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가면 가장 먼저 사우나 가서 때 밀고 싶어요”

[연정의 바보같은사랑](84) 굴뚝농성 185일 차, 2차 스타케미칼 희망버스를 기다리는 차광호 씨

[필자주] 11월 29일,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서 187일째 농성 중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이하 ‘해복투’) 대표 차광호 씨를 응원하는 두 번째 ‘스타케미칼 희망버스’가 출발합니다.

폴리에스테르 원사 제조업체인 스타케미칼(구 ‘한국합섬’)은 모기업인 스타플렉스의 흑자에도 불구하고 2013년 1월 일방적인 폐업에 들어가고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했습니다. 자산가치 900억 원에 달하던 파산한 한국합섬 공장을 스타플렉스가 399억 원에 인수하여 재가동한 지 2년 만에 발생한 일로 해복투 성원들은 ‘먹튀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차광호 씨는 스타플렉스가 한국합섬을 인수할 때까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멈춰버린 공장을 지키며 공장 가동을 요구하는 한국합섬노동조합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인수 당시 한국합섬 조합원들의 고용과 노동조합, 단체협약 승계 합의에 따라 스타케미칼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사측이 요구하는 ‘권고사직’을 거부하는 노동자들은 해복투를 결성하여 투쟁을 시작했으며, 현재 12명의 해고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폐업 후에 스타케미칼이 분할매각을 실시하려 하자 올해 5월 27일 새벽 3시에 분할 매각 중단과 공장 가동을 요구하며 차광호 씨가 굴뚝에 올랐습니다. 초여름에 올라가 세 번째 계절, 겨울을 맞이하며 2차 희망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차광호 씨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출처: 2차 스타케미칼 희망버스 기획단]

운동은 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

“잘 지내시죠? 아니.. 잘 못 지내시죠...?”
“굶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요...”

185일 굴뚝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인사 건네는 게 쉽지 않다. 연락처를 갖고 있었지만, 그간 연락 한번 하지 않은 터였다. 다행히 요 며칠 날씨가 포근하다고 했다. 케이블방송 씨앤앰 노동자들이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 고공농성을 시작하던 지난 11월 12일에는 바람이 많이 불고 얼음이 얼 정도로 추웠단다. 밑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물을 페트병에 담아 수건으로 말아 침낭 안에 넣고 잠을 청하기도 했었다.

“그러면 많이 뜨뜻해요.”

차광호 대표는 운동을 하고 이제 막 자신의 집(천막)에 들어왔다고 했다. 차 대표는 매일 저녁 식사 한 시간 전에 굴뚝농성 날짜의 10배에 해당하는 숫자만큼 ‘줄넘기 없는 줄넘기’를 한다. 185일이 되는 이날은 줄넘기를 1,850번 하고, 팔굽혀펴기도 100개 이상 했다.

“고공 농성한 동지를 얘기 들으니까 140일 전후로 체력이 떨어진대요. 안 되겠다 싶어 140일 무렵부터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차 씨는 하루에 4~5시간 정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한다. 새벽 스트레칭과 제자리 뛰기 4천 번을 시작으로 점심 식사 전에는 절 운동을 고공농성 날짜만큼 하고 복근운동을 한다. 차 대표가 왕(王)자가 새겨진 자신의 복근을 살짝 공개한 적도 있었다. 저녁식사 전에는 줄넘기와 팔굽혀펴기를 하고 저녁 식사 후에는 속보로 굴뚝 안을 왕복한다. 한 번 가는 데 스물 여섯 발걸음으로, 이를 농성 날짜만큼 반복한다. 덕분에 살이 많이 빠졌다. 밑에 있을 때는 일 년 365일 중에 340일 정도 술을 먹어 몸무게가 80kg이 넘었는데, 지금은 재보지는 않았지만 70kg 정도 될 거 같단다.

“운동도 힘들어요. 견디려고 하는 거죠. 죽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에요.”

빽빽하게 채워진 그의 하루 일과를 들으며 감탄과 반성을 하는 내게 차광호 씨가 씁쓸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출처: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복투 대표]

내 자신이 미워져서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조직력이 돼서 밑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올라오지 않았을 겁니다. 한국합섬 투쟁 5년 동안 굴뚝농성 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자본을 타격하면 됐으니까요.”

12명이 투쟁을 하면서 많은 고민 끝에 올라왔다고 한다. 그는 요즘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한다고 했다. 내려가면 뭘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지, 자신이 그동안 노동조합 활동을 관성적으로 한 것은 아닌가에 대한 성찰도 한다. 이 투쟁이 마무리가 안 되고 내려가면 뭘 하든 떳떳하거나 당당하지 못할 거 같기도 하다.

