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전쟁의 새로운 국면과 양적완화의 정치학

[주례토론회] 채권의 지배와 부채전쟁

[편집자주-토론내용]

‘빚테크’가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 부채공습

5년 전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덮치기 직전으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세계에서 개방도가 높은 나라들 대부분에서 각종 금융상품이 삶의 일상을 지배했었다. 우리나라도 당시 2008년 6월 펀드 계좌수가 2천500만 개에 이르렀는데, 얼핏 산술적으로만 계산해 보면 어린이와 고령자들을 제외하고 모든 대한민국 성인들 하나씩 펀드에 투자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어느 동창회 모임을 가도 금융업에 종사하는 친구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고, 저녁 식사 후 노후 대비를 위한 부부간의 진지한 대화도 어디에 투자해 돈을 불릴 수 있는지에 관한 솔깃한 정보들이었다.

아마도 그 중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는 부동산, 정확히 말해 아파트였다. 대한민국 계층상승의 징표였던 아파트의 가격은 2006-2007년을 정점으로 도저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급등했고, ‘버블세븐’이라는 말이 버젓이 공중파 헤드라인 뉴스 카피로 등장했다. 부정적 이미지의 버블이라는 말조차 이젠 당연한 말이 되다시피 받아들여졌고, 여기에 편승하지 못하면 영영 내 집 장만의 꿈은 멀어져 갈 것만 같은 사회분위기가 우리를 감돌았었다.

이제 2013년으로 돌아와 보자. 부동산 열풍은커녕 집을 처분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하우스푸어가 100만에 이른다. 잘 나가던 펀드수익률은 마이너스로 내려 앉은 지 오래다. 뭔가 안락한 미래를 보장해 줄 것 같았던 그 무엇들이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빈자리엔 가계부채라는 공룡이 맨 얼굴을 드러냈다. ‘하우스푸어’, ‘전세푸어’, ‘에듀푸어’ 등등 각종 ‘푸어족’들이 쏟아졌고 자산효과에 의해 가려져 있던 부채의 대대적인 공습이 시작되었다.

이런 가운데 새로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과다채무자들의 부채탕감과 각종 부동산 경기부양정책을 통해 상황을 반전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부채탕감의 대상과 범위, 효과를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고 있고, 감세부양책으로 경도된 부동산 대책은 세수감소로 고통 받는 지방정부로부터 극심한 반발을 사고 있는 형국이다. 8.28 전월세대책 마저도 빚내서 집을 사도록 유도하는 ‘폭탄돌리기’ 게임으로 변질되었다.

가계만이 아니다. 정부도 급격히 늘어난 공기업부채를 감당하기 버거워 균형재정을 강조하고 있으며, 일부 지자체들은 파산 위기마저도 거론되는 상황이다. 건설, 조선, 해운 업종의 부실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 부도위기에 몰리고 있다. 모두들 빚이 파논 함정에 허우적거리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 원칙대로 모두 파산시켜버리면 해결될 일인가, 누구도 그렇게 쉽게 말을 하긴 힘들다. 그 고통이 어떤지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공평하지 않다. 힘이 없는 과다채무자들에게는 이자를 낮춰 줄테니 끝까지 갚아야 한다고 요구하면서도, 휘청거리는 기업들에게 지역경제의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며 정부가 나서 회사채를 매입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채권-채무관계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그래서 빚의 청산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지는 셈이다.

이번 주례토론회에서는 빚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 부채전쟁의 원인과 양상을 짚어보고자 한다. 아울러 미국 중앙은행인 연준의 ‘양적완화정책’에 대해서 그 효과와 본질은 무엇인지, 그리고 양적완화축소 논란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재 국면에서 새로운 혼란과 갈등은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해보고자 한다.

