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가 한겨레쯤에 허접 글이나 쓰는 것들이 정희성을 알리오

[낡은책] 저문강에 삽을 씻고 (정희성, 창비, 1978.11.25, 105쪽)

나이 오십의 운동권 선배들이 술 한잔 들어가면 넋두리처럼 부르는 노래.
‘너를 부르마, 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
‘잘 탄다, 진아, 너를 태운 불길로’


너를 부르마, 진달래 같은 노래쯤은 30대 운동권도 들어서 안다. 내공 깊은 선배들은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부른다. “삽자루에 맡길 한 생애가”쯤 오면 눈을 아예 감고 부른다. 이 모든 노래를 쓴 사람이 시인 정희성이다.

시인은 자기 문학인생을 ‘말 줄이기 훈련’으로 요약한다. 1974년 첫 시집 <답청(踏靑)> 이후 10년에 한 권씩 드물게 시집을 냈다. 시인은 2008년 육십이 넘어 낸 겨우 다섯 번째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박봉을 털어 <시인>지를 낸다는 이도윤이 옆에 와서 시 두 편만 달라는데 그것도 안 주느냐고 성화다. 시 두 편이면 내 일년 농사라고 그거 털어주면 나는 거지라고.” 곳곳에서 ‘말 어렵게 하기 시합’하는 요즘 시인과는 사뭇 다르다. 제 어미 얘기가 아니면 한 줄도 쓸 수 없는 젊은 김선우 시인 같은 이가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 시집과 소설로 번 돈으로 미국 유학가서 한겨레신문쯤에 허접스런 글이나 쓰는 요새 것들이 어떻게 알리오.

시인은 1945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대전 이리 여수에서 자랐다. 1964년 서울 용산고를 나와 같은 해 서울대 국문과에 들어갔다. 한겨레신문에 있던 김종철이 과 동기다. 1968년 졸업 뒤 군에 갔다. 제대 말년인 1970년 초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변신’으로 당선돼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그 뒤 35년 동안 국어선생으로 2007년 서울 숭문고에서 정년퇴임했다. 제대 후 대학원에 들어가 규장각에 파묻혀 고대소설에 미쳤다. 그러나 교수의 길을 버리고 교사로 남겠다고 했을 때 속물들은 충격을 받았다.

시인이 1978년에 낸 시집 <저문강에 삽을 씻고>는 청년 정희성이 썼지만 이념의 과잉 따위는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시인이 투사의 기질을 버린 것도 아니다. 시인은 지금도 한미 FTA나 대운하 등 현안을 서스럼없이 비판한다. 다만 평이한 시어와 구체적 이미지로 말할 뿐이다.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되었을까요’는 <저문강에 삽을 씻고>에서 최고의 시다. ‘똥물 투척’으로 더 유명한 동일방직은 수출 500만 달러의 성과를 올리는 동안 여성노동자들의 일당은 70원. 최저 생계비의 절반도 안 되는 급여였다. ‘어머니 그 사슴은~’은 19살의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를 화자로 내세웠다. ‘똥물 투척’ 사건 직후 한 여성노동자가 7살 때 어머니 손을 잡고 처음으로 봤던 창경원의 ‘사슴’에 기대어 죽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어머니가 죽어 고향을 떠난 아버지는 매일 술에 취했고, 오빠를 가르친답시고 논밭을 다 팔았다. 그러나 오빠는 월남전에서 죽었다. 여성은 옛날 어머니의 거친 손처럼 변한 제 손으로 비단을 짠다.

“노엽고 분했어요. 오늘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뒤 실컷 울고 싶어서 여길(창경원) 왔어요.” “우리는 먹을 만큼은 받아야 일할 수 있다고 말했을 뿐예요. 굶으면서 쓰러지고 또 일어서 싸우면서.” “우리에게 똥을 퍼부엇으요. 우리는 끌려갔지요.” “함께 일하던 순이. 산너머 먹골에 살던 그애를. 미쳐버렸어요. 그애가 미쳐버렸어요.” 결코 어렵지도 않다. 꾸미지도 않는다. 정희성은 손을 거치면 이렇게 쉬운 단어가 모두 훌륭한 시로 태어났다.

