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의원 한 명 절실했던 정치세력화 어디쯤 와 있나

[쿠오바디스 진보정치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3)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만 있었더라면...”
96-97 노동법 개악 저지 총파업 당시 민주노총은 보수야당인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을 믿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주노총의 ‘노동자 국회의원’ 열망은 20년을 달려왔다. 하지만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로 표현된 진보정당 운동은 한 시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길 앞에서 좌표를 잃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20년 전 실패한 총파업에서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이란 절실함이 나왔고, 거기서 시작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얼마나 이뤄졌을까? 노동자를 대변할 의원 한 명이 필요했던 그때에 비해 노동자 목소리는 2015년 국회에서 얼마나 반영되고 있을까?

<참세상>은 노동자의 목소리가 국회에서 반영되는 1차 경로를 보기 위해 2012년 총선 전후 시기부터 국회 기자회견장(정론관) 외부단체 사용 내용을 살펴봤다. 외부단체가 정론관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선 현역 의원이 배석하거나 원내 정당 대변인이 소개해야 가능하다. 정론관 사용 내용엔 어느 당 의원과 어느 노동조합이 어떤 기자회견을 했는지 담겨 있다. 국회 사무처가 작성해 한선교 새누리당 의원실에 제출한 통계엔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었다.

2012년부터 올 2월까지 외부단체가 참석한 정론관 기자회견 현황을 보면 새정치연합(구 민주통합당)이 677건, 통합진보당이 207건, 새누리당이 147건, 정의당 95건 순이었다. 이중 민주노총과 산하 사업장 문제로 참가단체를 기록하고 정론관을 사용한 횟수만 최소 68건 이상으로 참여연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민주노총이 함께한 정당은 압도적으로 새정치연합에 쏠렸다. 2012년 총선 전까지만 해도 민주노총과 소속 산별노조, 단위노조들은 통합진보당(민주노동당)과 정책협약식, 노동개혁안 요구 등 총선 관련 기자회견을 많이 했다. 총선이 끝난 후 통합진보당이 내홍 사태에 빠지면서 쌍용차 정리해고,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 등에서 새정치연합 환경노동위원회 의원과의 기자회견이 늘기 시작했다. 간간이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과 기자회견도 있었지만, 대선 시기라 많지 않았다.

대선이 끝난 2013년 초부터 각종 노동 사안 기자회견은 새정치연합 은수미, 장하나 의원이 거의 도맡았다. 2013년에 나타난 특이점은 환노위 외에 학교비정규직,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교과위, 진주의료원 문제-보건복지위 등으로 새정치연합 기자회견 담당 상임위가 확장되기 시작했다. 대부분 노동 사안은 새정치연합이 주도했고, 정의당과 통합진보당도 드문드문 기자회견을 했다.

2014년엔 지방선거가 있었지만 여전히 장하나, 은수미 의원을 중심으로 했고, 새로 환노위 간사를 맡은 이인영 의원도 자주 이름을 올렸다. 또 여타 국토위, 산업위 새정치연합 상임위 의원들도 민주노총 기자회견에 배석했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다룬 노동 사안은 창조컨설팅 노조파괴, 삼성전자 서비스 불법파견, 기륭, 산업재해, 통신사 비정규직, 철도노조 문제 등 굵직한 것에서부터 소소한 사안 전반에 걸쳤다.

19대 국회 후반기 신승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직접 정론관에 섰던 두 차례 기자회견도 새정치연합 환노위 의원들과 했다. 신 전 위원장이 직접 나선 회견은 ‘통상임금 정상화 노동시간 단축 관련 민주노총 입법 청원’(이인영 의원 2014.8.13.), ‘초단시간 노동자 권리 보장 입법 발의안 발표’(우원식 의원, 2014.10.01.)로 모두 입법 관련 기자회견이었다.

