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화’로 투자금 뺏아 간다는 국제신용평가사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5) 아르헨티나 에너지산업 재국유화 논쟁

다시 시작된 금융헤게모니 집단들의 공격


사건 1. 국제신용평가사 스탠스 앤 푸어스, 석유회사 YPF의 국영화 및 규역규제를 근거로 아르헨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 뉴스핌 2012.04.24

사건 2. 아르헨티나 최대 에너지기업 YPF 국유화, 스페인 대주주 지분 57% 중 51% 강제매입...스페인 “외교 단절도 고려” – 매일경제 2012.04.18




사건 3. 아르헨티나, 국내 최대석유업체 국유화 선언, YPF 지분 51% (시가 약 50억 달러, 약 5조 7000억원)를 국유화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 - 파이낼셜뉴스 2012.04.16

사건 4. 아르헨, YPF 국유화로 페론주의 도마에, 페르난데스 여론 호응 업고 강행, 외국선 “투자위축, 장기집권 노림수” - 한국일보 2012.04.21

사건 5. “아르헨티나 국유화 조치는 부적절한 시기의 패착” , “고갈된 유전 국유화 이후 새 가스전 개발에 암운” – 프레시안 2012.04.20



최근 해외경제면에 연일 오르내리는 기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지하철 9호선의 갑작스런 요금인상논란으로 인해 시끌시끌한데요. 얼마 전 박원순 시장이 이렇게 세금을 퍼주고 시민들의 부담만 수십년 가중시킬 이 요물단지를 아예 시영화 하는 방안을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동일한 위치는 아니지만 수년째 만성적인 에너지난에 빠진 아르헨티나가 십여 년 전 민영화시켰던 석유회사를 다시 재국유화하는 조치를 단행했습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최근 다국적 기업 렙솔이 소유한 YPF를 국유화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또한 석유뿐 아니라 가스까지도 국유화조치에 포함시킴으로써 에너지 산업 전반에 대한 전격적인 국유화 조치를 이룰 계획입니다. 십여년전 원유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한 자국의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표방한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24일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 앤 푸어스’가 아르헨티나의 등급전망을 하향으로 변경하면서 아르헨티나에 대한 국제적 고립을 선동하고 있습니다. 국제투자자들에게 부정적 이미지 즉 ‘당신의 투자금을 이들이 강탈할 수 있다’ 라는 악의적 메시지를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을 적정가격에 보상해주고 원상회복하려는 정당한 조치임에도 불구하고, 금융집단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대변하는 국제적 주류언론들은 마치 아르헨티나가 날강도처럼 뺏으려 한다는 이미지를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죠. 여기에 세계은행이나 IMF와 같은 중립적 역할을 담당해야 할 국제기구들까지 동참하여 포퓰리즘의 산물이라 연일 아르헨티나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 정부는 한발 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입니다. 1999년 민영화 이래로 대주주인 금융투자회사 렙솔이 각종 배당금으로 평균 11.97% 라는 수익률을 챙겼지만, 이에 비해 근로자들의 임금은 1.71% 밖에 오르지 못하고, 생산량도 오히려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2003~10년 동안 아르헨티나의 석유와 가스 소비는 각각 38%, 25% 증가했지만, 생산은 각각 12%, 2.3% 감소했습니다.

아래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발언에서 보듯, 그녀는 재국유화조치가 별안간 생겨난 인기몰이 정책이 아님을 강조하며, 자국 자원에 대한 경제주권의 발동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강조합니다.

“아랍 에미리트는 석유와 가스 산업을 국가가 100% 관리하고 있습니다. 중국, 이란, 베네수엘라, 우루과이, 칠레, 에콰도르, 멕시코, 말레이시아, 이집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콜롬비아는 석유회사 주식의 90%를, 러시아는 최대 가스 수출기업인 ‘가즈프롬’의 50%를 정부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응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어느 날 갑자기 생각해낸 것이 결코 아닙니다.”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4월 16일 비상조치에 관한 TV 생중계 연설에서-



왜곡된 선동 속에 가져진 진실

진실 1. 이번 재국유화 조치는 무상몰수가 아닌 적절한 매입보상

우리도 가끔 공공의 목적으로 시설물을 설치하거나 토목공사를 진행할 때, 개인토지에 대한 유상몰수조치를 취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적절한 보상인지를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얽혀 논란이 있지만요. 공공성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의 강제조치에 대해서 법으로 엄연히 그 근거를 규정해 놓고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이번 재국유화 조치 역시 그러한 공익과 법률에 근거한 조치입니다. 막무가내로 감내놓으라는 강탈이 아닌 것입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페르난데스 정부는 “렙솔 등 다국적기업들이 유전 개발과 고용 창출에 적절한 투자를 하지 않으면 퇴출시키겠다”고 경고해 왔었습니다. 또한 “렙솔이 YPF의 단물만 빼먹고 껍데기만 남겼다”며 “이들이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않아 결국 우리가 지난해 에너지 수입을 위해 98억달러를 낭비했다”고 비판했었습니다. 이 금액은 이번 재국유화조치에 필요한 매입가격의 2배에 육박하는 수준이며 렙솔이 요구하는 보상액에 맞먹는 수준인 것입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금액이 한해 에너지 수입을 위해 소모되었다는 것은 아르헨티나 입장에서 결코 좌시할 수 없는 것이죠. 내년에도 그 후에도 매년 이런 에너지 수입이 이뤄진다고 생각해 보면 정부재정의 압박은 정말 심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몇 달 동안 아르헨티나 정부는 YPF의 대주주인 렙솔과 협상을 벌였지만, 이들이 무리한 가격요구, 거만한 협상태도와 협박으로 일관하자 이들에게 더 이상의 주권농락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강제매입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현재 브루파우 렙솔 회장은 17일 기자회견에서 지분에 대한 보상금 105억달러(악 12조원)를 청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국유화 조치를 취하면서 산출한 시장가격 50억달러(약 5조 7000억)의 두 배를 뛰어넘는 금액입니다.

