있는 제국인가’라는 식으로 대립점이 약간 변화되었다. 즉 오늘날의 세계는 제국주의가 사라진 제국이 아니라 제국주의가 주도하는 제국이라는 것이다.

이들의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 비판은 2000년 공저 <제국>에서 나타난 ‘제국’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에 그리 새롭지는 않다. 저자들은 하트와 네그리가 제국적 국가의 역할을 심각하게 저평가하거나 무시했다고 하면서, 오늘날 전 지구적 발전의 동학을 이해하는 데는 국제적 발전, 세계화(globalization), 제국주의 등 세 가지 기본적인 접근법으로 조망하면 명료하게 이해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들은 “발전과 세계화는 모두 “제국주의”라는 전혀 다른 기획과 의제에 씌워진 이데올로기적 가면이다. 이 제국주의는 작게는 세계 지배의 기획으로, 제국적 국가의 이해와 지배 권력에 전 세계의 민중들과 국가들을 복속시키는 것으로 정의될 수 있다(20쪽)”고 보았으며, “제국적 국가는 더 자주, 그리고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위기관리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행사해 왔다. 주요 투자자들이 도산하지 않게 막아 주었고, 지불능력이 없는 다국적 기업들을 지원하였으며, 통화 붕괴를 막았다. 다국적 기업들과 소위 세계 경제는 위기를 관리하고 지방 기업들의 주식을 매점하여 이익을 보장해 주는 제국적 국가의 지속적인 대규모 개입에 전보다 더 많이 의존하고 있다(29쪽)”고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세계화 동력학’이란 부제에서도 나타나듯이 지은이들은 라틴아메리카, 러시아, 이라크 등 세계 곳곳의 사례를 바탕으로, 제국적 권력의 경제적 기초와 제국을 유지·확장시키는 국가의 활동을 분석하고 있다.

당연히 제국주의적 국가의 대표는 미국이다. 제국적 국가인 미국은 직접적인 방식(국무부와 국방부)과 간접적인 방식(세계은행과 IMF) 모두를 동원하여 세계 체제를 운영하는 일종의 이사회를 구성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까지 상위 5백 개의 다국적 기업의 수와 비중의 관점에서 지배 권력이다. 5백 개 다국적 기업 중 227개(45%)가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고, 서유럽이 141개(28%), 아시아가 92개(18%)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의 수가 가장 적은 대륙 및 국가들은 한때 유럽-미국 다국적 기업 및 그 제국적 국가들의 지배를 받았던 곳들이다. 상위 10개 다국적 기업들 중에서 80%가 미국 기업이고 20%가 유럽기업이다. 상위 20%의 다국적 기업들 중에서 75%가 미국 기업이고 20%가 유럽 기업이며 5%가 일본 기업이다. 이처럼 미국의 권력이 가장 많이 집중되어 있는데, 특히 제조업, 석유와 가스, 소프트웨어와 컴퓨터 서비스, 제약, 금융, 소매업, 보험, 정보기술 하드웨어 부문에서는 최대 규모의 다국적 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의 총자본금은 1조9천7백9십 억 달러에 달하고 있다(56-58쪽 참조).