<저문강~>에 나오는 또 다른 노동시 ‘들리는 말로는’ 역시 정희성답다. 이 시는 부산 사하구 괴정동이 무대다. 70년대 항구도시 부산의 여성노동자의 삶을 그린다. “시골서 올라와 이 막벌이판에서 보세공장 실밥마냥 떠돌면서” 살았던 여성노동자. “보세공장 실밥마냥 소문단 떠돌고” 있다. “파업을 선동하다 끌려갔다고 하고, 설렁탕집 식모로 갔다고 하고, 자갈치 시장 어디 술집에서 몸을 팔고 있다거니, 애비모를 새끼를 배어 선창에서 비를 맞고 섰다고 하고, 끝내는 바다에 몸을 던져 모든 걸 깨끗이 끝내버렸다고 하고 ~”

‘들리는 말로는’에 나오는 여성노동자의 얘기는 슬프다. 그러나 시인은 슬픔만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애가 언젠가는 기어코 저 힘센 바다를 뒤집쓰고 당당히 당당히 걸어나올 거라”는 노동의 희망으로 끝낸다. 관조하는 듯 거리를 두면서도 어느 순간 세상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는 정희성 특유의 유연함이다. 그래서 정희성의 시는 현실을 맵게 비판하지만 동시에 아름답다. 시인은 70.80년대 저항시인을 거치면서 80년 지식인 선언으로 연행되기도 했다.

2008년 예순을 넘기고 낸 시집 <돌아다보면 문득>도 한결같다. 40년 후에도 여전히 거칠지만 거칠음의 대상이 바뀐 김지하나 거칠었다가 유순하게 변절한 양성우는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꾸준함이 정희성의 최대 장점이다.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이라고 외치는 ‘시인본색’은 그 자체로 완벽한 해학이다.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되었을까요.

어머니, 기억하세요?
그 슬픈 사슴의 이야기를
그때 전 일곱이었어요
처음으로 어머니 손을 잡고
창경원을 구경하던 그날
모든 것이 신기했어요
우리도 서울서 살자고
떼를 쓰다 맞던 일도
어머니, 저는 다 알아요
어머니의 거친 손을.
속도 없이 저는 울기만 했고
그리고 모든 것을 잊었었지요
곰의 얼굴도 사자의 얼굴도
가엾은 사슴의 얘기도 잊었었지요
어머니도 저도 농사 일에 바빠
다 잊었지요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됐을까요?
기억하세요? 그때 전 일곱이었어요

어머니, 모든 것이 달라졌네요
저 새도 원숭이도
새끼를 낳다 죽었다는 검은 곰도
우리가 보던 것이 아니예요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됐을까요?
제 나이 벌써 열 아홉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우리는 고향을 떠났지요
아버니는 매일같이 술에 취하셨고
그 정신에도 오빠를 가르친답시고
논밭은 다 팔아 날리고
어머니, 그런데 오빠는 여기 없어요
월남이라는 나라에서 죽었어요
오빠가 왜 남의 나라 싸움터에서
죽어야 했는지 저는 몰라요
분이야, 오빠 나갈 때까지만
아버님 모시고 고생하거라 하던
그 편지가 마지막일 줄도
저는 몰랐어요 제가 왜
남의 집 식모살이를 가야 했는지
어머니, 그 사슴은 어찌 됐을까요?
“나는 돌을 먹을 수 없어요” 하던
그 사슴을, 기억하세요? 전 일곱이었어요

기억하세요? 어머니
그 뿔이 잘린 꽃사슴을.
누가 저 뿔을 잘랐을까 하고
저는 물었지요
그때 전 일곱이었어요
지금은 너무나 변했어요
사슴도 곰도 옛날 것은 아니고
벌쩌 저는 열 아홉인걸요
이 손으로 비단을 짜는 걸요
그러나 어머니, 제 손을 보면
그 옛날 어머니의 거친 손이 생각나요
논바닥처럼 갈라진 어머니의 손이.
왜 왈칵 눈물이 솟는지
일한다는 게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노엽고 분했어요
오늘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뒤
실컷 울고 싶어서 여길 왔어요
저 짐승들은 제 맘을 알 거라고
저는 생각했어요
우리는 먹을 만큼은 받아야
일할 수 있다고 말했을 뿐예요
공장측과 싸웠어요
며칠이고 며칠이고 굶으면서
쓰러지고 또 일어서 싸우면서.

