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잎클로버 (2)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50)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농성장에서

‘충청도 촌놈들’ 네비도 안 켜고 서울에 오다

“어서 오세유~”
6월 8일 밤. 충정로역 프랑스대사관 앞 금속노조 충남지부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이하 ‘발레오지회’) 농성장 앞. 뭐라도 좀 사가야 하지 않을까싶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간이 천막 앞에 나와 있던 이택호 지회장이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머쓱해하던 나는 얼떨결에 천막 안으로 들어간다. 문화제를 마친 조합원과 연대 동지들이 막걸리에 봉치김치와 두부를 은박지 바닥에 놓고 조촐한 뒤풀이를 하고 있다. 발레오 투쟁에 늘 함께 하는 루시아님과 ‘새로고침’ 이성지 씨, 이세희 씨가 함께 하고 있다. 이 조촐한 뒤풀이는 아마도 조합원들이 연대동지들을 위해 밥값을 모아 마련한 배려의 자리였을 게다.

자리에 앉은 지 몇 분 되지 않아 천둥벙개가 치며 비가 내린다. 모두들 문화제가 끝난 뒤에 다행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날 문화제는 이택호 지회장이 사회를 봤다고 했다. 문화제 참석을 못한 나는 몹시 미안한데, 조합원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이것저것 챙겨준다. 안그래도 머쓱한 나에게 조합원들이 건배 제의를 하기도 한다. 나는 발레오 조합원들이 “우리 일정에 왜 안 오냐?”, “왜 이제 오냐?”는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발레오 조합원들은 본 일정이 끝난 농성장에서든, 다른 사업장과 집회에서든 언제 어디서고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충정로 프랑스대사관 앞 농성장

유성기업 투쟁에 관한 이야기며 주간연속2교대제 이야기, 조합원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발레오 조합원들은 유성기업 용역들이 복귀하는 조합원들에게 “나는 개다”를 복창하게 했다는 이야기에 분노하기도 했다. 형광색 조끼를 입으니 눈에 잘 띈다는 이야기와 함께 지나가는 시민들이 “경주 발레오다”라고 했다며 몸자보에 “천안 발레오” 문구를 넣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생계는 어떻게 하고 계신고 물으니 금속노조에서 나오던 생계비는 기간이 만료가 되었다며, “그냥 버티는 거쥬~”한다. ‘충청도 촌놈’들이 서울에 올 때, 네비게이션도 안 켜고 올만큼 서울 오는 길이 익숙해졌다는 이야기도 나눈다.

프랑스 자본 발레오의 위장폐업에 맞서 정리해고 철회와 공장 정상화를 요구하며 투쟁을 시작한지 어느덧 1년 8개월째에 접어들었다. 프랑스 정부에게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작년 10월에 시작한 프랑스대사관 앞 노숙농성도 어느덧 9달째에 접어들었다. 발레오지회 조합원들은 천안 공장 사수와 노동청 앞 집회 등을 지역에서 진행하고 있고, 프랑스 원정투쟁도 여러 차례 진행했다. 이와 함께 프랑스 대사관 앞 노숙농성과 문화제, 르노삼성자동차 앞 집회 등을 꾸준하게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발레오 천안공장에서 에어컨 컨프레샤를 공급받던 르노삼성자동차가 천안공장 가동 중단 이후 발레오로부터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저가 저품질 제품을 납품받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지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조합원들은 이것이 발레오와 르노자동차의 사전 담합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라며, 르노자동차도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잠시후, 퀵서비스노동조합 김현 조합원이 합류한다. 김현 씨는 발레오지회 서울분회의 조직부장이고, 루시아님은 서울분회장이다. 발레오 조합원들의 상경투쟁 이후, 열심히 연대하는 서울 동지들이 생겨나자 아예 이들을 위해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서울분회’를 만들었다.

