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절벽’이라는 공포의 가면극

[참세상 논평] 오바마가 그냥 져준 세금전쟁

2012년 연말, 미국에서 퍼져 나온 ‘재정절벽’ 이라 불리는 이상한 이름의 절벽이 전 세계를 달구었다. 말 그대로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이 절벽처럼 순간 뚝 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정부의 지출에 의해 유지되었던 경제가 다시 침체를 맞을 것이라는 경고라는데, 복잡한 사정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다시 세계적 공황이 닥칠 것이라는 뉴스가 귓가를 윙윙거리니 좀 심난했다. 그리고 곧 타결되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30포인트 넘게 상승하였다. 뭔가 일이 잘된 듯 다들 난리들이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니 부자들의 세금을 올리는 문제로 옥신각신했다고 한다. 미국 부자들의 세금 올리는 문제로 전 세계가 이렇게 호들갑을 떨어야 했나 생각이 드니, 무척이나 허탈해진다. 도대체 이 공포의 실체가 무엇인지 사뭇 궁금해진다.

1차 ‘세금전쟁’의 승리자 공화당

미국의 ‘재정절벽’을 둘러싼 공화당과 민주당의 갈등이 일단 일단락되었다. 올해부터 종료 예정이었던 감세정책의 일부를 유지하고 45만 달러(대략 5억 원)이상 고소득자에 한해서 세율을 35%에서 39.6%로 올리는 방안이 타결되었다. 그리고 연방정부의 재정 자동 삭감 조치는 2개월 연장되었다. 이 밖에 부유층의 재산소득 및 배당세율도 15%에서 20%로 상향조정됐고, 일정 액수 이상의 상속재산 세율도 35%에서 45%로 올리기로 했다. 아울러 장기 실업수당 지급 시한을 1년 연장하였다.

5억 이상 벌어야 세금 좀 내는 부자대열에 낄 수 있나 라는 생각을 하면 이번 협상이 어이없어 보이기도 하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부자들에게 세금을 좀 더 내게 했으니 공평한 결과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걷어 들일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따져보려고 하니, 이에 해당하는 인구가 0.7% 밖에 되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이 인구가 엄청난 부를 집중하고 있다면 그 만큼이라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1%에도 못 미치는 숫자를 보고 있자면, 안개 속에서 벌벌 떨며 한 발 내딘 결과가 좀 허망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딱 부러진 결론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이번 라운드의 결과는 허망한 건가? 부자증세 논의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급여소득세 감세조치 종료이다. 다른 핵심 사안이었던 급여소득세 2% 공제는 연장되지 않아 월급여의 4.2%에서 6.2%로 세율이 오를 전망이다. 이에 해당하는 가구는 전체 77%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중하위 소득가구들은 소득세 감면 효과가 전혀 없거나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산소득 많은 부자들과 달리 이들 중하위 소득 가구들의 주요 소득은 임금노동에 따른 급여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부자증세라기 보다 그냥 국민증세인 셈이다. 언론에서는 부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공화당이 좀 양보한 듯 보도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 임금소득이 연 5만 달러(5,500만 원)인 가구의 경우, 감세 조치 연장으로 소득세 1천 달러를 더 낼 필요가 없지만, 급여소득세는 오히려 1천 달러 추가 부과돼 사실상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

가히 정말 ‘세금전쟁’이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형국이다. 누구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끌어다가 국가재정을 메울지 뺏고 뺏기는 싸움인 셈이다. 일단 이렇게만 보면 공화당이 승리한 듯하다.

1라운드 땡, 2라운드 시작

호들갑스러웠던 1라운드는 이렇게 공화당의 승리로 종료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오바마가 그냥 져 준 것 같다. 세금논쟁에서만 보자면 말이다. 오바마의 입장에서 볼 때, 세수로 걷히는 건 다시 세출로 쓰면 되니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한 건가? 재정지출에 의한 경기부양을 강조하는 케인지언들의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세금으로 걷어서라도 한 푼도 남김없이 지출을 하는 것이 거시적인 경기부양에 있어서 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이들에게는 세금논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2개월 연장된 연방재정 자동 삭감조치와 부채한도 증액문제일 것이다.

원래 재정절벽은 이걸 염두에 두고 지어진 말이었다. 재정절벽의 본래 뜻은, 정부지출의 자동 삭감에 의해 민간소비를 대체해 왔던 정부지출의 커다란 공백이 생기게 되면, 순간 경제성장률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1라운드에서 벌였던 세금전쟁은 이후 벌어질 본격적인 재정절벽 2라운드의 ‘몸풀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다시 2라운드 공이 울렸다. 벌써부터 일각에서는 이번 합의가 매우 미흡한 조치에 불과하며, 이런 미봉책은 금방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다시 2011년 여름에 있었던 재정위기논쟁이 재현될 것이다. 이번엔 오바마가 절대 밀리지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공화당도 연방재정 자동 삭감조치 유예와 부채한도 증액에 있어서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군수산업과 밀접한 연계가 있는 이들의 입장에서 가장 큰 재정 감축이 예상되는 국방비 삭감은 피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아마도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의 의료개혁의 핵심인 ‘오바마 케어’에 대한 약간의 양보조치만 얻게 되어도 성공이라 생각할 것이다(물론 오바마 케어가 양보없이 시행되더라도 결국 돈을 버는 것은 민간의료보험회사다). 우리에게 보이는 이들의 가면극은 마치 세상이 금방이라도 절단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겠지만 말이다.

앞으로 두 달 후가 되면, 가면이 실체인지 가면 뒤에 숨은 얼굴이 실체인지 분간이 안될 만큼 우리는 또 한 번 공포 속 롤러코스터를 타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난 역사적 사실은 부채한도 증액은 62년 이후 75회나 있었던 일로 아주 흔한 일이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빚으로 지탱해온 부채경제의 역사였다. 지금 미국 국채 이자율은 역대 사상 최저로서 매우 낮다. 국채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데 있어서 유럽의 위기국가들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여건이 좋다. 그래서 우리에게 강한 의문이 든다. 도대체 공포의 실체는 어느 것인가? 재정절벽이라는 가면인가? 아니면 가면 뒤에 숨어서 아직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얼굴인가? 두 달 후 가면극이 끝날 쯤, 그 얼굴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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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절벽 ,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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