한국노총 쪽은 3년여 동안 15회로 별로 많지 않았다. 한국노총은 탄압 사례가 많지 않은 데다 기자회견으로 문제를 이슈화하기보다는 개별 의원실을 찾아가 중재를 통한 의회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노총 소속 사업장들은 탄압도 많이 받는데다 언론 이슈화를 통한 드러내기식 사업 방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통합진보당도 노동 관련 기자회견을 어느 정도 했지만 주로 당권파 친화적인 노조와 함께 했다. 정의당은 민주노총에 포괄되지 않는 노동조합이나 노동 의제가 상당수 눈에 띄었다.

노동조합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주는 국회의원이 많아졌다는 사실만 본다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20년 사이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진보정당뿐 아니라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민주당) 의원실 문턱이 낮아졌고, 정론관 기자회견도 민주노총 소속 단위노조가 많기 때문이다. 또 노동 관련 의제가 국회 안에서도 중요한 사안이 됐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2014.10.01 초단시간 노동자 권리 보장 입법 발의안 발표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의원실 문턱 낮춘 것도 있지만, 진보정당과 참여계 통합도 한 몫

19대 국회에서 새정치연합으로 노동 사안이 쏠리는 이유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민주노총의 배타적지지가 풀리고, 진보정당 공백이 생기면서 민주당(새정치연합/ 민주통합당) 의원실과 사업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됐다. 통합진보당-정의당에 참여정부의 한 축을 담당했던 국민참여당이 같이 하면서 새정치연합에 대한 경계심과 민주노조 주위의 눈총도 덜 받게 됐다.

민주노동당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한 인사는 “민주노동당이 참여당과 통합할 때 민주노총의 반대가 꽤 컸다. 결국 참여계와 통합하고 나니 ‘참여계와는 (통합도) 되는데 왜 민주당과는 안 되느냐’는 얘기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얘기하면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하나는 새정치연합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을지로위원회(‘을’들을 지키는 위원회) 중심의 친노동 행보가 일상적, 전문적 수준으로 진행되는 데 있다. 새정치연합(민주당)은 2012년 총선 야권연대 전후 야권 4당 공동 행보를 통해 노동 사안에 전폭적인 지지와 관심을 보내며 의원실 문턱을 낮췄다. 을지로위원회를 통해선 현장 스킨십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몇몇 의원들이 쌍용차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규명으로 당론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하면서 일부 신뢰를 쌓은 측면도 컸다. 이러다 보니 의원실이 특정 사안을 위해 노조에 연락하는 경우보다는 노조에서 먼저 의원실을 찾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노조가 의원실을 찾는 경우는 고용노동부(노동청), 국토부 등 정부기관을 움직여야 하거나 대중적 공분이 큰 사안, 언론과 접촉이 필요할 때 등이다. 의원실과 노동조합의 연결통로는 환노위가 한 축으로 있고, 총연맹이나 산별노조의 대협실, 사안별 담당자들의 소개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국회를 찾는 단위노조들은 대부분 어렵고 힘들게 싸우는 사업장이라 제조업, 서비스업 소속이 상대적으로 많고, 새정치연합 의원실도 새누리당 합의 없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많다. 하지만 정론관에 항상 기자들이 앉아 있는데다 국회의원이 소개와 멘트도 같이 해서 힘도 실리는 장점이 있다. 정치담당 기자들이 대부분이라 큰 사안이 아니면 기자들의 관심도는 많지 않지만 국회에서 뭔가를 했다는 만족도는 의원실이나 노조 양쪽 다 크다.

입법 논의, 국정감사 대비 등 단기적 사안을 통해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면 국회의원과 노동조합원들이 스킨십을 하며 국회에서 집단 간담회 형식으로 만나기도 한다. 지난 3월 4일 이인영 의원이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민주노총 동양시멘트 하청노동자 100여 명을 만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자리에서 이인영 의원은 일반 조합원들의 질문 하나하나에 최대한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인영 의원실의 신세종 보좌관은 “을지로위원회가 열심히 하면서 현장에서 새정치연합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며 “이전에는 그냥 야당으로만 봤다면 이제는 노동자 정당까지는 아니지만,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 노력하는 정당 정도로는 봐주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인영 의원은 환노위 간사를 맡으면서 민주노총과 여러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기도 했다.

