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가 예산은 아직도 이토 히로부미가 쥐고 있다

[새책] 재정민주주의 (조규상, 리북, 2009.11.11, 271쪽)

저자 조규상은 1980년 전남대에 들어가 광주항쟁을 체험하고 일본 니혼대 대학권 국제관계연구과를 나와 1998년 메이지대에서 법학박사과정을 수료하고 2009년에 ‘바이마르 비례대표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중간엔 인터넷 회사 CEO를 지냈다.

식민지 망령에 갇혀 허울뿐인 ‘국회의 재정통제권’

사람들은 국가의 재정정책은 전문 지식을 가진 관료가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재정제도는 아직도 재정민주주의 입장에서 볼 때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재정민주주의는 학계나 정치 및 행정에서 외면당했다.

이 책의 1장은 재정 민주주의의 기본 의미를, 2~5장은 민주주의와 헌법의 측면에서 재정민주주의를 조명했다. 6~8장은 각론으로 예산 법률주의와 비법률주의, 의회의 재정통제, 국민의 재정참여 등을 살폈다.

혹자는 재정민주주의를 강조한 미국이나 영국은 지금 막대한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한다. 이 점 때문에 숙련된 관료에게 재정을 맡기는 게 안전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 나라는 한국과 상황이 전혀 다르다. 미국이나 영국의 재정적자는 군사력이나 사회보장제도 등에서 비대해진 관료기구 때문이라는 게 이미 재정학에서 증명된 사실이다.(바로보기 7, 참고)

한국의 재정제도는 아직도 일제 식민지 시대의 망령에 빠져 있다. 세계 많은 나라들은 국왕->의회->국민으로 재정권력이 바뀌었지만, 한국은 국왕(관료)->조선총독부(관료)->정부(관료)로만 재정권력이 머물러 있다. 한국의 재정권력은 실제로 관료가 쥐고 있고 국회의 재정 통제권은 허울뿐이다.

1장. 재정민주주의의 진정한 의미

‘재정민주주의’는 나라살림을 국민주권으로 꾸리자는 사상이다. 한국 지하경제는 OECD 국가 중 최상위라서 우리는 탈세부문 선진국이다.(헤럴드경제 2009.8.8) 같은 날 국회예산정책처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지하경제 비중이 OECD 국가 중 4번째로 크다.

우리나라 2009년 예산이 301조 원 정도다. 그 가운데 사회간접자본의 예산은 24조5천억원이었다. 2010년 4대강 사업비 3조5천억원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고 수자원공사가 3조2천억원을 충당한다. 1년 국가예산의 1%를 넘는 거액이 들어가는 4대강 사업을 국민의 의사와 별도로 결정했다. 이는 한 가족이 1년에 43만7500원을 부담할 돈이다. 수자원공사의 3조2천억원도 문제다. 2008년 수자원공사 1년 매출이 2조원이다. 수자원공사는 한 해 매출보다 1.6배가 많은 돈을 회사채로 충당한다. 수자원공사가 재정위기를 맞으면 상하수도 요금에 영향을 미친다.

재정민주주의는 국민에게 무상으로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재정 민주주의는 세계사적으로 볼 때 투쟁을 통해 주권자인 국민이 왕권으로부터 빼앗아왔다.

바로보기1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재정

재정이 일부 정치가들과 관료들 손에서 비밀스럽게 다루어지기 때문에 문제가 생겨도 명확한 추궁이 어렵다. 재정권력의 행사에는 반드시 법적 책임이 따르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국회 국정조사나 청문회는 지난 98년 구제금융(IMF)때도 그 책임을 명확히 밝혀지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은 다르다. 미국 의회는 2008년 9월 금융위기의 원인조사 위원회를 새로 구성해 2009년 9월17일 워싱턴에서 첫 공개회의를 열었다. 미국 의회는 미국 금융위기의 근본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10명으로 구성된 금융위기 조사위원회를 적각 만들었다. 위원회는 2010년 12월15일까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4대강 사업의 예산(재정)은 국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결정되고, 국민이 아니라 일부 공직자에 의한 재정권력 행사가 이루어지고, 국민을 위한 재정통제가 전혀 없다.

2장. 재정민주주의와 헌법

현행 한국헌법은 재정에 관한 중요한 규정을 정하고 있다. ‘조세법률주의’와 ‘예산과 결산에 대한 국회 의결주의’다. 한국 헌법은 몇 개의 재정 규정에서 치명적으로 비민주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법치주의나 법치국가의 개념을 국가권력이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흔히 이용하는데 이는 아주 잘못됐다. 법의 지배나 법치주의는 권력기관이 통치하기 위한 편리도구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거꾸로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한국에서 조세법률주의는 재고해야 한다. 조세법을 폐기하거나 개정해야 한다. 좋은 예는 2008년 11월 13일 구 종합부동산세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이다.

바로보기2 현행 한국헌법과 재정민주주의 문제

1987년 개정한 현행 한국헌법에서 재정민주주의와 관련한 ‘문제’의 규정은 다음과 같다. 헌법 54조 3항의 준예산제도와 57조 정부의 동의 없이 국회의 예산수정을 금지한 규정이다. 54조 56조 57조 58조에서 ‘예산법’이라 정의하지 않고 ‘예산’이라고 했다. 재정의결주의의 예외로 대통령에게 긴급재정 경제명령권과 긴급재정 경제처분권을 헌법 76조에 부여하고 국회를 즉시 소집하고 국회의 승인을 얻도록 규정한 점이 문제다.

