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믿는 기억의 공간, 기장시장

[최인기의 사진세상](20) 전통시장 등진 유통산업발전법


2007년 봄으로 기억합니다. 기장근처 숙소에서 나와 생갈치집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건물 옆 모퉁이에 서서 기장시장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노점상단체에 가입하겠다고 연락을 보내오신 분입니다.

잠시 후 중년의 남자분을 따라 식당이 즐비하게 들어선 거리를 지나 인도로 접어들자 전혀 예상 못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알록달록 파라솔 아래 노점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사를 하는 모습입니다. 시장 한가운데로 오징어, 조개, 생선 따위를 파는 노점좌판이 펼쳐져 있는 게 아닙니까? 정말 살가운 풍경이었습니다. 대로변과는 조금 동떨어진 분위기였지만 이곳이 바로 부산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기장시장입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기쁨과 주변에 펼쳐진 온갖 해산물을 바라보며 묘하게 이끌리는 기분으로 시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기장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부산광역시에 편입된 것이 1995년 기장군이 부활되면서부터이지만 이미 삼한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된 유서 깊은 곳이랍니다. 근처에 기장성이 있고 선조 25년에는 임진왜란으로 기장읍성이 점령당한 사실로 미루어 해안과 접하고 있으면서도 군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요충지였던 곳으로 짐작됩니다. 기장시장은 기장읍 대라리를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시장 현대화 계획에 따라 1985년에 현대식 상설시장으로 변모되었습니다.

기장시장의 특징은 계절마다 특색 있는 장이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봄에는 미역과 멸치, 가을에는 갈치장이 형성되는데 기장갈치는 맛이 좋기로 전국에 이름나 있답니다. 기장시장의 해산물 등은 전국 최대의 수산물 시장인 자갈치시장보다도 값이 저렴하고 특히 대게 맛을 보기위해 인근지역의 사람들은 물론 전국에서 몰려온 도매상인과 소비자들이 시장골목을 메우고 있습니다. 부산의 자갈치 시장이 전통시장의 모습을 잃게 되자 기장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적이고 새로운 맛을 찾는 외국인 특히 일본인 관광객들이 이곳의 가치를 제일 먼저 알게 되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기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는 상식적으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도 있었습니다. 노점상들이 상가주인들의 그늘에 가려 숨조차 내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가주인들의 시선으로는 번듯하고 세련된 건물의 바로 앞에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노점상이 펼쳐 있는 것을 용납하기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노점상들이 외쳐 대는 소리는 악다구니로 들리거나 파는 물건은 불결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시장을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대부분 노점상들의 좌판에 묶여있는 거였습니다.

시장의 상인연합에서는 노점상들을 내쫒기 위해 기장군청에 민원을 제출해 단속과 철거를 요청했습니다. 언제 철거를 당할지 모르는 노점상과 왁자지껄 활력이 넘치는 시장의 이면은 참으로 기막히게 느껴졌습니다. 점입가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상가주인은 가게 앞 노점상을 상대로 몇 년째 법적 다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법원에서도 공공의 노점상뿐만 아니라 상가에서도 물건을 내놓고 장사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상가주인은 가게 앞 공간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하며 오랜 갈등이 이어져 오고 있던 것입니다.


사진 속의 노점상은 기장시장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해온 심규리(54세) 씨입니다. 2010년 1월 5일 부산 기장시장에 내려와 집회를 개최하였습니다. 당시 부산기장 군청에서 추진하던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몇 십 년 동안 시장 상인들과 어우러져 상권을 만들고 전통시장 활성화에 기여했던 노점상들은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상업기반시설이 노후화되어 개·보수 또는 정비가 필요하거나 유통기능이 취약하여 경영개선을 실시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추진된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전국전통시장의 임대료는 두 배 이상 상승했습니다.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매출은 반 토막이 나고 있는데 임대료는 오르는 실정입니다. 결국 시장이 시장으로써의 기능보다 현대화사업을 통해 전통시장 건물을 보유한 건물주들만 신나게 되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2012년 가을 기장시장을 찾자마자 들은 말이 장사를 하는 가운데 도로가 소방도로라는 이유로 ‘행정대집행’ 위협에 항시적으로 놓여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장의 상가에서도 약 3미터 가까이 물건 진열대와 수족관을 내놓고 장사를 하고 있으며 가운데 노점상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비록 중앙통로가 소방도로로 되어있지만 외곽의 도로가 충분히 뚫려 있으며 시장에 소방시설을 충분히 마련하거나 현재와 같이 소방훈련을 통해 소방차가 출입할 수 있도록 사전에 교육과 훈련이 뒤따르면 예방이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시장의 중앙도로를 모두 비워야 한다는 건 다시 말해서 노점상을 단속하겠다는 뜻입니다.


혼잡하다는 이유로 항시적으로 단속의 위협에 놓여 있지만 부산기장시장은 풍성한 대게로 인해 항상 볼거리와 서민들의 활기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시장은 사람들이 오가며 먹을거리가 있고, 살거리가 많아야 하는 법입니다. 그래야 가격 흥정도 하고, 전통시장 고유의 멋을 만끽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 상가의 크기를 규격화하고, 이에 따라 물건진열의 수량이 한정되고, 진열의 방식이 동일해지면 전통시장 고유의 멋이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이용객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면서 시장전체가 타격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게 노점상들의 주장입니다.


