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정의당-국민모임과 통합 추진 중단 결정

나경채 당대표 사퇴 가능성 커...진보결집 추진력 약화

6월 28일 노동당 정기 당대회에서 정의당-노동당-국민모임-노동정치연대 진보정치 4개 세력 통합(결집) 추진 중단이 결정됐다. 나경채 대표가 당대회에 대표 발의한 “4자 대표가 6월 4일 합의한 공동선언에 기초해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한다”는 ‘당원 총투표 부의의 건’이 부결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초 진보세력 결집을 통한 진보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나경채 노동당 대표는 사실상 식물대표가 된 셈이라 조만간 거취에 대한 입장을 낼 예정이다.

  6.28 노동당 당대회에서 진보결집 추진을 위한 당원 총투표 부의의 건 부결을 선언하는 이덕우 당대회 의장

이번 결정으로 노동당은 2011년 진보대통합 과정처럼 다시 격랑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총투표 안건은 단순 4자 협상 추진 안처럼 발의했지만, 최종 협상안에 대한 정치적 압박용으로 제시된 측면이 커 찬성파나 반대파 모두 명운을 건 안건이었다. 안건 자체도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라 아예 협상 추진 자체를 대의원들이 거부한 결과가 됐다. 당대회 결과에 대한 해석 여지는 조금 남아 있지만, 정의당-국민모임-노동정치연대와의 진보결집 논의를 중단하라는 뜻이 강력해 결집에 찬성한 당원들의 집단 탈당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극소수지만 당 홈페이지 게시판엔 당원 총투표와 관련해 개별 탈당 의사를 밝힌 당원도 나왔다. 또 4개 진보정치 세력 통합은 추진력이 약화하고, 노동당이 빠진 채 3개 조직 통합 논의가 될 공산이 커졌다.

나경채 대표, “중간 과정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6.28 당대회 진보정치 세력 통합 추진 당원 총투표 부의의 건은 오후 6시 30분께 논의가 시작됐다. 당원 총투표 안건을 대표 발의한 나경채 대표는 이미 진보결집 협상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다시 진보결집을 추진 여부를 묻는 당원 총투표 안건은 정치적 압박이라는 반대쪽 의견을 의식한 듯 6월 4일 4자 공동선언 내용과 추진 배경 설명에 공을 들였다. 나경채 대표는 “진보결집을 추진하겠다는 대표 공약을 걸고 당대표에 당선이 됐고, 진보결집 추진에 대해 바깥 세력들의 기초 의지가 확인돼야 우리도 그들과 손을 잡고 진보결집을 나아갈 수 있을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노동당만의 계획이나 저만의 계획으로 당원 동지들의 뜻을 물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진보결집 추진과 관련한 최소한의 기본원칙과 입장, 과제, 의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문서와 중간과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안건을 설명하는 나경채 대표

이어 2008년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분당 관련 당대회와 2011년 노회찬, 심상정 전 대표의 탈당-통합진보당 합류 계기가 된 진보신당 당대회 경험을 소개하며 “절대다수의 당원은 이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다. 저는 당대표로서 찬반으로 확연히 갈릴 수밖에 없는 주제를 토론하자고 하는 입장에서 뜨겁게 논쟁하고 이 과정에서 전체 당원들의 의사만은 존중하자는 것을 동지 여러분께 호소하고 싶었다”며 “전체 당원의 총의를 모아 추진할지 말지를 결정하고 당원들의 총의에 충성하는 방식으로 조직 진로를 결정하자”고 총투표 안 가결을 호소했다.

나 대표는 총투표 안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에 “4개 단체에 기초한 6.4 선언에 근거해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정당 건설 추진 여부를 묻는 것”이라며 “안건이 가결되면 보다 더 높은 추진 단계로 접어들고 부결되면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 중단된다”고 설명했다.

진보정당의 꿈과 가야 할 길 놓고 부딪힌 호소와 호소

이어 한 시간여에 걸친 당원 총투표 안건 찬반 토론은 서로의 진심과 진보정당의 꿈, 걸어야 할 길, 시행할 시기의 차이 등이 드러난 호소의 시간이었다.

