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이의 발걸음이 함께 사는 세상이다

[발가락이 쓴다](13) 재능교육에서 쌍용차까지, 뚜벅이 마지막 날

지난밤 유성기업 앞 인도, 얼음장 같은 바닥에 드러누워 바닥에 드러누운 희망 뚜벅이들은 추위에 밤잠을 설쳤다. 밤에는 자고 싶다, 우리는 올빼미가 아니다라고 외친 유성기업 노동자의 현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발걸음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콩나물국밥을 먹으니 얼었던 몸이 사르르 녹인다.

길은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했던가. 길이 있기에 사람이 가는게 아니라 사람이 걷기에 그곳이 길이 된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뚜벅이의 발걸음도 마찬가지다. 희망이 있기에 걸은 것이 아니라 걷다보니 그곳에서 희망의 새싹이 움튼 것이다. 뚜벅이에 참가한 이들은 열사흘 간의 함께 딛는 발걸음을 맞추며 홀로 있을 때 절망처럼 어두웠던 현실이 함께 걸으며 희망의 빛을 찾을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출처: 오도엽]

열사흘 간 걸으며 깨우쳤다. 걷는 것보다 힘든 일이 자신의 보폭을 버리는 일이라는 걸. 자신의 보폭이 아닌 ‘서로’의 보폭을 만들어가며 걷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하지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뚜벅이들은 어느새 자신의 보폭을 버리고 서로의 보폭이 자신의 발걸음이 되어 걷는다. 서로의 보폭이란 다름 아닌 가장 느린 이의 보폭이다. 느린 이의 보폭으로 함께 걷는 세상이 바로 아름다운 세상이다. 빠름을 버리고, 지름길을 마다하고 둘러둘러 혜화동 재능교육에서 평택 쌍용자동차까지 걸은 희망 뚜벅이의 실천이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을 만들었다.

[출처: 오도엽]

유성기업을 출발한 희망 뚜벅이들은 10km를 걸어 평택에 도착했다. 첫 방문지는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정장선 국회의원 사무실 앞이다. 이곳에서 두더지굴 같은 일인용 천막에 비닐을 덮고 111일째 농성 중이다. 정장선 의원은 쌍용자동차 77일 농성 당시 ‘노사 대타협’ 중재단으로 활동했다. 그 대타협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무급휴직자의 복직 약속은 아무런 변명도 없이 이행되지 않고 있다. 쌍용자동차 정규직 노동자의 정리해고가 있기 전 이미 천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소리 소문 없이 공장을 떠나야 했다. 농성장에 도착한 뚜벅이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대접하는 쌍용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서맹섭은 그 가슴은 시커멓게 타버렸겠지만 얼굴은 환한 웃음을 띄며 뚜벅이들을 맞이한다.

이제 평택역이다. 12시 45분. 이곳에서 점심을 먹은 뚜벅이들은 평택 시내를 돌며 선전전을 벌이고 오후 3시 금속노조 주최의 집회에 참여할 예정이다.

[출처: 오도엽]

뚜벅이의 그림자가 되어 이들의 마음을 발바닥 심장으로 품고 기록하겠다는 내 임무도 마감을 한다. 평택역에 도착하니 벌써 기자들이 서성거린다. 금속노조 집회가 시작되면 지금껏 보지 못했던 ‘위원장님’ ‘의원님’들도 올 것이다. 부디 희망 뚜벅이의 발자국소리를 무대 위에서 연설을 하며 듣지 말고 가만히 땅 아래로 몸을 낮추고 잠시라도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후 3시 평택역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걸어서 쌍용자동차까지 희망 뚜벅이들과 행진을 한 뒤, 7시부터 공장 앞에서 문화제를 열 예정이다. 절망의 공장이 희망으로 포위되는 세 번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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