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보도, 뭘해도 노조 탓

[팩트를 채우는 미디어비평] 업황 부진과 저가 수주, 방만 경영, 국제유가 하락까지 겹친 조선업 위기

조선일보가 지난달부터 현대중공업 관련 기사를 여러 건 쏟아내고 있다. 노조가 파업 투표에 들어간 전후부터 기사의 양도 많아지고, 노조 비판쪽으로 방향을 확실히 틀었다.


조선일보는 10월 27일자 4면 한면을 털어 <현대重 최악실적 속 파업 결의... 도크 안 活氣잃은 작업장>이란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노사가 다시 협상에 나섰지만 별소득 없었다는 내용과 함께 일부 노조원의 입을 밀려 “회사가 힘든데 (노조가) 너무 오래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노조원 중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친기업 노조 12년 동안 너무 더딘 임금인상 때문에 올해는 제대로 된 임금인상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조선일보의 노조 겁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이날 관련기사에 한국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도 노조 탓이고, 특히 조선업에선 중국의 급성장에 경쟁력이 잃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날 조선일보는 기사에 곁들인 사진에 물량이 없어 빈 작업장으로 방치된 조선 야드를 찍었다. 현대중공업 해양플랜트 쪽은 밀어내기 물량이 넘쳐 인근 숙박업소에 방을 구할 수 없을 만큼 하청노동자들이 몰리고 있는데도 이는 외면했다.

나흘 뒤 조선일보는 10월 31일자 경제섹션1면에 <현대重 2조 赤字, 최악의 가을>이란 제목의 기사를 역시 같은 기자의 이름으로 실었다. 조선일보 기사는 현대중공업 2조 적자의 원인을 “공사 손실 충당금과 공정지연에 따른 비용 급증”이라고 분석했다. 더 구체적으론 “건조 경험이 부족한 특수선박과 고난도 선박에 대한 작업일수 증가로 인해 공사손실충당금이 4,642억운에 달하는 등 총 1조 1,459억원의 영업손실이 났다”고 보도했다.


특수선박과 난이도가 높은 선박을 수주 받아 공기 지연에 따른 손실충당금을 많이 물어줘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 기사의 끝에도 동부증권 한 연구원의 입을 빌려 “노조가 파업에 돌입할 경우 현대중공업이 다시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했다.

대규모 적자의 원인이 임원진들의 잘못된 선박 수주에 있는데 이에 대한 문제제기나 대안을 내놓지 않고 느닷없이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안 된다”는 이상한 결론으로 기사를 끝맺었다.

조선일보 11월 3일자 경제섹션 3면 보도는 더 황당하다. 이 기사는 “우리나라 조선중공업이 사상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다”로 시작한다. 기사는 부진의 원인을 업황 부진, 저가 수주 경쟁, 방만 경영, 국제 유가 하락으로 꼽았다. 그러고선 부진의 현상을 사례로 소개하다가 결론부에선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31일 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중략) 부분파업을 결정했다”고 보도한 뒤 노조를 향해 “코앞에 현실로 다가오는 위기 상황을 애써 외면한 결과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걱정된다”로 끝맺었다.


적자의 원인 가운데 계속된 세계적 업황 부진과 유가 하락은 어쩔 수 없다지만, 저가 수주 경쟁과 방만 경영은 현대중공업 경영에서 의사결정권자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특히 방만 경영은 구체적인 사례를 소개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적자의 원인 해소를 위한 어떤 취재도 않은채 막무가내로 “노조가 파업하면 안 된다”는 결론으로 곧장 내달린다. 무슨 이런 황당한 기사가 있나. 최소한의 인과관계쯤은 만들어야 하지 않나.

조선일보는 여기서 그지치 않고 11월 6일자 산업1부장의 데스크칼럼으로 방만경영의 대명사가 된 ‘모뉴엘’과 현대중공업을 곧장 비교한다. 이 칼럼도 “건조 경험이 부족한 특수선박과 고난도 선박을 수주”한 것이 현대중공업 부실의 원인이라고 올바르게 지적한다. 그래놓고도 “이런 와중에 노조가 파업을 결의했다”고 노조 비난으로 결론 내린다.

원인이 분명히 드러났으면 그 원인부터 해결해야 문제가 풀리지, 노조가 파업을 안 한다고 현대중공업의 적자 문제가 해결될리 만무하다. 그냥 “노조가 밉다”고 쓰면 될 일을 장황하게 현대중공업 경영부실의 원인은 왜 늘어놓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