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 앞에 상주하는 민달팽이들은 지쳐 있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쌍용자동차 국정 조사를 수용했지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흐지부지됐다. 무급휴직자 중 일부가 복직하는 성과도 있었지만, 해고자는 복직 대상이 아니었다. 지난한 과정을 거친 후 쌍차 문제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사그라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4월 분향소마저 철거된 후 쌍차 해고자들은 맨 바닥에서 한잠을 자야했다.
해고자 신분으로 벌써 5년째. 묵묵부답인 회사를 상대로 쌍차 해고노동자들은 또 한 번의 여름을 맞았다. 올해 장마는 유난히 비가 잦았다. 한 밤 중에 비가 들이치면, 노숙투쟁을 벌이고 있는 쌍차 해고노동자들은 대한문 처마 밑으로 몸을 피했다. 폭우라도 오는 날에는 대한문 처마 아래서 발을 동동 구르며, 물에 잠긴 분향소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만 했다. 해고노동자들은 길고 길었던 이번 장마를 이렇게 견뎠다.
정작 쌍차 해고노동자들을 지치게 만든 것은 날씨가 아닌 경찰의 과잉대응이었다. 지난 4월 경찰이 대한문 앞에 화단을 조성한 이후 경찰과 쌍차 해고자들은 꽃밭 앞 평방 2.5m를 사수하기 위해 충돌을 벌이고 있다. 지난 22일 서울행정법원에서 대한문 화단 앞 옥외집회제한통보처분의 효력을 정지 결정한 이후, 쌍차 측과 경찰의 충돌이 격화됐다.
25일 집회를 주간한 민변 노동위와 쌍차 측은 “합법적으로 집회 허가를 받은 공간에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설치해 집회를 방해하고 있다”며 항의했다. 이 과정에서 집회참가자인 민변 측 변호사와 민주노총 조합원이 연행됐으며, 집회가 끝난 11시경 집회를 참여했던 한 시민이 홧김에 폴리스라인을 걷어차 연행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 쌍차 해고노동자는 “문제를 발생시킨 장본인인 쌍용자동차와 정부가 결자해지 하면 될 일인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조사 약속조차 지키지 않았다”고 조속한 해결을 촉구했다.
밀어내려는 경찰과 밀리지 않으려는 농성자들
“투쟁이 길어지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해고노동자들은) 움직이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게다가 대한문 앞 방화사건 이후로 경찰이 노골적으로 집회를 방해하고 있고, 다들 예민해졌고, 분노가 차있는 상태입니다”
농성을 함께 하고 있는 신영철 씨의 말이다. 쌍차 해고자들과 농성자들은 남대문경찰서 경비과장을 ‘대한문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쌍차 측은 경비과장이 법해석과 법집행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대통령과 다름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신씨는 경찰이 지난 몇 달 동안 해고노동자들과 농성자들을 끊임없이 괴롭혔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시민들이 사망한 쌍차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분향소에 가져다 준 꽃이 많으면 트집을 잡거나 뺏어갔다고 한다. 비오는 날에 파라솔 설치를 불법 집회 도구로 간주해 설치를 막거나 우산을 뺏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집회 때 사용할 플래카드는 신고를 안 했다는 이유로 뺏겼고, 시민들이 사망한 쌍차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가져온 음식은 양이 많다는 이유로 뺏기기도 했다.
신씨는 “정말 유치하게 굽니다. 경찰은 대한문에서 쌍차의 흔적을 지워버리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요즘은 좀 덜해졌지만,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많이 지쳤다”고 말했다.
쌍차 농성장에 자주 오는 한 시민은 “화단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서 경찰이 이렇게 지키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농성장에 오는데도 경찰들과 마찰로 힘들다. 매일 같이 상주하는 해고자들은 정말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맨 바닥에서 잠을 자는 민달팽이
현재 쌍차 농성장은 천막이 아닌 대한문 앞 맨 바닥이다. 농성자들은 잘 때는 깔개를 깔고 자고, 평소에는 맨 바닥에 앉아서 지낸다. 쌍차 농성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텐트라도 있다면,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대한문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는 것만으로 힘에 부쳐서인지 현 상황을 체념하는 듯 했다.
해고노동자인 김수경 씨는 “내가 쌍차 농성장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전설이다”며 “서울 하늘 아래서 어디서 이렇게 잘 수 있나. 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여기서 지내는 덕분에 서울 구경 실컷 할 수 있다. 자는 동안 경찰들이 지켜주니까 좋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해고노동자들은 특별한 일정이 없는 이상 오전과 오후에 해고자 전원이 대한문 앞을 지킨다. 3일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대한문 앞에서 밤을 샌다.
이 날 밤 해고노동자들 사이에서 휴가 얘기가 화제가 됐다. 휴가 계획을 묻자 다들 시큰둥했다. 해고노동자인 박 모 씨는 “쌍차 문제 때문에 5년 동안 휴가 한번 가지 못 했다”며 “어디로 가고 싶은지 생각해본 적은 없고, 그냥 떠나고만 싶다”고 말했다.
새벽 2시. 대한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질 무렵에는 4차선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의 소음과 취객들의 고성만 들렸다. 취객 몇몇은 농성장 앞을 지나가면서, 시비를 걸거나 욕을 했다. 한 취객은 농성장을 지나다 “중국에서 오신 여행객이냐”고 묻고, 농성장에 앉아 한참 동안 술주정을 했다.
한 해고노동자는 “농성장을 지나가다 분향소에서 향을 피워주고 가시는 분도 있고, 음식과 음료수를 가져다주시는 분도 있다. 고마운 분들이다. 반면 매일 같이 욕하고, 화내고 가는 취객들이 많다. 그런 분을 만나면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해고노동자들은 취객들이 떠난 후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소음과 모기로 인해 쉽게 잠을 자지 못했다. 대부분 누워서 스마트폰을 만지거나, 잠을 자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 화단 앞을 지키는 19명의 경찰 중 몇 명은 연방 하품을 했다.
쌍차 농성장에서 함께 잠을 잔 기자는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 달이 동쪽으로 질 때까지 한참 동안 바라봤다. 콧속으로 도시의 먼지들이 들어와 찝찝했다.
민달팽이들, 공장과 경찰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여기서 자면 자는 게 아니라 뜬 눈으로 아침까지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날씨가 조금 바뀌어도 잠자리가 엄청 바뀐다. 그나마 장마가 끝나서 다행이다”
‘잠을 잘 잤냐’는 물음에 김수경 씨는 이렇게 답했다. 한잠을 잔 터라 해고노동자들은 3시간 밖에 안 잤음에도 쉽게 일어났다. 잠자리를 정리하는데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정리가 끝난 후 식사를 하러 웰빙분식으로 갔다.
대한문 인근에 있는 ‘웰빙분식’은 해고노동자, 경찰, 건설노동자들이 아침식사를 하러 자주 찾는 식당이다. 해고노동자들은 한 달에 한번 밥값을 정산한다. 해고노동자, 경찰들 모두 삶의 자리를 벗어난 이들이 간밤의 허기를 채우러 ‘웰빙분식’을 찾는 셈이다. 이들은 언제쯤 대한문을 떠나 공장으로 경찰서로 돌아갈지 문득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