1. 부채의 본질과 부채-자산 경제의 몰락

이자가 채권자가 바라본 금융의 모습이라면, 채무자가 바라보는 금융의 모습은 무엇일까? 우리가 빚을 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얻고자하는 목적은 동일하다. 미래에 그것도 충분한 소득이 있었을 경우에만 가능한 일을 지금 당장 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20년 넘게 돈을 모아야만 살 수 있는 집을 빚을 내고 사게 되면 20년 동안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누릴 수 있다. 물론 원금과 이자를 다달이 내면서 말이다. 반짝이는 사업 아이디어는 있는데 돈이 없다면 빚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킬 수 있다. 즉 시간이라는 장벽을 뛰어 넘어 미래소득을 조직할 수 있는 힘을 우리에게 부여해 준다. 그래서 부채는 곧 자산이 되기도 한다. 채권자에게 원리금 모두 되돌려 줄 여건만 지속되면, 채권-채무관계는 서로가 ‘윈윈’하는 평온한 관계가 된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거슬러 미래의 소득을 현재로 당겨왔지만 신이 아닌 이상 그 소득을 미래에 실현할 수 있다고 보장할 순 없다. 그래서 채권자는 채무자를 감시하고 약속위반 시 상응하는 담보물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채권-채무의 관계는 권력관계이며, 어떤 힘에 의해 지탱되어야만 작동될 수 있다. 그리고 이 권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은 때론 초법적 조치까지도 강제할 수 있다. 지난 97년 외환위기 당시 깡드쉬 IMF 총재가 우리나라의 주권을 좌지우지 했던 걸 기억해 보자. 세계화폐를 달러로만 해야 한다는 명문화된 법이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고갈된 우리는 구제금융을 대가로 온갖 이행조치들을 약속해야만 했다. 자본시장 개방, 노동시장 유연화, 국유자산매각, 공공부문 민영화 등등. 그리고 이런 약속이행은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질서를 송두리째 바꿨다. 이렇게 채권의 지배는 단순하게 돈을 되돌려주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채무자로 하여금 특정한 방법으로 움직이도록 강제한다.

부채가 가지고 있는 이런 양면성 때문에 한편에서는 부채를 양산하면서 경제규모를 키우는 ‘부채-자산’ 경제가 등장하고,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부채 청산을 둘러싸고 극심한 갈등이 벌어진다. 2008년 이후 현 국면은 부채 청산을 둘러싸고 세계 곳곳에서 갈등이 확대되는 단계에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 경제일간지에 자주 등장했던 ‘레버리징’(차입을 통해 자산을 늘리는 방식)라는 말은 온데 간 데 없어졌다. 그리고 그것의 반대말인 ‘디레버리징’ 혹은 ‘빚 다이어트’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러나 새로운 부채를 늘려야만 성장할 수 있는 ‘부채-자산’ 경제는 부채 축소라는 현실에서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부채를 늘리기 위한 경쟁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다시 등장한다. 전 세계적인 초저금리 정책은 경제주체로 하여금 돈을 쉽게 빌리도록 하는 조치이며, 지난 MB정권과 이번 정권에서 부동산 대책으로 자주 거론되는 대출자격완화와 세금감면 역시 새로운 부채를 통해 추락하는 자산 가격을 부양하려는 조치들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이 예전만큼 커다란 효과를 보고 있지 못하다. 아무리 싸게 빌려준다고 한들 성장률의 하락과 정체가 지속되는 장기불황국면에서 실물부문에 과감한 투자를 할 사람은 별로 없다. 또한 과다부채로 곤란한 상황에 빠진 가계들도 다시 부채를 일으켜 부동산 거품에 편승할 여력은 없다. 중앙정부도 재정규율에 묶여 운신의 폭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은 중앙은행만이 발권력을 이용하여 돈을 공급해주고 있다. 바로 양적완화라 불리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이다.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 (19) 참조)

2. 양적완화에 편승한 글로벌 투기자금과 신흥국 금융위기

그런데 이런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 등의 조치들로 풀린 돈들이 목적과 달리 중앙은행 통장으로 다시 되돌아오거나, 의도했던 실물투자로 가지 않고 글로벌 금융시장을 따라 뱅뱅 돌고 있다. 더구나 양적완화의 부양조치에 편승한 투기자금들마저도 글로벌 금융시장으로 다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산가격을 부양시키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주요 금융시장만 보면 이미 2008년 금융위기 이전으로 되돌아 간 상황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사상최고치를 갱신했고, 채권가격도 사상 유래 없이 높아졌다. 하지만 현 세계경제가 활황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전히 실물부문은 장기적인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런 양극화가 심화되었을까? 잠시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의 현실을 들여다보자. 거미줄처럼 겹겹이 얽혀 있는 글로벌 금융시장은 IT통신기술에 힘입어 이미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 컴퓨터 앞에서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도 전 세계 자금들은 국경을 넘어 순식간에 이동한다. 마치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 불렸던 19세기 대영제국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미 전 세계를 자신의 영토로 만들었다.