찬성 토론에 나선 경남 도의원 여영국 대의원은 “홍준표 도지사의 무상급식 중단에 맞서 홍준표 지사 소환 운동의 중심에 서 왔다. 단식도 하고, 학부모 강연도 많이 다니면서 노동당 소속으로 소개되는데, 그분들이 진보정당 통합은 언제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며 “소환 투쟁 과정에서 그 성과물을 담을 곳이 없다. 현재는 새정치연합이 성과를 가져가고 또 당이 해산 됐지만 통합진보당 동지들이 곳곳의 지역조직에서 성과물을 챙겨가고 있다. 노동당은 노동정치와 진보정당의 대표성을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 이걸 제대로 만들어 내는 게 진보통합의 길이고 민중에게 희망을 주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반대 토론에 나선 이건수 대의원은 “아직 희망 있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망했다고 그만두자고 굳이 왜 그렇게 하느냐”며 “진보정당 운동을 하다 힘이 든 분들은 좀 쉬면서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하지 않나 싶다. 아직 희망이 남았다는 사람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반대이유를 밝혔다. 이어 “각종 투쟁 현장에 가보면 데모당이 있는데 대부분 우리 당원들이다. ‘안녕들 하십니까’ 활동, 알바노조 등 우리 청년 학생 당원들이 이렇게 활발히 하고 있다”며 “당원들이 하나의 지침을 가지고 전국적 캠페인 능력을 갖춘 곳은 노동당이 유일하다. 이런 데 우리가 희망이 없고 망한 것인가. 풍찬노숙과 헝그리 정신으로 다시 할 수 있다고 자연스레 얘기할 수 있는 결정을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총투표 안건 찬성 표결

반대 토론에 나선 이장우 대의원은 “민주노동당 탈당 이후 2014년에 노동당을 선택해 입당한 이유는 정의당, 통합진보당, 새정치연합이 노동자와 대중을 배신해 왔기 때문”이라며 “작년 지방선거와 재보궐 선거에서 노동당을 선택한 대중은 대충 진보정당을 선택한 게 아니라 노동당을 선택한 대중이었다. 아직 희망이 있다. ‘진보통합을 언제 하느냐’는 대중의 질문에 노동당이 있다고 대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찬성 토론에 나선 남가현 대의원은 “진보정당 운동 18년 동안 저에겐 꿈이 있었다.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자는 그 꿈 하나”라며 “노동당이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당이 망해서가 아니라 더 큰 대중적 진보정당을 통해 세상을 바꾸겠다는 우리의 꿈이 있기 때문”이라고 눈물로 가결을 호소했다. 남가현 대의원은 “어렵다고 도망가겠다는 게 아니다. 우리의 정치를 할 수 있으면 언제까지든 버틸 수 있다”며 “6.4 선언 내용이 맘에 들지 않는 분들이 있을 수 있고 진보결집이 틀렸다고 하실 수 있지만, 지금 안건은 그저 당원의 뜻을 한번 물어보자는 안건이다. 그 뜻을 받아 협상을 통해 제대로 된 정당의 상을 만들지 못한다면 저 역시 마지막 당대회에서 반대할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믿어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자신을 원래 극렬 당원 총투표 반대자라고 소개한 이상하 대의원은 찬성을 호소했다. 이상하 대의원은 “내용은 맘에 들지 않지만 이걸 반대한다면 대의원이 당원의 의견 묻자는 것을 자르자는 것이 된다”며 “내용상 불만은 많지만 형식적으로 이 안건은 가결해야 대의원의 월권 논란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장규 대의원은 “제대로 된 진보 결집을 하려면 최소한 1-2년은 논의를 해야 한다. 시한을 못 박지 말고 장기간 진보결집을 추진하라는 것”이라며 “제대로 된 진보결집을 원한다면 총투표 찬성파도 반대해 달라”고 강조했다.

