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샘추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에서 혜자 씨네 가족 집을 잃다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46)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김혜자 씨 가족이 사는 천막 강제철거

“여러분들이 보기에는 하찮은 천막일지도 모릅니다. 여름에는 더워서 한낮에는 들어갈 수도 없고, 겨울에는 물을 놔두면 꽁꽁 얼어붙는 그런 곳입니다. 그 공간에서 아이들과 함께 6년의 세월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 공무원들이 이 천막이 도로법 위반이라고, 불법적재물이라고 철거하겠다고 합니다.”

  김혜자씨 식구가 사는 천막

3월 10일, 오후 1시 20분.

김혜자(고양시 행신동세입자투쟁위원회 위원장) 씨가 천막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 앞에는 고양시 공무원 20여 명이 확성기와 소화기 등을 들고, 김혜자 씨 네 식구가 사는 천막 철거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천막 뒤에 있는 SK뷰 3차 아파트 302동 자리는 8년 전 김혜자 씨 가족이 세입자로 살았던 곳이다. 처음에 전세로 살다가 샀다가 IMF때 경매로 넘어가면서 월세로 살던 곳이다. 김혜자 씨는 그때의 자신을 “아이들과 집에서 살림만 하던 평범한 아줌마”였다고 이야기한다.

2003년부터 이 아파트(시행사 대명종합건설, 시공사 SK건설)를 짓는다는 명분으로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이 하나둘씩 쫓겨나기 시작했다. 시행사인 대명종합건설은 중간 컨설팅사를 내세워 일대일로 가옥주들에게 접근하여 땅을 사들였고, 이것을 다시 대명종합건설에 되파는 형식으로 이곳의 원주민들을 내쫓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250여 세대 세입자들은 아무 대책 없이 쫓겨나야 했다. 대명종합건설은 사업 승인이 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철거를 진행하면서 주민들을 겁주었다.

60세대의 세입자들은 대책위를 만들어 자신들의 생존권 요구를 하였으나 돌아온 것은 강제철거와 용역깡패의 폭력, 연행, 구속, 벌금이었다. 고양시민의 생존권을 위해 노력해야할 고양시(당시 강현석 한나라당 시장)는 이를 외면하고, 인허가권과 준공권을 내주었다. 결국 9년째 투쟁을 하는 2011년 현재는 김혜자 씨 한 가족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김혜자씨 네는 부부가 동시에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공가와 컨테이너 봉고차량을 전전하다가 어렵게 마련한 천막을 1년 전 이맘 때 강제철거 당해 비닐을 덮고 인도에서 생활하다가 지난해 6월에 다시 친 천막을 지금 또다시 강제철거 하겠다고 고양시 공무원들이 나와 있는 것이다. 현재, 김혜자 씨 부부와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이 되는 아들 세 식구가 생활하고 있고, 학교 때문에 타지에 나가있는 딸이 가끔씩 다니러 오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6조

천막 부근에는 www.goyang.go.kr 이라고 고양시 인터넷 홈페이지 주소가 적혀있는 고양시 버스가 정차해있다. 20분이 지나자 20여 명의 공무원들이 더 나타난다.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업무지시를 한다. 소방차가 오고, 소방관이 소방호수를 연결한다. 그 앞에서 또 누군가는 소음 측정을 한다. 잠시 후, 앞에는 ‘단속’ 뒤에는 ‘가로정비’가 써 있는 남색 조끼를 입은 용역들 수십 명이 와서 대기한다. 나는 처음에 ‘단속’을 ‘단결’로 잘못 읽고 ‘어느 노동조합에서 연대를 왔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시행사인 'SK View'로고가 박힌 점퍼를 입은 이도 천막 앞을 지나간다.

  강제철거 직전 천막 앞에서 김혜자씨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대한민국 헌법 제16조를 읽어드리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6조 모든 국민은 주거의 자유를 침해받지 아니한다.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을 할 때에는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택시노동해방연대 김선기 씨가 마이크를 잡고 헌법 조문을 낭독한다.