1) 한국에서 ‘조세’는 법률로 징수해야 하지만(조세법률주의) ‘예산’은 법률이 아니다.(예산비법률주의) 2) 납세자의 의무는 있지만 납세자의 권리는 없다. 헌법재판소 역시 같은 취지의 판례를 남기고 있다. “예산은 일종의 법규범이고 법률과 마찬가지로 국회의 의결을 거쳐 제정하지만 법률과 달리 국가기관만을 구속할 뿐 일반국민을 구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회가 의결한 예산 또는 국회의 예산안 의결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헌재 2006.4.25. 선고 2006헌마409)

헌법을 개정해 확실하게 재정민주주의 관련 규정을 넣어야 한다. 2009년 8월31일 국회의 헌법 연구자문위원회도 국회의장에게 제출한 개헌안 연구결과보고서에서 재정민주주의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보고서는 재정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재정’이란 장을 신설하고 다음과 같은 제도를 주문하고 있다. (헌법연구자문위원회, 결과보고서, 2009, 145-151쪽, 223쪽 이하)

예산법률주의로 행정부에 빼앗긴 국회의 재정권 확립

1) 예산법률주의 채택한다. 2) 국회를 상시국회로 운영하고 예산결산특위를 상임위로 한다. 3) 감사원의 회계검사제도를 국회가 갖고 행정부의 감찰기능을 가진 감사원을 헌법기관에서 법률기관으로 하향 설치한다. 4) 기금의 근거를 헌법에 명시한다. 5) 결산을 정부는 감사원이 아니라 국회에 제출한다. 6) 조세뿐만 아니라 그 외 국민부담을 주는 정부의 수입을 법률로 명시하는 세입법률주의를 채택한다. 7) 국회의 지출예산 증액 및 새 비목 설치를 제한하는 규정은 삭제한다. 8) 국가채무부담의 한계를 헌법으로 규정하는 것을 검토한다.

보고서에서 헌법연구자문위원회는 “헌법에 ‘재정의 장’을 신설해 현재 국회와 정부 편에 분산돼 있는 재정 조항을 체계적으로 정비하고 재정운용의 기본사항을 규정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정민주주의의 핵심인 예산법률주의의 가장 큰 장애요소인 헌법 57조(예산추가금지)도 실제 운용에선 여당과 정부, 혹은 국회와 정부 간의 타협 속에서 예산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3장. 재정민주주의의 헌법사적 전개

한국 헌법은 59조 ‘조세의 종목과 세율은 법률로 정한다’는 규정으로 조세법률주의를, 54조 1항 ‘국회는 국가의 예산안을 심의 확정한다’에서 재정의결주의를 명시했다. 이런 재정의결주의의 확립은 단순히 성립한 게 아니다.

1628년 권리청원 당시 영국 의회의 가장 큰 관심은 국왕의 전횡으로부터 납세자를 보호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은 프랑스 ‘재정 파산’ 위기다. 미국의 독립도 ‘재정’ 문제가 계기였다. 98년 IMF의 책임을 지고 사법적 심판을 받은 사람은 없었다. IMF 이전과 이후 국가재정정책은 다소 변했으나 아직도 국가의 재정구조는 근본적으론 변하지 않았다. 정부는 예산회계법과 기금관리기본법을 합쳐 2006년 10월 4일 국가재정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국가재정에서 ‘국민’은 빠져 있다.

한국은 아직도 ‘조세는 법률이지만 예산은 법률이 아니다’. 국회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상설위원회가 아닌 한시적 위원회에 불과하다. 엄밀히 말하면 영국의 1689년 권리장전 이전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바로보기 3 한국 근대 재정제도와 헌법 문제

일본 제국주의는 청일전쟁에서 승리해 1895년 3월23일 청일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나서 조선의 조정을 움직여 3월30일 회계법을 반포해 형식적이나마 근대 입법정치와 재정제도를 세웠다. 그러나 재정제도가 일본제국주의의 압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본제국의 메이지헌법과 회계법의 영향이 컸다. 일본이 독일 프로이센법 영향을 받았기에 우리 재정제도는 간접적으로는 독일의 영향을 받았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조선의 재정적자는 1910년 한일합방까지 3배 이상 늘었다. 무분별한 불법 지출은 당시 재무행정의 실권을 장악한 일본제국주의가 국권을 침탈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4장. 프로이센, 메이지, 한국헌법과 재정제도

2008년 5월13일 정년을 1년2개월 남긴 감사원장의 미심쩍은 사퇴 직후 국세청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터졌다. 감사원은 공영방송 KBS를 특별감사해 정연주 사장을 검찰에 고발했지만 1년 뒤 정 전 사장은 무죄를 받았다.

한국은 “재정문제를 빼고 법치주의 하자는 국가”이고 “돈 문제 빼고 민주주의 하자”는 희한한 민주국가다. (권해호, 예산법률주의 도입방안 연구, 2005, 118쪽)

서양 헌정사는 재정(예산)의 수입과 지출에 대한 의회의 통제권을 확보하기 위한 투쟁사이며 재정의 혁명사다. 우리나라 헌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독일과 일본만 다른 서양 여느나라와 조금 다르게 근대 재정입헌주의를 전개했다. 독일 프로이센헌법은 위에서 강요한 흠정헌법이었다. 상원에서 비스마르크는 하원이 삭제한 예산안을 부결하자마자 이른바 ‘흠결’이론을 내세원 군비 확장을 단행한다. 비스마르크는 1866년 9월3일 사후승인법을 만들었고, 의회는 비스마르크에 동조한다. 의회는 1862년 예산 없이 시행한 행정조치를 사후 승인하고 1866년도 예산도 사후 승인한다. 이로서 정부가 작성한 예산안만으로 예산을 집행하는 길을 열었다.

