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청산, 침묵에 복종한 자가 누구더냐

[낡은책] 눈까 마스(Nunca Mas)와 침묵협정(박구병, 라틴아메리카연구, 2005)

이 책은 단행본이 아니라 학회지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라틴아메리카학회의 기관지 ‘라틴아메리카연구’ 제18권 제2호(2005년)에 실린 박구병의 논문이다. ‘눈까 마스(Nunca Mas)’는 아르헨티나에 민간정부가 들어선 1984년, 알폰신 대통령 직속 실종자 진상조사 국가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의 이름이다. “다시는 안 돼!”라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의 과거사조사위원회와 비슷한 기구다. 조돈문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가 당시 이 학회의 부회장이었다.

논문은 아르헨티나 군부의 ‘더러운 전쟁’ 시기를 두 화자의 말로 대신하며 출발한다.

“우리는 모든 불순분자를 처리할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지사 생장 장군, 1976. 5)
“납치된 순간부터 희생자들은 모든 권리를 상실했다. 양쪽 발이 시멘트로 굳혀져 강이나 바다에 던져지거나 한 줌의 재로 변해 갔다.(실종자 진상조사 국가위원회CONADEP, 1984. 10)

어디 아르헨티나뿐인가. 닮은꼴 한국

우리의 박정희 정권 초기처럼 아르헨티나도 군부통치 시절 군인들이 계급장을 단 채로 주지사나 시장을 맡았다. 1976년 ‘불순분자 처단’을 외쳤던 군인은 그들의 역사가 영원하리라고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과 8년 뒤 더러운 전쟁의 진상은 상당 부분 드러났다. 진상이 드러난 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 뒤에도 군부가 여러 차례 개입하고 그 군부의 입김에 주춤거리는 민간정부의 타협적 태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식 ‘진실과 화해’까지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 논문을 읽으면서 우리의 과거사는 과연 어디까지 와 있는지 자문해본다. 아버지가 선이었다고 외치는 박근혜식 극우도 밉지만, 국민이 준 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비칠거리는 민간정부의 오랜 ‘침묵’이 더 밉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바로 그랬다. 엉뚱한 곳에 힘 다 쓰고 정작 해야 할 일은 못한 채 다시 권력을 넘겨줬으니. 앞으로 한국의 5년은 어떨지.

1966~73년 ‘아르헨티나 혁명’은 권위주의적 군부통치의 대명사다. 그러나 1976년 3월 24일 군부쿠데타 세력은 1983년까지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억압적인 통치를 펼쳤다. 호르헤 비델라 장군의 군사통치위원회는 군대와 경찰, 정보기관을 동원하고 극우 무장단체를 활용해 노동자와 청년을 조직적으로 탄압했다. ‘오월광장 어머니회’는 ‘더러운 전쟁’ 동안 실종자 수는 줄잡아 3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논문 이후에도 여전히 남은 역사의 잔재

1983년 12월 라울 알폰신이 이끄는 민선정부가 벌인 대통령 직속 국가위원회 조사는 흐지부지됐다.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은 1989년 10월과 1991년 1월 두 번의 사면으로 ‘더러운 전쟁’ 관련자를 전원 석방했다. 2003년 5월 네스토르 키르츠네르 대통령 집권 이후 2003년 8월 아르헨티나 의회가 알폰신과 메넴 정부의 사면법이나 사면령의 폐기를 천명해 역사 심판은 아직 종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이 됐다.

중도좌파 여성 대통령의 재선까지 허락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눈까 마스의 종결을 기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아르헨티나 역사는 비틀어진 채 진행형이다.

군부의 정치개입과 ‘더러운 전쟁’(1976~1983)

18년 동안의 망명 끝에 1973년 아르헨티나 ‘노동자의 영웅’이자 정국 혼란을 수습할 ‘마지막 희망’으로 권좌에 복귀한 후안 페론(1895~1974)의 기대는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세대 전에 구축한 페론 체제의 근간은 1974년 7월 그가 죽기 전에 이미 무너졌다. 아내인 부통령 이사벨 페론이 뒤를 이었으나 경제적 침체는 통제불능이었고 정치 폭력도 잦았다.

1975년 7월 노동자들은 정부에 대항해 전례 없는 총파업에 돌입한다. 이 와중에 극우세력은 ‘더러운 전쟁’ 시기에 악명을 떨치는 ‘아르헨티나 반공 동맹’을 결성했고 페론주의 세력은 분열해 일부 급진파가 몬토네로스라는 게릴라 조직을 만들었다. 이사벨 페론 정부는 1975년 10월 ‘말살 포고령’으로 국가 전복 행위를 엄단하라고 선언하면서 사실상 아르헨티나 정치무대의 단골인 군부의 개입을 예비했다.

