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조는 국민을 위한 국가로 바꾸는 것

[책소개] 마쓰모토 겐이치, 정선태·오석철 역, <기타 잇키: 천황과 대결한 카리스마>(교양인, 2010)

처음부터 기대도 안했고 믿지도 않았다. 통치철학도 없고 사유체계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질이 부족하기 때문에 매우 무능하고 인간을 존중할 줄 몰랐다. 작년 5월 19일의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날 박근혜는 대한민국을 국가개조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역시 국가개조가 뭔지 잘 모르는 게 분명하다. 아마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의 습관적인 사용을 물려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의 국가개조를 언급하면 우리에게는 상당히 낯선 일본의 사상가인 기타 잇키(北一輝)와 함께 회자된다. 박정희가 1936년 일본 청년 장교들의 쿠데타인 2.26 사건을 높이 평가했으며, 2.26 쿠데타 주역들의 사상적 배후인 기타 잇키를 연구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0년도에 교양인에서 발간한 1200여 쪽에 달하는 <기타 잇키: 천황과 대결한 카리스마>를 다시 꺼내어 다시 읽어본다.


기타 잇키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기타 잇키에 대한 평가는 실로 다양하다. 그는 사회주의, 아나키즘, 민주주의, 국가주의, 천황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낭만주의 등 온갖 사상의 바다에서 자신의 이념을 정련한 사상가였다.

그는 스스로 ‘동양의 루소’라 칭했던 광기의 천재였다. 사회주의 사상을 자양분으로 삼아 스스로가 곧 국가의 체현자이기를 갈망한 국가사회주의자였다. 인간은 모두 고귀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정신적 귀족주의자였고, 계급 차별을 타파하고 하층을 상층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한 고상한 평등주의자였으며,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믿은 ‘순정(純正)’ 사회주의자였다. 동시에 그는 개인의 자유를 열렬히 옹호한 개인주의자였고, ‘동양적 공화주의 혁명’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 신해 혁명에 뛰어든 낭만적 혁명가였다.

그는 천황 신화를 폐기하고 천황을 혁명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했던 가공할 상상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천황 신화를 거부했고, 천황 숭배라는 미신에 빠진 일본을 야만의 나라라고 비판했다. 국체론이라는 이름의 천황 절대주의를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고 해체한 사람이었다. 발행되자마자 모두 압수되어 금서로 묶인 <국체론과 순정사회주의>는 사회주의와 국가주의를 결합한 사상서이자 천황 주권론에 맞서 국민 주권론을 제시한 이론서였다.

그는 국가사회주의 이념의 원조였지만 히틀러의 나치즘이나 무솔리니의 파시즘과는 무관한 독자적인 ‘파시즘 혁명가’였다. 그는 일본의 중국 침략을 비판하고, 중국과의 전쟁이 결국 2차 세계대전을 불러와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 예언한 선견지명의 소유자였다. 이 점에서 그는 군국주의적 침략 논리로 태평양전쟁으로 치달은 일본 천황주의자나 군국주의자들과는 다른 존재였다.

그의 <일본개조법안대강>은 가장 위험한 불온 문서였다. 일본 국가 혁명의 강령이 담긴 이 대작은 좌우를 넘어 지식 계층 전체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으며, 1936년 2.26 쿠데타의 주역이 된 청년 장교들 사이에서 ‘바이블’로 받아들여졌다. 기타 잇키는 청년 장교들을 사상으로 현혹했다는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쿠데타 주역들이 모두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며 죽어갈 때, 사형대에 선 이 사상의 지도자는 ‘만세’ 부르기를 거부했다.

기타 잇키가 볼 때 일본이라는 국가는 재벌과 정치 파벌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국가를 국민을 위한 국가로 바꾸는 것이 기타 잇키가 세운 국가 개조론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재벌과 소수의 정객이 장악하고 있는 국가를 국민의 국가로 바꾸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는 정당 정치를 부정하고 직접 행동에 의한 국가 혁명을 상상했다. 직접 행동이란 테러와 암살을 뜻했고, 실제로 2.26 쿠데타에 가담한 군인들은 고위 관료를 암살하는 방법을 택했다. 명시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기타 잇키가 제시한 것은 위관급 청년 장교와 병사들에 의한 쿠데타였다.

일본의 사상사가 마쓰모토 겐이치의 필생의 역작인 <기타 잇키>는 1부 '청년 기타 잇키', 2부 '국체론에 맞선 사상가', 3부 '중국으로 간 혁명가', 4부 '막후의 카리스마', 5부 '기타 잇키 전설'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역사와 사상을 종횡무진하는 해박한 지식과 사건의 이면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사이비 혁명가, 극우 파시스트라는 오해 속에 가려져 있던 기타 잇키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저자는 사회주의에서 국가주의에 이르는 기타 잇키의 사상적 편력을 통해 근대 일본이 수용하고 대결해야 했던 사상적 스펙트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나아가, 쑨원과 쑹자오런을 비롯한 중국 신해 혁명의 주역들, 노동자들의 직접 행동을 주장한 사회주의자 고토쿠 슈스이, 아나키스트 오스기 사카에, 기독교 사상가 우치무라 간조, 천황 암살 계획을 세웠던 조선의 독립 운동가 박열, 한일 병합의 배후인 흑룡회와 우치다 료헤이, 만주국의 기획자 이시하라 간지에 이르기까지, 기타 잇키의 삶의 궤적을 따라 등장하는 근대 초 일본과 중국에서 활약한 사상가와 혁명가, 음모가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저자는 기타 잇키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사이비 혁명가 혹은 극우 파시스트라는 오해를 받아서 역사의 무덤에 매장당했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기타 잇키의 다양한 사상적 편력은 오해와 왜곡과 도구화될 소지가 충분했다.

한국의 국가개조는 집권세력부터

기타 잇키의 삶을 접한 박정희가 자신을 국가의지의 체현자로 상상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박정희가 2.26사건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5.16쿠데타 직전 “2.26 사건 때 일본의 젊은 우국 군인들이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궐기했던 것처럼 우리도 일어나 확 뒤집어엎어야 할 것이 아닌가?”라고 기염을 토했다는 전언이 그것을 반증하고 있다.

따라서 박근혜의 국가개조도 박정희의 연장선상에서 접근해야 이해 가능하다. 본인 역시 자신을 국가의지의 체현자로 사고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국가개조의 첫 출발점이 인사정책과 정부조직의 개편으로 이라는 게 대체적인 견해이다. 하지만 인사정책은 안대희에서 이완구로 이어지는 국무총리의 수난을 가져왔고, 정부조직 개편 역시 해양경찰청 해체, 사회부총리 신설, 안행부의 행정자치부로의 개편, 국가안전처·인사혁신처 신설 등을 내용으로 어떠한 사회적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급하게 쏟아 내면서 논란만 불러 일으켰다. 도저히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대통령의 빈곤한 리더십 때문이며, 자신이 몸담고 있는 정당과 자신의 지지세력이 바로 국가개조의 대상이라는 것을 직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수세력은 안보, 성장, 신자유주의만 있을 뿐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전이 없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대안세력으로서의 능력이 없다.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노동자 민중운동이 재구성돼 부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과제가 될 것이다.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에 대한 개념마저 명확하지 않은 한국의 지적 풍토에서 사회주의에서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을 아우르는 기타 잇키의 사상적 행보는 조금 낯설다. 그리고 그의 사상은 하나의 이념이나 신념으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사유의 직조물이다. 그럼에도 기타 잇키의 사상적 역정은 삶과 사상과 행동의 관련성을 고민하는 데 시금석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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