  2011년 노동절 민주노총 노동자 대회 단상에 오른 당시 손학규 민주당 대표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진보정당의 빈자리 메꾼 을지로위원회

새정치연합의 노동 사안 광폭 행보에서 을지로위원회를 빼놓을 수 없다. 을지로위원회는 2012년 통합진보당 내홍 사태 이후 40여 명의 의원과 당직자 4명, 보좌진으로 구성해 진보정당의 빈자리에 확실하게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한 진보정치 활동가 친목모임에선 을지로위원회에 대한 가벼운 평가가 진행된 바 있다. 당시 모임에 제출된 을지로위원회 평가 제안서는 “진보정당 활동가들은 언제나 현장에서 헌신하고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최근 언론을 통해 현장중심의 활동을 하면서 성과를 내는 곳은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라고 평가했다.

을지로위원회는 노동 현안 해결 외에도 노동 의제 선점, 노동자 정치인 발굴까지 주도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선 을지로위가 나서 경기도의회 비례대표 1번을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회련 학교비정규직본부 경기지역 간부에게 배정했다. 지난 23일엔 문재인 당대표까지 참가시켜 희망퇴직, 명예퇴직을 정리해고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로 최초 이슈화하면서 노동 의제를 선제적으로 주도했다.

  2014.6.30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사 단체협약 조인식에 함께한 을지로위원회. 왼쪽부터 우원식 새정치연합 최고위원(을지로 위원회), 윤욱동 민주노총 금속노조 사무처장(염호석 열사 쟁대위 위원장), 박종길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 남용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노사대책본부장, 은수미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 의원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새정치연합에 쏠린 노동자 민원창구의 한계
“친노동이라 하기엔 이념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


정론관 기자회견 통계와 을지로위원회 광폭 활동을 두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진전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여러 민원을 해결하는 창구가 확장된 것은 진전이긴 하다. 하지만 새정치연합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여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양시멘트 노동자들과 이인영 의원과의 집단 간담회는 새정치연합의 노동 행보가 가진 한계가 민주노동당이 가지고 있었던 한계와 비슷한 측면이 있음을 보여줬다. 이인영 의원은 동양시멘트 문제 해결을 위한 위장도급 관련 법안을 발의했지만 여당의 반대로 통과가 쉽지 않다며 여당 책임론을 강조했다.

한 조합원이 “집단해고를 당한 상황인데 국회 차원에서 열의를 가지고 동양시멘트를 엄하게 다루실 의향이 있으시냐”고 묻자, “의원이랍시고 회사를 협박한다는 얘기를 직접 드리는 것이 도움을 드리는 게 꼭 아닐 수도 있다. 여러분께 소홀한 게 아니라 그런 사정을 알아주시고,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위로가 되는 시간이셨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새누리당이 다수인 데다 보수언론이 주도하는 지형에서 운신의 폭이 좁다는 뜻이다.

새정치연합 노동 행보는 근본적인 해결과 시스템 변화보다는 지원과 법안 발의 정도의 역할을 주요과제로 설정해 놓은 데서 노조와 괴리가 있다. 또 초기엔 대중적 이슈를 함께 하다 막판에 보수언론 눈치 보기로 어정쩡한 합의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아 신뢰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많다. 새정치연합 지도부는 세월호 협상 과정에서도 여당과 싸우며 쟁취하기보다는 삼자적 입장에서 비슷한 문제를 드러낸 바 있다.

