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십자가는 저항 예술"

교황, 낫과 망치 십자가에 의견 밝혀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낫과 망치 모양 십자고상을 선물하는 장면. ⓒ<로세르바토레 로마노>

프란치스코 교황이 볼리비아 방문 중 받은 “공산주의 십자고상”에 대해 자신은 전혀 불쾌하지 않으며 그 작품을 “저항 예술”로 이해한다고 밝혔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은 7월 9일 교황을 맞은 자리에서 낫과 망치 모양 십자가 위에 예수가 못박힌 십자고상을 선물해서 큰 논란이 일었다. 낫과 망치 문양은 오랫동안 공산주의 상징으로 쓰였다. 교황은 당시 무언가 중얼거리며 이 고상을 대통령 보좌관에게 줬다.

일부에서는 좌파 정권인 볼리비아 정부가 (교황이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처럼) 조작하기 위해 이 선물을 줬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낫과 망치. (이미지 출처 = www.flickr.com)
문제가 된 그 십자가는 스페인인 예수회원으로 볼리비아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독재정권 시절인 1980년에 죽임당한 루이스 에스피날 신부가 1970년대에 조각해서 갖고 있던 것을 복제한 제품이다. 에스피날 신부는 자기 자신을 "노동자 사제"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리스도교와 사회주의의 일치성, 또는 노동자, 농민과 함께 수난당하는 예수를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 십자가를 받을 때 교황의 반응은 주변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요란해서 잘 확인되지 않았고 그래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볼리비아 정부는 이 선물이 "대화"의 뜻이었다고 해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일 밤 파라과이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가진 기내 기자회견에서 “나는 그것을 저항 예술(protest art)이라고 보는데, 보기에 따라서는 기분 나쁠 수도 있다”고 했다. 교황은 이번에 에콰도르, 볼리비아, 파라과이를 순방했다.

하지만 그는 그 작품의 배경을 보면 자신은 그 십자고상에 담긴 의미를 이해한다면서 “내게는 그것은 불쾌한 (선물)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교황이 되기 전에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로 있을 때 “한 훌륭하고 창조적인” 조각가가 비행기 위에 예수가 못박힌 십자고상을 만들어 전시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그것은 저항 예술이었다. 내가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밑으로 내려오는 폭격기 위에 그리스도가 못박혀 있는 작품이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를 말한 것이지만, 그리스도교가 폭격기로 표현된 제국주의의 동맹자인 모습을 비판한 것이었다.”

교황은 또한 모랄레스 대통령이 준 그 십자가가 그들이 탄 비행기에 실려 함께 로마로 가고 있다고 공개했다. 논란 당시에는 그가 십자가를 받지 않고 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은 자신은 에스피날 신부가 언론인이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또한 조각가이자 시인이었다는 것은 몰랐다고 했다. 그는 에스피날 신부는 사는 동안에 당시 남미에서 크게 유행하던 해방신학의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에 동조했다고 지적했다.

해방신학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예수회 내부는 물론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의해서도 1984년에 비판을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십자고상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법을 취하면서 당시의 시대상황을 분석하고, 에스피날 신부는 “마르크스주의적 현실의 이 분석법에 심취해 있었으며, 또한 마르크스주의를 이용한 신학에도 그랬다”고 말했다.

그는 에스피날 신부가 그런 작품을 만든 것은 이런 관점에서였다면서, 에스피날 신부의 시들도 “이런 저항 예술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삶이었고, 그의 사상이었다. 그는 아주 온화한 품성으로, 훌륭한 신앙 속에 싸운 특별한 사람이었다.”

교황은 볼리비아를 방문하면서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에스피날 신부의 무덤에 들러 기도하고 그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노력했던 것을 기렸다. (기사제휴=지금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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