지난해 9월, 최성 현 고양시 시장은 이들 철거민들과의 면담 자리에서 본인 입으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철거를 유보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강제철거를 하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며 김혜자 위원장이 분노한다. 또, 그녀는 “자기 임기 때 한 일 아니라고 책임 안 지려는 오세훈 시장과 역시 자기 임기 때 발생한 일이 아니라고 책임 안 지려는 최성 시장이 뭐가 다르냐?”며 울분을 토로한다. 최근, 고양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서울시가 고양시에 설치해온 시립묘지, 납골당, 화장장, 쓰레기 처리시설 등 ‘불법 기피시설’ 문제로 서울시와 갈등을 겪고 있다. 서울시의 무책임한 태도에 고양시는 지난 1월, 불법 시설물에 대한 고발과 이행강제금 부과, 60개 시설에 대한 행정대집행 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김혜자 씨는 “최성 시장이 지난 2010년 지방선거 당시, 고양 시민사회단체인 ‘고양 무지개연대’의 중재로 야당 단일후보로 선출되어 시장이 된 사람이라 문제가 해결될 거란 기대도 가졌었는데, 정말 실망스럽다.”고 했다. 최근, 고양시, 대명종합건설 측과 이들 철거민들 간의 협의가 진행되어 철거민들이 일정정도 양보하여 협의에 진전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대명종합건설 측의 무책임한 태도로 논의가 중단된 상태에서 고양시가 무리하게 천막 철거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도로법 제40조에 의하여 행정대집행을 하겠습니다. 자진철거 할 시간 10분을 드릴테니 자진철거 하기 바랍니다.”

“개발보다 사람이 먼저다!”

2시 10분, 유종국 고양시 덕양구청 도시미관과장이 경고방송을 하자 연대온 이들이 야유를 보낸다. 행신동 철거민의 천막 강제철거 소식을 듣고 10여 명이 조금 넘는 이들이 달려왔는데, 강제철거를 하기 위해 온 공무원과 용역들은 100명이 훨씬 넘는다. 영상, 사진 촬영을 위해 동원한 카메라만도 5~6대는 족히 되어 보인다.

어떤 공무집행

“처음 투쟁 시작할 때 초등학생이었던 막내아들 ○○이는 지난 3월 2일 고등학교 입학식을 했습니다. 큰 딸 ○○이는 시집을 가서 지난 구정 무렵에 아이를 낳았고, 둘째 딸 ○○이는 대학교 2학년이 되었습니다.”

세투위 위원장님이 할머니가 되었다는 노점노동자 임채희 씨의 이야기에 연대동지들이 웃으을 흘리려는 찰나.

“10분이 지났습니다. 강제철거를 시작하겠습니다.”

  천막을 철거 중인 고양시 공무원과 용역들

100여 명의 공무원과 용역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천막 입구를 지키고 서있던 김혜자 위원장을 끌어낸다. 방금 전까지 김혜자 씨와 연대온 학생 한 명과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정겨운 대화를 나누었던 그 작은 천막이 순식간에 지붕과 벽이 도려내지고 기둥이 무너져 만신창이가 된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집 철거하면서 공무집행 한다고? 이게 공무집행이냐? 할 일이 없어 이 짓을 하냐!“

“이모, 조금만 기다려. 5분이면 끝나.”

용역 ‘대장’쯤으로 보이는 이가 여성 용역들에게 붙잡혀 절규하는 김혜자 씨에게 얘기한다.


용역들은 플라스틱 서랍장, 조리도구, 아들 졸업식 꽃과 교복, 천막 밑에 깔아두었던 파레트와 스티로폴까지 다 실어갔다. 포크레인으로 남은 물건들을 쓸어담으려고 하다가 연대동지들의 항의로 시간이 지연되자 공무원과 용역들이 직접 벽돌을 비롯한 남은 물건과 쓰레기 등을 담아간다. 20여 분 만에 농성장은 완전 철거가 된다. 잠시 후, 다시 포크레인이 들어오더니 천막이 있던 자리에 공사를 시작하려 한다. 천막이 있던 이 자리만 공사가 안 된 공간으로 고양시는 이날 공사까지 완료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다 해갖고 온 듯 했다. 현장에 있던 연대동지들이 필사적으로 저항을 해보지만, 열배가 넘는 인원을 당할 수는 없었다.


“두두두두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콘크리트가 부서지고, 바닥에 세워져있던 기둥들이 떨어져나간다. 꽃샘추위라고 해서 겨울 스웨터를 입고 나왔다가 쏟아지는 햇살을 보며 후회를 하기도 했는데, 강제철거 중에 볕이 사라지니 제법 쌀쌀하다. 김혜자 씨는 경황이 없어 아이 옷도 제대로 못 챙겨두었다고 한다. 누군가 고맙게도 밥통과 커피포트를 챙겨두었다. 기륭분회 오석순 조합원이 수저와 젓가락 한 벌을 내민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왔다 한다.

“그래도 밥은 먹고 살라고 숟가락이랑 젓가락은 남겨뒀나 보네.”