2012년 19대 총선 직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보여준 민주당(새정치연합)의 태도도 비슷했다. 5월께 박지원 원내대표와 민주당 환노위 의원들이 대한문 쌍용차 분향소를 방문했다. 당시 민주당은 쌍용차 문제에 깊이 들어가지 말고 지원하는 쪽으로 가자는 기조가 강했다. 상황을 파악한 쌍용차 범국민대책위원회 측은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유족과 해고자 지원은 없어도 된다. 진상규명이 최대 지원이다”고 못박았다. 결국 은수미 의원이 당내에서 강하게 진상규명 쪽으로 가닥을 잡기 위해 노력해 기조 정리가 됐고,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도 역할 분담을 하면서 국회가 쌍용차 청문회 등에 깊이 있게 들어갈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민주노총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새정치연합)은 친노동이라고 하기엔 이념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었지만, 진보정당이 거의 와해하는 상태에서 당장 내 문제에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그룹에 갈 수밖에 없었다. 제1야당이 중요한 순간 보수적으로 기우는 것보다는 낫다는 심정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민주당에는 개인적 차원에서 노동 의제에 진정성을 가진 의원들이 많지만 그분들의 의사가 내부 협의 과정을 통해 수렴될 때는 잘 안 된다”며 “그분들이 해결구조를 관철해 당론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실제 겪어보면 그게 진보정당과 정체성의 차이로 느낄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소통이 잘 되는 새정치연합 의원들과 일이 잘되기는 하지만 벽도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당론으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해결돼야 당론으로 될 수 있다’고 하는데 도저히 해소할 수 없는 요구가 나온다”며 “현장은 절박해서 여유가 없는 데 양보가 필요하다는 식이다. 개인 의원 선에서는 움직여도 민주당 전체가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지난 25일 공무원연금과 관련해 새정치연합이 낸 안도 새정치연합의 이런 태도가 반영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적연금 강화 공투본 관계자는 “제1야당이 보수언론의 공격에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측은지심마저 들 정도”라며 “실제 새정치연합 의원들과 오래 만나봤더니 결국 의원들도 눈치를 보면서 갑질을 하고 있었다”고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새정치연합의 정체성이 친노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아직 과도하다는 평가가 많다. 사회적으로 노동 관련 의제가 넓어지는 만큼 정당 쪽에서도 그 부분이 수혈된 정도라는 것이다. 쌍용차처럼 국민적 관심을 보이는 노동 사안은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나 김상민 의원도 국정감사 등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의제를 주도하기 때문이다. 실제 새누리당 김성태, 이종훈, 김상민 의원은 지난 대선 당시 쌍용차 국정조사가 박근혜 후보의 대선 공약이 되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과 노동조합의 스킨십이 늘어난 데는 노동조합이 유력한 의견 그룹으로 성장했다는 점도 작용하고 있다. 최근 고속도로 톨게이트 문제만 해도 국토위의 한 의원실에서 2년 넘게 노동조합과 작업하면서 내부 자료 등을 축적한 성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권은 어떤 사안이 생기면 노조부터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일각에선 을지로위원회가 실제 근본적인 해결을 이룬 사안이 거의 없어 민주노동당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슈화를 하고 현장에 자주 모습을 보이는데 실질적 해결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을지로위원회에 참가하는 한 의원실 보좌진도 이런 한계를 인정했다. 이 보좌진은 “우리도 민원 해결 방식으로 노조를 만나는 것은 줄여 가려고 한다. 노조들이 손쉽게 민원을 해결하려고만 하기 때문”이라며 “과거엔 대중투쟁을 통해 정치 집회를 하고 절차를 밟아 투쟁으로 성과를 만들었다면, 의원실을 통해 민원을 넣고 노동청을 거쳐 사측에 압력이 가면 간단한 민원이 금방 해결되던 민주노동당때 방식을 체득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의원실엔 힘든 민원도 많이 들어온다”며 “우리도 정치가 대리해서 해결해 주면 좋지만, 투쟁햐야 할 사안도 우리에게 해달라는 식이 있어서 가끔 답이 없을 때가 있다”고 토로했다. 노동조합 집행부의 보여주기식 사업 관행이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 이후 의회에 맞춰 변화한 예다. 민주노동당 시절엔 이런 식의 원내 사업에 비판이 일면서 원외 대중투쟁이 강조되기도 했다.

