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가 말하고 싶은 것들 VS 말하지 못한 것들 (2)

[주례토론회] 2부 : 피케티가 말한 것들 따져보기


지금까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주요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보았다. 어려운 말을 최대한 아끼려고 노력했는데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다. 이제 피케티의 논의가 기존의 관련논의들 속에서 어떠한 의의를 갖는지를 드러내보자. 또한 좀 더 냉정하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그것을 검토해보자.

<21세기 자본>의 의의 (1): 쿠즈네츠의 낙관론을 뒤집다

기존의 관련논의들에 비춰볼 때 <21세기 자본>은 몇 가지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데, 이러한 의의들은 대체로 피케티가 장기간에 걸친 자료를 모아 분석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를 통해 그는, 첫째, 불평등(과 경제성장) 간의 기존의 고정관념을 깰 수 있었고, 둘째,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는 불평등 관련 논의들로부터 차별점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를 하나씩 보자.

오늘날 경제학이 불평등 문제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시각은 1950년대 중반에 발표된 사이먼 쿠즈네츠(Simon Kuznets)의 연구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쿠즈네츠는 20세기 전반기(1913~48년) 미국의 소득분배 자료를 분석,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불평등이 줄어든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불평등의 현황이 종(bell) 모양을 띤다는 것이다. 이것이 유명한 '쿠즈네츠 곡선'이다.

"초기에는 불평등이 커지다가 산업화와 경제발전이 진전되면서 줄어든다는 것이다. 쿠즈네츠에 따르면, 산업화 초기 단계에 자연히 불평등이 늘어나는 첫 번째 국면이 지나가면 불평등이 급속히 줄어드는 국면이 찾아온다. 미국의 경우 대체로 19세기가 첫 번째 국면에 해당되며 그 반대 국면은 그의 주장에 따르면 20세기 전반에 시작되었다." (<21세기 자본> 한글판, 24쪽)

피케티는 1913~48년 사이에 (미국에서) 불평등이 감소했다는 쿠즈네츠의 관찰을 부정하기보다는, 연구의 시간적, 공간적 범위를 확장시킴으로써 쿠즈네츠의 결론을 상대화한다. 즉 앞서 <21세기 자본>의 개요를 설명하면서 밝혔듯, 1913~48년 기간의 불평등 감소는 자본주의 발달사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었으며, 자본주의에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메커니즘(r>g 부등식으로 표현되는)이 있다는 것이다(정확히 말하면, 피케티는 이와 함께 경제격차를 좁히는 '수렴의 힘'도 인정한다. 기술확산과 교육이 그것. 그러나 <21세기 자본>에서 이것이 중요하게 다뤄지진 않는다).

하여튼 이상과 같이 피케티는 쿠즈네츠 이후 경제학의 변방으로 쫓겨난 분배문제를 경제학의 중심으로 복귀시킨 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중심이동은 그 자체로 오늘날 경제학에 대한 뼈아픈 비판이다. 왜냐하면 쿠즈네츠 이후 분배론이 사라진 것은, 한편으로 쿠즈네츠의 결론에 따라 불평등보다는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시각이 경제학에 지배적으로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경제학이 추상적 모형화와 수리적 접근에 지나치게 집착함에 따라 실제 현실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보는 것은 늘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곧 <21세기 자본>은 이러한 경제학의 최근 발달양상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다.

<21세기 자본>의 의의 (2): 불평등을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으로 정립

<21세기 자본>은 최근 우후죽순처럼 나오고 있는 여타의 불평등 논의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갖는다. 피케티가 이러한 차별화된 입지점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불평등 분석의 시간적 지평을 확장한 덕분이다.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노골화되면서, 그리고 특히 2007~08년 세계대공황 이후 불평등과 양극화는 중도적 및 좌파적 논의들의 단골 주제였고, 노벨 경제학상 수장자이기도 한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의 최근작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는 이런 경향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스티글리츠는 자신을 포함한 최근의 불평등 논자들의 핵심 주장을 잘 드러내준다.

"그들은 자본주의 자체가 아니라 1980년대 이후에 두드러진 신자유주의를 탓하고, 클린턴과 오바마 대신 레이건과 부시를 나무란다. 불건전한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특히 금융권력의 유착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온갖 비리와 특혜, 독점과 지대를 불평등의 원인으로 본다. 이러한 불평등의 결과 경제·사회질서가 흐트러진다. 경제 시스템의 효율성이 떨어져 성장이 지체되고 인류의 위대한 성취인 민주주의 또한 그 실질적인 내용을 잃고 위기에 처한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의 근원인 나쁜 정치를 척결해야만 불평등도 해소되고, 경제의 선순환, 나아가 올바른 민주주의 질서도 회복된다." (김공회,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이론적 의의와 한국에의 시사점", <사회경제평론> 제44호, 2014, 236쪽)

요컨대, 오늘날 불평등의 원인은 '나쁜 정치'에 있고, 이를 '좋은 정치'로 대체해야만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스티글리츠는 심지어 클린턴의 유명한 선거구호를 슬쩍 비틀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고 일갈하기까지 한다.