어머니, 그리고 우리는 당했어요
이거나 먹으라고, 배고프면 이거나 먹으라고
그들은 우리에게 똥을 퍼부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끌려갔지요
믿을 수 없어요 어머니,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지.
아실 거예요 함께 일하던 순이
산너머 먹골에 살던 그애를.
미쳐버렸어요 그애가 미쳐버렸어요
모든 것이 많이 달라졌어요
어머니, 누가 그 사슴의 뿔을 잘라 갔을까요?
기억하세요? 전 일곱이었어요
사슴도 예 사슴은 아니고
사람도 옛 사람은 아니예요
짐승 우리 앞에는 팻말이 붙어 있지요
“우리는 돌을 먹지 않아요”라고,
누군가 저 가엾은 사슴에게
돌을 던지나 봐요 어머니
그것을 먹으라고.
모든 것이 옛날과 달라졌어요
이대로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어요
기억하세요? 어머니
그때 전 일곱이었어요
그러나 언제까지나 일곱은 아니예요 <1978.미발표>


저문 강에 삽을 씻고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1978.문학사상>


쥐불

쥐야 쥐야
씨나락은 먹지 마라
공출내고 남은 곡식
우리 양주 양식이다
논팔아 가르친 놈
눈만 뜨면 받들어 총
봇짐싸 서울 간 년
밤만 되면 보지총
이통저통 북새통에
남은 건 껍데기 <일부, 1977.문학과지성>


들리는 말로는

서구 괴정동 바닥에 밤이 오면
저 파도소리도 이젠 무서워
시골서 올라와 이 막벌이판에서
보세공장 실밥마냥 떠돌면서
일당 450원에 살자고 하는 짓이
몸이나 성한가, 아침은 자주 굶고
저녁엔 돌아와 국수로 때우고

어쩌다 쌀을 팔아 밥을 지어도
먹새가 좋은 애는 그래도 허기져
가게엔 잔뜩 빚만 지고
끝내는 어디로 꺼져 버리고
서구 괴정도 바닥엔
끈끈한 바닷바람에 몰려
보세공장 실밥마냥 소문만 떠돌고

들리는 말로는 그애가
파업을 선동하다 끌려갔다고 하고
또 말에는, 실컷 배나 채운다고
무슨 설농탕집 식모로 갔다 하고
자갈치시장 어디 술집에서
창녀가 되어 몸을 팔고 있다거니
애비 모를 새끼를 배어 선창에서
비를 맞고 섰는 걸 보았다거니 하고
끝내는 바다에 몸을 던져
모든 걸 깨끗이 끝내버렸다고도 하고
그러길 잘했다고도 하고

들리는 말로는 또, 아직도 그애가 괴정동바닥
어느 구석에 실밥처럼 내려앉아
밤마다 저 해숫병 앓는 파도소리로
뒤척이고 있을 거라 하고
그러다 물거품처럼 꺼져버릴 거라고도 하지만
어떤 이는 또, 그애가 언젠가는
기어코 저 힘센 바다를 뒤집쓰고
당당히 당당히 걸어나올 거라고도 하고 <1977.창비>


진달래

잘 탄다, 진아
불 가운데 서늘히 누워
너는 타고
너를 태운 불길이
진달래 핀다
너는 죽고
죽어서 마침내 살아 있는
이 산천
사랑으로 타고
함성으로 타고
마침내 마침내 탈 것으로 탄다
네 죽음은 천지에
때아닌 봄을 몰고 와
너를 묻은 흙가슴에
진달래 탄다
잘 탄다, 진아
너를 보면 불현듯 내 가슴
석유 먹은 진달래 탄다 <1975.창비>