  1월19일 발레오공조투쟁승리를위한 2011년 금속노동자 끝장투쟁 선포식

“컵이 구겨졌네유”

발레오공조코리아에서는 2004년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했다. 2조 맞교대에서 3교대로 바꾼 후에 물량과 인원 등을 고려하여 주간연속2교대제를 실시했다. 물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정리해고를 하지 않으면서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는 방법으로 노사 협의 하에 시행한 것이었다. 당시 사측과 협의 하에 인원감축 없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행하면서 노동자들의 안정된 생계 유지를 위해 일정정도의 잔업 수당을 포함한 급여를 받았다고 한다. 발레오는 매달 3.6% 이상 수수료를 가져가고도 흑자를 보던 건실한 회사였고, 최근에 투쟁을 시작한 유성기업지회에서 발레오의 단협을 참고할만큼 발레오지회는 모범적인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타겟이 된 걸까?” 한 조합원이 이야기한다. 발레오지회는 매월 간부들에게 3만원 씩 걷어두었다가 명절 때 지역의 투쟁사업장과 단체 등에 차비라도 하라며 봉투를 주기도 했었다. 막걸리가 떨어지자 이택호 지회장이 막걸리를 사오라며 주섬주섬 5천원을 꺼내자 다른 조합원이 몇 천 원을 더 보태 막걸리 몇 병이 더 들어온다. 잠시 후, 루시아님이 조합원과 나가더니 먹을거리를 사갖고 들어온다. 이택호 지회장이 “왜 돈을 쓰냐?”며 약간의 잔소리를 한다.

“컵이 구겨졌네유. 새 컵 쓰세유~”
앞에 앉았던 조합원이 구겨진 내 컵을 보고는 새 컵으로 바꾸어주려 한다.
“괜찮아요. 제가 손버릇이 나빠서요. 어차피 금방 또 구겨질 거예요.”
그런데 잠시 후, 이택호 지회장이 기어이 구겨진 내 종이컵 밑에 새 컵을 받쳐주고야 만다. 촛불 하나로 밤을 견디는 이 작은 농성장에 앉아 종이컵을 구기고 있는 내가 못마땅하고, 그 구겨진 종이컵 하나에 마음을 쓰는 조합원들의 마음이 아프게 다가온다. 구겨진 종이컵에서 자신들의 삶을 본 것은 아닌가싶기도 했다.

“고마움의 표시죠”

“발레오 투쟁 승리하고 민주노조 사수하자”
다 같이 구호도 한 번 외쳐본다.
“우린 사수 싫어해. 우리 투쟁조는 어버이날 이런 날만 사수를 한다니까.”
“공장이 멈추고, 축구장에서 운동을 안 하니까 잔디의 대부분을 클로버들이 점령을 했다니까.”
“공장 안에 네잎 클로버가 많은데, 왜 투쟁사업장이 된 거죠?”
“네잎클로버를 다 뽑아버려서 그렇게 된 거죠.”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가다가 갑자기 화제가 네잎클로버로 옮겨간다. 세희 씨와 루시아님이 조합원에게 받았다며 네잎 클로버를 보여준다. 네잎 클로버를 선물한 주인공은 이재섭 조합원이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많은 연대를 해준 동생과 누나를 위해서 찾았어요. 고마움의 표시죠. 우리는 해고자니까...” 그는 천안에 있는 공장에서 네잎클로버를 찾았다고 했다. 루시아님은 발레오 동지들이 정말 순수하고, 배려가 깊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조합원들이 꼭 한 번 내려오라고해서 얼마 전에 천안 발레오 공장에 다녀온 이야기를 해준다.

“동지들이 없는 돈을 걷어갖고 15만원을 걷었대. 해멕인다고. 닭도리탕을 해놓고, 과실주 집에서 담근 과실주 다 갖고 오고, 그날 얼마나 먹었는지 몰라. 동지들 중에 어르신이 한 분 계신데, 형수님이 찜닭 해갖고 불렀잖아. 충남지부 동지랑 현대차 비정규직 동지들 오라 그래갖고 같이 먹었는데, 너무 좋더라고. ‘너무 고마워유 고마워유’ 말하는 게 진짜 마음에 와 닿아.”