이렇게 스티글리츠와 그 동료들이 불평등을 '정치문제'로 제시하고 있는 데 반해, 피케티는 이를 경제문제로, 곧 자본주의의 장기적 발달경향의 발현 결과로 내놓는다. 피케티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최대 300년에 걸친 방대한 자료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는 장기자료를 분석해 자본주의 발달의 일반법칙들을 도출하고, 이것이 실제 역사에서 실현된 방식을 관찰한 뒤, 그러한 일반법칙이 어떻게 관철되는지, 또는 법칙으로부터의 이탈이 언제, 왜 발생했는지를 추적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1913년~1970년대 중반까지의 불평등 완화를 '일반경향으로부터의 이탈'로, 따라서 1970년대 중반 이후의 불평등 심화를 '일반경향으로의 복귀'로 보고 그런 형상의 배후에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밝히고자 한다.

이것은 보통의 불평등 논자들이 대체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자료에 의거해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1970년대 이전의 '황금기'를 일종의 '정상상태'로 두면서 그 이후의 '정상으로부터의 이탈'만을 문제삼는 것과 꽤 명확하게 대조된다. 물론 최근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고 판단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로써 여기에 대응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논자들과 피케티 사이엔 의견이 일치한다. 그러나 피케티가 좀 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자본주의 발달을 조망하고 불평등의 심화 또는 완화도 그러한 시각에서 평가한다는 점에서, 또한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피케티가 자신의 처방에 부여하는 이론적 및 역사적 의의는 매우 무거운 것이라는 점에서, 그가 좀 더 고양된 문제의식을 가졌다고 볼 수는 있다. 사실은 바로 이 점이, 대개 '담론' 수준에 머물렀던 기존의 불평등 논의들에 비해 피케티의 그것이 가질 수 있는 파괴력의 원천이다.

<21세기 자본>에 대한 비판적 물음 (1): 피케티의 자본수익률(r)에 관하여

지금까지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해설했다. 이제 반대로 피케티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크게 두 개의 질문이다. 하나는 피케티의 자본수익률 개념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제의 의의에 관한 것이다.

먼저 피케티의 논의 전개에서 자본수익률은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그는 (소득)불평등의 원인을 자산소유의 불평등으로 보면서, 후자가 전자를 낳을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으로 그가 '자본주의의 핵심 모순'이라고 이름붙인 r>g라는 부등식을 꼽았다. 따라서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이 부등식의 부등호 방향을 바꿔야 하며, 역사적으로 봤을 때 자본에 대한 강력한 과세만이 그것을 가능케 했으므로 향후 21세기 불평등을 퇴치하기 위해 우리는 그러한 세제를 강화해야 한다. 이것이 피케티의 핵심 논지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피케티가 말하는 자본수익률(r)은 현실적으로 성립할 수조차 없는 개념이다. 그리하여 r>g가 성립한다는 것이 반드시 무산자와 유산자 간의 불평등을 확대시킨다고 볼 수도 없고, 반대로 그 부등호 방향이 바뀐다고 해서 불평등이 반드시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요컨대 경제 전체에서 무산자와 유산자 간의 불평등 확대 또는 축소의 관점에서 자본수익률(r)을 경제성장률(g)과 연관짓는 것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항들을 하나씩 생각해보자.

