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진보평론’

[새책] 진보평론, 58호 (2013년 겨울호, 메이데이)

1994년 그 시절 “조직이 없으면 진보적으로 살 수 없다”는 당대의 격언에 따라 ‘분홍색’ 옷을 입었고

90년대를 회상하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삐삐로 소통하던 20년 전의 이야기는 매우 인간적이고 포근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94학번인 필자가 경험한 90년대 중반의 캠퍼스는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80년대의 무게에서 벗어났지만 그 무거움을 대신해 일상을 채워줄만한 것이 없었다. 기존 단위와 모임들이 와해되면서 홀로 된 개인들은 스스로를 확인하고자 각자 몸부림쳤다. 서태지와 영화 스펙터클 속에서 우리는 공허함의 무게를 느꼈다. ‘썰렁’이라는 유행어로 소통에 대한 냉소를 드러내기도 했다.

<진보평론> 58호 특집은 “낡은 진보에 대한 고별사: 혁신을 위한 비판과 성찰”이라는 주제로 한국 진보운동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고 있다. 여러 글들은 운동의 쇠퇴기가 앞서 언급한 90년대 중반부터 진행되었다고 지적한다. 진보운동의 흐름을 대학 공간 안으로 국한시켜서는 안 될 것이나, 어찌되었건 필자는 80년대 선배님들의 운동을 제대로 이어받지 못하고 ‘말아먹은’ 90년대 학번이다. 더구나 필자는 주변에서 운동을 바라보던 부류였기에, 의미 있는 서평을 할 자격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진보평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이번 특집 글들을 통해 쉽게 말로 옮기지 못했던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94년 겨울, 너무나 허무해서 힘들었던 1학년을 보낸 필자는, 무너진 과내 학회를 다시 살려보자는 선배들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과를 분열시키는 시도를 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 사람 좋기만 하던 학생회 선배들이었다. 그 뒤 1년 동안 눈치 보며 학교가 아닌 여러 하숙집에서 몰래 세미나를 했다. “조직이 없으면 진보적으로 살 수 없다.”는 당대의 격언에 따라 과 밖의 운동조직에 기웃거려보았지만, 새로운 문턱을 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졸업할 때까지 울타리 밖에 남았다. 총학 간부를 지냈던 한 동기는 필자가 속한 ‘우리’에게 ‘분홍색’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의무적으로 집회에 나오지 않으면서 마르크스 세미나를 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조롱이었다. 필자는 뒤에서 욕했지만 원망 할 수만은 없었고, 사실 미안했다. 불나비 같은 ‘그들’처럼 나를 희생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항상 들었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났다. <진보평론> 58호 특집의 글들은 진보운동의 낡은 패러다임과 무능력을 꼬집고 있다. 쟁점은 물론 ‘운동’ 자체의 혁신 문제이지만, ‘조직’ 문제와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2013년의 시점에서 어떤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것인가? 첫 번째 글은 한국 대중들이 수구와 자유주의 사이를 오갔던 긴 현대사를 설명하고, 그동안 진보세력이 진정한 대안을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을 환시시킨다.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가 안철수에게 몰릴지언정, 좌파에게로 향하지 않는 현실이다. 대중들로부터 헤게모니를 얻지 못하고 도리어 자유주의적 선택에 포획되는 좌파의 내적인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 글은 자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한국 현실에서, 감동을 줄 수 있고 생명을 맡길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좌파의 헤게모니가 재건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권력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배제와 적대를 앞세운다면 보수정치와 다를 바 없는 프레임에 갇힌다는 설명이다.

이어지는 다음의 세 글은 한국의 시민운동, 노동운동, 통일운동의 현재를 다루고 있다. 세 번째 글은 한국의 시민운동이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신자유주의 재편을 공모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시민운동 본연의 정체성 정치를 시도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네 번째 글은 대공장 노동운동이 실리를 좇는 집단이기주의로 변질되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노자간의 담합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았다. 조합운동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정치기획을 현장의 외부에서, 자본의 외부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다섯 번째 글은 이석기 그룹의 일방주의적 대북인식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시민참여와 시민통합을 고민하는 평화지향적 통일운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남북 모두의 이해관계에서 중립적이면서, 동시에 남북 모두의 민의에 바탕을 둘 수 있는 통일운동은 그 대안이다.

마지막 두 글은 NL과 PD로 구분되는 두 노선의 현재적인 의미에 대해 논하고 있다. 두 글의 결론은 유사하다. 여섯 번째 글은 NL 및 전체 좌파가 고민해야할 문제로, 새로운 자주성을 구성하는 문제와 함께 ‘배제된 자의 재발견’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일곱 번째 글은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이라는 낡은 대립에서 벗어나 ‘밖으로 내쳐진 사람들’까지를 주목할 수 있는, 다양한 모순을 포괄하는 횡단의 정치가 헤게모니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본다. 마지막 두 글은 현실의 대중과 호흡하면서 이념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시하는데, 앞의 다른 글들에서 반복된 내용이기도 하다.

