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람시 진지론’ 인용해 삼성 추켜세운 이문열

[팩트를 채우는 미디어비평] 짧지만 되새겨 봐야 할 지난 주 뉴스

미군이 바그다드를 침공한 이라크 전쟁 때 미국인들은 CNN이 보도하는 전쟁놀이를 시청했다. 미국 언론은 마치 전자오락처럼 미사일의 섬광이 바그다드 시내를 폭격하는 전쟁실황을 생중계했다.

  경향신문 10월 16일자 8면
영국 신문 가디언은 전쟁 몇 달 뒤 이상한 징후를 느꼈다. 온라인 독자가 대폭 늘었다. 가디언에 온라인으로 접속한 독자의 40%가 미국인이었다. 제 나라 미국의 수많은 매체가 요란스럽게 부시의 전쟁놀이를 앞 다퉈 보도하는데도 많은 미국인들이 최소한의 진실을 찾아 가디언이나 BBC로 몰렸다.

미친 FOX 뉴스의 진행자가 CNN을 좌파 언론이라고 비난하는 가운데서도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미국의 언론자유는 ‘자본의 언론자유’로 둔갑한지 오래였다. 어떤 미국 언론도 후세인이 생화학 무기를 보유했는지 여부에 관심이 없었다. 미국 언론은 ‘정밀 포격’이란 뉴스 앵커의 화려한 화술 뒤에서 병원과 아파트까지 파괴되는 것을 알지도 못했다.

그나마 가디언과 BBC를 통해서만 이런 사실이 단편적으로 보도됐을 뿐이다. 최소한의 균형 감각을 가진 미국인들이 세계적인 이슈 때마다 자국 뉴스를 외면하고 영국 언론에 몰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엔 중국 정부가 홍콩 민주화 시위를 보도한 BBC방송 홈페이지 접속을 차단했다. 중국 당국은 중국인이나 홍콩 시민들이 BBC 뉴스에 접속하면 화면을 검게 만들어 차단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경향신문 10월 16일자 8면>

  조선일보 10월 16일자 B2면
소설가 이문열이 지난 15일 삼성전자 서울 서초사옥에서 열린 수요 사장단회의에서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론을 인용해 “삼성과 같은 대기업이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는) 진지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10월 16일자 B2면>

자본주의 전복을 위한 방법론을 제시했던 그람시의 이론을 거꾸로 뒤집은 이문열의 발언은 삼성을 향한 최대의 미사여구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문열이 굳이 이렇게 목 놓아 강조하지 않더라도 삼성은 이미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적극적 역할을 다양하게 수행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지난 12일 일요일 느닷없이 임원 260여명의 사표를 받은 뒤 나흘 만에 81명으로 자르는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조선일보 10월 17일자 B1면> 새로 임명된 사람 가운데는 대주주의 장남도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사상 유래 없는 적자 때문이라고 했는데 적자는 이미 수년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조선일보 10월 17일자 B1면/ 조선일보 10월 18일자 14면

선박 건조기술이 좋아지면서 선령(船齡)이 늘어난 데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하자 여러 선사들이 주문량을 대폭 줄여 조선업 불황은 이미 2009년부터 시작됐다. 예고된 불황을 5년 동안 어디서 뭐하다가 애꿎은 월급쟁이들만 자르고 이참에 제 아들 승진시키는가.

현대중공업은 임원 81명을 자른 다음날 아시안게임 양궁 국가대표 선수단에게 포상금 8억 8천 원을 지급했다. 돈이 썩어 도나 보다. <조선일보 10월 18일자 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