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만나는 마을

[최인기의 사진세상](21) 서울 홍제동 개미마을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카메라를 챙겨들고 홍제동 개미마을을 찾았습니다. 눈 내리는 정경이 퍽 아름다울 거라는 기대감이 카메라를 들고 나서게 하였습니다. 지하철 3호선 홍제 전철역에서 내려 1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오후가 되어도 그칠 줄 모릅니다. 마을버스 7번에 올라타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옆에 앉은 아주머니께 개미마을의 유래에 대해 잠시 여쭤봤습니다.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은 1983년부터랍니다. 전에는 인디언마을이라 했지만 마을 사람이 붙인 이름은 아니라 하네요. 오래전 천막을 치고 산다고 해서 인디언마을이라고도 했다가, 한때는 황금마을이라고도 했지만 이제 많은 사람들이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답니다. 자연스럽게 개미처럼 주민들이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에서 붙여졌다는 식으로 마을 이름이 해석되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개미마을은 주민 420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달동네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곳도 다른 지역에서 철거를 겪고 이주해온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사실상 마을 전체가 무허가 건물입니다. 개미마을도 오랫동안 개발과 보존의 경계에 서 있다가 2009년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는 개미마을 3만4611㎡에 대해 `제1종지구단위계획 변경 및 지구단위계획 결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리고 2012년 주거환경관리사업 후보지로 선정됐으며, 그 후 지역주택사업조합이 결성되었습니다. 현재 이 지역에 아파트를 제외한 용적률 최대 150%를 적용해 4층 이하 단독주택 및 공동주택을 건설한다는 계획입니다.


이제껏 방문했던 달동네에 비춰 개미마을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맨 꼭대기 마을버스 종점에서부터 천천히 아래를 향해 내려오면 어느덧 마을입구에 다다르게 됩니다. 눈 내리는 언덕을 기어서 마침내 도착한 개미마을은 인왕산 밑에 포근히 둘러싸여 아늑하게 느껴졌습니다. 조금은 남루해 보이는 오래된 집과 건축물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마을은 자그마한 구멍가게가 있는 버스정류장을 기점으로 좌우로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져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마을을 살펴보겠다는 생각에 가로질러 대각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걷다가 멀리 눈 내리는 마을의 정경을 바라 봤습니다. 길은 미로처럼 얽혀있지는 않지만 산비탈에 들어선 탓인지 경사도 가파르고, 몇 걸음만 떼도 숨이 목까지 차오릅니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 입니다. 금호산업에서 지원하는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들이 그해 여름 '빛 그린 어울림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문화마을 가꾸기에 나섰던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 후 디지털카메라의 붐에 맞춰 인터넷에 개미마을 사진이 올라오면서 출사장소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사진 속의 정겨운 강아지 그림은 이제는 마을의 벽화로 유명한 그림이 된지 오래입니다. 한때는 2010년 개미마을을 보존해 영화·드라마 촬영지 등 문화특구로 만들 방침이라는 서대문구의 입장도 있었습니다. 개미마을에 새롭게 변화를 줌으로써 마을을 보존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이밖에도 최근까지 도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도시탐방 프로그램이 개최되거나 마을 만들기를 추진한다는 계획도 들려왔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계획과 지원이 모색되었지만, 이러한 결정들이 과연 마을 주민과 제대로 소통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시 주거환경과에서 “철거를 통한 재개발보다는 원래 살던 사람이 그대로 살게 하는 게 사업의 목적"이라며 "집수리 비용을 융자해주고, 공용 주차장을 확보하는 등 일상적으로 지역을 관리해주는 방식으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이 마을의 운명은 조합을 중심으로, 개발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가 앞으로의 관건입니다.


작은 마을에 구멍가게가 세 개나 있습니다. 모두 오랜 세월 마을을 지키며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담벼락에 커다란 거북이가 그려져 있는 ‘버드나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눈 내리는 날 카메라를 든 낯선 손님이 들어서자 가게 주인은 당황한 모습입니다. 사발면을 주문하자, 주인은 연탄난로 위에서 펄펄 끓고 있는 주전자 안의 뜨거운 물을 사발면에 가득 부어 줍니다. 나이를 여쭤 보니 닭띠라고 하십니다. “저희 아버님도 부평에 사시는데 동갑이시네요” 라며 말을 이었습니다. 주인께서는 평택 근처에서 사시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1979년도에 홍제동으로 오셨답니다. 그러니까 벌써 이곳에서 30년도 넘게 장사를 해 오신 겁니다. 조용하던 구멍가게에 갑자기 찾아든 손님의 수다에 가게주인은 차츰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여기는 교통도 좋고 서울이지만 뒤에 인왕산이 버티고 있어서 공기도 참 좋아. 다 좋은데, 개미마을이 사업성이 높지 않아서 건설회사가 붙으려고 하지 않아. 그런데 뭘 찍을 것도 없는데 왔어” 가게주인은 집안의 남루한 속사정도 털어놓습니다. 자녀 3남매는 모두 다른 곳에서 살고,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집수리를 하시다 작년에 몸을 다치셨다는 겁니다. 오래전 구청에서 영화촬영 마을 만들려던 계획은 어떻게 되었냐고 묻자, 주민 반대로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촬영하러 온 차가 그만 사고를 내서,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이 싫어한답니다.