“사람 본연의 동심을 많이 느껴요. 연정 동지요. 6개월 동안 굴뚝에 혼자 계셔보십시오. 그런 마음이 안 드나... 서러워서 눈물이 납니다. 노동자로 사는 거, 자본주의에서 돈 없고 힘 없고 빽 없이 사는 거. 내 자신이 미워져서 힘들었습니다.”

요즘은 죽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밑에서 연대활동 하는 이들이 보내준 《틱낫한의 포옹》(틱낫한)이나 《홀가분》(정혜신) 같은 책을 보며 자신을 돌아보기도 했다.

제 청춘을 다 바친 공장에서 일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공장 돌리는 게 가장 중요한 건데요. 같이 일했던 조합원들... 그 동지들이 다시 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잘 안 되네요.”

같이 일했던 동료들 이야기가 나오자 차 씨가 울먹인다. 요즘 그는 노동자가 공장을 운영하는 자주관리기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하지만, 스타케미칼은 규모가 큰 폴리에스테르 원사 업체이고, 제품을 소비자가 아닌 기업에 넘긴다는 특성 때문에 밑에 있는 동료들에게 크게 공감을 받지는 못하고 있단다.

“군대 갔다 와서 영업사원을 하다가 95년에 입사했어요. 그 이후로 20년 동안 한 번도 이 공장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한국합섬이 파산했을 때도 이 공장을 지켰습니다. 이 공장은 제 청춘을 다 바친 공장입니다. 앞으로도 이 공장에서 일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지금 그에게 큰 위안을 주는 것 중에 하나는 페이스북이다. 굴뚝 위에서 185일째 살고 있는 차광호 씨에게 페이스북은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수단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의 흐름을 알고, 사람과 소통을 한다.

“굴뚝에 올라오기 전에는 힘들어도 힘들다고 표현하지 않았어요. 꼭 할 얘기만 했죠. (노동)조합 활동하면서도 보수적인 성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 게 좋아요.”

이날은 페이스북 친구 권용해 씨가 선물로 보낸 발열양말과 핫팩, 워머 등이 올라왔다.

희망버스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

“8월에 1차 희망버스가 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지역도 그렇고 금속노조도 그렇고 해복투만 고립되어 힘들고 절망적이었습니다. 1차 희망버스를 통해 전국에 우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힘을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굴뚝농성 187일이 되는 이틀 뒤면 그가 있는 굴뚝 밑으로 두 번째 희망버스 승객들이 온다. 2차 희망버스 문화제에서 할 발언을 준비하던 차광호 씨는 소풍가는 전날보다 더 기대되고 설렌다고 했다. 그동안 페이스북이나 전화통화로만 만나던 이들을 45미터의 간극은 있지만, 멀리서나마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고마움과 함께 이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아 많은 분들이 계속 마음을 쓰고 스타케미칼에 오는 버스에 오르게 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도 있다. 다른 투쟁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부모님과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크다. 그가 굴뚝에 있는 동안 암투병 중인 그의 장모가 수술을 2번이나 받았는데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자신 앞에 닥친 부당함을 못 본 척 하고 비껴갈 수 없는 것도, ‘먹튀자본’을 막아내고 이 공장에서 일하며 민주노조를 지켜내고 싶은 것도 그의 진심이다.

[출처: 스타케미칼 1차 희망버스 때의 차광호 씨]

그립네요 사우나~

“내려가면요? 가장 먼저 사우나에 가서 때를 밀고 싶어요. 사우나를 즐기는 편이었어요. 투쟁이 힘들면 술 먹은 다음 날 사우나 가서 돌이켜보고 고민도 하고 뜨거운 데 앉아 땀도 빼고... 그립네요. 사우나~”

오후 6시 45분. 그의 저녁 식사 시간에서 45분이 지났다. 오늘 저녁 메뉴는 된장찌개와 돼지두루치기다. 음식이 다 식을까봐 통화를 종료하기로 했다. 인터뷰가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면 좋을 것 같다며 식사 맛있게 하라고 한다. 미안하고 할 말이 없다 보니 동지들도 전화를 잘 안하는데, 있는 그대로 편하게 연락하면 좋겠단다. GMO가 들어간 식품은 안 먹는 게 좋다는 조언도 곁들인다. 식사를 하고 나면 차광호 씨는 굴뚝 안을 스물여섯 걸음씩 185번 왔다 갔다 할 것이다.

“동지들하고 같이 음식하는 게 재밌는데, 지금은 할 수가 없네요. 여기에 된장, 고추장, 매운 고추와 김치는 항상 비치해 놓는데요. 그렇게 밥 비벼먹으면 꿀맛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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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노동자 , 스타케미칼 , 차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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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설노동자

    너무 고생많습니다. 눈물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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