나중에 고발하라고 하세요

“여보세요! 시장님, 저 지금 행신동에 나와 있습니다. 시장님도 다 알고 계신 걸로 압니다. 이렇게 하시면 안 되죠. 지금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고 있어요. 이렇게 강제철거를 하시면 어떡합니까. 일단 멈춰주세요.”

3시경, 철거 현장에 도착한 최재연 경기도의원이 최성 시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하고, 철거작업을 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작업 중단을 요구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김혜자 씨는 어느새 포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다.

  고양시 공무원에게 항의하는 최재연 의원

“의원님, 이건 구청 업무에요. 이건 우리가 시에다 보고만 하면 되는 겁니다.”

유종국 도시미관과장과 노상경비계장이라는 사람이 최재연 의원에게 항변을 한다. 유종국 도시미관과장은 자신이 구청장을 대신해서 일하고 있는 거라면서 증명서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참을 옥신각신 하다가 최의원이 정구상 덕양구청장에게 전화를 시도한다.

“자리에 안계시면 어딘 계신대요? 핸드폰도 안 갖고 다니세요?”

정구상 덕양구청장은 전화를 걸면 자리에 없거나 회의 중이라고 했단다.

“의원님! 이 많은 사람들이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원님 한분이 지금 몇 백 만원을 잡고 있는 거라구요. 현실성을 생각해보세요.”

“문제가 있으면 나중에 경찰에 고발하라고 하세요. 도의원님, 그러시는 게 아니에요. 우린 고양시 직원이에요.”


구청직원들이 항의를 한다. 인근 상가에서 일한다는 사람들은 “우리가 피해를 많이 보고 있다. 이걸 도의원님이 왜 중재를 하는 건지 얘기를 들어보겠다.”며 항의를 하고 가기도 했다. 최의원 측은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 중에 있는데, 강제철거를 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끌어내!”

급기야 구청 직원과 용역들이 최재연 의원과 항의하는 연대동지들을 에워싸고, 끌어낼 준비를 한다. 두 시간 가까이 실갱이가 계속된다. 농성장에 차량을 세워놓고 가려는 것을 한 대는 못 막고, 한 대는 몸싸움과 연대온 학생 한 명이 차 밑에 들어가 막아내고서야 공무원과 용역들이 해산한다.



사람의 관점이 없는 것이 문제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시설이 낙후하여 철거와 개발 하는 것을 재개발이라고 한다. 또, 주변 시설은 좋은데 건물이 낡았을 때 하는 것을 재건축이라고 하는데, 행신동의 경우 재건축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세입자에 대한 대책 규정이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2천 년대 이후 이러한 조건을 건설자본이 악용하여 일반 주거지역에 재개발이 아닌 재건축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 경우 동네를 개발하지 않기 때문에 공익 성격이 없다하여 개발법이 아닌 주택을 짓고 개조하는 것에 관한 주택법 적용을 받고 있다.

이원호 사무국장은 “주택법은 건물을 짓고 개조하는 것에 관한 법이라 사람의 관점에서 쓰지 않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을 한다. 이어서 그는 “하지만 고양시가 주민에 대한 책임의식만 있다면 임대주택 공급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주택법에 의거하여 무주택.저소득층으로 임대아파트 혹은 매입임대, 전세임대 등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관할 공공기관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김혜자 씨의 남편 김철규 씨는 “주택법 제3조와 제7조에서 주거복지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저소득자·무주택자에게 주택 지원을 하도록 되어있다. 그런데도 고양시는 문제 해결은 하지 않고 강제철거를 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불법파견 확정 판결이 나도 문제 해결을 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면서 세입자 철거민 문제는 법을 초월한 투쟁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김혜자 씨 가족이 요구하는 것은 주택문제 해결과 지난 9년 동안 발생한 피해보상, 그리고 민형사상 문제 해결이다.

  고양시청

오후 5시 40분경, 강제철거에 항의하기 위해 대책위와 연대동지들이 고양시청에 도착했다. 시청 입구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셔터가 내려오고 있었다. 문은 이미 안에서 잠궈 놓은 상태였다. 민원 업무 차 방문한 시민들도, 중국음식점 배달 노동자도 발길을 돌린다.

“이후 우리는 최성 시장 당신을 만나기 위해 당신의 집을 찾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우리는 끝까지 투쟁할 것입니다.”

김혜자 씨의 마지막 발언과 구호로 길었던 하루 일정이 마무리된다. 저녁이 되니 기온이 내려가고, 바람까지 불어 제법 춥다.

시청 입구 간판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 고양’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그 옆에는 손을 잡고 어딘가를 향해 가는 가족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오늘 밤, 혜자 씨네 가족은 어디로 가야 하나?
태그

강제철거 , 행신동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연정(르뽀작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