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쿠바 노동절 행사

라울 카스트로의 발언 없어도 전세계 노동자의 축제

5월 1일 쿠바 아바나 호세 마르티 혁명 광장은 쿠바 노동자-민중과 남미 세계 노동자들의 축제로 열렸다. 이틀 전 쿠바 전역의 갑작스런 폭우와 노동절 당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였지만, 쿠바 전역에서 집결한 노동자-민중, 이들과 연대하기 위해 직접 달려온 수십만 명이 혁명 광장을 가득 채웠다.

국가평의회 의장 라울 카스트로를 비롯한 쿠바 혁명정부의 지도부와 함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참석해 쿠바와 베네수엘라의 연대를 과시했다. 특히 쿠바-미국 정상화 합의로 석방된 쿠바 5인은 수십만 명이 참석한 쿠바 대중단체의 행진을 선도해서 이번 노동절의 의미를 더욱 각별하게 만들었다.


쿠바 혁명의 열정이 살아있는 노동절

오전 7시(현지시각) 참가자 소개와 함께, 노동절의 주인인 쿠바 노동조합총연맹(CTC) 훌리세르 히라르떼 데 나씨미엔 총서기가 단상에서 쿠바 노동자를 대변해 기조연설을 했다.

그는 먼저 “혁명 이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혁명 정신으로 쿠바를 이끌어 온 우리 영웅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를 존경한다”고 발언했다. 이어 “쿠바 5명의 영웅이 석방돼 우리와 함께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번 노동절은 의미가 크다”고 말하자 쿠바 민중은 열렬하게 환호했다.

최근 미국과 쿠바 사이에 국교 정상화와 관련해서 “혁명 1세대가 일궈온 쿠바 혁명을 지금 젊은 세대가 이어 받아 미국의 대 쿠바 경제봉쇄 정책을 없애야 하며,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쿠바가 같은 위치에서 이끌어 나가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는 민중과 노동자를 향해 “노동절의 깊은 뜻을 알고 혁명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자”면서 “사회주의의 기본 이념은 함께 일하는 것이다. 겸손하고 협동하는 자세로 계속 일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하면서 짧은 연설을 마무리했다.

그의 발언이 끝나면서 쿠바 5인을 선두로 한 수십만 명의 행진이 흥겨운 쿠바 리듬과 함께 시작됐다. 각 지역과 부문별 단체들이 형형색색의 다양한 깃발을 들고 1시간 넘게 행진해 쿠바 노동자의 특유의 축제의 장이 됐다.

  행진을 준비하는 노동절 참가자들


단상 위에서는 라울 카스트로를 비롯한 쿠바 정부와 공산당 지도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외교사절이 행진단을 환영했다. 단상 아래는 전 세계 30개국 이상 3,000여명의 국제연대 활동가들이 채웠다. 이번 행사에는 5월 1일 국제 노동절 브리가다와 체게바라 브리가다를 포함해 다양한 국제연대 그룹과 개인들이 참여해 쿠바 정부와 혁명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표현했다.

행진 현장에서

노동절 행사 전 로랜소 소마르리바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혁명 광장에서 10여분 걸리는 곳에 살고 있지만 새벽 4시부터 일어나 노동절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했다”면서 “노동절은 쿠바인의 축제다. 나는 매년 노동절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인 그는 또 “노동절 행사에 의사와 간호사, 의료준비생 등 의료인이 대오 앞에서 노동절 행진을 주도해 의미가 크다. 최근 267명의 의료인이 아프리카로 자원봉사를 가기도 했다”면서 “이들은 진정한 쿠바 의료의 영웅이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실제 새벽 5시부터 혁명 광장으로 향하는 거리 곳곳은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쿠바의 군인, 노동자, 학생 등은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데도 그룹을 지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며 호세 마르티 기념탑으로 모였다.

  새벽 5시부터 혁명 광장으로 향하는 거리 곳곳은 축제 분위기로 가득했다

거리에서 만난 물류회사 노동자인 야넬리(32) 씨는 “항상 우리의 친구인 마두로 대통령이 참석해 기분이 좋다”면서 “또 쿠바인으로서 15년간 감옥에 수감된 것은 불행하고 아픈 일이었지만 이번에 석방된 쿠바 5인을 존경하고, 이번 행진에서 석방된 그들과 함께 해 기쁘다”고 전했다.

30년간의 군생활을 마친 헥토르 라르리나가(72) 씨도 “쿠바 5인이 석방되고 함께 맞는 첫 노동절이기 때문에 매우 의미 있다. 날씨가 좋지 않은데도 이전 노동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고 말했다. 오늘 행사가 끝나고 무엇을 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집에서 음악 들으면서 술 한 잔 할 것이다. 왜냐면 오늘은 노동절이니까”하고 웃었다.



미국과 외교 정상화가 노동절 이슈??

외교 정상화가 발표되고, 미국과 쿠바 양국 간 분쟁의 핵심 사안 중 하나였던 쿠바 5인이 석방된 상황에서 이번 쿠바의 노동절 행사는 예상과 달리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주도한 행사가 아니었다.

예상됐던 라울 카스트로의 연설은 없었다. 미국과의 외교 정상화는 국제적 이슈였지만, 쿠바정부와 민중의 걱정거리는 아니라는 메시지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반세기가 넘는 미국의 봉쇄와 압박을 이겨내고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의 전 대륙적 연대를 이끄는 쿠바 정부와 민중의 승리라는 자부심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올해 노동절이 쿠바 노동자들만의 행사는 아니었다. 각계각층의 민중과 국제연대 대오가 쿠바 혁명을 통한 국내외적 단결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감옥에서 풀려난 쿠바 5인은 연단이 아니라 행진의 선두에서 각계각층 민중 조직의 대오를 이끌면서 연단 위아래서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오전 9시 격동과 흥분의 20만여 명의 행진이 끝나자, 언제 그랬느냐듯 날씨는 개였다. 혁명 광장의 대오는 흩어졌지만, 동트기 전부터 시작된 쿠바 노동절 행진은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 사회주의 쿠바의 미래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덧붙이는 말

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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