낡은 망령에 쌓인 한국의 재정제도

비스마르크에 의해서 독일은 1871년 통일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한 번 어긋난 정부에 대한 의회의 재정 통제권 상실로, 이후 독일은 걷잡을 수 없이 군국주의로 치닫는다. 독일 국민은 1, 2차 대전이란 엄청난 대가를 치른 뒤 독일연방공화국 즉 구 서독에서 전후 예산을 ‘예산법’으로 확립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양차 대전 중간에 이 교훈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프로이센 재정의 전근대적 요소가 일본과 한국에 영향을 끼쳤다. 독일도, 일본도 지금은 이 망령에서 빠져 나왔지만 한국에선 여전히 재정의 전근대적 요소가 망령으로 살아 있다.

이토 히로부미는 메이지 헌법의 재정제도를 어떻게 만들었나

메이지헌법의 재정제도에 관한 조항(6장 회계)은 프로이센헌법과 프로이센의 헌법투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이토 히로부미가 프로이센헌법을 보고 메이지헌법을 만들었다. 이토는 의회의 ‘승인’을, 협력하여 돕는다는 뜻이 ‘협찬’ 수준으로 전락시켜 의회의 권한을 독일보다 더 억제시켜 버렸다.

이토는 유럽방문단을 이끌고 1882-1883년 유럽으로 가 입헌군주주의를 직접 보고 배웠다. 이토는 특히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그나이스트’에게,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선 ‘슈타인’에게 헌법과 국가운영 전반을 사사했다. 이토는 국회와 정부 위에서 군림하는 국왕이라는 ‘슈타인’의 군주입헌국가론에 감명 받았다.

그나이스트는 프로이센 헌법투쟁때 반 비스마르크 정파인 좌익중앙당에 속한 이론가로 ‘헌법투쟁의 아버지’의 한 사람이었지만 이토가 방문했을 땐 변절해 이토에게 “일본이 국회 개설을 준비 중이라는 데 외교, 군사, 경제에 관한 조항은 결코 의회가 간섭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군사권, 조세권, 외교권은 왕권 밑에 두고 군대와 돈은 특히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이토에게 행정부의 재정 전횡권을 가르친 독일법률가 그나이스트

그나이스트는 예산 불성립의 경우 예산 없는 통치나 아니면 ‘전년도 예산시행권’으로 대처할 수 있다고 이토에게 가르쳤다. 이토가 그나이스트를 만났던 1880년대 초 자유주의자였던 그나이스트는 제국의 옹호자로 전락해 있었다. 그나이스트는 일본에서 헌법제정을 위해 방문한 이토 일행에게 ‘재정과 군대의 중요성’을 충고했다. 예산이 의회에서 의결하지 않아도 집행할 방법인 ‘무예산 시행이나 전년도예산시행, 준예산제도’에 대한 조언도 했다.

루돌프 폰 그나이스트(Rudolf von Gneist, 1816~1895)는 베를린대학에서 헤겔에게 직접 배운 뒤 1847년부터 베를린 고법 판사였다. 1848년 독일 혁명 직후 정부의 반동정책에 반대하며 판사직을 던지고 비스마르크에게 반대했다. 그러던 그나이스트는 이후 변절해 비스마르크 편에 섰다. 우익 기고가 복거일은 노무현 정부의 종부세 논란을 ‘세금폭탄’으로 몰았던 조선일보의 월간조선 2006년 6월호에 ‘세금이 징벌 수단인가’라는 칼럼을 쓸 때에도 “독일의 법률가 그나이스트는 누진세 도입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기본 원칙을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며 이 사람을 인용했다.

한국 재정제도에 살아 숨쉬는 제국주의 일본

한국헌법 54조 3항은 전년도 예산시행주의를 시행하는 단서 조항이 들어 있어 엄격히 말해 한국은 ‘예산 의결주의’가 아니다. 문제의 54조 3항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때에는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집행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메이지헌법 64조에 의한 사후승인시행제도와 같은 맥락이다.

한국헌법 55조 2항은 예비비의 지출을 차기국회에서 승인 받아도 되도록 했다. 선집행하고 차후에 승인 받으면 된다는 ‘예산 비법률주의’를 용인하고 있다. 한국헌법은 메이지헌법의 황실 경제의 국회의결 제외조항처럼 특별히 대통령실 예산에 대한 특별규정이 없다. 한국헌법 76조는 메이지헌법 70조의 ‘긴급재정권’처럼 대통령이 긴급재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했다.

