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은 어떻게 도입되었을까?

[낡은책] 한국의 임금(배무기, 박세일, 박덕제, 문학과지성사, 1985.6)

이 책은 배무기, 박세일, 박덕제 등 80년대 초반 ‘노동자 임금’을 연구했던 연구자들의 논문을 모았다. 이 책을 낸 출판사는 ‘문학과지성사’다. 한국 문학권력의 한 축을 담당했던 ‘문지’가 이런 책도 냈다.

배무기 교수는 96년 노개위 때 활약한 인물이다. 박세일은 지난 17대 때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지금도 한나라당과 뉴라이트 진영의 이데올로그로 활동 중이다. 박세일은 이 책에선 ‘임금격차’를 주로 다룬다. 박덕제는 방통대 교수로 오래 활동하면서 80년대 초 ‘최저임금제’ 도입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박 교수는 김대중 정권 이후엔 파업 만능주의에 젖은 민주노조운동 진영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금은 이명박 정부의 규제개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배무기 교수는 아래 글에서 한국의 광범위한 저임금 노동자층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배 교수는 저임금 노동자 양산의 원인을 무려 8가지로 들어, 80년대 초반 한국사회가 저임금에 기반해 국부(國富)를 형성해왔다는 사실을 설명한다.

박세일 교수의 글 ‘임금격차’에서 주목할 점은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다. 당시 통계로는 10인 미만 사업장은 잡히지도 않았다. 10인 이상 전체 노동자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500인 이상 대기업이 105로 가장 높은데 반해 가장 낮은 10-29인 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은 98로 양자간 큰 차이가 없다. 당시 남여 임금 격차가 126 : 56, 대졸과 중졸 이하의 임금 격차가 225 : 71로 매우 큰 것과 비교하면 사실상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는 거의 없다.

30년이 지난 지금 성별, 학력별 임금 격차는 줄어든 반면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는 터무니없이 커졌다. 기업규모별 임금격차의 확대는 사회적으로 어떤 명분도 가질 수 없다. 누가 이런 격차를 만들어냈는지 진지하게 되돌아보고 고찰해야 한다.

박덕제 교수는 최저임금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운영방식을 소개했다. 최근 박재완 노동부장관이 “최저임금이 지나치게 올라 수출경쟁력을 악화시킨다”고 했던 발언을 기억하시는 분은 박덕제 교수의 이 논문을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란다. 지금은 이명박 정권에 줄을 섰지만 당시 박 교수는 이런 박재완 류의 주장을 “잘못된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아래는 3명 연구자의 논문을 차례대로 요약했다.

한국의 임금 수준 - 배무기

아래 <제 7 표>는 1983, 84년 3월 현재 10인 이상 종업원을 가진 사업체에 총 노동자 299만 명의 조사결과다.


한국의 임금 노동자는 생계비나 평균임금 수준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을 받는 노동자의 비중이 높다. 저임금 노동자 비율이 높은 이유는?

첫째 1인당 부가가치 생산성이 아직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둘째 높은 임금격차가 저임금의 한 요인이다. 셋째 기업이 타인 자본 의존율이 높아 부채 비율이 높고, 이 때문에 부가가치 중 금융비용(이자 지불)이 많이 든다. 금융비용은 68년 10.1%, 70년 26.9%, 80년 28.7%, 83년 19.3%였다. 넷째 노동력의 만성 공급과잉 때문이다. 75년까지는 무제한 노동공급 상태였다. 다섯째 기업 소유와 경영구조도 한 요인이다. 한국 기업이 대부분 개인 내지 가족 소유라서 축적한 부를 사내 유보하고 있다. 여섯째 노사관계의 불균형과 단체교섭의 부진 때문이다. 일곱째 정부의 임금정책 미비다. 여덟째 농업정책의 실패와 저곡가 정책도 한 요인이다.


위 표를 보고 배무기 교수는 “장기적으로 볼 때 실질임금의 상승율은 물적 노동생산성 상승율과 같아진다”고 수리경제학에 입각해 서술했다. 그러나 이는 이론일 뿐 실제와 맞지 않다. 배 교수 스스로 1960년부터 1983년까지 24년이란 긴 시간의 실질임금과 노동생산성의 격차를 위 표에서 정리하지 않았던가.

