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투표할 권리만 남은 것은 아니다

[새책] 발자국을 포개다 (김소연 이선옥 박노자 홍세화 외, 꾸리에, 2012)

고백하건대, 지난해 여름의 ‘희망버스’가 나는 무척 부러웠다. 우리 모두가 김진숙이라고, 그토록 많은 이들이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해고에 분개하여 부산으로 달려갔던, 그리하여 사람들이 외침이 바다가 되어 출렁였던,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거대한 축제 같았던 그때의 희망버스가 얼마나 간절히 부러웠는지 모른다.

부러웠던 만큼이나 당시의 상황이 어느 정도 절박했는지 물론 나는 잘 기억한다. 해고를 막지 못하면 김진숙이라는 사람이 정말 죽을 것 같다는, 그러한 절박함이 연대를 만들고 한 곳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무수히 포개지자 거짓말처럼 기적이 일어났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정말 살아서 크레인에서 내려온 것이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해고가 철회된 것은 그들만의 삶과 기쁨만이 아니었다. 그 여름의 기적이 만들어낸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선물은 함께 싸웠던 모든 이들에게 ‘희망’이라는 불씨를 안겨준 것이었다. 끝까지 싸워서 얻어낸 이 희망이란 기적 앞에서 환호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런데 그 기쁨보다 더한 절실함으로 이 기적이 자신에게도 일어나기를 갈구했던 사람이 비단 나뿐이었을까?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희망의 연대는,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공명하는 사람들 모두가 만들어낸 사회적 힘이다. 그 속에는 자신의 미약한 힘이라도 보태고 발자국을 포개면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소박한 심정으로 달려온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 글을 쓰는 작가나,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사진가들, 노래와 몸짓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동참하려는 문화노동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철거민들, 성소수자들, 장애인들처럼, ‘내가 아프기 때문에 당신의 아픔을 아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걸고 싸워온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가는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해온 활동가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희망의 연대 속에는 그 자신 또 다른 김진숙으로 긴 세월을 싸워온 해고노동자와 불안정노동자들이 있었다. 5년이란 긴 세월을 길 위에서 싸워온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자들, 기타를 만드는 콜트콜텍 해고자들, 1,900일을 싸워 정규직이 된 기륭전자 노동자들,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와 매일 같이 싸워야 하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나와 동료들이 있었다. 희망버스의 기적이 너무도 절실했던 또 다른 김진숙들이.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진실로 사회적 연대의 그 힘이, 어울림이, 무엇보다 희망이 가져다주는 웃음들이 절실했다. 해고의 긴 과정에서 관계가 단절되고, 마침내는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동료와 가족들이 늘어나면서 절박함은 넘쳐났으므로. 우리는 희망버스를 잇고 싶었다. 그 축제와도 같은 난장 속의 힘들을 다시 한 번 모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이라는 죽음의 질병을 넘어서는 정거장이 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엄동설한에 공장 앞에다 ‘희망텐트’라는 것을 쳤고, 혜화동 재능교육에서 평택 쌍용자동차까지 함께 걷는 ‘희망뚜벅이’ 행렬을 만들었고, 서울광장 한 귀퉁이에 비닐과 스티로폼으로 만든 좁은 움막 안에서 열심히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많은 발걸음에도 불구하고, 다급한 마음으로 달려오는 힘찬 발자국 소리들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벚꽃이 필 무렵 우리는 또 하나의 영정 사진 한 장을 들고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만들었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다’는 말조차 내뱉을 수 없었던 무력감과 슬픔을 밀어내기도 힘들었다. 그제야 간헐적이던 발걸음이 늘어나고 연대로 나아가는 발자국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대한문을 주목했고, 이른바 유명인들이 대한문을 찾아왔다. ‘쌍용차 문제도 마침내 해결되나?’ 생각이 들었다. 책이 만들어지고, 영화가 제작되고, 연극이 만들어지고, 그림이 걸리고 조형물이 만들어졌다. 각계각층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쌍용차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러나 상황은 늘 거기서 멈출 뿐 어찌된 일인지 해결책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무엇 때문일까? 4년을 싸우고, 집 떠나 8개월을 농성장에서 보내고, 41일을 굶고, 정규직 비정규직 해고자 3명이 얼음덩이가 된 15만 볼트 송전탑에 올라가도, 난공불락의 성처럼 해결책은 요원하다. 쌍용차 진실규명을 위한 청문회에 이은 국정조사가 이루어지기를 요구하는데도 이 나라의 정치는 멈춰버린 기차처럼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소리는 요란한데 정치권은 다른 이해타산들로 이미 나와 있는 해결책 주위만을 맴돌 뿐이다.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지금도 계속되는데 법은 여전히 노동자에게 겨누어진 칼날과도 같다. 그렇다. 문제는 바로 정치와 법이었던 것이다.

