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에 갔으면 판교 기사를 써야지

[팩트를 채우는 미디어비평] 조선일보, 판교 참사현장에서 ‘성동격서(聲東擊西)’

조선일보의 지난 17일 금요일 밤 16명이 죽은 판교 참사 관련 보도가 참 흥미롭다. 사고 다음날인 18일 토요일자 기사는 정상적이다. 여느 신문처럼 ‘또 무너진 안전’에 맞춰 취재하고 보도했다. 그러나 주말을 지나면서 월요일자 부터 조선일보의 판교 취재는 판교가 아닌 엉뚱한 곳으로 내달렸다.

조선일보 20일 월요일자 1면에 실린 ‘환풍구 참사 현장, 안전요원 1명도 없었다’는 제목의 기사 맨 마지막 문장은 “유족들은 세월호 사건도 있는데 또다시 이슈화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아 합동분향소는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로 끝난다. 그래도 여기까진 납득할 만하다. 같은 날 3면 해설기사에 와선 본색을 드러낸다. 이날 3면 기사는 <유족 “합동분향소 만들지 않고 조용히 장례 치를 것”>이란 제목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사망자들의 빈소를 스케치한 부분을 이렇게 기록했다. “빈소에서도 유가족들은 비교적 차분하게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낮게 흐느끼거나 말없이 눈물짓는 사람만 있었을 뿐, 억울함을 토로하거나 통곡하는 유가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 다음은 더 확연하다. 기사는 “곽재선 (이데일리) 회장이 병원을 방문해 조문했을 때도 곽 회장에게 항의하거나 고성을 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사망자 이인영씨의 누나는 ‘사람이 죽었는데 잘잘못을 따져서 뭐 하겠느냐’고 했다”고 적었다.

이쯤 되면 조선일보가 판교 사고 현장에 가서 쓰려고 한 기사의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해진다. 판교에 갔으면 판교 기사부터 팩트를 충실하게 챙겨야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쓰는 고약한 심보다. 물론 조선일보 기자가 본 차분한 유가족이 없는 사실은 아니다. 그 정도의 사람이 죽었을 때 모든 유가족이 하루 종일 내내 울고불고 통곡할 순 없다. 차분한 유가족도 있고, 통곡하는 유가족도 있다. 모든 유가족이 조선일보가 본대로 차분하지 않았음은 다른 보수 신문의 기사를 통해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세계일보는 18일자에 판교 사건을 다루면서 <“왜 무너졌어! 왜”... 가족.지인들 오열>이란 제목의 기사를 2면에 실었다. 이 기사엔 “병원은 달려온 가족들의 울음소리로 가득찼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차분하다고 했는데 세계일보는 병원 전체가 울음소리로 가득 찼단다. 어느 쪽이 맞을까. 상식을 가졌다면 세계일보가 맞다. 그래도 나는 조선일보가 본 차분한 가족이 아예 없었다고 보진 않는다.


그러나 이런 대형사고 현장에 선 기자는 늘 주의 깊은 시선으로 전체를 보려고 해야 한다.

21일 화요일로 오면서 조선일보의 판교 기사는 더 확연하게 판교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날 조선일보는 1면 사이드에 <‘판교 사고’ 보상 문제 57시간 만에 전격 합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은데 이어, 12면엔 <판교 유족 대표 “협상 끌어 법정 가는 것, 사회문제만 될 뿐”>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35면 사설에선 <판교 유족들, 상식과 순리로 ‘참사 뒤처리’ 풀었다>로 채웠다.

조선일보는 21일 1면에서 “(판교 유가족들은) 국민 여론을 외면하고 보상 문제로 갈등을 빚거나 법정 다툼까지 벌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됐다”고 썼다. 조선일보는 지금 누군가는, 어떤 유족들은 “국민 여론을 외면하고 보상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다”고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이날 12면 기사에선 “유족들은 억지 주장 대신 상식적 수준에서 보상을 요구하는 합리적 태도를 보였고, 행사를 주최하며 사고를 유발한 책임이 있는 기관들도 성의 있는 자세로 성과를 만들어냈다”고 썼다. 조선일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누군가는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21일자 조선일보 사설은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합동분향소를 차려 놓고 장례를 미루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 했다. (중략) 책임을 정부나 기업에 떠넘기며 무작정 보상금을 더 달라고 떼를 쓰는 일이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외부 세력이 끼어들어 분란을 부채질했고 결국 사회 전체가 이편저편으로 갈려 싸우는 갈등을 불러오곤 했다”고 했다. 더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작 조선일보 스스로가 이편저편으로 갈려 싸우는 갈등의 회오리 속에 철저하게 한편을 편들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 봤으면 한다. 이런 충고는 진보를 자처하는 언론에게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에게 겨누는 화살이 되어선 어떤 진실도 찾을 수 없다.
덧붙이는 말

성동격서: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 동쪽을 쳐들어가는 듯하면서 적을 교란시켜 실제는 서쪽을 공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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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울산저널 편집국장 (leejh67@hanmail.net)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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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숨만

    죽은 사람만 억울하네요
    결국 또다시 일이 터지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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