환노위를 거쳤던 새누리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한국노총은 의원실에 찾아와 소리를 지르다가도 문을 닫으면 어떻게 해달라고 구체적인 중재를 요구하는데 민주노총 쪽은 소리만 지르고 그냥 간다”며 “지도부의 이해관계에서 어정쩡한 수습이나 사태해결보다는 선명하게 박살나는 걸 원하는 게 아닌가 하는 판단이 들면 우리도 거기에 맞춰 준다”고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미 노동계 민원 해결 창구의 한계점을 경험한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은 노동 사안에 대한 보다 근본적이고 폭넓은 접근을 고민하고 있다. 심상정 의원실의 신언직 보좌관은 “우리는 생색내기도 어렵고, 남이 하지 않는 의제에 집중하면서 노동 문제를 전략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주로 삼성 문제나 화학물질, 산재 등 노동에서 새로운 영역으로 넓히고 전체 보편적 의제로 만들기 위해 집중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노동자 정치세력화 전망은 어디에

어쨌든 노동자 국회의원 한 명으로 상징됐던 노동자계급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하는 의원은 많아졌다. 지난 2008년 3월 24일 민주노총이 주최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18대 총선승리 결의대회’ 보도자료엔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어느 때보다 절박하고 핵심적인 시대적 요구가 됐다”며 “민주당류 보수정치 내부의 형식적 구별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과속을 제어할 수 없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핵심 해결과제인 사회양극화, 경제민주화는 노동자의 정치적 진출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적혀있다.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에 입당해 현재 새정치연합 전국노동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석행 씨다.

당시 민주노총은 18대 총선에 25명의 노동자 후보를 출마시켰으며 민주노총 출신 국회의원 출마자 서약식을 진행했다. 서약서 내용은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규율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본인은 민주노총 조합원을 대표하는 후보로서 노동자의 정치적 진출이 보수정치권을 개혁함은 물론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중략)... 국회로의 진출이 개인의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천오백만 노동자의 희망을 여는 새로운 영역의 투쟁이라는 점을 깊이 인식하여, 민주노총과 함께 모든 것을 의논하고 결정해 나갈 것을 분명히 합니다. 만약 위와 같은 내용이 지켜지지 않고, 민주노총의 품위와 노동자의 대의를 저버리는 행동을 했다고 민주노총이 판단할 경우 언제라도 의원직 사퇴와 지원금 반환 등 각종 제재조치를 이행할 것을 서약합니다”

서약서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민주노총의 지시를 받는 국회의원이란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었다.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 배타적 지지를 통해 조직적인 세액공제로 선거비용과 선거 운동원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제 “민주노총과 모든 것을 의논하고 결정해 나갈 것을 분명히 하겠다”는 서약식은 더는 필요가 없어 보인다. 이미 1야당도 민주노총과 노동 사안에 대한 의회 전술을 의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1야당은 새누리당이란 현실론을 들어 적당한 조정과 중재 줄타기에 충실하고 있다. <계속>

제안서에 담긴 을지로위에 대한 더 많은 평가 내용

진보정당 활동가 친목 모임 을지로위 평가 제안서는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은 매우 낯익다”며 “어쩌면 진보정당이 원내교섭 단체가 되었다면 했음직한 것”이라고 봤다. 을지로위 활동 방식이 현장으로부터 다양한 민원을 접수하고, 민원을 해결할 수 있는 해당 상임위 국회의원, 전문가 집단, 보좌진,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공동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해 간다는 것이다. 을지로위는 이 과정에서 의원의 권위를 이용한 현장방문, 사장 면담 등을 통한 중재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 방식은 지난 18대 국회에서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홍영표 민주당 의원과 함께 공항공사 사장 등을 찾아가 면담하고 노사분규를 중재, 압박하던 방식과 유사하다.

제안서는 또 “진보정당이 가지고 있는 ‘연대’ 입장보다는 ‘민생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춘 것 같지만 4-50여 명의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이 각자의 상임위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 진정성이 느껴진다”며 “민주노총 산하 많은 노조도 을지로위 활동에 박수를 보내며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과거에도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과 의원실 보좌진과 협조관계를 가지고 일처리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수준과 깊이, 절대적인 양이 많아졌다”며 “물론 기우이지만 현실적으로 ‘원내 정치’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버린 노동운동이 노동중심의 진보정당에 대한 필요성과 희망마저 잃어버리지 않을까란 우려가 든다”고 썼다.

을지로위원회에는 민주노동당 출신 보좌진들이 상당수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동당 출신 보좌진들은 노동계와 인맥이 있어서 스킨십도 잘되고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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