다시 배 교수는 수리경제학으로 돌아와 “이 둘을 연결하는 게 ‘생산성 임금제’다. 그러나 위 표에서 보면 실질임금 상승율은 물적 노동생산성 상승율보다 상당히 낮다”고 지적했다. 농업과 중소 영세서비스업 등의 매우 낮은 노동생산성 상승율에 주목한 점은 지금의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


뒤에서 최저임금제도를 다루겠지만 나는(배무기) 여러 가지 최저임금 결정방식 가운데 최저임금심의회(위원회) 방식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그것은 위원회에서 노/사/공익 3측 대표가 만나 업종별 지역별로 약간 차등을 두는 최저임금 제도를 실시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은 업종별 지역별로 임금의 격차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배 교수는 당시 최저임금 결정을 업종별, 지역별로 달리하자고 주장했지만 이는 30년 전의 통계를 근거로 한 생각이다.

한국의 임금 격차 - 박세일


박세일 교수의 이 논문을 이해하는 데는 위 표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30년 전 한국의 임금격차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하면 많은 차이점이 보인다. 특히 학력별 임금격차는 대졸과 중졸 이하 양극단이 225 : 71로 3배 이상 차이를 보인다. 당시 중졸은 현재의 고졸과 비슷하다고 추정할 경우 3배 이상의 격차는 지금보다 훨씬 심각했다.

이처럼 학력별 임금격차는 지난 30년 동안 소폭 감소해왔다. 이는 87년 이후 생산직 노동자들의 노조설립과 투쟁의 결과다. 126 : 56으로 매우 컸던 남여 성별 임금격차도 현재엔 다소 완화됐다.

문제는 기업규모별 임금격차다. 1982년 당시 최대치와 최소치가 105 : 98로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 규모별 임금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최저임금제 - 박덕제 방통대 교수

근로기준법 34조는 “노동부장관은 필요에 의하여 일정한 사업 또는 직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를 위하여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해 최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제도는 여태 마련하지 않고 있다.

다만 70년대 노동청이 행정지도를 위한 최저한도의 임금수준을 정하고, 기업에 행정지도를 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도 불규칙적으로 이런 행정지도(예컨데 10만원 미만 임금의 개선지도)를 하는 경우가 있으나 법적 뒷받침은 없다. (배무기 외, <한국 임금의 정책과제와 제도개선 연구> 서울대 경제연구소, 1983, p325)

ILO는 “최저임금 제도 창설에 관한 조약”(제26호 조약, 1928년) 등의 기본협약과 수차의 권고를 바탕으로 최저임금제 보급에 힘써왔다. 80년 1월 현재 ILO 26호 조약을 비준한 나라, 즉 ILO가 인정하는 수준의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 국가는 94개국에 달한다.

선진국의 최저임금제 도입 역사

최저임금제는 84년 뉴질랜드의 <산업조정중재법>이 처음이다. 이 법은 당시 해운 노동자의 파업을 계기로 지나치게 낮은 임금에 공적 규제를 가해 산업평화를 유지하려는 목적이었다. 1896년 호주의 빅토리아주도 최저임금제를 실시했다. 영국은 1909년 레이스 제조 등 몇몇 저임금 업종에 최임제도를 도입한 <임금위원회법>을 제정했다. 미국도 매사추세츠주의 최임 법제화, 프랑스의 <가내 노동법> 제정 등을 거쳐 주요 선진국에 확산됐다.

대규모 파업에 따라 국가는 노사관계를 방임할 수 없었고 국가적 조정중재위원회에 의한 최저임금제의 실시는 이런 사회적 관계의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혁명적 분위기와 노동운동의 격화를 무마하기 위해 국가는 개량주의적 노조가 요구하던 산업별 협약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노동협약령>(1918년),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하의 <단체협약법>(1936년) 등이 전형이다.

2차 대전 후 선진국 노동자는 “전국, 전산업에 일률 적용하는 최저임금제 도입”을 국가에 요구한다. 이런 요구에 따라 등장한 최저임금제로 가장 전형이 프랑스의 전직종 보장 최저임금제(SMIG)다. 이 제도는 1950년에 제정한 단체협약법에 근거했다. 초기에 최고 20%의 지역별 격차를 인정하고 점차 줄여 1968년 6월부터 지역 격차를 없앴다. 프랑스는 농업을 제외한 전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최저임금의 결정 방식 : 위원회, 노동재판소, 산별협약, 의회

영국의 임금심의회가 대표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잘 알려진 제도다. 노, 사, 공익 3자 대표로 구성한다.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지방에 각각 분리해 산업별 임금심의회를 설치한다. 심의회는 최저임금을 정부에 권고한다. 이 권고가 부당하다면 노동부장관은 의견을 첨부해 재심의를 요청한다.

임금심의회 방식이 정부 역할을 지나치게 수동적이거나 반대로 정부 주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막기 위한 방안으로 고안했다. 노, 사, 공익 3자 대표로 구성하는 노동재판소나 중재위원회를 구성해 그 판결이 법적 효력을 갖도록 하는 제도다. 정부는 위원회의 결정사항을 거부할 수 없고 다만 심의 과정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방식을 채택한 사례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노동재판소 제도를 제외하고는 매우 드물다.