그런데 이 영토는 반드시 실물부문의 뿌리를 두고 있어야 제대로 설 수 있다. 그래서 성장잠재력과 함께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비껴있었던 신흥국들로 글로벌 투기자금들이 수 년 동안 몰려들었다. 몇몇 신흥국들의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은 폭등했고, 세계경제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신흥국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뉴스가 경제면을 메웠다.

그러나 수출로 돈 버는 구조인 신흥국들에게 서구선진국들의 장기 침체는 수출시장의 축소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다. 잠시 수 년 동안 부풀어 올랐던 거품은 최근 성장률 둔화와 함께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양적완화 축소논란을 계기로 ‘옥석가리기’가 시작됐다. 경상수지 적자와 외환보유고에 약점이 있는 몇몇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투기자금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통화가치가 폭락하고 있다.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등등

그러면 왜 양적완화 축소논란이 신흥국들의 금융위기를 부를까? 앞서 말한 것처럼 한 덩어리가 되어 있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일종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것이 양적완화이다. 미국 중앙은행의 채권매입으로 매달 800억 달러의 현찰이 금융시장에 쏟아지는데, 이 돈들이 수익률을 쫓아 다른 금융자산 구매에 사용된다면 누구라도 자산 가격의 급락은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풍부한 자금공급에 기댄 안정심리와 이에 편승한 투기자금까지 가세하면 실물부문의 회복 없이도 금융시장의 호황이 발생한다. 흔히 주식시장에서 말하는 ‘유동성 장세’이다. 이런 ‘유동성 장세’는 실물부문의 성장에 의한 ‘실적장세’ 옮겨가지 못하면 그 거품은 꺼지고 만다. 지금까지는 미국 중앙은행이 실물부문의 회복이 미약하다는 이유로 양적완화 조치를 계속 취해왔다. 즉 ‘유동성 장세’를 지탱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조치를 중단하고 장기적으로 서서히 출구전략을 고려하겠다는 플랜을 발표했으니 당연히 투기자금의 불안 심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어물정 거리다가 상투 잡지 말고 빨리 차익실현하고 빠지겠다는 심리가 너도 나도 발동하면 결국 금융시장의 급락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신흥국의 경우 외환시장의 동요까지 가세하여 급락을 더욱 가속화 시키는 마이너스 피드백 현상이 발생한다. 아래 그림설명에서 보듯, 환차손까지 고려한 금융시장의 투기자금은 이중의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더욱더 빠른 속도로 신흥국에서 빠져나오려 한다.


3. 해소되지 않는 부채위기, 누구에게 전가시킬 것인가

그럼 이제 정리해 보자.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물경제의 심대한 타격이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쳤다. 그런데 2000년대 세계경제는 부채에 의한 성장과 그것의 자산효과에 기댄 성장이었기 때문에, 경제 주체들의 연달은 채무위기는 당연히 실물경제를 지탱했던 자산효과를 상쇄시켰다. 심지어 마이너스 자산효과에 의해 실물부문의 돈은 모두 부채 축소를 위해 빨려 들어갔고, 실물부문의 돈가뭄, 즉 디플레이션은 더욱 가속하였다.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주택가격이 폭락했던 현상을 우리는 5년 동안 지켜보아왔다.

