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FRB, 신뢰를 담보로 한 2년 동안의 도박

FRB, “제로금리 2년간 유지”...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선언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예상대로 연방기금금리(FF)를 2013년 중반까지 사실상 제로 금리로 유지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FRB, “2년간 제로금리 유지한다”

FRB는 이날 열린 공개시장위원회 직후 성명을 내고 “지난 6월 개최된 FOMC 회의 이후 수집된 정보는 올들어 지금까지 경제성장세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느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각종 지표에서 노동시장 상황이 최근 몇 개월간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실업률도 높아졌다. 가계의 소비지출은 둔화되고 있으며, 비주거용 건축물에 대한 투자도 여전히 취약해 주택시장도 계속 침체상태”라고 진단했다.

FRB는 “연방기금금리(FF)의 목표범위를 연 0~0.2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며, 경제상황이 이례적으로 낮은 연방기금금리 수준을 최소한 2013년 중반까지 유지하는 것을 정당화시켜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혀 최소한 2년간 더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FRB는 2008년 12월 이후 제로수준(0∼0.25%)의 기준금리를 유지해오고 있다.

한편, 금융자본이 촉구한 새로운 양적완화(QE3)에 대한 언급 없이 “앞으로 물가안정의 범위 내에서 더 강력한 경제회복세를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수단의 범위를 검토할 것”이라는 표현으로 양적완화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저금리 외엔 정책수단 없어

미국의 더블딥 공포와 유로존의 국가채무 위기가 확산되면서 FRB에 대한 정책대응의 요구가 더 커지고 있다. 특히 미 연방정부의 채무상한 논란 과정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재정정책을 쓸 수 없는 상황까지 몰린 것이 확인되면서 FRB의 정책대응이 관심과 주목을 끌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 FRB의 정책대응 폭은 매우 협소하다. 새로운 양적완화 조치와 같은 적극적인 통화공급 정책은 인플레이션 우려와 지난 시기 두 차례 감행된 양적완화 조치의 효과와 한계가 확인된 상황에서 쉽사리 쓸 수 있는 상황이 못된다. 그 외 나머지 수단들은 ‘언발에 오줌누는 격’으로 미봉책도 되지 못한다.

결국 남은 것은 제로 금리를 유지한다는 입장뿐이었다. 제로 금리를 최소한 2년간 계속 유지하겠다는 결정은 시장 금리를 낮게 억제해 투자가에게 위험 자산 구매 욕구를 확대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또한, “필요한 정책수단의 범위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 바와 같이 금융완화 조치에 대해 ‘검토’한다는 입소문만 무성하게 함으로써 경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안심시키는 조치에 제한 될 것이다. 사실상 경제학이라기보다는 심리학에 더 치중한 대응이다.

FRB, 신뢰를 담보로 한 도박

하지만 FRB의 2년 동안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도 그나마 매우 불확실하다. 우선 인플레이션이 문제다.

FOMC 성명에서 “에너지 및 일부 상품의 가격이 현재까지 고가에서 떨어지게 되어 인플레는 완만하게 되었다. 장기적인 인플레 기대는 계속해서 안정되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에너지 제품 가격 상승에 의한 영향이 약해지면서 인플레이션은 향후 몇 분기 동안 FOMC의 관리책임에 적합한 수준, 또는 그것을 밑도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다만, FOMC는 계속해서 인플레이션 추이 및 인플레이션 기대를 주의 깊게 지켜볼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즉, 인플레이션이 FRB의 관리 가능한 범위내에 있고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는 안정적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FRB의 기대와 달리 미국의 인플레이션률은 현재 많은 지표가 FRB의 목표인 2%를 웃돌고 있다. 올해 2분기 미국의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은 연 3.1%로 변동이 큰 식료품, 에너지를 제외하더라도 2.1%로 이미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FRB가 새로운 금융완화책을 구사하게 되면 시중에 더 많은 돈이 풀리게 되어 인플레이션이 가중될 우려가 있다.

또한,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던 2008년 미국 금융위기 당시와는 현재 상황이 매우 다르다. 당시에는 주택담보에서 문제가 생긴 서브프라임의 부실에서 출발한 위기로, 투자은행 부실로까지 확산되자 전반적인 자산 디플레가 심각히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양적완화와 공적자금 투입으로 시중에 돈이 넘쳐 나고 있다. 게다가 지금의 위기는 일반적인 유동성 위기도 아닌 국가 채무의 위기를 겪고 있다.

따라서 FRB의 기대와 달리 인플레이션 우려는 상존하는 상태로 볼 수 있다. 만약 1년 후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넘어 4% 수준으로 확대된다면 FRB에 대한 정책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지고만다. 그런 상태에서도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을 생각을 안하고 약속대로 초저금리를 유지한다면 물가는 더 치솟게 될 것이다.

결국 2년동안 제로 금리를 유지하겠다는 선언은 FRB가 최근 위기에 대해 새로운 대응에 나서지 않은 것만이 아니라, FRB의 신뢰를 담보로 한 일종의 도박과 같은 것이다. 이에 대한 판단은 FRB내부에서도 의견이 매우 심하게 갈리고 있다. 의장을 포함한 10명의 FOMC위원 중 3명의 위원이 이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 같은 반대표는 무려 20여년 전인 1992년 11월 FOMC회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한편, 제로금리의 유지는 미국이 일본과 같은 장기불황을 감수하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FOMC에서 밝힌 것은 사실상 미국 경기전망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것과 미국의 경기회복이 “FOMC가 예측했던 속도보다 상당히 느린”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결국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정책을 강조한 것도 미국의 경기 침체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자평에 다름 아니다.

때문에 최소 2년간 제로금리 유지선언은 최소 2년간 미국 경기회복이 매우 더디거나 악화될 것이라는 입장으로도 해석이 가능해진다.

손을 놓아 버린 FRB, 누가 흑기사로 나서나

미 연준의 2년간 제로금리 유지 선언에 각국의 주식시장은 이를 반기며 주식이 반등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러나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 종가보다 2.01달러(2.5%) 떨어진 배럴당 79.30달러로 거래를 마감했다. 금값은 계속해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시장은 여전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며, 하나하나의 판단에 따라 요동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번 FOMC의 성명은 연준이 ‘현재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자인하면서도 현재의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인데, 그만큼 정책 여지가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번엔 과연 누가 흑기사로 나서 이 위기를 수습해 나갈 것인가가 문제다. 미 행정부 역시 채무위기에 발목이 잡히면서 경기부양책은 커녕 앞으로 2년간 빚 갚는 데에 치중할 것으로 보인다. 유로존과 일본도 상황이 더하면 더했지 녹녹치 않다. G7의 정책공조선언도 신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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