이처럼 한국헌법에서 재정 규정은 메이지헌법이 했던 정부 주도의 재정운영, 국회의 통제권 제한, 예산의 비법률주의, 조세법률주의 등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헌법의 재정제도는 프로이센헌법, 프로이센 헌법투쟁, 이토 히로부미에 의한 독일 그나이스트 조언 수용 등이 그대로 녹아 있다. 한국헌법은 이토가 의도한 예산의 정부 주도권을 거의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 판례는 “일본에서 예산은 법률이 아니다”라는 예산 비법률주의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우리 헌재는 헌법재판소 2006.4.25 선고 2006헌마409에서 “예산은 일종의 법규범이고 법률과 마찬가지로 국회의 의결을 거쳐 제정되지만, 법률과 달리 국가기관만을 구속할 뿐 일반국민을 구속하지 않는다. 국회가 의결한 예산 또는 국회의 예산안 의결은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 소정의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고 했다. 이는 의회의 입법권을 제한하고 군국주의 일본제국을 건설하려는 이토의 당초 의도와 너무나 부합한다.

한국의 국가 예산은 아직도 1909년에 죽은 이토 히로부미가 쥐고 있다.

한국은 메이지헌법에 있는 천황의 재정 긴급권마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재정민주주의를 저해하고 있다. 이토는 1905년 군대를 앞세워 고종 황제를 위협, 1905년 11월 7일 을사늑약을 강제체결하고 대한제국에 통감부를 설치한다.

1906년 3월 이토는 초대 통감으로 취임해 조선의 실질 지배권을 행사한다. 안중근은 1909년 이토를 응징했다. 그런데 아직도 한국헌법은 이토의 제국주의 사상의 기본이 되는 재정에 관한 기본조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헌법에 이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것은 통탄을 금할 수 없다.

재정의 민주화는 국력을 강화하고 사회와 경제를 건강하게 만든다. 이것은 이미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에서 증명된 진리이자 명제이다. 현재의 일본 헌법도 위에서 언급한 메이지헌법의 재정 독소조항을 이미 삭제했다.

바로보기 4 한국 조세법률주의의 맹점

한국은 조세를 법률로 정하지만, 납세의 세부 기준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납세는 힘없는 일반 국민들에게만 엄격하다. 힘 있는 사람들은 불법 탈세가 아니더라도 능력 있는 세무사나 회계사를 고용하면 100만원 낼 세금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힘 있는 사람도 정권의 눈 밖에 나면 세무조사의 타깃이 된다.

한국과 일본의 조세법률주의는 미국의 경우와 완전히 다르다. 한국과 일본은 조세를 대부분 정부가 국회에 법률로 제출해 동의를 얻는다. 즉 과세의 주체는 정부다. 그러나 미국은 의회의 동의로 과세하는 게 아니라 의회가 직접 조세에 대한 법률을 제안한다. 미국은 의회만이 과세의 주체다. 미국은 조세를 위한 법안은 모두 의회가 발의하고 제정한다.

미국의 조세법률주의는 실제 재정민주주의를 근거로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의 조세법률주의는 형식적이다. 미국은 ‘조세 헌법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가난한 백성만 잡는 조세법률주의

국회가 단지 동의만 하는 한국의 형식적 조세법률주의는 어떤 목적에서 태어났을까? 조세법률주의와 영구세주의는 일본에서 국회 권한을 약화시키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전년도예산시행권(준예산제도)과 함께 재정제도에서 정부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도구로 도입했다.

조선 통감부는 ‘주세법(1909년)’을 실시했다. 합방 후 1916년 주세령을 실시해 급속히 징수액이 증가했다. 1년 동안 일본 청주는 100섬, 맥주는 500섬, 막걸리는 50섬, 조선 소주는 2섬 이상이면 반드시 면허를 받고 세금을 내야 했다. 1944년 6월 주세령을 개정해 자가주조를 완전히 금했다. 이 때문에 밀주가 성행했다. 일본제국주의는 이처럼 조세법률주의와 영구세주의를 교묘히 이용해 식민지 조선을 철저히 유린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런 비판 없이 현재도 조세법률주의와 영구세주의를 법치주의란 미명 하에 실시하고 있다. 조세법률주의와 영구세주의도 재정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재평가하고 개선해야 한다.

2009년 8월31일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제출한 개헌안 보고서에 ‘조세법률주의를 삭제하고 국가의 모든 수입을 국회가 통제하는 세입법률주의 채택’을 권고했다. ‘세입법률주의’가 되면 세금에서 빠져 수익자 부담금으로 돼 있는 수도요금 같은 재정수입도 법률에 정해야 한다. 국민 부담은 모두 국민의 기본권 보장이란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5장. 국민주권과 재정민주주의

근대 이후로 헌법이 항상 추구한 두 개의 과제가 있다. 하나는 권력을 제한해 자유를 확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 자체를 민주화시키는 것이다. ‘국민 주권’의 역사적 전개는 권력의 민주화라는 점에서 볼 때 ‘철저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위해서는 ‘인민주권’이 정당하다.

대한민국 ‘헌법’의 영어 번역은 다음과 같이 국민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를 각각 다르게 번역한다. 1조 2항의 국민주권 조항에서 ‘국민’은 people이고 2조 1항 국적조항의 국민은 nationality, 2조 2항의 재외국민의 국민은 citizen으로 번역한다. 나머지는 대부분 people이다.

재정의결주의는 재정민주주의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재정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하나의 절차이자 도구다. 궁극적으로 재정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재정제도에 ‘인민주권’의 요소를 넣은 직접민주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부유한 시민계층 즉 보수층이 선호하는 ‘고전적 대표민주제’는 직접민주제보다 질적으로 우위라는 뜻이 들어있다. 질적 우위의 근거는 ‘민중의 능력에 대한 불신’이다.