그리고 미국은 비전통적 통화완화정책까지 도입하면서 상황을 반전시키려 하였다. 양적완화 조치의 명시적 목표는 국채매입을 통해 국채금리를 하락시켜 이에 연동된 모기지 금리의 하락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모기지 금리 하락의 목표는 모기지 채권발행을 용이하게 만들어 모기지 시장을 안정화시키고, 그 여파로 전체 채권시장의 안정과 주택가격부양을 이루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만약 이것이 뜻대로 성공한다면, 다시 가격 상승에 기댄 자산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이것이 실물경제를 부양하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주택가격을 다시 부양하려는 의도는 실패했다. 아직도 미국의 가계들은 빚의 줄이기 위한 과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집값은 고점대비 40% 하락한 채 횡보하고 있다. 다만 금리하락으로 인해 이와 반비례로 계산되는 채권가격만 상승하였다. 그리고 채권시장의 안정과 풍부한 유동성은 앞서 지적한 대로 글로벌 금융시장을 부양하는 역할을 하였고, 의도치 않게 신흥국 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처럼 부채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취한 역내 조치가 역설적으로 역외 금융 불안정을 야기하는 사태로 발전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지난 5년 동안 양적완화가 수행한 역할은 금융시장을 안정화시키고 시간을 벌기 위한 ‘가면극’이었다. 이제 절반의 성공을 거둔 이 ‘가면극’은 서서히 무대 조명을 끄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의 의도는 지나친 과열도 막고 예상치 못한 급락도 제어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선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벌어지면서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동요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혼란은 국제적인 권력관계에 의해 불균등하게 벌어진다.

그런데 그 권력의 증표가 바로 아이러니 하게도 위기의 주범이었던 달러이다. 이 증표가 없는 나라들은 대외 무역에서 심대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항상 신흥국의 위기는 외환위기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 해결방식은 다시 달러패권에 종속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우리도 겪었던 IMF가 바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해결사’이다.

4. 몇 가지 논쟁의 지점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쟁점들을 살펴보자.

먼저 국가부채를 둘러싼 잘못된 관념이다. 기업이나 개인들의 부채와 달리 국가부채는 독특한 성격을 지닌다. 국가로 하여금 채무약속을 강제하는 상위개념의 그 무엇이 법률적 형태로 존재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국채를 들고 있는 채권단 그룹과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얼마 전 그리스 국가채무위기사태에서 보았듯, 이들은 한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갈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왜 국가의 운명이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부채를 지는 이유는 돈을 얻기 위함인데 그 돈은 누가 발행하는가? 바로 중앙은행이 발행한다. 그런데 그 중앙은행은 누구에 의해서 그런 힘을 보장받는가? 바로 국가이다. 이야기인즉슨 국가가 스스로 만든 돈을 얻기 위해 국가 외부에 존재하는 신용평가사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꼴이다.

국가가 부채를 지는 방법들 중 하나가 중앙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오는 것이었다. 중앙은행의 국채이자수입은 행정부로 귀속되기 때문에, 결국 국가가 직접 화폐를 발행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방법은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세계화되기 전에 제한적으로 통용되었던 방법이다. 그러나 80-90년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부각되면서 이러한 방법을 금기시하게 되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채시장을 통해 부족한 재정을 조달한다. 이러한 제약의 근거는 관료들의 이기적이고 부패한 목적에 의해 화폐가 남발되는 것을 막고 화폐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다. 일면 타당한 지적이긴 하다. 화폐가치의 불안정으로 인해 경제 질서가 파국을 맞은 역사적 사례는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문제는 그 제약의 주체가 주권 밖에 존재하는 IMF와 국제신용평가사들이라는 점이다. 화폐주권의 주체인 민중들은 어디에도 없다. 화폐가치의 안정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건 화폐를 만져볼 겨를도 없이 통장에서 카드대금이 빠져나가는 서민들의 삶이다. 이렇듯 현실에 존재하는 돈은 언제나 불균등하며 누군가에게로 쏠려 있다. 결국 자신들의 주권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이 되레 자신들을 소외시키는 꼴이다. 화폐가치의 안정은 모두가 대체적으로 합당한 만큼 화폐를 보유하고 있을 때 서로에게 득이 되는 얘기다.