김종철 대의원은 “남가현 대의원이 말한 꿈을 이루고 싶다. 우리 훌륭한 당원 한 사람을 반드시 국회에 보내 알바노조가 경총에 뛰어들어갈 때 함께 손잡고 가서 (경총 임원들의) 멱살을 잡고 최저임금은 1만 원이 맞다고 할 꿈이 있다”며 “저의 내년 총선 당선 가능성은 1.4%다. 1.4%밖에 안 되는 놈이 왜 출마를 준비하고 있겠나. 딱 하나다. 다시 출마해서 1.4%를 받을지언정 동작 주민들에게 정당 투표는 노동당에 7-8%를 찍어주도록 할 것이다. 그 한 표 한 표가 모여서 한 명이라도 국회에 들어갈 수 있다면, 저는 0.5%를 받아도 다시 출마할 수 있다. 저는 진보결집정당에서는 그게 가능할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늘 총투표 안건을 부결시키면 사실상 나경채 대표가 추진한 진보결집 공약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며 “가결이 되면 시간을 두고 진보결집이 뭐고, 당원의 총의가 무엇인지 고민할 길을 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김상철 대의원은 “왜 오늘 당원 총투표 부결이 우리 당의 파국이 돼야 하는지, 당원 총투표의 부결을 파국으로 이끈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묻고 싶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총투표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서로의 신뢰와 확인”이라고 반박했다. 김상철 대의원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꿈은 많은 분과 함께 추진할 내용”이라며 “9월 말까지 시한이 박혀 있고 2011년도에 이미 검증한 총선용 진보정당 만들기 프레임은 실패했다. 다시 밑에서 추진해야 한다. 저도 꿈을 꿀 기회를 달라. 왜 꿈꾸는 자가 한정돼 있나. 그 꿈을 다시 모두가 꿀 수 있게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당의 운명을 건 1시간여의 불꽃 같은 찬반 토론 직후 바로 표결이 시작됐다. 표결결과는 10여 분 만에 나왔다. 재석 대의원 284명 중 118명만 당원 총투표에 찬성해, 의결정족수 143명에 다다르지 못했다.

결과가 나온 후 나경채 당대표는 기자들의 질문에 “진보정치가 위기를 딛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결과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진보결집을 추진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싶고, 진보정치 결집이 이뤄지길 바랐던 당원들과 노동자, 서민, 3개 단체 대표님들과 회원들한테 미안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거취 문제에 대해선 “2011년도나 2008년과 같은 파괴적 방식으로 이 논의를 지속하는 것은 어려워졌다는 측면에서 제가 가진 정치방침과 조직방침이 불가능해진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런 측면에서 부결되면 거취에 대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다만 저 혼자 가볍게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당내외 의견을 들어볼 생각이다. (의견을) 듣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통합 논의의 한 파트너였던 정의당은 29일 오전 문정은 대변인 명의의 브리핑을 통해 “그간 대한민국의 건강하고 합리적인 진보세력 결집을 위해 함께 노력해온 정의당으로서는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며 “노동당의 결정을 존중하며, 진보의 가치에 동의하는 분들이 모두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의 건설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총투표 안건 찬성에 표결하는 나경채 노동당 대표

  당대회를 마친 후 노동당가를 부르는 대의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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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는놈

    이상하 대의원이 아니라 이상화

  • 조합원

    꼼꼼히 정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식물대표라는 표현은 좀 순화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동물대표/식물대표

    또 식물인간 등 뭔가 부정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을 일컫는 표현을 연상시켜 다른 표현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 시나리오

    6개월 만에 직선 당대표가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구만. 나경채 사퇴하면 비대위원장은 이갑용? 내년 총선을 울산 이갑용한테 올인하겠다고 했으니 명함 하나 파줘야겠지. 그러고보니 당대표 무력화며 총선전략이며 이게 다 이런 시나리오로 흘러온 건 아닐까 싶기도 하네 ㅎ

  • 한휘철

    걍 골방에서 보드게임이나 하세요
    그게 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