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동 골목길에서

[최인기의 사진세상](7) 돌고 도는 길, 돌고 도는 인생


이화동은 종로구에 있는 마을입니다. 개인적으로 나만의 소중한 공간을 들라면 이화동을 으뜸으로 칠 것입니다. 몇 년 전 단체 사무실이 이화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숭인동에 있었습니다. 숭인동에서 대학로로 넘어 갈 때는 동대문 근처, 지금은 사라진 이화여대 동대문병원을 끼고 성곽을 돌아 대학로로 넘어 다니곤 했습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이곳은 다양한 벽화로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명세를 타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화동 골목길 한편에 소위 ‘천사의 날개’라는 작품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강호동이 진행하는 ‘1박2일’이라는 프로에 방송이 나가자 조용했던 마을이 갑자기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답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모여들어 시도 때도 없이 마구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동네가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을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곧 ‘천사의 날개’는 접히고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4월 국회의원 선거가 있던 날에도 몇몇 분들과 창신동을 거쳐 이화동으로 내려 온 적이 있습니다. 이날도 간간히 사투리를 쓰는 몇몇 아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이승기가 찍고 간 천사의 날개를 찾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입 소문이란 것이 정말 무섭습니다.


아무튼 이화동은 근처에 청계천이 있고, 또 평화시장이 있기에, 창신동과 더불어 생계를 이어가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지로 선택한 곳입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골목길의 보전될 수 있었던 것은 근처 낙산 성곽길이 있어 개발이 제한되었기 때문입니다. 온통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획일화 되어가는 서울의 모습이지만, 이곳에 와보면 주민들의 생활이 잘 보존되어 있고 과거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왜 사람들은 골목길을 보면 정겹다고 할까요? 되돌아보면 우리는 불과 몇 년 전 만해도 많은 사람들이 골목길을 끼고 살아왔습니다.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골목에서 이웃과 정을 나누었습니다. 골목길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골목길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마도 잊혀지며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미련이 의식 속에 잠재 되어 단순히 구경거리나 호기심으로 전락하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외나 수박 같은 것을 파는 노점상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옆을 빨간 양산을 들고 지나가는 아이의 모습도 보입니다. 왁자지껄한 풍경입니다. 골목길은 처음 걷는 이들에게는 당혹스러움을 안겨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익숙해지면 골목길은 마음을 활짝 열어 사람들을 품어줍니다. 구불구불 곡선과 직선을 따라 이화동을 한참을 지나 턱까지 숨이 차오르면 성곽이 나옵니다. 고개를 향하다 보면 오래된 적산 가옥들이 드문드문 보입니다. 이제는 사람들도 다 떠나고 빈 보금자리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열리지 않은 철문을 따라 담쟁이덩굴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좀 스산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곳의 매력은 야간에 와 보면 더욱 빛을 발합니다. 멀리 동대문과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운동장 주변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성곽의 여러 곳은 말끔히 복원되어 있고, 주변의 환경도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 같은 변화의 이면에는 역시 경제적인 논리가 어느 정도 숨어있다고 봅니다.


모든 것을 허물고 부수던 개발이 우선은 부동산 경기침체로 기존 사업이 원활하게 추진되지 못하자 골목길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것 같습니다. 만약 대규모 도시정비 사업이 한계에 부딪히지 않았다면 여전히 골목길은 지나간 과거에 묻힌 낡고 비루한 곳으로 낙인찍힐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활환경이 열악한 지역 주민들에게 쾌적하고 친환경적인 주거지를 제공한다는 명분이 더욱 설득력을 얻어 마구잡이 개발로 나갈 것입니다. 부족한 기반시설을 보강하고 불량한 주거지를 신주거지로 바꾸는 일은 건설자본의 이윤과 정치적 성과물을 챙기려는 정치인들의 이익을 포장하는 허울좋은 논리로 작용되어 왔던 것입니다.


뉴타운 정비 사업이 등장하기 이전부터 재개발 재건축 사업을 통한 전면적인 철거방식은 원주민들의 재정착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어왔고, 원주민들이 재정착하지 못하며 결국 공동체를 해체시킨다는 논리가 과거부터 있어왔지만 부동산 투기광풍은 모든 것을 덮어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면서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전국 1500여 개 재개발·재건축 사업 가운데 약 38%가 지연 중단 상태라는 점은 결국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부동산 경기가 얼마나 침체되어 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러자 이제 골목길을 살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이는 마치 DSLR 카메라가 보급되자 너도 나도 이승기 벽화를 찾아 골목길 출사로 이어지는 것처럼, 새로운 구경거리와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을 줍니다. 하지만 정겨움이 있는 이곳은 정말 많은 이들이 일상을 살아가는 현실적인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그 공간을 떠나 다른 삶에 방편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공간 속에 서로를 지탱해주는 오랜 연결망과 삶에 추억들 그게 바로 골목길이 안고 있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사진 속의 P턴 길은 도로와 골목길로 멋지게 이어지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마치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를 방불케 하는 저 곳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고 돌아 인생의 질긴 선들을 이어왔을까요?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노년의 모습이 길을 닮았습니다. 이 길을 따라 아침 해를 받으며 누구는 출근길을 서둘렀을 것이고, 또 어린 아이들은 노란 차에 몸을 실고 유치원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보며 학업을 마친 학생들은 서둘러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을 것입니다.


사진 속의 아이는 이제 중학생이 된 아들 녀석입니다. 이화동을 가자고 하면 성큼 따라 나섭니다. 아들 녀석과 수다를 떨며 대학로 방향으로 내려오다 보면 구제물품을 파는 가게들이 간혹 보입니다. 책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는 자그마한 달팽이카페도 보입니다. 이화동을 가는 방법은 동대문 1호선 역에 내려서 지금은 사라진 이화대학 병원 옆으로 오르는 방법과 대학로 옆 방송통신대를 거쳐 이화동을 통해서 곧바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밖에도 창신동과 성북구 삼성동쪽 장수마을과 한성대방면으로 올라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목적과 방향으로 일직선으로만 향하지 않고, 골목길을 그냥 서성이는 것은 또 어떻습니까? 길을 걷다가 방향을 잃어버리면 쉬어가면 그만입니다. 달팽이 카페에서 저는 커피를 아들은 코코아를 마셨습니다. 그리고 뭔가 메모를 남겨놓았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그 낙서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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