유럽에서 지도자의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는 플레비시트(plebiscite)라 하고, 국가정책에 대한 가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레퍼렌덤(referendum)이라 해 구별한다. 통치자를 선출하거나 신임하는 것은 반드시 직접민주제라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한국의 대통령직선제도 엄격한 의미에서 직접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대표를 뽑기만 하면 그 역할을 다한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바로보기 5 국민주권의 구체적 보장으로서 납세자 권리

우리 헌법재판소는 납세자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2006.3.30 선고 2005헌마598에 따르면 재정사용의 합법성과 타당성을 감시하는 납세자의 권리를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기본권으로 볼 수 없다는 게 헌재의 일관된 의견이다. 이처럼 납세자의 권리는 한국헌법에 보장돼 있지만 실제로는 부정된다.

우리 국가재정법은 예산총계주의를 택하면서도 세입의 대부분을 충당하는 조세의 의무를 가진 납세자에 대해서는 전혀 규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조세와 재정의 분리 주장은 지금까지 납세자의 권리를 부정하는 이론적 근거가 돼 왔다. 조세와 재정을 분리하는 본래의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조세 및 예산의 행정부 재정행위에 대한 국회의 간섭을 되도록 배제하고 행정부에 보다 많은 재량권을 주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다.

이제는 한국헌법 아래서 조세개념 자체를 종래의 해석과 다르게 구성해야 한다. 납세자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조세 개념을 재구성해야 한다. 국민은 조세(수입)와 재정행위(지출)에서 위헌 또는 위법 의심이 있으면 권리침해를 이유로 법적 수단을 취하는 게 가능해야 한다. 미국의 납세자 소송의 법이론을 적용해도 좋다. 납세자가 조세의 징수와 지출에 대해서 감시할 법적 수단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으면 한국의 재정이나 정치의 민주화도 보증할 수 없다.

6장. 예산법률주의와 재정민주주의

예산은 법률이다. 즉 모든 예산은 의회가 의결하고 법률로 효과를 가진다. 예산법률주의를 취하는 영국, 미국, 프랑스, 현재의 독일에서 “예산은 법률”이다. 한국 예산에는 성역이 있다. 예산은 정부의 계획표이거나 아니면 법형식의 예산표다. 예산에 대해 정부가 전권을 가진 정부는 예산을 성역화하고 있다. 이런 성역화는 예산을 법률이 아니라고 보는 한국에서만 가능하다. 이는 일본제국주의 시절의 재정제도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한국에서 조세(세입)는 성역이 없다. 한국은 조세법률주의를 엄격하게 취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세출)에서 납세자는 의무와 권리가 없다. 단지 납세자의 대표인 국회가 예산을 형식적으로 승인할 뿐이다.

한국의 재정제도는 세입에서 성역은 없고, 세출의 성역은 정부가 쥐고 있다. 전년도 예산시행허용, 예산긴급권, 의무비지출의 정부귀속 등 메이지헌법의 독소조항인 예외규정을 해방 후 한국헌법에서 그대로 계승한 것이 한국의 재정민주주의를 가로막고 있다.

한국의 재정제도는 제헌헌법부터 세입은 조세법률주의로 운영했지만 세출 즉 예산은 비법률주의로 운용했다. 때문에 한국은 아직 재정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한 나라로 진정한 민주국가라 할 수도 없다.

정부의 예산안 편성절차는 다음과 같다. 각 중앙부처의 장이 1월말까지 중기사업계획서를 기재부장관에게 제출한다. 기재부장관은 예산안평성지침을 4월말까지 각 중앙부처의 장에게 통보한다. 각 중앙부처의 장은 예산요구서를 작성해 6월말까지 기재부장관에게 제출한다. 기재부장관은 예산요구서에 따라 예산안을 편성해 확정한다. 정부는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90일전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이처럼 예산안은 기재부가 주도해 편성 확정한다.

국가재정법 45조는 각 중앙부처의 장이 세출예산이 정한 목적외 경비를 사용할 수 없다고 정했지만 실제 46조 예산의 전용, 47조 예산의 이용, 이체를 허용해 유명무실하다. 각 중앙부처의 장은 각 세항 또는 목의 금액을 전용한다.
예산과 기금은 많은 점에서 예외적 운용을 허용한다. 준예산 제도는 얼핏 보면 합리적이지만 자세히 보면 민주주의 기본원리를 벗어나 있다. 재정민주주의라는 최종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예산은 반드시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해야 한다”는 ‘예산의결주의’에서 예외를 인정할 순 없다.

바로보기 6 예산법률제도의 실시 효과

2009년 8월31일 국회의 헌법연구자문위원회의 결과보고서는 예산법률주의를 채택하기 위해 많은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국회를 상하 양원제로 하고 상시국회로 하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상임위로 개편한다. 결산을 강화하려고 감사원의 회계검사기능을 국회로 이관, 조세법률주의를 세입주의로 변경, 국회의 예산수정권을 인정하는 등의 노력이 보인다.

예산법은 예산과 달리 훨씬 더 강력하게 국가기관을 구속할 수 있다. 국민에 대한 효력도 발생하고 역으로 국민은 예산법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국회가 재정을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예산의 낭비와 부정의 소지가 줄어든다. 예산 내용의 정보공개가 확대된다. 방만하고 부문별한 재정운용이 적어진다.