쿠데타 군부정권과 알폰신 민간정부

1976년 3월 24일 국가재건의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호르헤 비델라의 군부쿠데타 세력은 만성적 정치 혼란과 ‘아르헨티나 병’인 반복적 경제위기에 대해 나름대로 최종 해결책을 제시했다. 군부는 억압적인 국가의 구축을 시사하면서 보수적인 자유 기업 담론, 즉 규제 없이 개방된 시장을 지향하는 일종의 ‘시장 파시즘’을 선보였다. 군부는 1955년 이후 대여섯 차례에 걸쳐 발생한 선배들의 전례를 간단히 압도해 버렸다. ‘더러운 전쟁’ 동안 아르헨티나에서 수만 명에 달하는 피해자가 속출했다. 망명을 제외한다면 대다수 국민에게 유일한 출구는 그저 침묵하는 것뿐이었다. 일종의 ‘침묵 협정’이 맺어진 셈이다.

군부통치자들은 1982년 4월 경제위기 때 또다시 영국을 상대로 무모하게 벌인 전쟁으로 1982년 7월 예비역 장군 비요네를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가 들어섰다. 군부는 정치무대의 퇴장을 앞두고 1983년 9월 ‘국가적 화해와 조정법’이란 사면법을 제정했다. 1983년 12월 출범한 라울 알폰신 민선정부는 과거의 청산과 경제안정, 민주화 진전의 숙제를 떠맡았다.

실종자 진상조사 국가위원회(CONADEP) 활동

알폰신은 1978년 12월 급진당 소속 시절에 군부의 ‘더러운 전쟁’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래서 1983년 집권 뒤 대통령 직속으로 ‘실종자 진상조사 국가위원회’를 설치했다. 군부는 대통령과 위원회를 협박했다.

1984년 9월 위원회는 5만 쪽에 달하는 진상조사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하고 그 제목을 “다시는 안 돼(눈까 마스, Nunca Mas)”로 붙였다. 1976년 이후의 실종자 9천 명 가운데 30% 가량은 블루칼라 노동자다. 18%가 화이트칼라 노동자, 21%가 학생이었다. 이 보고서는 1930년 이후 주기적으로 되풀이된 군부의 정치 개입을 극복하려는 노력이었다.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는 크게 미진했다.

가해자의 반발과 정치적 타협, ‘침묵 협정’

‘오월광장 어머니회’는 더러운 전쟁의 책임자들을 군사법정이 아닌 민간법정에 세울 것을 요청했다. 1987년 4월 알도 리코 중령이 주도한 ‘부활절 쿠데타’ 등 4번의 카라핀타다(반란에 가담한 특수부대 요원들이 ‘얼굴에 위장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의 반란이 있었다. 알폰신의 대 군부 화해정책은 많은 지지자를 실망시켰다. 강경파 리코 중령은 1988년 1월 중순 두 번째 쿠데타를 기도했다. 세 번째는 1988년 12월, 네 번째 카라핀타다 반란의 주역은 모하메드 알리 세이넬딘 대령이었다. 그 결과 군인 월급이 42% 올랐고 인권재판이 거의 종결됐다. 세이넬딘은 1990년 12월 마지막 네 번째로 가장 폭력적인 반란을 이끌었다. 이는 메넴 대통령에 대한 항명이었다.

알폰신 정부는 무엇보다 중요한 기소범위를 확정하지 못한 채 만만치 않은 군부의 압력에 밀렸다. 알폰신이 잔여 임기 6개월을 남기고 퇴진한 뒤 출범한 카를로스 메넴 정부는 1989년 10월 대대적 사면으로 군부의 반발을 무마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아르헨티나 과거청산은 이렇게 타협됐다. 알폰신과 메넴 정부는 ‘눈까 마스’에 집약된 결연한 의지나 사회 일각의 철저한 진상규명의 요구와 거리를 유지한 채 점차 기존의 ‘침묵 협정’과 망각에 기대려 했다.

2003년 5월 키르츠네르 대통령 취임 이후 ‘기소종결법’과 ‘강요에 따른 복종법’ 같은 처벌면제법과 메넴의 사면령을 무효화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

대통령 직속 진상조사 국가위원회는 1984년 세계적 이목을 끈 공식 보고서 ‘눈까 마스’를 제출했다. 국가위원회 조사 후 가해자 처벌을 위한 후속재판이 군부 강경파의 반발로 좌초됐고 끝내 정치적 타협으로 마무리됐다. ‘오월광장 어머니회’ 등 피해자 단체는 실종자 문제의 진상규명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좌파성향의 집권 세력 주도로 최근(2005년) 침묵과 망각의 협정을 철회하고 ‘더러운 전쟁’ 시절 자행된 국가폭력에 대해 입법 및 사법적 심판을 다시 모색하고 있다.

과거청산 과정을 ‘성공과 실패’ 양단간의 문제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이런 평가가 얼마나 일면적인지 시사하는 바가 많다. 과거청산이란 일회적 종결이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 책임규명과 처벌을 둘러싸고 언제든 갈등을 일으킬 미완의 과정이다. 2003년 좌파성향의 키르츠네르가 집권한 뒤 새 국면을 맞았다. ‘더러운 전쟁’의 수행자를 심판대에 세우고 고문과 학살의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일은 과거청산의 시발점일 뿐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곳에서 ‘콘도르 작전’이란 이름으로 추진한 비밀공작과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의 관련성, 미국 정부나 정보기관의 역할에 대해 좀 더 포괄적인 검토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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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 과거사 , 눈까 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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