너를 부르마

너를 부르마
불러서 그리우면 사랑이라 하마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아도
내 가장 가까운 곳
나와 함께 숨쉬는
공기여
시궁창에도 버림받은 하늘에도
쓰러진 너를 일으켜서
나는 숨을 쉬고 싶다
내 여기 살아야 하므로
이 땅이 나를 버려도
공기여, 새삼스레 나는 네 이름을 부른다
내가 그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이름을 부른 뒤에도
그 이름을 잘못 불러도 변함없는 너를
자유여 <1975.창비>


불망기

내 조국은 식민지
일찍이 이방인이 지배하던 땅에 태어나
지금은 옛 전우가 다스리는 나라
나는 주인이 아니다 <첫부분, 1974.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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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 저문강에 삽을 씻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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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욱낀다

    참, 거 말 한 번 이상하게 하네요.
    "제 어미 얘기가 아니면 한 줄도 쓸 수 없는 젊은 김선우 시인 같은 이가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다."라니요?
    그러는 민주노총 미비실장 이정호 씨는 "어미"나 여성 이야기라도 '제대로' 해 본 적 있나요? 제가 "김선우 시인 같은 이"도 "한겨레신문쯤" 같은 것도 옹호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시 비평도 아닌 이 따위 "허접스런" 글을 쓰면서 님의 "어미"가 아닌, 남의 "어미 이야기"를 함부로 말하는 것 같아 보기조차 민망하네요. "요새 것들"의 "어미"나 "어미 이야기"는 님처럼 함부로 얘기해도 상관없나 봐요?
    그리고 정희성 시인의 "평이한 시어와 구체적 이미지"를 과도하게 옹호하려다 보니 그런 것 같은데, 물론 저 또한 노동하거나 하지 않거나 못하거나 하는 자들의 평이하고 솔직한 글을 좋아하지만, 자칫 그런 평이함은 진부함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많기도 하다는 점 님도 모르진 않을 거라 생각해요. 오히려 님이 언급한 정희성의 시 <들리는 말로는>이 "노동의 희망으로" 끝낸다며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제겐 그런 희망 같은 것들이 너무도 진부하기 짝이 없게 보입니다. 그런 진부함은 이미 님이 말하는 "희망"이 현실과 너무도 동떨어져 추상화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오히려 제가 읽기에 이 시는 제목처럼 "들리는 말로는"과 "~라고 하고"(혹은 "~다고 하고")가 더 중요하게 보입니다. 다시 말해, 님의 말씀처럼 시인은 "노동의 희망으로" 끝낸 게 아니라, 그런 희망도 "들리는 말" 중 하나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들리는 말"들은 누가 하는 말일까요? 혹시 님은 "요샛 것들이" 들려주는 말들은 듣지 않는 건 아닌가요? 아니면 들리지 않는 건지. 그렇다면 민주노총 미비실장인 이정호 씨는 70, 80년대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건가요? 많은 사람들이 민주노총에 하고 있고 하고 싶어 하는 말이 있는데, "들리는 말로는", "민주노총, 그 사슴은 어찌 됐을까요? 기억하세요?" 쯤 될 것 같은데요. 님이 그걸 "어떻게 알리오"? =3=3=3

  • 세월이 흐르면서 각 세대들은 저마다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정희성 시인의 삶이 토해낸 시편들이 그의 정서를 담고 있다면 김선우 시인의 삶은 또 그의 시로 표현되는 것이지요. 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거늘.. 참 "젊은" 글을 쓰셨군요. 휘지 않는 잣대를 들이대시고.(그리고 김선우 시인의 시를 다 읽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비단 어머니에만 매달려서 시를 쓴 가벼운 이는 아니었거든요.) 제가 알기론 죽은 이마냥 반응없는 시인들 사이에서도 김선우 시인은 활발하게 활동하고 제 목소리 날카롭게 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분 나빠져서 한마디 쓰고 가야겠네요. 좋은 시인은 독자들이 알아서 판단합니다. 무지한 시인들도 다 알아보고요. 굳이 실명까지 거론하면서 '깔' 필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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