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꿈: 제4차 희망버스 (1)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51) 평범한 일상이 소원이 되고, 당연한 일들이 기적이 되는 세상

우리 스스로 길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저희들의 결혼 피로연장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살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주춧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4차 희망버스 만민공동회가 진행되는 8월 27일 저녁 청계광장. 이날 춘천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희망버스에 참석하기 위해 올라온 부부가 있었다. 어린이도서관 일과 농사일을 한다는 이들 부부는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이 진행되고 있는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4차 희망버스에 참석한 신혼부부

“뽀뽀해! 뽀뽀해!”
희망버스에 참석한 시민들의 짓궂은 요구에 신혼부부가 수줍은 미소로 응답하고 무대를 내려간다. 일본 나까마유니온 조합원들도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엊그제 부산에 내려가 한진중공업 앞 크레인에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고, 집회 참석도 하고 왔다고 했다. 한진중공업 투쟁이 희망버스라는 일반시민들이 참여하는 운동 형태로 이루어지는 모습은 일본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일본에 돌아가 희망버스 같은 운동을 해나가고 싶다고 한다.

  4차 희망버스에 참여한 나까마유니온 조합원들

“저희들이 한번 웃겨드리려고 집 앞 공원에서 준비했습니다. 저희는 싸움을 신나게 할 겁니다.”
옷을 맞춰 입고, 선글라스까지 준비하고 무대에 오른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 회원들은 신나는 댄스 공연으로 참석자들의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한진중공업 가대위 회원들의 댄스공연

3시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만민공동회는 “긴 말은 필요 없다”는 제목과는 달리 말은 길어지고, 다소 지루하기도 하고, 산만하기도 했다. 청계광장 주변을 경찰과 차벽이 막고 있어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그 안에 갇혀있는 형국이다. 공간은 좁고, 경찰의 방해로 음향 설치가 제대로 되지 않아 무대가 보이지 않고 소리가 안 들리는 곳이 많았다. 앞자리에 있었지만, 소리가 울려서인지 발언자들의 이야기가 또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3차 희망버스의 평가를 반영한 것인지 정당 대표들의 발언은 배치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 위 일정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졌다. 그 즈음, 희망버스 기획단 활동가가 단상에 올라갔다.


“우리는 왜 서울 이 자리에 모였습니까? 첫 번째는 정리해고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가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이고 사회적 고통이며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이 문제들을 이젠 이명박 대통령이 해결하라고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리의 의지를 보이기 위해 모인 것 입니다. 하지만 검찰은 대책회의에서 이를 엄단하겠다고 했고, 우리를 청계광장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스스로 길을 열어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깔깔깔 웃으면서 가야합니다. 이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스스로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일 아침 인왕산에서 깔갈깔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독립문 공원으로 가기로 하겠습니다. 망설이지 맙시다! 우리 스스로 길을 엽시다! 독립문공원으로 갑시다! 지금 행진으로 들어가겠습니다!”

희망버스 승객들이 이동하기 시작한다. 청계광장 주변을 경찰이 막고 있어 참가자들은 청계광장 밑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간다. 다시 위로 나오려고 하는 순간, 경찰들이 방패로 막는다.

“사람이 떨어졌잖아요!”
누군가 소리친다.
한동안의 몸싸움 끝에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도로로 쏟아져 나온다.

“와~”
“정리해고 철회하라! 이명박은 물러나라!”
“오른쪽으로 가면 모 나오지?”
“뛰어!”
“경찰이다. 뛰어!”
“스톱! 멈춰! 멈춰!”
“이명박은 물러가라 훌라훌라~”


참가자들은 롯데백화점을 거쳐 시청 쪽으로 행진을 한다. 이동 중에 경찰이 나오면 바로 방향을 튼다. 경찰이 막자 지하도로 내려가는 시민들도 있다.

노동자가 대우받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골목에 갇히는 거 아냐?”
“이 길이 아닌가벼.”
“지금 제식훈련 하냐?”
“원래 민주노총이 주최해야 하는 거 아냐?”

불만 섞인 목소리들도 들려온다.

밤 11시, 숭례문을 지나 염천교를 거쳐 경찰청 앞에 도착했다.
“조연호 경찰청장이 있는 곳 입니다. 잠시 앉았다 가겠습니다. 경찰청을 향해서 우리의 분노를 표시하고 가겠습니다. 조연호는 물러가라!”
“와아~~~”

30분후, 서대문역에 도착하자 방송차가 도착한다. 명동에 있던 시민들이 합류하고 있다.
“여러분은 지금 불법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해산하십시오.”
어김없이 경찰 측의 경고방송도 흘러나온다. 방송차 위에 오른 한진중공업 노동자가 청문회에서 전 국민을 우롱했던 조남호를 비판하고, 그를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영남대 의료원 해고노동자도 한진중공업 노동자, 그리고 비정규직노동자들과 함께 하겠다는 결의를 밝힌다.


만민공동회 중에 김진숙 지도위원은 전화 연결을 통해 85호크레인 사수대를 하고 있는 박성호 조합원의 아들인 열다섯 살 슬옹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나는 통화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아 나중에서야 자세한 편지 내용을 접했다.

슬옹아, 난 네 아빠가 다시 공장에 들어가 기름때 묻히며 작업복에 소금꽃 허옇게 피우며 일하는 걸 꼭 다시 보고 싶다. 그 꿈을 지켜주겠다고 여길 올라왔는데 이젠 네 아빠가 날 지켜주기 위해 여길 올라와 있구나. 다음주 개학해서 학교로 돌아가더라도 네 마음은 저 길 건너편 네가 온종일 앉아 크레인을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아빠를 지켜보고 있겠지. 그런 너에게 공부 열심히 하란 말을 나는 할 수가 없구나. 니가 좀 더 자라 내가 니 애비를 만났던 나이쯤 되면 꼭 대학에 안가더라도 노동자가 대우받는 그런 세상이면 좋겠다. 비정규직이라고 설움 받고 차별받는 이런 세상이 아니면 좋겠다.
슬옹아, 아빠랑 목욕 가는 게 소원이라던 슬옹아. 그 평범한 일상이 소원이 돼버린 슬옹아. 이번 추선엔 부디 그 소원이 이루어져서 아빠랑 같이 목욕가고 할머니 산소에 같이 갈 수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박슬옹 파이팅!


이 편지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은 2차 희망버스 때 쏟아지는 물대포를 피하다가 엄마와 누나를 잃어버리고, 엄마와 누나가 연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비겁함 때문에 부끄러워 했다는 슬옹에게 “비겁한건 니가 아니라 자신의 탐욕을 위해 니 애비를 짜른 재벌이다. 부끄러운 건 니가 아니라 애비는 크레인에 올라와 있고, 엄마와 누나는 잡혀가고 열다섯 살 너를 길바닥에 혼자 남겨뒀던 부당한 권력”이라며 위로한다. 크레인의 계절은 어느새 늦가을이라고 했다. 4계절을 다 살게 됐다고 했다. 암흑천지이던 크레인에 부분적이나마 전기가 들어왔고, 그 전날에는 책이 올라왔다고 했다. 그녀는 이를 두고 “그 당연한 일들이 기적이 되는 곳, 85호 크레인입니다”라고 표현했다. 평범한 일상이 소원이 돼버리고, 당연한 일들이 기적이 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새로운 기적을 만들 것이다. 경찰청을 떠나려고 하는데, 문자메시지가 하나 와있다.
“[버스] 12시까지 독립문사거리 집결요망. 한여름밤의 꿈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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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 , 김진숙 , 희망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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