예산집행에 대한 국민의 납세자 소송이 가능하다. 관계공무원들도 제소당하지 않으려고 예산집행에 신중을 기한다. 결산 후에도 공무원이나 관계기관의 잘못이 발견되면 사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7장. 의회의 재정 통제와 재정민주주의

기획재정부의 재정주도성에 의회는 물론이고 정부도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는 실제로 금융권력의 핵심으로 행정기관의 역할을 보완하고 있다. 국회가 부처별 지출한도를 심의할 수 없도록 중앙부처별 지출한도는 국회에 보고도 하지 않는다.

2009년 일반회계예산은 203조5천억이다. 특별회계예산은 53조원이다. 각종 기금운용규모는 412조5천억 원으로 일반회계의 2배가 넘는다.

일반회계, 특별회계, 기금을 중심으로 한 예산 가운데 보조금, 출연금, 출자금이 있는데 특히 2009년 보조금은 40조6813억 원이었다. 이는 일반회계의 20%, 전체 예산의 13% 가까워 결코 적지 않은 액수다. 보조금은 의회의 의결뿐만 아니라 법적 근거도 없이 지출 가능하다. 보조금이 행정부의 선심지급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전체 예산의 13% 이상이 공무원들 손에 의해 자의적으로 지출할 수 있다.

2003년 11조원에서 2009년 26조원으로 크게 늘어난 국고 보조사업의 문제점은 2009년 양천구, 용산구 등 서울시내 부분 구청 공무원의 복지수당 횡령 등 심각하다. 국고보조금은 성질상 일단 예산에 편성하면 중단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증가율은 정부 총지출의 연평균 증가율이 6.9%인데 국고보조금은 최근 5년간 17.7%로 2배 이상 높다.

사회안전망 강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 등 새로운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기존의 사업을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국가보조사업의 존치제도에 관한 조항이 없다.

2008년 정부의 현물출자는 산업은행 5천억원 중소기업은행 5천억원 등 모두 2조19억원으로 국가 예산의 0.8%를 차지한다. 현물출자는 “모든 세입과 세출은 예산에 계상해야 한다”는 예산총계주의의 예외로 인정돼 문제의 소지가 높다.

총액계상사업 : 예산 집행의 비밀주의

2009년 각 부처의 특수활동비 예산총액은 8624억원이고, 국가정보원이 4858억원을 사용한다. 대통령 비서실 특수활동비는 115억1천만원이다.

국가재정법 37조 1항은 세부내용을 미리 확정하기 곤란한 사업이면 이를 총액으로 예산에 계상할 수 있다고 했다. 이로써 정부의 자의적 운용을 허용했다. 총액계상사업의 범위와 규모를 줄여야 한다. 국민연금기금, 공무원연금기금 등 각종 기금에 대한 국고의 무단유출과 사용도 문제다. 조세감면제도는 ‘숨은 보조금’이라고 불리운다. 조세감면은 조세특례제한법으로 법적 통제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법으로 조세감면 조치가 이루어지더라도 감면 액수는 의회의 의결대상이 아니다.


위 표를 봐도 한국의 현행 결산제도는 메이지헌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일본제국주의의 잔재가 한국에서 여전히 살아 있는 증거다.

바라보기 7 재정학 측면에서 보는 미국의 재정민주주의

‘비대화된 관료기구를 껴안고 있는 중과세형 복지국가와 그에 대한 중산계급의 반란’으로 실행된 신자유주의적 개혁안인 레이건의 개혁은 기본적으로 실패했다. 이 개혁이 생존권의 침해를 불러와 저소득층의 반란과 미국의 해체에 기초를 제공했다. 또다른 신자유주의자 클락의 구상은 전국적으로 ‘복지의 비용부담’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비영리 조직을 만들어 소비자가 선택하게 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재정민주주의도 국민에 의한 예산의 통제와 평가를 강조한다. 미국의 재정적자의 원인은 재정민주주의 때문이 아니라 관료제의 거대화와 신자유주의 질서를 강조한 레이건식의 ‘작은 정부’에서 기인한다. 결국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는 실패했다. 부자 감세와 중산층이나 서민들에 대한 중과세는 국가를 위험에 빠뜨렸다. 때문에 관료제의 병폐를 견제하고 시민의 직접 참여에 의한 복지의 실현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 운용권을 지방자치단체와 비영리단체에 분산하고, 정당한 평가와 예산배분이 따르는 예산제도를 생각해야 한다. 결국 재정민주주의를 위한 길은 시민들의 직접민주주의, 지방자치와 분권, 인권의 사법적 보장이다.

8장. 재정민주주의의 길, 직접, 자치, 인권

재정민주주의는 왕권에 대항해 시민이 쟁취한 재정권을 근거로 한다. 국왕은 순순히 재정권을 시민에게 양도한 게 아니다. 시민이 수많은 피와 땀을 흘려서 국왕으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때문에 현대 민주주의에서 재정에 대한 독점 권력(성역)은 있을 수 없다.