그래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의 근거가 되고 중앙은행의 핵심 목표로 설정된 화폐가치 안정이라는 언명은 자칫 우리를 금융권력의 노예로 빠트리게 만드는 우를 범하게 만든다. 이들이 주창하는 국가부채에 관한 보수적 시각은 주권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불공평한 ‘허리띠 졸라매기’를 강요하고 ‘복지망국론’과 같은 허상에 매달리게 한다.

정작 중요한 건 국가부채를 통해 조달된 돈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이다. 즉, 생산과 분배에 대한 사회화 전략을 통해 화폐를 적절하게 통제할 수 있는 순환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이다. 이것 없이 재정만 쏟아 붓는 건 자본주의의 권력관계 하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세력들에게 고스란히 돈을 갖다 바치는 꼴이 된다. 지난 MB 정권에서 20조를 들인 4대강 사업을 보면 알겠지만, 그건 대기업 건설사만을 부양시키는 토건사업이었다.

그래서 화폐는 특정한 이념에 의해 보존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다스려야 할 대상이다. 그럴 때 비로소 한발 더 나아가 화폐를 전화시키고 부채경제의 구조를 변혁시킬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쟁점은 ‘불확실성’을 상품화시킨 자본의 전략이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부채-자산’ 경제가 몰락했던 이유는 미래가치를 현재로 이동시켰던 부채의 힘이 앞으로 발생할 불확실성을 모두 제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학적 확률에 의해 계산된 ‘부채-자산’ 경제의 ‘자산평가모형’과 ‘리스크평가모형’ 등은 그 자체로 인과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계산과정은 맞다 하더라도 전제와 현실을 반영한 조건에 오류가 있다면 결과는 잘못 계산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설파한 이념은 미래를 계산할 수 있다는 오만함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오만함은 2008년 금융위기 시 각종 파생금융상품이 부도나면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러면 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에 자신의 삶을 의탁했을까? 바로 ‘리스크’, ‘불확실성’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두려움이다. 당장 내일 교통사고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우리로 하여금 보험에 들게 만든다. 나이 들어서 소득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연금과 적금을 들게 만든다. 그리고 정확히 계산된 가격으로 미래소득을 보장받을 때, 우리는 안도한다. 이건 투기하고는 상관없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기에, ‘리스크’가 꼼꼼히 계산된 견적서가 우리에게 주는 파급력은 상당한 것이다. 자본의 이러한 전략은 성공했고, 이에 기초하여 모든 제도와 삶의 영역을 재편했다. 가령 노동자로 하여금 잘릴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파업투쟁 대신, 확실한 수익과 미래를 보장해주는 부동산과 펀드로 눈을 돌리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 신자유주의의 핵심이념이었던 이런 논리들은 이제 모든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받기 시작했고, 그 토대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모두들 혼란에 빠져 있다. 그러나 이 혼란은 ‘불확실성’에 기인한 근원적인 요인으로부터 나오는 혼란이여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찌 보면 ‘양적완화의 정치학’이라는 게 이 혼란함을 관리하는 데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망가진 이 시스템을 지키기 위한 플레이어로서 중앙은행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전 세계 모든 이들이 버냉키의 입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자산시장의 출렁거림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으로서 ‘금융억제’만을 이야기 하는 건, 현실에서 기대했던 바에 못 미칠 수밖에 없다. 앞서 말한 바처럼 화폐라는 것이 우리가 적극적으로 다스려야할 대상이라면, 금융역시 신자유주의적 퇴행으로부터 떼어내 새로운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전화시켜야 한다. 금융을 억제하면 자연스레 실물부문과의 균형과 맞춰질 것이라 가정하는 건, 주류경제학이 신봉하는 일반균형의 논리와 별다를 바 없다. 실물부문의 영역도 불균형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역사 속에서 확인되었던 수많은 주기적 공황들이 그 증거들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최근 자본통제를 위해 외환거래에 과세를 했던 브라질이 다시 과세를 폐지했다. 양적완화 축소논란으로 금융시장이 동요하면서 헤알화가 급락하자 황급히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처럼 외환시장의 동요에 목줄이 잡혀 있는 신흥국에겐 ‘금융억제’ 이상의 대안이 필요하다.