진실 2. 재국유화 조치는 국유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합리적인 선택

언론 헤드라인 제목에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점이 바로 아르헨티나 정부가 포퓰리즘에 기댄 정권재창출의 일환으로 잘못된 반시장적 조치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정치적 노림수에서 비롯된 잘못된 정치논리로 순수한 경제논리를 침해한다는 아주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이념논리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죠. 이들 주요언론들의 신자유주의적 사상의 기반에 대해 옳고 그름을 여기서 새삼스레 따지기보다는, 실제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과 배분이라는 기본적인 경제논리에 비춰 생각해 보아 이번 조치가 정말 경제적 논리에 어긋나는 일인지 한번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투자대비 이윤의 극대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석유회사 개별 기업차원에서 새로운 투자를 게을리 하거나 최대한 있는 설비를 활용하여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이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증가하는 에너지 수요량에 비해 모자라는 생산량의 부족을 메우기 위해서 비싸게 다른 에너지원을 수입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비효율적인 경제활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즉 자본주의 경제학 교과서에도 나오는 말 그대로, 개별차원의 합리적 행동이 전체의 합리적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구성의 오류’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아르헨티나 정부의 행동을 마치 정권재창출을 위한 정치인들의 노림수로 평가하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을 모르는 비판인 것입니다. 치솟는 에너지가격으로 인해 구성원들의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것을 시장논리라는 이유로 마냥 방치하는 것이야 말로, 또한 자국의 에너지원이 있음에도 타국으로부터 비싸게 에너지원을 수입해야 하는 것이야 말로, 비싼 돈을 들여 투표까지 해가면서 대표자를 선출한 의미를 상실케 하는 가장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진실3. YPF는 처음부터 스페인 기업이 아니었으며, 금융투자회사인 렙솔은 기업운영과 회생에는 관심 없는 단지 배당금만 빼먹는 투기자본

또 한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악선동이 마치 스페인과 아르헨티나의 국가적 대립으로 이 문제를 비화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원래 YPF는 1922년 설립된 국영회사였습니다. 아르헨티나의 악명높은 신자유주의자 메넴이 집권하던 1999년 이를 민영화시킨 기업입니다. KTX 민영화 주장에서도 보이다시피 그 당시 민영화 논리도 더 나은 에너지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십여년간의 과정을 볼 때, YPF가 갈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한계기업으로 몰렸던 것이죠. 수요는 40% 급증했으나 생산량은 20% 감소하는, 그 와중에도 대주주인 렙솔이 평균 12%라는 수익률 챙기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런 조치는 민영화의 실패를 인정하고 원래의 주인인 국민들에게 돌려놓아 다시 기업을 정상화 시키려는 지극히 타당한 정책인 것입니다.

또한 렙솔이 YPF의 지분을 과반이상 가지고 있다지만, 나머지 43%는 엄연히 다른 개인이나 외국인 주주들에 의해 소유가 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마치 렙솔이 YPF 자산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 인양 오해되고 스페인 정부까지 나서 이들의 이익침해가 곧 국익침해라고 주장하는 것은 금융집단의 이해관계에 국가적 이해관계를 종속시키는 논리입니다. 마치 지하철 9호선 시영화를 주장한 서울시의 방안에 대해 호주국적의 맥쿼리가 호주 대 대한민국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주장한다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렙솔도 맥쿼리와 마찬가지로 국제적인 투자(투기)를 일삼는 일개 금융투자회사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렙솔은 이미 중국 국영 석유업체 ‘시노펙’에 100억달러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터였습니다. 이들에게 애초부터 스페인의 국익이라는 건 의미 없었던 것이죠. 거기에 유럽을 대표한다는 EU의회가 부화뇌동하며 아르헨티나에 대한 스페인 정부의 공격을 거드는 것이야 말로 금융투기집단의 장단에 놀아나는 꼴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단물을 빼먹고 팔아치우려는 렙솔의 은밀한 전략이 실패하자 금융헤게모니 집단들은 렙솔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스페인의 국가적 이익을 지키는 것, 더 나아가 유럽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라는 황당무계한 논리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로지 렙솔의 손실로 인한 금융투기시장의 동요와 불안감 뿐입니다.

지금 아르헨티나에서 촉발된 재국유화 투쟁에 대해서 우리가 취할 관점은 바로 자원민족주의의 폐쇄성을 운운하는 것이 아니라, 민영화에 기댄 약탈적 금융투기를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에 있다는 점입니다. 지하철 9호선 요금인상으로 불거진 여러 민자 사업의 폐해, KTX 민영화 논란을 보면서,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이 국제적 격변에 대해 관심을 기울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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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기사 잘보고 있습니다. 재밌습니다.

  • 이명준

    재밌게 잘 보신다니 저로서 기운이 팍팍 샘솟네요~ 감사합니다~^^ 저도 이번 칼럼을 쓰면서 우리가 남미의 상황에 대해서 너무 무지했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몇몇 사람들과 스페인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얼릉 실력을 쌓아 라틴아메리타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투쟁들을 자주 소개했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 저도 덕분에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