그렇게 먹고 있는데, 옆에 있던 이재섭 조합원이 갑자기 사라졌단다.

“그래서 ‘어디 갔지?’ 하는데, 좀 이따 와서는 나한테 책을 한권 내미는 거야. 읽던 책인 것 같애. ‘나 책 주는 거야? 고마워요.’ 그랬어. 앞에 있던 동지가 열어보래. 모 있대. 열어봤더니 클로버가 있는 거야. 근데 하나가 아닌 거야. 다섯 갠가 됐던 것 같애. 나랑 세희가 내려간다 그랬으니까 줄려고 나뒀던 거 같더라고. 그게 눌려져 있는 거야. 그날 딴 게 아니라 며칠 된 거 같더라고. 그래갖고 내가 너무 감동받은 거야. ‘나 완전 행운의 여신인데!’ 그랬다니까. 진짜 고마웠어.”

  발레오지회 조합원들이 연대동지들을 천안 공장으로 초대하여 음식 대접을 하는 장면 [출처: 금속노조 충남지부 발레오공조코리아지회]

책에다 뭐라도 써달라고 했더니 이재섭 조합원은 쑥스러워 또 다시 사라졌단다. 언젠가 역시 발레오에 열심히 연대하던 꺄아님이 “이 동지들은 일이십년 이상을 그 곳에서 그 일 밖에 모르고 순박하게 살아온 사람들인데, 어느 날 갑자기 납득할만한 설명도 없이 쫓아내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라고 얘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잖아요”

“이거 받으세요.”

네잎클로버 사진을 열심히 찍고 있으니 한홍수 조합원이 나에게 네잎클로버 하나를 내민다.

“발레오 동지들 행운을 저한테 주시면 어떻게 해요?”
“행운을 나눠드리고 싶어서요. 다른 카메라들과 다르게 연정 씨 카메라는 연약하고 작아보였는데, 그래도 꾸준히 오더라고요. 원래 연정 씨가 갖고 있는 복이 있는데, 그걸 더 도드라지게 해주고 싶어서 드리는 겁니다. 우리의 성의 표현이에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잖아요.”

“글 쓰시는 분이니까 카메라는 작아도 괜찮을 거에요.”
옆에 있던 다른 조합원도 배려 담긴 말을 건넨다. 한홍수 조합원은 자신은 아파도 자신의 다음 세대만큼은 자신과 똑같은 길을 걷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투쟁을 한다고 했다. 문득, 몇 년 전에 코오롱 해고자 동지에게 받았던 네잎클로버가 생각이 났다. 나는 내가 이 네잎클로버를 받으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하다가 포기하고, 감사히 받기로 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3월 14일 ‘화이트데이’ 때도 얼떨결에 왔다가 루시아님, 세희 씨와 함께 사탕 선물을 받고 갔었다. 발레오지회 박상수 사무국장이 슬며시 밖에 나가더니 예쁘게 포장된 사탕 세 개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쑥스럽게 내밀었던 기억이 난다.

  발레오지회 조합원에게 선물 받은 네잎클로버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울었다. 누군가 날 이렇게 따뜻하게 지켜봐주고 있었다는 것이 고마웠고, 그런 따뜻한 시선을 갖고 있는 이들이 억울하게 일자리를 빼앗겨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팠다. 그리고 나는 그이들에게 따뜻한 마음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했음이 미안했다. 네잎클로버를 내가 좋아하는 책 사이에 꽂았다. 그래서일까. 요즘, 나는 뭔가 잘 풀리는 것 같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에는 마음이 편안해졌고, 지지부진하게 진행이 안 되던 일에는 자신감과 속도가 붙었다.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을 하나 사면 음료수 하나를 덤으로 받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이 발레오 동지들 덕분이다. 발레오 동지들이 연대동지들에게 나누어준 행운에 이자를 좀 더 붙인 만큼의 행운, 그것은 온전히 발레오 동지들의 것이며, 그것은 발레오 동지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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