다시 대통령선거가 도래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당연히 고민이 된다. 민주통합당을 포함하여 야당은 쌍용차 문제를 여러 차례 이야기해온 데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 당장에라도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쌍용차 문제 해결을 앞장서 촉구해 주고 야당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던 ‘진보적’ 인사들조차 그렇게 이야기하는 마당이다. 그러니 과연 그런가 하고 굳이 날 세우고 나서지 않고, 그렇다고 야당후보를 지지한다고 애쓰지 않아도 가만히 못 본 척, 못 들은 척 하고 있으면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 우리 해고자들은 복직이 가능하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찾아오니 말이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 가운데는 자신이 해고되지 않았지만 동료들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77일을 함께 싸웠던 징계해고자들이 있었다. 그 추운 겨울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함께 얻어맞고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졌던 우리는, 무엇보다 긴 죽음의 행렬 앞에 수도 없이 가슴이 뻥 둘린 공동의 기억을 가진 우리는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이리저리 채이고 쫓겨나는 경험을 지닌 노동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해고자들이 복직된 한진중공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아는 우리는 하나의 사업장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다시 해고의 벼랑 끝에 서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또한 우리는 정권교체가 이뤄진다고 해도 쌍용차 문제 해결을 바라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구조조정이란 이름하에 정리해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비정규직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운동이 무력화되고 분열되기 거듭한 것은 바로 지금의 야당이 집권당이던 시절에 있었던 일, 아니었던가?

그래서 우리들은, 어쩌면 미련스러워 보이겠지만, 다른 발걸음을 시작하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우리는 얼음처럼 차가운 농성장 바닥에 귀를 대고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기다려왔다면, 거듭된 배신의 기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찾는 정치를 고마워만 했다면, 앞으로의 우리는 그 고장나고 불구가 된 정치공간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길 것이다. 우리는 이제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고, 누군가가 건네주는 공허한 해결책을 이러 저리 살피다 또 다시 절망하는 일을 멈추기로 했다.

우리는 이제 이렇게 말하려고 한다. 우리에게 남은 건 투표할 권리만 있는 건 아니라고, 우리에게는 우리의 정치를 이야기할 권리와 정치공간에서 인간다운 사회를 앞당기기 위해 벌여야할 싸움이 있노라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은 결코 불가피한 것도 아니며, 자본에게 점령된 정치를 극복하면 누구나 인간다움을 지키며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투기와 경쟁과 삶의 불안이 없는 세상, 차별과 배제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정치를 이제 우리가 시작하겠노라고.

뼈아픈 이야기이지만 진보정치가, 민주노총이 좀 더 단단했더라면 이렇게 고단한 길을 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다고 고백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싸워온 우리들이 정작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되겠다고 나섰을 때 우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다고 믿어온 사람과 집단이 보여준 냉대와 외면과 침묵을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왜 우리의 발걸음을 시작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세상은 세상의 모순으로 고통당하면서 이에 맞서온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변화해왔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순간에도 그것은 여전한 진실이다. 『발자국을 포개다―배제된 자들의 민주주의를 향하여』는 이 진실을 ‘미련스럽게’ 붙들고 있는 이들이 지금과는 다른 정치를 시작하면서 모여 만든 최초의 기록이다.

이 책에는, 그 자신 비정규직 노동자로 94일 간의 긴 단식을 이어가며 1,900여 일을 싸우고, 끝내는 투쟁으로 승리한, 그리하여 이제는 ‘투쟁하는 노동자대통령’ 후보가 된 김소연의 서사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이 싸움을 시작한 재능교육, 동희오토, 쌍용차 투쟁의 서사가 함께 담겨 있다. 배제된 자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로 우뚝 서 허위의 민주주의를 갱신하기를 소망하는 실천적 지식인 홍세화와 자본주의의 전 지구적 위기 앞에서 세계의 민중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정치의 가능성과 탄생에 관한 소식을 전해주는 박노자 교수의 글이 이 책의 의미를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우리, 너무 외로워 말자’는 이선옥 작가의 말처럼,우리는 더는 우리 자신의 외로움으로만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시작하는 정치의 발걸음은 우리보다 더 외로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자본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과 더불어 이 무례한 세계와 싸우는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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