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채무위기 속 한국, ‘부채 전쟁’(debt battle) 시작되나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10) 늘어난 국가부채의 진실

‘재정? 콘서트’라니...도대체 무슨 풍악이 울리려나?

[출처: 기획재정부]

재정콘서트’ 연다, 재정부와 KDI ‘국가재정운용계획 공개토론회’ 개최 12일부터 3일간...

엊그제 뉴스를 찾아보다가 무슨 연예인 이름인지 모를 콘서트가 등장하여 클릭해보았는데, 보고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기획재정부와 KDI가 공동주최하여 국가재정에 올바른 제언을 하고 중장기적인 재정운영의 비전을 제시할 콘서트를 개최한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12일부터 3일간 열린다고 하는데 도대체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일반국민들의 적극적인 의견을 경청하여 중장기적 재정운용에 반영한다.” 이런 좋은 취지에 대해 누가 뭐라 할까요... 하지만 왠지 그 시기가 국가채무에 대한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는 재정보수주의자들의 선동과 맞물려 그 저의를 의심케 하는 건, 저만의 기우만은 아닐 듯합니다.

새 회계방식 따라 산출된 국가부채 774조원, 대대적인 선전 의도는 무엇일까?

지난달에 기획재정부가 한국의 국가부채가 774조원에 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까지 420조원이라고 발표했던 정부가 발생주의 원칙에 따라 공무원과 군인연금 부채 342조원 등을 새롭게 추가했습니다. 그동안 정부가 국가부채를 줄여서 발표한다고 비판을 받아 왔던 터라 언뜻 보기에 진일보한 듯 보이지만 사실이 그런지는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국가부채로 포함될 수 있는 항목 중 유독 공무원과 군인연금 부채만을 포함시켰기 때문입니다.

[출처: 기획재정부, 좋은예산센터]

아무튼, 이번 달 새로 증액 발표된 국가부채 774조 두고 온갖 보수매체의 사설에서는 재정 위험을 관리할 방안을 만들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또 19대 국회 개원시기와 유로존 재정위기가 교묘하게도 맞아떨어지고 있는 지금, 이에 입이라도 맞춘 듯 여러 경제단체 및 연구소의 학자들과 경영자들이 각종 ‘선동문’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보수언론들은 다시 이들의 말을 되받아 전파하기에 여념이 없고 말이죠.

“복지정책 남발하면 남미, 남유럽처럼 될 수도” - 보수성향 경제전문가 100명 ‘지식인 선언’

“국가부채 774조원 외국자본유출 우려, 우선 연금에서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연금의 수입과 지출하는 부분을 조정할 필요, 공기업 개혁에 노조가 걸림돌” - 연세대 경제학과 000교수 라디오 인터뷰

“유럽, 일본 위기 원인은 게으름과 과도한 복지, 일할 생각 않고 복지확대만 기대해...” - 이건희 삼성그룹회장

“그리스, 늪에 빠진 복지국가, 원인과 시사점을 중심으로” – 한국보건사회연구소 자료집

“1인당 세금 최대 355만원 더 늘어, 정치권 복지공약 이행 땐 5년간 572조 추가 필요” -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

“국민, 건강보험 등 복지제도 바꿀 것” -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그런데 이들의 주장에서 참으로 아이러니 한건, 재정위기를 위협하는 ‘만악의 근원’으로 복지정책을 지목한다는 점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의 국가채무위기가 세계적 화두가 떠오르자 이를 지렛대 삼아 근거 없는 낭설을 퍼트리고 있는 거죠.