첫째, 자본수익률(r)은 성립 불가능한 개념이다. 피케티는 이를 하나의 거시적 지표로 상정한다. 그는 한 나라에서, 나아가 세계 전체의 차원에서 r값을 구하고 또 그 변화추이를 좇는다(<그림 2> 및 <그림 7> 참조). 하지만 피케티가 '자본'이라는 이름 아래 뭉뚱그려 놓는 다양한 형태의 자산들의 수익률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일년 365일 밤낮 가리지 않고 돌아가는 공장에 투입된 생산자본과 은행 정기예금 계좌에 넣어둔 화폐자본, 노후를 보내기 위해 시골에 마련해둔 토지자본의 연간수익률이 같을 리 없다. 문제는 이러한 상이한 형태의 자본들 간에는 경쟁의 압력이 본격적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상이한 수익률들을 어느 하나의 평균값으로 수렴시키는 힘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양한 수익률들(r1, r2, ... , rn)의 평균값(r)을 구할 수야 있지만 그것이 전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고, 따라서 r을 g랑 비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피케티의 r이 성립될 수 없는 것은 그가 상정하는 상이한 유형의 자본들 사이에 경쟁이 불완전하거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내가 완전경쟁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얘길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대목에서 r을 마르크스의 일반이윤율(p)과 비교해보면 유익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마르크스도 경제 전체에 대하여 평균적인 이윤율을 상정하고, 이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경제의 발달을 논했다는 점에서 피케티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둘 사이엔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바로 양자 간에는 자본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에겐 노동자를 고용하고 착취해 잉여가치(≈이윤)를 얻는 게 자본이고, 그의 일반이윤율은 바로 이러한 자본들 간의 경쟁의 결과로서 도출된다. 즉 동일한 부문 내에서는 개별단가 인하와 그에 따른 특별잉여가치(≈초과이윤) 획득을 위하여 경쟁이 벌어지고, 그 결과 부문 내의 '중력의 중심'으로서의 평균이윤율이 도출된다. 또한 상이한 부문들 간에도 더 높은 이윤율을 얻고자 하는 자본들의 이동에 따라 부문이윤율들이 균등화되는 경향이 존재한다. 마르크스의 평균이윤율은 이러한 두 가지 운동의 결과로서 도출되는 것이므로, 그것은 경제 전체의 수익성에 대한 믿을만한 지표가 되며 각 개별자본에 대해서도 의사결정을 위한 일정한 지표 노릇을 한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에겐 원칙상 자본이 아니지만 피케티에겐 자본인 것들은, 마르크스의 논의 속에서 어떤 위상을 갖는가? 곧 이들은 어떻게 수익을 챙기는가? 예컨대 은행이나 주식시장에 있는 잉여화폐들은 기본적으로 생산영역의 자본에 대부됨으로써 생산에 일정한 도움을 준 대가로 생산영역에서 생산된 부가가치의 일부를 분배받는다. 이 과정에서 이자율 같은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의 결정을 규제하는 일반법칙은 없다는 게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 그에 따르면 이자율은 기본적으로 산업자본가와 잉여화폐소유자들 간의 역관계를 통해 결정되는데, 신자유주의 시대에 와서 '금융'이 '산업'을 압도했다는 증거로 이자율의 급등이 종종 언급되는 데서 보듯, 그것은 흔히 인정되는 명제다.

바로 이렇게, 산업분야에서의 수익률(이윤율)과 금융분야에서의 수익률(이자율)이 서로 대립하면서 체계적인 원리 없이 결정되는 상황에서는, 그 두 지표 각각의 추이와 관계가 일차적인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사실 이것은 피케티의 주요 해명대상인 분배의 한 단면을 이룬다. 따라서 이는 피케티에게도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어야 마땅한데, 그는 오히려 이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자본들을 하나로 뭉뚱그려놓고 이들 각각이 거두는 수익률들을 평균해서 하나의 숫자(r)를 도출하고 말았다. 다소간 무리를 무릅쓰고 비유하자면, 영철이의 수학점수(40점)와 순자의 국사점수(60점)의 평균인 50이라는 숫자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상의 논의를 일반화해 피케티의 논의와 연관지어 보면 다음과 같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사회적 평균값인 r이 설령 g보다 크다고 해도, 피케티가 생각하는 대로 자본 소유자가 비자본 소유자에 비하여 무조건 이득을 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자본 소유자는 이득을 보겠지만 다른 자본 소유자는 g보다 낮은 수익률에 만족할 수밖에 없거나 심지어 망하기도 하는 것이다. 즉 평균수익률 E(r1, r2, ... , rn)=r>g라고 하더라도 rj<g인 j가 하나 이상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단, j=1, 2, ... , n). 이러한 과정에서, 자본가들 사이에서 부가 끊임없이 재분배 되면서 부의 집중과 분산이 반복될 것이며, 이러한 분배 경쟁은 사회 전체의 분배, 나아가 불평등의 한 계기를 이룰 것이다." (김공회 외,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 - 피케티가 말하지 않았거나 말하지 못한 것들>, 바다출판사, 2014, 40쪽)