1918년 이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의 최저임금제, 1936년 이래 프랑스 최저임금제가 이런 방식이다. 최저임금 수준을 3자의 개입 없이 노사 단체교섭으로 정한다. 다만 미조직 노동자와 그 사용자에게도 강제 적용한다.

최저임금 수준을 정치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공정노동기준법>에 따른 최임제도가 전형이다. 어떤 방식이라도 최저임금 수준의 결정에 국가가 일방으로 개입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반적으로 노사간 협약이 최저임금 결정의 기초가 된다.

최저임금제와 고용

최저임금제도는 첫째 임금 격차의 축소와 소득분배의 개선, 둘째 기업부문에 비용절감을 위한 생산성 향상과 기술혁신을 촉진하고 셋째 저소득층의 임금 상승으로 이들의 근로의욕을 왕성하게 하고 능률을 향상시킨다.

최저임금제 실시로 물가가 상승하고 제품 수요가 줄어 생산이 위축돼 고용이 줄 것이란 위험이 있다. 특히 임금상승 효과가 가장 클 여성, 연소자 등 미숙련 노동자의 고용이 감소할 가능성이 많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제가 미숙련의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 실업의 고통을 주게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자본 규모, 노동생산성 등이 임금에 미치는 영향만을 고려하고, 거꾸로 임금이 이들 요인에 영향을 주는 측ㅁㄴ은 고려하지 않은 편협한 주장이다.

최저임금제를 둘러싼 박덕제와 박재완의 차이

노동부 82년 직종별 임금실태조사(종업원 10인 이상의 민간기업만 조사)에서 월 평균임금 10만원 미만 노동자가 전체의 18.7%에 달한다. 한국노총 82년 5월 조사에서 1인 노동자 가구의 최저생계비 남자 137,943원, 여자 135,547원에 미달하는 노동자는 남자의 16.8%, 여자의 73.3%로 전체의 37.8%에 달한다.

저임금이 장기간 지속되면 복수가구원의 취업과 무리한 초과근무 등으로 노동공급이 늘어난다. 저임금에 의한 노동공급의 증대는 다시 임금을 압박해 빈곤을 벗어나기 곤란하게 된다. 따라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악순환을 단절하기 위해 최저임금제 도입이 필요하다. 국제적으로 70여 개발도상국을 포함해 90개 나라 이상이 최저임금제를 실시중이다.

최저임금제를 실시하면 물가가 상승해 수출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란 주장은 저임금의 해소로 노동자들의 자발적 근로의욕과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점을 무시한 잘못된 논리에 근거하고 있다. 과거 한국의 임금이 10% 오를 때 소비재 물가는 0.7% 상승하는 데 불과하지만, 소비재 물가의 10% 상승은 임금을 4.4% 인상시키는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정기준, <임금의 국민경제적 효과분석>, 배무기 외, <한국 임금의 정채과제와 제도개선 연구>, 서울대 경제연구소, 1983) 이런 실증 연구에서 임금 인상 → 물가 상승이란 도식적 사고가 잘못임을 잘 알 수 있다.

한국이 최저임금제를 실시하지 않는 건 노사관계가 미성숙해서다. 필자(박덕제)는 한국의 노사관계를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의 최저임금제가 어떤 형태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가야할 것인지 나름의 견해를 제시한다.

첫째 국가는 노동자의 인권 보호를 위한 최저선만을 규제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최저임금의 결정방식은 노사간의 자율 협약을 중시하는 임금심의회(위원회) 방식이나 노동재판소 결정방식이 이상적이다. 산업이 발전한 다음엔 노사 단체협약의 효력확장 방식을 채택할 수 있다.

둘째 노사 교섭을 진행하고 협약을 체결하는 데 노사 대응한 관계를 위해 산업별 노조로 재편하고 사용자단체와 노조와 교섭 협약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셋째 영세 사업장과 가내 노동 등은 전국 일률 최저임금을 중앙 최저임금심의회가 정하고, 이 때 노사 자율로 결정하는 최저임금은 전국 일률 최저임금을 하회할 수 없게 한다.

넷째 대도시, 중소도시, 비도시의 3단계로 격차를 인정할 수 있다. 정부는 결정한 법정 최저임금을 각 사업장이 철저히 지키도록 지도 감독해야 한다.

다섯째 최저임금제 등 노동자 지위향상 제도는 노동운동세력의 끈질긴 요구로만 성취했다. 또 노동운동의 요구로 성취했을 때에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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