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문예운동의 산실 ‘구로 노동자 문학학교’

[낡은책] 노동문학 89년 5월호 (편집장 김영현, 실천문학, 발행인 송기원)

월간 노동문학은 실천문학이 1989년 3월호부터 낸 잡지다. 이 잡지의 편집장은 90년대 초 소설집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를 내놓고, 문단에 논쟁적 화두를 던졌던 김영현이다. 매호 수십 명의 유명인사를 필자로 동원해 잠시 주목받았지만 잡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여기서는 잡지의 3호에 해당하는 1989년 5월호를 소개한다. 그 이유는 현장 탐방기사 가운데 ‘구로 노동자문학학교’ 때문이다. 88년 6월에 문을 연 학교는 현장 노동자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깊게 하고 활동의 폭을 넓히는 역할을 담당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이 지역에서 전략조직화를 진행하는 분들에게 작은 상상력이라도 던져 주었으면 한다.

당시 이 학교에 들어왔던 노동자는 유안진이나 전혜린을 읽고 자살을 생각했다는 수준이지만 지금 우리보다 훨씬 알뜰하게 시대를 살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노동문학의 눈으로 간사 3명으로 대림역 인근에 살림을 차렸던 구로노동자 문학학교를 들어다보자.

구로 노동자 문학학교 : 정재윤 편집기자

대림역에서 내려 5분쯤 걸어서야 ‘구로 노동자 문학학교’가 있다. 건물 3층에 있는 학교의 간사 유시주 씨를 찾았다. 유시주 간사는 “저희 문학학교는 노동자들이 모인 노동자 대중조직”이라고 했다.

회원은 직업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다. 입장도 너무 달라 만나기만 하면 문학논쟁을 벌이는 사람도 있다. 회원들 사이의 이런 저런 생각을 모으고 가르고 하는 일이 ‘학교’의 가장 어려운 문제일 성싶다.

유시주 간사는 “문학 동인을 해본 사람도 있다. 그런 이는 ‘문학을 어떤 정신으로 해야 하는가’ 문제 보다는 ‘문장을 어떻게 하면 잘 다듬는가’하는 기술적인 문제에만 신경을 쓴다. 그러나 우리는 창장 역량을 높이는 방도는 ‘문학정신’을 분명히 함으로써 현실에 뿌리를 내리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학교’는 아직 그런 ‘기술적인 문제’를 가르쳐 주지는 못한다. ‘학교’의 목적은 올바른 문학 정신을 세우는 것,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앞당기는데 기여하고 고통 받는 노동형제들에게 희망을 주고 노동자의 기쁨과 좌절, 고통을 대별하고 투쟁 의지를 북돋우는 문학 정신을 세우는 것”이라고 했다.

학교는 회원제로 운영한다. 처음 생긴 88년 6월부터 89년 2월까지는 회원이 오는 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러다가 89년 3월부터 기별로 나누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제1기 회원 수가 40명쯤이다. 이 가운데 생산직 노동자가 가장 많아 30명쯤 되고 나머지는 사무직 노동자나 우유 배달부 등 다양하다.

회원제로 운영한 현장 문예운동의 산실

고급호텔 식당 요리사나 자동차 정비공도 있다. 대부분 일간신문에 난 기사를 보거나 노동문학 잡지에 실린 광고를 보고 왔다고 한다. 학교가 자체로 만들어 뿌린 유인물이나 포스터를 보고 찾아온 사람은 극히 드물어 2-3명에 불과하다.

그 동안 학교 행사는 유명 작가를 초청한 ‘작가와(의) 대화’와 문학평론가들이 하는 ‘문학 강좌’가 1-2주에 한 번씩 있었고 회원끼리 스스로 쓴 작품을 서로 돌려보고 평가하는 ‘창작 연습교실’ 있었다. 지금은 기별체제로 바뀌어 ‘작가와 대화’가 없어졌고 매주 ‘문학 강좌’가 있고 보름에 한 번씩 ‘창작 연습교실’을 한다. 회원의 요구로 ‘소모임’을 만들어 사회과학공부도 하고 문예 창작 이론 공부도 한다.

간사 3명이 사무실 운영을 맡고 회원 가운데 3명을 뽑아 운영위를 구성해 끌어간다. 대학의 문학박사 과정에 있는 문학전공자들을 ‘연구 간사’로 비상근으로 두고 있다. 88년 말까지 회장으로 있던 김창복씨는 지금은 평회원이다.

최근 창작연습교실에 나온 작품은 ‘우리들은’(양영자 섬유 노동자)은 “오늘도 지친 몸으로 16시간의 곱배기 노동을 서슴없이 해내는 우리들은 자랑스런 산업 역군이다. 임금 인상, 환경 개선,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떠들어 대는 파업 회사의 농성에도 아랑곳없이 졸리운 눈 부벼 뜨며 오늘도 밤낮없이 일만하는 우리는 나무랄 데 없는 민주주의 산업 역군이다”고 썼다.

밤 8시에 열린 젊은 김명인의 문학강좌

기자가 찾은 날은 1주일에 한번씩 열리는 ‘문학 강좌’가 열렸다. 그 날은 ‘노동문학과 서정성’ 주제로 문학평론가 김명인씨 강의했다. 보통은 밤 8시부터 강의를 시작한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미싱사로 4년 일한 서영화씨는 다른 회원과 함께 노래 ‘그 날이 오면’을 열심히 불렀다.

노동자 서영화씨는 기자에게 “전혜린 씨를 좋아해요. 그분이 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는 에세이집을 보고 크게 감명 받았다”고 했다. 평론가 김명인은 강사의 노래로 강의를 시작했다. 김명인씨의 훌륭한 노래 실력에 회원들이 놀랐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그 날이 오면”

두 시간 넘는 강의와 작품평가시간에도 조는 사람이 없었다. 끝난 시각은 11시간였다. 근처에서 뒤풀이했다. 500원씩 모아 소주와 막걸리, 곱창, 과일을 놓고 열띤 문학 논쟁을 벌였다. “지식인들의 시는 민중성이 없다는 최명자씨의 말은 설득력이 있지만 아무래도 부족하다”고 한쪽에서 말했다. 문래동에서 자동차 정비일을 하는 민영환씨는 “유안진이란 여교수가 쓴 에세이를 보고 자살하려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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