실제 유로 통계국(eurostat)의 자료에 따르면 구제금융 수용국가들의 최근 10년간 총일반 정부지출(GDP 대비) 평균은 45%로서 유로존 17개국 평균 48.3%보다 낮습니다. 또한 사회보장 및 보건부문 지출비중도 22%로서 유로존 17개국 평균 26%보다도 낮고요. 복지정책 때문에 위기가 왔다는 주장은 왜곡된 참주선동일 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선동에 정부가 적극 조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가 수장부터 시작해서 관련부처 장관들까지... 아마도 19대 국회개원 및 대선을 앞두고 쏟아질 복지공약에 대해서 그 상한선을 잡아두려고 대중적 포석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재정콘서트’의 개최 배경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작된 부채 전쟁(debt battle), 국가부채 책임은 누가지나?
...연금개악은 부채 전쟁의 신호탄


하지만 이들의 이런 행보가 단순히 복지아젠다에 대한 보수적 반경향만은 아닐 것입니다. 앞서 보여드린 표에서 보듯 ‘확장된 국가부채’는 1300조원을 넘습니다. 물론 공기업이 망하든 말든, 지방정부가 파산하든 말든 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우긴다면야 공식발표대로 750조이겠지만, 과연 그런 무책임한 정부를 국민들이 인정하겠습니까? 오히려 공무원, 군인 연금을 이번에 공식적인 국가부채에 포함시킨 이유를 연금개악의 신호탄으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 작년 공무원연금공단이 거둬들인 돈은 6.5조원 이었는데, 퇴직한 공무원에게 지급한 연금 총액은 7.9 조원에 달했습니다. 모자라는 1.4 조원은 정부가 재정에서 메웠던 거죠. 만성적 적자재정에 빠진 공무원연금문제는 2009년에 한번 손질을 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자보전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박재완 장관은 다시 연금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하였고, 새누리당은 지난 7일 개혁법안의 일환으로 ‘의원연금 개정’을 결의하였습니다. 연금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코자 애쓰고 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죠.


이런 공무원 연금개악의 방향은 종국적으로 국민연금개악으로 까지 나아갈 수밖에 없을 텐데요. 당장 대선을 앞두고 있는 터라 민감한 내용이 나오진 않겠지만, 이런 논의들이 제기되는 정치적 맥락은 이후 정권을 잡을 정치세력들에게 재정운용과 연금개혁의 가이드라인을 짚어주려는 의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당연히 복지재정에 대해서 보수적 접근을 강제하는 것이기도 하구요. 벌써부터 아래 조세연구원 자료에서 보듯, 재정운용에 관해서 현재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착착 논의되고 있습니다.

“밑 빠진 독, 먼저 물새는 구멍을 메워야죠” 그런데 그 새는 구멍이라는 것이 과연 누구의 것입니까?


조세연구원이 발표한 논의안을 보고 있으면 상당히 교묘하게 섞어 놓았음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한편에서 볼 때 일리가 있어 보이지만 결국 그 손해 대부분은 근로소득자들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런 세제 개편에 공감하고, 각종 공제제도를 수술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실제 내부 논의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중장기재정운용에서 불거질 증세논의에 대해서 근로소득세 개편으로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의도가 확인되는 대목이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두 번째 전선

작년 무상급식 논쟁에서 한번 밀린 경험이 있는 보수주의 세력들은 최근 전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유럽채무위기를 기회삼아 보수적 재정운용 전략을 설파하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강만수, 김석동과 같은 인물들이 연일 경제위기론을 설파하는 모습을 보자면, 자꾸 뭔가 찜찜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공멸적 상황으로 국민의 인식을 제한시키고 협박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거든요.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 협박이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공무원 연금문제 뿐만 아니라 공기업과 지방정부 부채문제도 당장 더 큰 위협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령 인천시의 경우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이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치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또한 새롭게 시작한 보육복지정책에 대해 지자체가 6월부터 재정난으로 사업에 동참할 수 없다고 중앙정부에 구조요청을 하고 상태입니다. 토목건설사업에 매진하여 부채가 폭증한 LH공사나 4대강 사업의 마르지 않은 젖줄이 된 수자원공사의 예는 이미 국정감사를 통해 전국민적 지탄을 받은 대상들이고요.