이것만 봐도 미 제국의 쇠퇴를 논하는 것은 미국의 최고 8대 기업들의 연합된 힘을 무시한 것이 분명하다(58쪽). 따라서 “세계화”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미 제국 또는 최소한 유럽-미국 제국의 극단적인 집중과 확장을 말하며, 이것은 아시아 다국적 자본들의 점진적인 등장으로 보완되고 있다. 물론 “상위 1백 개 기업들을 벗어나면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지배력은 좁혀져 왔고 유럽-아시아의 다국적 기업들이 거세게 도전해 왔다(59쪽)”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미국의 세계 경제적 ”헤게모니“가 강화되고 증대되고 있(141쪽)”으며, “세계 자본이 금융화되고 있고, 이 자본이 미국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140쪽)”을 제대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군사주의를 통해 세계 많은 지역에 미 경제 대국을 확장시키기 좋은 조건을 창출해 냈다. “미국은 전 세계 120개국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으며, 이것은 군사적 제국의 핵심을 이루고 이룬다. 군사주의는 전쟁, 용병, 계약 전투요원, 특수부대를 통한 대리전,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은밀한 정보작전을 수반(143-144쪽)”하는데, 그럼으로써 “미국에 근거지를 두고 시행되는 직접투자에 제약을 가하고 미국 은행에 진 빚을 갚기를 거부하며, 미국의 해외보유 재산을 국유화하거나 민족주의 운동을 지원하는 체제는 굴종의 위협을 받거나, 전복 혹은 침략 당했고, 미제국 건설에 우호적인 종속정권을 강제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144쪽)”는 것이다. 저자들은 경제적 확장과 군사적 행동에는 정확히 정해진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저자들은 제국주의의 대표적인 희생 지역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사례를 들면서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제국 건설 과정, 식민화 과정을 네 시기로 나누어 세세하게 분석하며, 풍부한 자료들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의 미국의 만행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제국주의는 “정책이나 음모 또는 어떤 단일한 행정체계의 산물이 아니라 정치적 결정자들과 경제적 근거를 가진 구조적 실재다. 이러한 구조의 경제적 요청에 근거하여 정책들은 워싱턴의 의사결정자들에 의해 공식화되고 국가기구를 통해(66쪽)”서 이행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국의 구조적 요청과 기업의 전 지구적 이익을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것에 항상 직접적인 관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정책입안자들은 대중의 등 뒤에서, 다국적 기업들의 등 뒤에서, 그리고 제국의 구조적 초청에 반하여 행동하기도 한다. 제국적 국가는 다국적 자본을 대표할 때에도, 자기방식으로 그렇게 하며, 제국적 국가가 추구하는 정책들은 때때로 제국의 또 다른 이익을 위해 어떤 한 이익을 희생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2008년도에 시작된 미국발 세계경제위기에서도 국가는 정교한 무역장벽과 협약 등으로 다국적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고 파산위기에서 건져주는 모습은 제국주의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계급투쟁과 반제국주의 운동이 핵심

한편 지은이들은 제국주의를 추구하는 권위주의가 대중민주주의, 무장저항, 미국 공화국의 쇠퇴라는 근원적 방해물에 직면해 있는 점에도 주목한다. “신자유주의 세계질서를 수호하는 독단적인 신보수주의자들의 딜레마는 좌파에게는 기회(18쪽)”라는 것이다. “제국주의의 힘에 도전하고 이를 약화시키기 위해 이라크 등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항의 힘에 대한 연대가 더 많을수록, 민주적 공화국의 기초를 다시 세우고, 대중 혁명운동을 건설 및 강화하며,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낼 가능성은 더 커지게 되기(18쪽)” 때문이다.

저자들이 강조하는 것은 국민국가 내부의 계급투쟁과 반제국주의 운동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계급적 이해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모호한 개념으로 정의되고 있는 ‘다중(multitude)’은 투쟁의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의 지속적인 반제국주의 운동을 통한 일부 성과를 보면서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찾고 있다.

정통 맑시즘의 확장과 강화를 부르짖는 남한 진보좌파에게 국민국가의 내부의 계급투쟁과 반제국주의 운동의 지속성 강조는 오랜 가뭄 끝에 찾아오는 단비처럼 묘한 쾌감을 준다.

이 책은 그 동안 ‘제국’에 대한 수많은 불확실한 주장들을 다양한 통계자료들을 끌어들여 논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공헌도가 크다고 하겠다. 저자들의 주장처럼 오늘날에도 여전히 국민국가의 조절 역할은 여전히 주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제국론’에서 말하는 ‘포획’과 ‘훈육’은 애초부터 국민국가의 가장 주요한 기능과 역할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10여 년 전의 갈증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세계화의 역동성 논리는 여전히 철저하지 못하다. 하트와 네그리의 <제국>이 “지적 공허함의 완전한 종합(52쪽)”판 일지 몰라도 제국-제국주의 구도를 넘어서지 못하고 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라틴아메리카의 좌파진영에게는 매우 훌륭한 지침서가 되겠지만 계급모순과 분단모순의 이중모순에 시달리는 남한의 좌파진영에게는 공허한 면이 있다.

노동자계급이 정치적 주체로서 낡은 부르주아 지배 장치를 대체할 새로운 권력을 대중적으로 창출하고, 이것에 복무할 노동자계급의 당파적 조직의 건설이 시급한 과제인가? 나아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에 입각하여 일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수준의 투쟁을 전개하면 ‘제국’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를 타격할 수 있는 투쟁의 전망을 열어나갈 수 있을까? 다소 식상하지만 이것이 전망이라면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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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대 , 제국 , 페트라스 , 노동자국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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