90년대 학생운동도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특히 ‘재생산’ 위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권’ 내부의 친구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더 가까이 갈 수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재생산’이라는 표현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술 마실 때나, 책 볼 때나 우리는 같은 학생인데, 한쪽은 만드는 사람이고 다른 한쪽은 만들어지는 물건 같았다. 기본적으로 학생회를 꾸릴 수 있는 조직과 절대다수의 무지한 학생대중이 있다. 일단 신입생들을 집회에 데려와 낡은 고정관념을 흔들어 깨어 놓는다. 세미나를 돌리고 남는 놈 중에서 몇 명 데려다 쓴다... 수없이 부딪쳤던 소름끼치는 말들, 생각들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새삼 신기한 것은, 90년대의 운동이 그러했음에도 일반 학우들에게 그렇게 쉽게 부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안함’의 헤게모니였던 것일까. 하지만 수많은 변종과 부작용이 등장했다. “우리 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고시 아니면, 학생운동이다. 그런데 학생운동을 할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난 고시를 공부한다.”라는 독특한 논리를 폈던 친구가 있었다. 평소 삶의 모습은 완전한 대 부르주아지인데도, 단지 멋져 보이기 위해 민가를 부르는 이들이 등장했다. 어떻게 보면 90년대 학내에서 배척 대상은 ‘운동’이 아니라 80년대의 ‘진지함’이었다. 그것은 더 무서운 결과를 낳았다. 정체성 부재의 아비규환 속에서 가짜와 진짜의 경계가 사라졌다. 80년대의 열정이 엑스 세대를 만나 변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고 할지라도, 90년대의 우리는 스스로의 깊이를 만들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필자를 분홍색이라 비꼬았던 동기는 부러워할 만한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다. 여러 색깔의 친구들이 있었고, 20년 지난 뒤 그들의 일상은 비슷하다. 조금은 허탈하지만, 그래도 미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갑자기 드는 원망이라면 그때 조금 덜 미안하게 해 줄 수는 없었냐는 것이다. 그러면 더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고, 조금은 더 주변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대중과 전위의 구분은 어디만큼이 의미 있는 구분이어야 하는가? 한국 진보운동과 조직은 어떤 대중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 것일까?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묶여있지만, <진보평론> 58호 특집의 일곱 개 글들을 통해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2013년 분노하지 못해 순응했던 청년들이, 다시 분노하기를 선택하는 듯하다. 낡은 진보에 대한 고별사가 아니라 곧 새로운 진보에 대한 환영사를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전에 새로운 진보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조직’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보평론> 58호 특집 글들을 통해 이러한 논의의 장이 좀 더 활발해졌으면 한다.

진보평론 58호 목차

* 편집자의 글
진보운동의 낡은 패러다임과 운동양식들, 혁신을 위한 정치적 소통을 시작하자/ 박영균

* 특 집 _ 낡은 진보에 대한 고별사: 혁신을 위한 비판과 성찰
-자유주의 정치의 ‘역사적 헤게모니’, 그 긴 그늘과 좌파/ 이광일
-자살, 한국 정치와 사회의 최대 위기: 진보세력은 위기의 대안일 수 있을까?/이승원
-인식되지 않은 조건, 의도하지 않은 결과: 노골적인 계급사회의 탈계급 정치/ 서영표
-노동‘해방’없는 노동‘조합’운동: 대공장 노동운동에 대한 진단과 대안 모색/심인호
-새로운 ‘평화지향적 통일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늦봄 문익환 20주기를 맞으며/ 이승환
-반제적(NL) 급진주의의 한계와 혁신과제/ 이창언
-낡은 NL/PD의 패러다임과 급진적 진보운동의 방향/ 박영균

*발언대
수서발 KTX 노선 분할 민영화와 정부조달협정 개정은 한국철도의 재앙이다/ 이영수

*정세
-그들의 대한민국 역사: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역사 인식 / 이기훈
-법외노조 공방 중간평가와 향후 전교조운동의 과제/ 천보선
*국제
동북아 정세 전망/ 고민택
*일반논문
1957-58년 세미나에서의 라캉의 이중전선: 욕망의 그라프 구축의 쟁점들/ 최원
*현대 정치경제학 비판
순환론과 동어반복: 수요-공급이론은 가격의 결정을 잘 설명하는가?/ 김정주
*소수자이야기
성노동자 권리운동의 방향/ 밀사

*다시읽기
"오래된 미래"와 "인간 불평등 기원론": 현대 사회 인간성 상실의 평행이론/ 오창룡
*남성이 읽는 페미니즘 고전
잉여의 시대-타자의 삶("제2의 성")/ 이철호
*서평
신자유주의는 미래를 수탈한다("부채전쟁")/ 장귀연

*가격 : 15,000원/ 1년구독료 5만8원/ 2년11만5천원/ 3년 16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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