“가게는 보통 몇 시에 닫으세요?”
“아침 7시에 열어서 저녁은 10시 반 즈음 닫지”

“저희 장인 장모님도 대전에서 구멍가게 하시는데 감옥생활 하신다고 해요. 매일 가게에 갇혀 있으시니...”
“저 밑에 잠시 살다가 79년도에 이곳에 왔어. 그 후에 우리 집 위로 노랑봉투가 나왔지. 모두 다 철거를 하려 했는데 우리가 막았지”

“그때도 마구잡이로 개발하고 그랬는데, 어떻게 막았어요? 커피도 하나 주세요. 찐 달걀하고요. 없어요? 머리도 하야시고 눈썹도 찐하시고 정정 하시네요“
“다 먹었으면 언능 가. 나 화장실 가야해”

주민들은 개발한댔다 만댔다가 이랬다저랬다 하니까 이제는 마을인심도 흉흉해졌다고 합니다. 버드나무 가게 주인은 하루속히 이 마을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삐거덕거리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보니 얼마 전까지 정성스럽게 가꾼듯한 화단 위로 함박눈이 탐스럽게 내립니다. 개미마을이 내리는 눈에 의해 정갈하게 새단장을 한 모습입니다
그러고 보니 과거에 골목은 그냥 골목이었습니다. 하늘이 하늘이고 땅이 땅이듯이, 골목도 대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서면 펼쳐져 있는 길, 그게 바로 골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골목이라는 단어가 점차 생소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영화 세트장이나 혹은 특별한 곳을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바뀌었습니다. 골목다운 골목을 만난다는 게 정말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변한 것도 오래 동안 서서히 바뀐 것이 아니고, 정말 순식간의 일이 되어, 작정하고 골목길을 찾아나서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대로변을 향하고 있는 담에 접한 나무대문을 밀고, 노인 한분이 손에 빗자루를 손에 쥔 채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눈을 부지런히 쓸기 시작하십니다. 눈발이 약해졌어도 또 쌓이기를 반복합니다. 이 마을이 그동안 어떻게 변해왔는지 잘 아실 거 같아 몇 마디 여쭤 보았습니다. 모자와 장갑으로 무장한 노인은 올해 여든이 넘으셨고, 이곳 마을에서 40년 정도 생활하셨다고 합니다. 남매를 두고 계시지만 지금은 홍제동 개미마을에 혼자 사십니다.

이 마을이 앞으로 어떻게 될 거 같냐는 질문에 일단 개발에 반대하시는 눈치십니다. “현재 가진 집이 40평 정도 되는데 30평짜리 집이 들어서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겠어? 그냥 고쳐서 사는 게 마음 편하지. 조합이 추진되고 있어도 고도가 제한되어서 제대로 개발이 될지 몰라. 요즘 부동산 경기도 안 좋고, 잘못 개발되었다가 자기 집마저 어찌 될지 모르지. 저기 아랫마을 홍은동 호박골 있잖아. 거기는 조합에 찬성하면 거지된다고 그러잖아”


몇 년 전만 해도 서울 거주 가구의 15% 이상이 뉴타운 재개발사업의 영향권에 있을 정도로 개발광풍에 휘말린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대규모사업이 중대형 아파트 위주의 공급으로 이어져, 원주민 80% 이상이 살던 곳에서 밀려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후 서울시 주거환경개선자문위 통계로도 전세가 4천만 원 이하 주택이 개발 전 86%였으나, 개발 후 그런 전셋집은 사라지고 인근의 전셋값이 폭등하였습니다. 도시세입자들에게 커다란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개미마을의 주민들 사이에도 개발 요구가 있지만, 주저하는 분들도 많아 보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최저주거기준’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2003년 주택법 개정으로 법제화되었지요. 하지만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서울시 저소득가구 34%가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에 살고 있답니다. 소득대비 임대료 비율이 30%를 넘는 저소득가구가 51%에 달할 정도로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최저주거기준미달 가구를 개선할 강력한 법적 수단이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참조해서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수준이어서 실효성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개미마을과 같은 주거취약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회적으로 공공임대주택 등이 시급히 확대되어야 합니다.


마을 중간에 동래슈퍼가 있고, 그 앞에 마을버스 정류장과 작은 가로등이 서 있습니다. 달동네에 불이 하나둘 들어오면 이제부터 다른 세상이 펼쳐집니다. 호젓한 마을의 집집이 창가에 불이 들어오자 하얗게 쌓인 눈과 어우러져 더욱 아늑해 보입니다. 동래슈퍼에는 70대 후반의 두 노인이 오붓하게 가게를 지키고 계십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녀분이 안부 차 전화를 하였나 봅니다. 몸이 편찮으신지 누워 계시던 할머니는 걸려오는 전화가 반갑다는 듯 고쳐 앉아 수화기를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눈 치우고 보일러 고친 이야기, 손주 소식에, 아침에 늦게 일어난 할아버지 흉까지 이것저것 이야기가 많아 보입니다.


빙판길을 힘겹게 오르며 부릉부릉 마을버스가 도착합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주민들을 내려놓고 마을버스는 종점을 향해 또다시 달려갑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 이곳에서 일터로 떠나기 위해 서성였을까요? 비가 오는 날에는 우산을 받쳐 들고 가족들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오늘 같은 날에는 구멍가게에 들려 따뜻한 호빵이라도 손에 쥐고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 서둘러 집으로 발길을 돌렸을 것입니다. 이제 질기고 모질게 살아온 사람들이 걷는 길 위로 종일 쌓이던 눈이 그쳤습니다.

다음에 소개할 곳은 서울 중계동 본동의 백사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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