이렇듯 과다부채로 인해 재정운용의 한계가 드러나는 현실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국가부채의 위험을 전국민적으로 분산시키려는 보수주의자들의 공격에 대응하는 것이 참 힘든 싸움인 것입니다. 그리스를 보면 쉽게 이해될 실 것입니다. 한때 좋았던 시절의 부채의 경제로 이익을 맘껏 누렸던 지배세력들은 이제 파산난 국가를 등지고 떠났고, 그들이 나눠준 열매를 한입 베어 물었던 원죄로 인해 긴축의 고통을 떠안고 살아가는 그리스 민중 말입니다.

국가부채의 불분명한 책임소재로 인한 내부적 갈등 폭발 속에서, 그리스 민중이 서로 마주한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계층간-계급간 대립을 우리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손실의 사회화’를 둘러싼 ‘부채전쟁’(debt battle)의 시작과 끝은, 결국 이 경제위기의 책임을 누가 어떻게 져야 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자그대로의 ‘계급투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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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채 , 채무 , 부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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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청호

    원래 복지는 국가사업으로 분류해야 맞는데 그 책임을 지방정부로 떠 넘겼고, 국세와 지방세의 구조가 80:20인 상황에서 지방교부세가 아니면 지방정부가 살아날 수 없는 구조다. 아시안게임이나 국제박람회 등은 옛날부터 국고지원이 있었던 사업들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부터 짚고 넘어갈 문제다. 공무원연금도 독일이나 대만은 정부가 100% 지급해도 국가부채를 수혜자들에게 떠 넘기지 안는다.

  • 노동자

    국가정책의 잘못으로 인한 채무를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떠 넘기고 고혈을 짜내고자 치졸한 방법을 동원하는 이명박 정부의 저렬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울나라 국민 중 70%가 노동계급입니다. 금번 대선을 통해 이 정부의 무능함에 대하여 반드시 응징해야 합니다.

  • 노동자2

    대선에서 응징? 선거로 야권연대 연립정부 만들어봐야 이명박정권 못지 않게 경제위기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길 것입니다. 선거 이전에 투쟁으로 타격을 가해야 합니다. 대선도 자본가 정권 타도를 위한 선동 연단으로 사용해야지 무슨 심판론 유포하지 마세요.

  • 이명준

    오늘 재정콘서트 첫날 기조발제하는 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관변토론회 성격의 정책을 알리는 자리였구요. 그다지 열띤 토론 같은 건 없었습니다.

    정리해보면, 기획재정부 예산총괄과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위기시 정책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세제개편이나 지출총량, 균형재정 달성을 위한 계획에 대해서 국민적 동의를 구하기 적절한 시기가 지금이다"

    역시 우리가 예상했던대로 "퍼주기식?" 복지재정에 대한 브레이크는 물론이거니와 연금개악이나 각종 비과세 감면혜택 폐지,축소 등등을 추진할 듯 합니다. 여기에 유럽채무위기를 아주 잘 써먹고 있고요. 모든 토론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포퓰리즘 타령가를 부르더군요. 아마 오늘 보수언론들의 뉴스에서도 똑같은 레파토리가 울려 퍼질 듯 합니다.

  • 하나 더

    서민복지를 회피하기 위한 술수뿐만 아니라 명박이 정권4년 동안 4대강사업 등 재벌들에게 엄청나게 퍼주어서 국가채무가 445조나 늘어난 것을 은폐하기 위한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단면적인 주장만하는 것은 사실과도 다릅니다.
    명박이가 끌어다 썬 천문학적인 국가부채 문제도 대선과 이후에 반드시 밝혀져야 합니다.

  • 이명준

    하나 더 님/ 맞습니다.^^ 공기업부채 역시 꼭 짚어야 할 사안이죠. 지방재정 부실의 경우 지방공기업 부실문제를 떠안으면서 더욱 심각해진 사례들이 많거든요. 마치 가계부문에서 저소득 계층부터 신용대출 문제가 터지듯이, 공공채무 부문도 가장 취약한 지방재정과 몇몇 공기업부터 터져나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