결국 r>g라는 부등식이 자본주의의 동학을 요약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인데, 이런 생각을 좀 더 밀어붙이면 이 부등식이 역전된다고 해서 불평등이 줄어든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결론도 나온다. 즉 r<g여도 불평등이 커질 수 있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평균치가 작더라도 몇몇 자본은 여전히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피케티 자신이 쓴 대로(<21세기 자본>의 제12장) 대자본의 평균수익률(r1)이 소자본의 그것(r2)보다 높은 것이 보통이라면, r<g라 하더라도 불평등은 커질 수 있다. 대자본을 가진 최상위 1% 또는 0.1%가 거두는 자본수익률은 세금을 제하더라도 g보다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한 수식을 이용하면 이는, 'E(r1, r2)=r<g이더라도 r1>g>r2일 수 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김공회 외,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 - 피케티가 말하지 않았거나 말하지 못한 것들>, 바다출판사, 2014, 41쪽)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20세기 중반기에 r>g 부등식이 역전되어 자본소유자들의 소득이 줄고 불평등이 줄었다는 피케티의 설명, 곧 <21세기 자본>의 가장 핵심적인 명제는 타당성을 완전히 잃는다. 물론 피케티가 내놓는 자료에서는 이러한 가능성이 현실화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최상위 부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다양한 탈세수법들(예컨대 조세도피처에 재산을 숨기거나 이윤을 저세율국으로 이전시키는 등의 수법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기엔 이르다. 어쨌든 지금 언급한 가능성을 피케티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고, 이것만으로도 그의 주장의 신뢰성은 상당 정도 훼손될 수 있다.

<21세기 자본>에 대한 비판적 물음 (2): r이 g보다 작아진 게 세제 때문인가

피케티의 대안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1913년~70년대 사이에 전쟁에 따른 자본파괴, 자본에 대한 무거운 과세, 경제의 사상 유례가 없는 고성장 등의 결과 r이 낮아져 r>g의 부등호가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자본에 대한 세제를 강화하고 재정비하는 것만이 현재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역설한다. 특히나 r값을 낮추자고 전쟁을 벌일 수도 없고, 지난 수십 년 간의 높은 경제성장은 인구감소 등에 따라 당분간 요원해 보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그림 8> 자본수익률(세전, 세후) 대 국민소득성장률 : <그림 2>와 <그림 7>을 합한 것. 이 그림에서 주의할 점은 하나의 점이 주어진 기간의 연 평균값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1820~1913년 사이에 자본수익률(r)은 연평균 5%이다. [출처: 피케티, 21 세기 자본]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r>g 부등식의 역전을 보여주는 <그림 8>을 피케티는 '세계(global)' 차원에서 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보통 자본에 대한 과세는 일국 차원에서 행해진다. 따라서 만약 정말로 세제 때문에 r이 g보다 낮은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면, 그것은 세계 보다는 일국(national) 차원에서 관찰되는 게 마땅하다.

그렇다면 일국 차원에서 정말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림 9>는 그렇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그림은 피케티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한 자료로부터 구성한 것인데, 1820~2010년까지 프랑스의 경제성장률과 자본수익률(세전, 세후) 추이를 10년 단위로 나타낸다. 즉 모든 숫자는 10년 단위의 연 평균치다. 피케티가 발견한 대로 과연 세전 자본수익률은 언제나 경제성장률보다 높게 나온다. 그러나 세후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보다 작은 수준으로까지 떨어진 것은 두 차례에 불과하다! 특히 피케티가 세제 등의 영향으로 r>g 부등식이 역전되었다고 주장한 1910~2010년 사이에 실제로 부등호가 역전된 것은 1920년대와 1940년대뿐이다! 어찌된 일인가?

  <그림 9> 1810~2010년 프랑스의 자본수익률 대 경제성장률 : 모든 수치는 해당 10년의 연 평균치. [출처: http://piketty.pse.ens.fr/en/capital21c2 및 http://piketty.pse.ens.fr/fr/inheritance. 김공회 외 지음,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 바다출판사, 2014, 211쪽]

<그림 8>과 <그림 9>를 비교함으로써 우리는 피케티의 논의에 내재한 다양한 잠재적 문제점들을 이해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결론은 세후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 미만으로 떨어졌다는 피케티의 주장이 적어도 일국(프랑스) 차원에서는 성립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림 9>가 보여주는 바다. 그러나 <그림 8>은 분명 '역전'을 보여주지 않는가? 이렇게 상반되는 모습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서 기본적으로 지적할 점은 바로 시간단위의 문제다. 곧 <그림 9>는 1820~2010년까지 약 200년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타내고 있는 반면, <그림 8>은 (거의) 같은 기간을 1820~1913년, 1913~1950년, 1950~2012년 등 3개의 하위기간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단위기간을 길게 잡으면, 어떤 변화가 주어진 기간 중에 꾸준히 일어난 것인지, 아니면 단기간의 커다란 충격에 따른 것인지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그림 9>를 참조해 <그림 8>을 다시 들여다보면, 1913~1950년 사이에 r>g 부등식이 역전된 것은 이 기간 동안 있었던 어떤 꾸준한 변화(예: 강력한 자본세제) 때문이라기보다는 단기간의 충격(예: 1920년대 후반의 대공황, 1940년대 초반의 전쟁)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게 보인다. 문제는 피케티는 이러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21세기 자본>에서는 <그림 8>과 같은 매우 긴 시간을 단위로 한 그래프만 내놓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런 가능성을 인식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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