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지면엔 실리지 못한 ‘카트’ 제작보고회 기사

[팩트를 채우는 미디어비평] 영화 속 ‘순례’를 가장 닮은 이랜드일반노조 이경옥

대형마트 비정규직 다룬 영화 <카트>

영화 ‘카트’에서 순례(김영애 분)는 대형마트에서 20년간 빗자루를 잡아온 청소원으로 회사의 일방적 계약해지에 분노하지만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직원들을 다독인다. 영화 속에서 갑작스레 해고통지를 받은 대형마트 비정규직들은 하나로 뭉쳐 파업에 들어간다. 배우 김영애는 지난달 30일 ‘카트’ 제작보고회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의무감을 갖고 촬영했다”며 “영화를 통해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현실을 알리고 싶다”고 했다. 여러 언론이 이날 주연 배우 염정아와 김영애의 말을 인용해 온라인에 보도했지만 다음날 어느 중앙일간지도 지면에 싣지 않았다.

영화 속 ‘순례’를 가장 많이 닮은 실존 인물은 2007~2008년 510일간 파업으로 비정규직 투쟁의 큰 획을 그은 ‘이랜드.홈에버 투쟁’ 때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이었던 이경옥(56)이다. 그녀는 지금은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사무처장으로 여전히 비정규직과 함께 싸운다. 그녀는 지독한 가난을 엎고 자수성가한 아버지와 함께 꾸었던 외교관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결코 부끄럽지 않다.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다룬 영화 <카트>

영화 속 ‘순례’를 가장 많이 닮은 사람

이경옥 처장은 베이비 붐 세대의 전형인 ‘58년 개띠’다. 그녀는 큰딸이 전화로 어느 대학에 대입 원서를 넣어야 할지 물어볼 때도 집회장을 침탈하는 경찰과 싸우면서 집회를 지켜야 했다. 시어머니 빈소를 지키던 큰며느리였던 그녀는 영안실을 몰래 빠져나와 노조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시아버지의 장례식을 마치고 곧바로 2008년 11월 늦은 밤 서울역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에 참석했던 그녀. 시아버지도 동일방직에서 보일러공으로 일하며 노조를 알았던지 이랜드 투쟁 끝에 연행됐다가 출소한 며느리를 보고 야단도 치지 않았다.

결혼해서 조용히 살림만 하던 그녀가 거리의 투사가 되는 과정은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다.

그녀는 대학 체육교육학과를 나와 기간제 교사로 잠시 일하다 맘씨 고운 29살 노총각과 맞선 보고 25살에 곧바로 결혼했다. 남편은 거제도에 있는 큰 조선소 사무직이었다. 결혼 3년만에 남편은 월급쟁이가 싫다며 사표를 던졌다. 3살 큰딸과 뱃속에 작은 아이가 들었을 때다.

조선소를 나온 남편은 8년쯤 친적이 운영하는 재봉틀 회사에 공장장으로 일하다 그 마저 접고, 1995년 겨울 서울에서 갈비집을 열었다. 한 2년 반짝하던 장사는 1997년 IMF와 함께 거덜났다. 바로 그 때 남편은 뇌출혈로 쓰러져 석 달 중환자실 신세를 지다가 숨졌다. 큰딸이 고등학교 들어가고 둘째는 중학교 들어가던 1999년 초 그녀는 빈손으로 식당을 접었다.

착한 딸, 현모양처에서 거리의 투사로

그녀는 2000년 1월 오픈한 집 근처 까르푸 중계점에 정규직으로 들어갔다. 조리사 자격증과 식당 경험 덕분에 푸드코트의 샐러드와 샌드위치 담당 조장이 됐다. 정규직이라지만 주 50시간 중노동에 연봉은 고작 1,200만원이었다. 과장은 조리기구를 던지며 행패 부리기 일쑤였다.

노조가 있었지만 전국의 여러 매장에 노조원이 흩어져 사실상 힘을 못 쓰는 휴면노조였다. 그녀는 노조 지부간부를 제안받고 난생 처음 민주노총에 찾아갔다. 이렇게 또 다른 세상의 문을 열었다.

2002년 12월 12일 까르푸 본사 앞 집회에서 경찰과 싸우는데 큰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대입 원서 어느 대학에 넣을까?”하고 묻는 딸에게 그녀는 “알아서 해”하고 끊었다. 그녀의 까르푸 노조는 300일 파업 끝에 2003년 4월 회사의 항복을 받아내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300일 파업 뒤 복귀 한 달만에 다시 집단해고에 맞서 서울 중동점 노조원 60명이 다시 파업에 들어갔다.

반전임 한 명만 달랑 있던 까르푸노조의 파업은 늘 기회였다. 그녀는 전국의 매장을 돌면서 노조원을 모집했다. 순천에선 찜질방에서 자고, 부산에선 일반노조 농성천막에서 잤다. 서울 상계동 집에서 부천에 있는 노조 사무실까지 다니면서 그녀는 수많은 날을 내부순환도로의 갓길에서 비상등을 켜고 쪽잠을 자면서 노조원을 모았다. 그녀는 힘겨운 미국의 노조 설립 과정을 담은 영화 ‘노마 레이(Norma Rae, 1979년)’의 샐리 필드처럼 고군분투했다. 이렇게 2003년 100명이던 까르푸 노조원은 2005년 1,000명으로 늘었다.

  70년대 미국의 노조 설립 과정을 다룬 영화 <노마 레이>

순환도로 갓길에서 위험한 쪽잠

결국 노조에 두 손 든 프랑스 자본 까르푸는 이랜드에 매장을 넘기고 철수한다. 2001년 파업 경험을 가진 이랜드노조와 이랜드 산하 뉴코아노조까지 합쳐 세 노조는 2007년 1월 이랜드일반노조로 통합했다. 그녀는 통합노조 부위원장으로 그해 7월 첫 시행된 노무현 정권 최대 악법인 비정규직법(기간제법) 때문에 무더기 해고에 직면한 비정규직 계산원들의 투쟁에 뛰어든다. 이름하여 ‘이랜드·홈에버 투쟁’이다.

오갈 곳 없는 비정규직 캐셔들이 자신이 일하던 대형마트 계산대를 껴안고 버텼다. 그러나 싸움을 길어져 1년을 훌쩍 넘겼다. 모두들 가망 없으니 포기하라고 했고, 노조원도 다시 100명 아래로 떨어졌다. 그녀의 두 아이들은 엄마를 지지했다. 2008년 늦가을 ‘500일 투쟁문화제’ 직후 시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그녀는 큰며느리로 시아버지 장례식을 마친 2008년 11월의 어느 늦은 밤에도 서울역 노동자대회 전야제에 참석했다. 이렇게 이랜트 투쟁은 510일 파업 끝에 마무리됐다. 회사는 다시 홈플러스에 팔려 지금은 홈플러스테스코 노조란 이름을 바꿔 달았다.

이경옥 처장은 “죽기 전에 노조를 알아 천만다행”이라며 “나의 자존감을 지켜 준 노조를 지키기 위한 나의 투쟁은 앞으로 계속 될 것”이라고 했다. 영화 ‘카트’는 오는 7일과 8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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