나아가 심규리 씨는 기장시장의 장점인 전통시장의 모습과 시대의 흐름에 맞는 현대화사업이 조화롭게 잘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상인을 비롯한 노점상 등 이해 당사자 간의 관계가 충돌할 때 이를 잘 협의할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현행법에는 시장정비사업과 시설현대화사업에 관련된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시·도에 시장분쟁조정위원회를 두게 되어 있습니다. 시장상인들은 시장상인회를, 시장상인회나 시장상인을 회원으로 설립된 법인·조합·단체 등은 시장상인연합회를 자율적으로 설립할 수 있지만 여타 비허가 상인이나 노점상들은 이러한 틀에 개입하거나 결합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존의 전통시장을 새롭게 활성화시키겠다는 취지보다는 시장이나 지역의 특성과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전통시장을 철거하고 건물을 새로 짓거나 시장에 맞지 않게 리모델링하는 방식의 획일화된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의 결과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시장을 살리겠다고 현대화사업을 실시하면서 또 한쪽에서는 기업형 슈퍼마켓과 대형마트가 들어서며 골목상권을 위협해 왔습니다.

대형마트 매출은 1993년 50억 원에서 2006년 23조 6천억 원으로 껑충 뛰었고, 서울에만 한 67개와 기업형 슈퍼마켓이 267곳 정도 됩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5백여 곳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반면 전통시장은 2008년도에는 1,600개 정도에서 매년 1년에 100개씩 사라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심규리 씨는 무엇보다도 전통시장의 상권이 활발하게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대형마트를 지적해야 한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상인들의 가장 큰 현안은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의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통산업발전법을 둘러싼 갈등은 꺼지지 않고 이어졌고, 대형 유통업체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헌법소원과 행정소송,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제기하여 결국 2012년 6월22일 서울 강동구와 송파구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는 등 소송으로 맞서고 있는 형편입니다. 전국 지자체의 조례가 제정 절차상 문제로 인해 잇따라 법원으로부터 효력정치 처분을 받으면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 규제 법안은 무력화되는 듯 싶습니다.


그러자 2012년 11월16일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는 현행법보다 규제 수준을 대폭 높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내놓았다가 우여곡절 끝에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의 영업시간제한과 의무휴업일을 규제하는 유통산업발전법이 2012년 12월 31일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면 국회 지식경제위원회에서 처리된 원안은 의무휴업일을 ‘매월 2일 이내에서 3일 이내’로 확대하고, 영업제한시간을 ‘밤 10시~오전 10시’로 규정했으나 결과는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대형마트가 문을 열 수 없도록 하고 한 달에 두 번 공휴일(일요일 포함)에 의무적으로 쉬도록 하며, 또 대형마트 등을 출점할 때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자치단체장에게 제출하도록 하였으며, 자치단체장이 미진하다고 판단할 때는 보완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밖에도 영업 시작 30일 전에 출점 지역과 시기 등을 알리도록 하는 사전 입점 예고제도 도입됐습니다. 하지만 결국 국회 지식경제위원회보다 후퇴된 안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새누리당이 대기업 편을 들어 원안보다 한참 후퇴한 절충안을 제출하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선 후 결국 민주당이 원안보다 크게 훼손된 안을 합의해줬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전통시장에서는 하나의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시장전체를 돌아보고 가장 싼 집을 골라 팽팽한 입씨름 끝에 물건을 구입하기 마련입니다. “팔아도 남는 게 없다”는 말로 흥정을 정리하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손해를 봤을망정 싸게 물건을 판 상인과 구입한 사람간의 인간적 관계는 남는 법이니까요. 결국 전통시장 안에서는 모두가 ‘윈윈하고 상생하는 법’을 배웁니다.

하지만 대형마트에서는 이러한 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구입하고자 하는 물건이 저렴한가 아닌가의 문제는 파는 사람과 구입하는 사람간의 일대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되었지만 이제 소비자는 대기업에 의해 결정된 상품가격을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으로 소비된다는 것입니다. 대형마트의 장점으로 거론되는 것이 싸고 저렴하다는 것이지만 이미 지역 상권을 쓰나미처럼 장악한 대형마트가 상품가격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불필요한 과잉구매를 유도하거나 용량을 줄이는 방식의 눈속임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어머니를 따라나선 전통시장의 구경은 정말로 풍성한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전주의 커다란 개천을 끼고 펼쳐진 장터에 들어서면 잔칫날 마당에 둘러쳐 있던 하얀 천막이 끝도 없이 줄지어 쳐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내 작은 발에 맞는 신발을 사기 위해 온 시장을 헤집고 다니며 가격흥정에 나섰습니다. 그사이 별 희한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지만 손에 쥐어준 달콤한 호떡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처럼 무엇보다도 지루할 틈이 없이 넘쳐나는 볼거리였습니다. 운 좋게도 시장 한구석에 펼쳐있는 약장수의 차력쇼나 원숭이의 재롱은 또 얼마나 신나는 구경거리였는지 모릅니다.


요즘 현대화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전통시장들이 과거의 다양한 문화적 컨셉을 차용한다 해도 하루의 장을 접는 상인들 머리 위에 켜있는 붉은 색 알전구와 팔리지 않는 꽁치 몇 마리를 팔아치우기 위해 떨이를 외치는 늙은 노점상의 쉰 목소리는 인위적으로 연출되거나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독일의 학자인 ‘알라이다 아스만’은 그의 저서 <기억의 공간>을 통해 “우리가 기억을 소홀히 한다 해도 그 기억은 결코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의 말대로 과거는 단순히 지나가 버리거나 망각되는 것이 아닙니다.

2013년 가을 부산기장의 식당을 찾았습니다. 6년 전 식사를 마치고 낮선 남자 분을 기다리던 바로 그 식당입니다. 이제 부산기장을 방문할 때마다 들르는 단골식당이 되었습니다.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아마도 식당주인의 넉넉한 친절 때문에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전통시장은 낡고 불결한 것으로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어도 주름살처럼 펼쳐있는 부산 기장시장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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