나라의 예산을 집행하는 데에도 주권자인 국민은 거의 모두가 수동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재정 입헌주의가 실제로 기능하는 나라들인 영국 미국 프랑스 등에서는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가 재정을 민주적으로 통제한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도 두 번에 걸친 세계전쟁과 동서냉전의 경험으로 행정권이 비대화나 군부나 관료의 영향력이 증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재정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시키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미 재정권력을 쥔 집단이 너무 강력하다. 국민이 직접 재정권을 장악할 순 없다. 현실적으로 전면적 직접민주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1997년 12월 구제금융 이전에도 재정민주주의를 주창하는 학자들은 한국 재정의 비민주성을 경고했다. 한국은 재정의 민주화와 재정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재정권력이 폭주해 구제금융을 받았다. 앞에서 실핀 대로 IMF 이후 한국에선 어느 정도는 국회의 재정통제를 강화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재정민주화는 험난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조세에 대한 직접 민주주의

지자체가 조례로 정하는 세금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조세법률에 대해 국민의 직접 간여할 가능성은 국가보다 지방에서 훨씬 더 많다.

현행 지자체법 15조는 조례개폐청구권을 인정한다. 그러나 15조 1항 단서 2호에서 ‘지방세, 사용료, 수수료, 부담금의 부과 징수 또는 감면에 관한 사항을 청구대상에서 뺐다. 그러면 안 된다. 이는 재정에 대한 주민의 통제, 즉 재정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지자체법 15조 1항에서 금지한 주민의 세조례개폐청구권도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낚시 밥에 지나지 않는 보조금제도를 거부하고 지방정부는 독자로 재원을 조달해야 한다. 국세도 거부할 강력한 주민의 지지가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아래에서부터 재정민주주의를 쟁탈하는 것이고 현재적 의미에서 볼 때 지방분권화의 국제적 흐름이다.

예산 작성과정의 공개

예산 작성과정에 국민이나 주민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 행정부는 예산내용을 슬쩍 흘려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국민의 여론을 몰고 있다. 국가재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하는 건 전문성 등으로 인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2005년 8월4일 지방재정법은 39조에서 지방예산편성과정에 주민참여를 인정하도록 전면개정 도입돼 한국도 ‘주민참여예산제도’의 길을 열었다.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와 울산 동구청이 사례다.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의 주민참여예산제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 주민참여예산제는 다음과 같다. 지역별, 의제별 주민총회가 있는데 총회는 3, 4월에 연다. 모든 사람이 참가하지만 투표권은 주민만 있다. 포럼에 파견할 대의원을 20명당 1명꼴로 뽑는다. 5, 6월엔 대의원 포럼이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실제 예산을 운영하는 예산평의회도 있다. 평의회는 매주 1회 열고 주로 시 재정을 점검하고 예산안을 구체화 하고 최종 확정한다.

노동자당에 의한 민주화의 일환으로 포르토 알레그레 시는 이런 주민참여예산제도를 1989년 처음 도입했다. 2003년엔 무려 200개 도시로 늘었다. 세계은행은 브라질의 주민참여예산제도를 정부와 시민사회의 가장 모범적인 협력 모델로 인정했다. 2000년 주민창여예산제를 도입한 브라질 140개 지자체 가운데 노동자당 주도가 73곳, 우익정당 주도가 63곳으로 이념적 차이도 없어졌다.

울산 동구의 주민참여예산제도

공개 모집한 일반시민 50명, 동별 남녀 대표 20명, 시민단체 등 단체 추천 30명 등 총원 100명인 시민위원회를 구성한다. 위원들은 예산편성 단계별로 참가하는데 1차로 지역회의와 분과위원회에서 예산에 대한 의견수렴을 한다. 2차로 분과위원회와 협의회의 예산심의조정단계에서 예산사업의 추가, 순위 결정, 총괄 심의한다. 8개 분과위원가 있고, 협의회는 구청장 등 구청대표 5명과 시민위원회 8개 분과위원장으로 구성한다. 민주노동당 소속 구청장이 당선돼 2004년 6월 조례를 공포하고 9월9일 규칙을 공포해 제도화했다. 광주 북구도 있다.

울산의 제도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현행법상 예산편성권은 단체장의 고유권한이다. 때문에 단체장은 예산편성에서 주민이 참여하는 절차를 만들 순 있지만 울산 동구처럼 예산편성의 최종권한을 총회가 갖도록 하는 게 타당한가 논란이 분분하다. 그러나 형식적으로 단체장이 최종승인하면 문제될 건 없다. 결국 운영의 묘다.

한국의 주민참여예산제도의 주체는 주민이 아니다. 주민은 단체장이 주도하는 공청회, 간담회, 온라인 설문, 사업공무, 의견수렴의 대상으로 참여한다. 수렴한 의견의 반영도 단체장이 전적으로 결정한다. 진정한 재정민주주의는 결코 위에서 주어지지 않는다.

예산신고포상제를 활성할 필요가 있다. 신고가 들어오면 제3의 기관이 충분한 조사를 할 수 있다. 재정민주주의를 위한 직접민주주의와 지방자치제도에서 주민참여예산제, 예산신고포상제는 한국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세조례개폐청구권은 현행 법으론 불가능하기 때문에 법을 개정하는 게 절실하다. 마지막으로 재판을 통한 납세자 권리의 확보로 세조례 개폐청구권, 나아가 조세법개폐청구권의 길도 있다.

세금폭탄을 막았던 헌재 결정의 역설

2008년 11월13일 헌재는 구 종합부동산세법 판결(헌재 2008.11.13 선고 2006헌바112)로 조세법률주의에 대한 아주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판결 직후 강만수 재정부 장관 등 정부는 환영했고 국민 대다수는 분노했다.

그러나 이 판결은 재정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다. 헌재는 조세법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고 결정했다. 이 판결로 과세에 대한 주민소송의 길이 열렸다. 역설적이게도 구 종합부동산세법에 대한 헌재 판결은 우리 국민에게 조세법률주의에 대한 납세자소송의 모범을 보여준다.