현재 금융권력과의 역관계 상, ‘금융억제’ 마저도 버거운 현실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발 짝 더 나아간 담론을 만들지 못하면 이들과의 숫자싸움에 말려들 수밖에 없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될 수밖에 없다. 가령 각국의 금융규제 논의는 월가와 같은 금융권력의 로비 속에 하나 둘씩 후퇴하고 말았다. 조세피난처 얘기가 나온 지 벌써 수년이 지났지만 속 시원한 해결책이 아직도 요원하다.

옛 것이 사라진 지금, 아직 오지 않은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더욱 절실한 시기이다. [토론내용 끝]




<부채전쟁의 플레이어들과 돈의 흐름>



<기축통화의 패권과 양적완화에 동요하는 신흥국>

- 기축통화(기준통화)가 왜 중요한가? 기축통화가 상품시장의 영역을 장악. 달러가 힘이 쎈 이유는 바로 미국이 모든 상품시장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WTO, FTA, TPP ...) 대외무역결제를 위해선 반드시 달러가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석유거래는 원유선물시장을 통해 반드시 달러로 이뤄진다.

- 신흥국은 달러를 조달하기 방법을 강구해야 하며, 이것은 외환시장을 통해 이뤄진다. 그래서 안정적인 외환관리를 위해선 몇 가지 중요한 제약들을 지켜야 함. 그렇지 않으며 투기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기 쉬움. 먼저 경상수지 적자를 방지하여 달러유출을 막아야 한다. 아니면 자본수지 흑자(투자유치)를 통해 달러를 유입시켜야 한다.

- 신흥국들이 벌어들인 달러는 대부분 미국 국채로 투자. (약한채권자-강한채무자 관계)
그러면 달러는 다시 미국으로 들어감. 다만 미국의 부채가 늘어나게 된다. (수출달러 환류메커니즘)
그런데 이런 순환은 오래갈 수 없다. 중국의 엄청난 미국 국채보유량은 이런 방법으로 생겨난 것.
미국 - 중국 서로 얽혀 있는 관계. (미중간 환율갈등) - 부채전쟁 p 60

- 미국의 돈풀기, 그 많은 돈들은 어디로 갔나? 중앙은행으로 되돌아가거나 신흥국 금융시장으로 유입. 미국의 통화정책에 변동이 생길 때 마다 신흥국 금융시장의 극심한 동요. 최근 양적완화 축소를 둘러싼 논란과정에서 몇몇 신흥국들의 위기가 심화.(양적완화 축소와 전망)

<신자유주의 경제이념의 몰락과 대안 찾기>

- 리스크, 불확실성에 대한 계산, 자산평가모델, 리스크평가모델 등등
이러한 수학적 확률계산 및 모형은 그 자체로 한계가 있음. 확률은 인과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님.

- 그런데 왜, 이런 경제이념과 제도, 형식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나? (현재 부채전쟁을 이해하는 출발점) 바로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절대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 신이 아닌 이상 시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 인간은 미래에 무엇이 일어날지 미리 알 수 없다. 안정화에 대한 희구. 신자유주의는 이런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운 본성을 치고 들어온 것.(“세계는 계산가능하다.”)

-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이론과 이데올로기를 만들기 위해선, 자본이 만들어 논 리스크라는 상품에 대해 단순한 허구나 허상만으로 비판하는 건 한계적이다. 그러면 투기를 억제하고 국가가 잘 통제할 것을 요구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는 담론 필요.

-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리고 지난 역사에서도 국가 역시 불확실성을 잘 다루지 못했음. 70년대 자본주의 위기, 20세기 현실사회주의 실패, 그래서 관치금융이니 비효율적인 국가개입이니 뭐니 하는 왜곡된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는 것임. 새로운 사회를 향한 열망은 기존의 것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하지만 결코 좋은 결말을 담보하는 건 아님.

- 그래서 개량주의, 현실타협주의는 그 토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과 안정화에 대한 욕망에 호소하는 힘이 있다.(“이것만이라도 지켜내자”) 그래서 현 부채전쟁의 국면은 우리에게 여러 개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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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 공황 , 부채전쟁 , 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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