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2008년 촛불을 본다

[새책]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세르지오 볼로냐, 윤영광 역)

좋은 글은 논쟁을 유발하는 글이라는 전제에 동의할 때 자율주의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의 저서들을 둘러싼 논의들을 상기하면 그의 글은 좋은 글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000년 네그리가 마이클 하트와 공저한 <제국>은 서구 학계뿐만 아니라 국내 지식인 사회에서도 제국이냐 제국주의냐 논쟁을 불붙이면서 가히 ‘제국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지만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서 네그리를 주목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다소 추상적이고, 제한적이었던 제국 논쟁과 달리 2008년 촛불집회에서 전통사회세력(노조, 운동권 대학생 등)과는 상이한 참여주체들인 소위 ‘유모차 부대’, ‘배운 녀자’, ‘촛불소녀’로 상징되는 여성과 ‘2.0세대’인 중고등학생들의 출현을 설명하기 위하여 네그리의 다중(multitude) 개념이 지식인과 언론을 통해 회자되면서부터였다.

한국사회에 자율주의를 꾸준히 소개해온 출판사 갈무리는 지금까지 자율주의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의 책들을 주로 소개해왔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자율주의자들의 제국 논의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제국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번역출간 한데 이어 이번에는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를 국내에 소개하였다. 일단 자율주의자 조정환의 그림자가 짙은 갈무리의 방향이 자율주의에 대한 일방적 지지보다는 논쟁의 파이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행보다.

이번 역서는 이탈리아에서 네그리와 함께 저항운동을 하고, 지적 영향을 주고 받았던 네그리의 동료들이 중심이 되어, 그간 <제국> 논쟁에서 네그리를 비판한 좌파들이 간과했던 부분들을 보완하고 있다. 특히, 그의 저서들 중에서 유독 <제국>이란 책 한 권에 논쟁이 쏠리면서 네그리가 활동한 1970년대 이탈리아의 시공간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맹점을 당대 네그리와 함께 운동했었던 동료들이 필자로 나서면서 네그리의 이론과 실천을 밀착하여 논한다는 점에서 네그리 사상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오해의 폭을 좁히는 시도를 하였다.

책의 구성은 1부와 2부로 구성된다. 1부는 3개의 장이 있고, 1장은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이론가로서 그리고 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던 네그리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학생들이 새로운 사회운동 주체로 부각되는 데 주목하면서, 전통산업노동자와 노조 그리고 당의 역할에 비판적인 태도에 대하여 세르지오 볼로냐가 비판한다. 2장에서는 자율주의 운동에서의 젠더적 역할을 고찰하는 알리사 델 레의 인터뷰가 실렸고, 3장에서는 자율주의 운동 분파들 간의 당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일련의 논쟁들을 소개하고 있다.

1부에서 네그리의 과거를 보았다면, 2부에서 필자들은 자율주의의 핵심개념인 노동거부(4장), 일반지성과 비물질운동(5장), 구성권력(6장)에 대한 비판적 해석과 발전적 제안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당면한 과제인 금융자본주의(7장)의 포섭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를 다루면서 현재와 미래의 네그리를 마주하게 된다.

아마도 서평자와 마찬가지로 독자들도 본서를 읽는다면 1970년대 이탈리아의 시공간에서 2000년대 촛불의 한국사회가 겹쳐짐을 경험할 것이다. 촛불집회에서의 새로운 참여주제들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참여주체들과 전통사회세력은 어떻게 연대를 해야 하는가 그리고 직접민주주의냐 대의민주주의냐는 논쟁들은 마치 1970년대 이탈리아에서 데자뷰처럼 마주치게 된다.

사실, 서평자는 2008년 촛불집회에서 출현한 새로운 참여주체들을 다중으로 간주하고, 전통사회운동세력을 부정적으로 보는 일련의 좌파들의 입장에 비판적인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나의 논리는 이탈리아 운동의 역사적 맥락이 거세된 자율주의자들의 개념과 이론에 한정하여 비판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취약성은 이탈리아 운동의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려보다는 다중이라는 개념을 한국사회에 성급하게 적용하기에 바빴던 좌파 지식인들의 논리에서도 취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러한 일련의 공백에 대하여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떠오른 것은 조정환을 비롯한 자율주의자들의 촛불에 대한 다소 과찬에 가까운 평가와 다중 개념을 촛불집회에 기계적으로 끼워 맞추는 식의 한계를 넘어서, 2008년 촛불집회라는 렌즈를 통해서 1970년대 이탈리아 사회운동을 소개, 분석하는 책을 저술한다면 촛불집회 논의가 보다 생산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의 출간은 앞으로 갈무리의 행보에 더욱 기대감을 부여한다.

“무력한 좌파 정통성에 대한 타협이나 거부를 선언함으로써가 아니라 네그리의 흥미롭고 도발적인 작업이 보여주는 전반적인 운동과 공명함으로써-그것을 연장하고, 확장하고, 다른 위치로 가져가고, 재가공하고, 강화함으로써-‘현재의 상황을 폐지하는 실재적 운동’에 동참하고 노력하고 있으며…”(<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 서문, 19쪽).

어떻게 보면 고작 한줌의 좌파들 간에도 미묘한 입장과 해석의 차이로 으르렁거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러한 논쟁을 통하여 자율주의를 “연장하고, 확장하고, 다른 위치로 가져가고, 재가공하고, 강화함으로써” 현 정세를 돌파하는 실재적 운동으로 나아가지 못할 법은 없다고 본다. 앞으로도 보다 논쟁을 유발하는 서적들이 갈무리에서 소개되길 기대해본다.

* 이제 모든 것을 다시 발명해야 한다
(세르지오 볼로냐 저, 윤영광 역, 갈무리, 2010.09.29,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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