헌재는 두 원칙을 들어 지금까지의 헌재 견해를 뒤집었다. ‘비례의 원칙과 납세자 평등’이다. 헌재는 ‘비례의 원칙’은 판결문에 직접 언급했다. 그러나 ‘납세자의 평등’은 다음과 같이 우회적으로 말했다. “일률적 또는 무차별적으로 그것도 재산세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율인 누진세율을 적용해 결과적으로 다액의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는 것이므로 입법 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정책수단의 범위를 넘어 과도하게 주택 보유자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피해의 최소성 및 법익 균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

이처럼 헌재는 일률적 또는 무차별적으로 평등하게 누진세를 적용하는 것은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고 봤다. 이는 납세자의 권리를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비례의 원칙은 대포로 참세를 쏘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직도 헌재에 의한 납세자의 권리의 불인정은 유효하다. 그러나 부자를 위한 구 종합부동산세의 위헌판결의 논리는 곧 부메랑이 돼 일반 국민을 위한 납세자의 권리가 돼 돌아올 여지도 충분하다.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위법한 공공지출 등으로 납세자의 권리가 침해되면 국가의 예산지출의 위법성을 묻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입법화해야 한다.

바로보기 8 재정민주주의와 납세자 소송

구 종합부동산에 대한 헌재 위헌판결은 납세자 소송의 돌파구를 열었다. 납세자소송은 말 그대로 공무원이나 공적 기관의 부정 또는 불법의 재정집행에 납세자인 국민이 직접 제기하는 소송이다. 따라서 납세자 소송은 재정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최종 수단이다. 재정이 위법 부정한 형태로 지출되면 당연히 사법적 구제가 가능해야지 재정민주주의를 충분히 보장한다.

실제 한국의 지자체는 지방자치법 17조에서 납세자소송이라고 불리는 ‘주민소송’의 길이 있다. 그러나 몇 가지 이유 때문에 한국의 주민소송은 활성화되지 않고 법원도 거의 인정한 적이 없다. 과실 입증을 소송 당사자인 주민이 직접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방재정 뿐만 아니라 국가재정도 납세자 소송을 인정해야 한다. 납세자소송은 미국에서 발달한 제도다.

판결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환경문제가 심각하지만 실제로 판례에서는 환경권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다. 조만간 판례가 점차 환경권 확대인정으로 돌아설 것이다.

9장 재정민주주의 현황과 과제

우리는 구제금융의 비극에서 충분한 반성과 성찰도 없이 아직도 재정에서 일제 식민지시대의 잔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국민을 무시한 조세법률주의요, 예산비법률주의다. 재정엔 성역이 없어야 하는데도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 등은 비리의 원인이 되고 있다. 국민은 세금만 내면 된다는 식이다. 한국의 현재 상황은 일본제국주의의 메이지헌법을 그대로 답습하는 꼴이다.

심지어 현재 일본도 전후 헌법의 재정조항의 많은 부분에서 메이지헌법의 잔재를 말끔히 삭제했다. 그런데 한국헌법의 재정조항은 아직도 준예산제(54조)나 계속비와 예비비(55조), 국회의 예산추가나 삭제금지(57조) 등으로 메이지헌법의 독소 조항을 그대로 안고 있다.

예산은 메이지헌법의 예산비법률주의를 고집하고, 경제는 미국의 자본주의를 따르고 있다. 머리는 일본제국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 옷은 미국의 청바지를 입고 있다. 한국의 재정민주주의는 아직도 식민지의 망령이 지배하고 있다.
지도층이란 사람들은 세금을 될 수 있으면 적게 내고 예산은 될 수 있으면 펑펑 쓴다. 부동산 ‘다운 계약서’나 쌀 직불금 불법수령 등이 대표사례다.

재정민주주의의 과제

현행헌법의 개정으로 메이지 헌법의 잔재를 말끔히 없애는 게 우선이다. 다음으론 국회법 국가재정법 지방자치법 지방재정법 등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 회계감사기능을 국회에 설치하든지 예산위원회나 결산위원회를 상설화하는 등의 제도개선도 필요하다.

사법부도 국민의 감사권을 인정하면 정부의 재정행정에 부담을 준다는 식의 국가주의적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납세자의 권리와 납세자 소송을 인정해야 한다. 재정은 반드시 시민의 감시와 관여가 필요하다. 공무원노조도 재정에 대한 감시활동을 선언했다. 모든 시민과 시민단체가 공무원노조나 공공기관노조와 손잡고 적극 직접 재정에 참여해야 한다.

재정은 북한에 대한 경제원조를 하고 북한 주민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측면도 있다. 정권의 입맛대로 대북 관련 사업비를 책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 다수의 뜻에 따라 북한 지원 예산을 운영한다면 북한 경제의 발전을 통해 결국 통일을 앞당겨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다.

국가는 재정으로 국제원조나 국제투자, 국제기구에 적극 참여해 영향력을 높인다. 그러나 군부독재국가에 재정원조 하는 것은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 이는 결국에는 한국 제품에 대한 마이너스 이미지로 되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민과 주민의 재정주권을 쟁취하는 날까지 싸워서 이겨야 한다. 재정민주주의는 결코 위에서 내려주는 선물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아래서부터 쟁취한 승리의 증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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